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27화 (27/201)

#27화 - 굳이 3년이나 기다릴 순 없지.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8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인 27일.

강경진이 BS북에 입사하고 한 주가 흘렀다.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침대에 기어들어 가고 싶은 기분이다.

“좋은 아침.”

“안녕하세요.”

“어 왔네! 정우 매니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기도 전에 김동현 팀장이 손짓으로 다급히 부른다.

“예, 팀장님.”

“인턴사원 회장님 장난 아니던데? 이야아, 이걸 웹툰으로 보니 느낌이 또 달라? 댓글 반응부터가 장난이 아닌데? 소설 반응하고는 비교가 안 돼.”

“감사합니다.”

내 눈가가 이창윤 매니저처럼 퀭한 이유는 오늘이 바로 ‘인턴사원 회장님’ 웹툰의 첫 연재 날이기 때문이다.

‘연재 시간이 하필 밤이냐고.”

테일랜드에서 연재되는 모든 웹툰은 웹소설과 달리 전날 오후 11시에 일괄 업로드된다.

즉 매주 수요일에 연재되는 ‘인턴사원 회장님’ 웹툰 역시 전날인 화요일 오후 11시에 연재가 시작되었기에 나는 생활 패턴을 깨트려가면서 계속해서 ‘인턴사원 회장님’을 모니터링했다.

내가 쓴 글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내 글이 웹툰화가 되는 건 나도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무슨 일이든 처음이라는 건 도파민을 뿜어내기 마련이다.

“정우 매니저, 너무 무덤덤한 거 아니야? BS북 판무 쪽에선 최초로 웹툰화된 작품인데?”

“정우 매니저님도 이미 다 모니터링하고 왔겠죠. 눈가 퀭한 거 봐요. 근데 진짜 재밌더라구요. 저도 어제 밤 11시 되자마자 댓글 달고 읽었어요. 재밌어서 미리보기도 다 구매 했음.”

“다들 감사합니다.”

김동현 팀장과 이창윤 매니저 모두 제 일처럼 기뻐해주는 걸 보니 괜스레 뿌듯한 기분이다.

“재미있긴 한데…….”

“?”

그냥 닥쳐줬음 좋겠지만, 초치기 전문가 조팟이 슬쩍 대화에 끼어든다.

“그런데 이게 정우 매니저가 감사할 일인가? 돈은 코즈일 작가랑 그림 작가가 가져가는 건데?”

“제 담당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담당 작가님이 잘되면 제 일처럼 기쁘죠.”

“뭐, 나도 미리보기로 나온 건 다 봤는데 괜찮긴 하더라고.”

“감사합니다.”

나도 그간 함께 회사 생활을 해 와서인지, 조팟놈의 초치기엔 이제 별다른 타격이 없다.

어차피 내가 코즈일이고 LGA컴퍼니도 내 거니까.

‘단지 대꾸하기가 귀찮을 뿐이지.’

조팟놈이 결제해 읽은 미리보기도 다 내 주머니에 들어온다. 코 묻은 돈을 보태준 조팟에겐 감사한 마음뿐이다.

회사의 시간은 느리면서도 빠르다.

시간이 더럽게 안 간다고 느껴지다가도 정신을 차리면 벌써 점심 시간이니까.

“자, 식사들 합시다. 오늘 간만에 다 같이 점심이나 할까?”

“좋죠.”

“저도 좋습니다.”

“부대찌개 콜?”

“더워죽겠는데 뭔 부대찌개에요. 돈까스나 먹죠?”

“조팟아, 돈까스는 차갑니?”

“부찌는 냄새 배잖아요.”

투덜거림이 일상인 조팟놈의 식성에 맞춰 우리는 맛집으로 유명한 돈까스집으로 이동했다.

남자 넷이서 굳이 이런 곳에 와야 하나 싶지만 높은 엥겔지수를 자랑하는 조팟놈은 꼭 밥도 비싼 것만 처먹는다.

“다시 한번 우리 정우 매니저 담당 작품이 성공적으로 그것도 우리 판무팀 첫 웹툰이 된 것을 축하하면서!”

“아…… 설마 여기서?”

“박력 있고, 카리스마 있고, 스피디하게!”

““박카스!””

물컵을 들고 반자동적으로 나도 모르게 건배사를 외치긴 했는데, 장소가 장소인지라 곧이어 수치심이 몰려온다. 김동현 팀장을 제외한 모두가 같은 생각인지 다들 말없이 돈까스를 입에 구겨 넣었다.

“팀장님, 근데 올댓스토리는 새로운 얘기 들은 거 없으세요?”

바삭하게 튀겨져 나온 돈가스를 아그작거리며 묻는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30억인데 그게 금방 되겠어? 강 팀장이랑 대표님이 가서 투자 확정은 받아 왔다는데, 계약 절차라는 게 시간상 좀 걸리나 봐.”

“아, 거참. 빨리 좀 진행 하지.”

아쉬운 입맛을 다시는 걸 보니 조팟놈은 벌써 올댓스토리에 작품을 넣을 생각이 가득한 모양이다.

“다들 괜한 생각 말고 우선은 소설피아 컨택만 집중해. 세컨 레이블도 이제 막 만들어졌고 지금 당장 올댓에 1차 독점으로 작품 넣는다고 해도 인센 떨어질 거 없어. 어차피 투자금 받고 나서 인센 지급도 시작된다니까.”

“그게 대략 언제쯤이래요?”

“빠르면 10월 말에서 11월. 늦어도 12월 중엔 투자금 받지 않을까 하더라고. 그러니 사실상 우리가 인센 받을 수 있는 건 1월 초 정도겠지.”

“뭐에요 팀장님?”

“뭐가?”

조팟이 포크를 내려놓고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김동현 팀장에게 쏘아 보냈다.

“우리 안심시키고 팀장님은 올댓에 넘길 작품 미리 준비해 두는 거 아니에요? 인센 팀장님이 다 가져가시게?”

“어허이? 뭔 소리야 지금? 그리고 이거 대외비니까 작가나 다른 출판사 사람들한테 말하지 말고.”

“이걸 말해서 뭐 해요? 올댓에 작품 늘 회사가 우리 말고 어디 있다고.”

“흐음, 흠. 밥이나 먹자.”

팀장이란 새끼가, 쯧.

순간 시선을 회피하는 걸 보니 김동현 팀장 역시 인센을 노릴 생각에 대가리가 꽃밭인 것 같다.

‘생각보다 일정이 느려서 다행이긴 하네.’

예상보다 BS북에 대비할 시간이 많다는 걸 알려야겠다. 오늘 모이게 될 내 사람들에게.

* * *

“대표님, 그런데 좀 전에 무슨 말 하려던 거였어요?”

“뭐가요?”

퇴근 후 나와 권미현 매니저는 상암동 쪽의 한정식집으로 이동했다. 개별 룸으로 된 이곳에선 이제 곧 도원결의가 시작될 거였으니까.

“주차하시면서 끊긴 말 있잖아요. 놀라지 말라고 한 거요.”

“아 그게…….”

“이쪽 방입니다.”

“미현 씨. 일단 들어가요.”

미리 언질이라도 주려 한 거였다.

도원결의 멤버 중엔 단풍 삼촌이 있었으니까.

‘들어가면 알 겁니다.’

“아!”

문이 열림과 동시에 권미현과 방 안에 있던 이지연의 입에서 옅은 탄성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한쪽에서는 안도의 음성이 다른 한쪽에선 놀람의 탄식이.

“이야아, 직원분들이 다 아름다우시네.”

“대표님…… 오셨어요?”

아니, 삼촌이 그렇게 말하면 좀 그렇잖아?

이지연의 눈빛에서 왜 이리 늦었냐고 책망하는 감정이 서려 있다. 양복을 쫙 빼입은 단풍 삼촌이 190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로 몸을 일으켜 빙긋 미소 짓자 권미현마저 겁먹은 토끼처럼 바들거린다.

“다들 일찍 오셨네요. 저희도 퇴근하고 바로 왔는데 차가 조금 막혀서.”

늘 당차 보이던 권미현도 칼자국이 가득한 단풍 삼촌의 얼굴에 삐걱거렸다. 어쩔 수 없지, 저렇게 생긴 얼굴 내가 바꿔 줄 수도 없고.

오늘 이자리에 이지연, 권미현 그리고 단풍 삼촌까지 모두 모이게 한 건 이제 본격적인 사업에 앞서 아이디어를 취합해야 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서로의 얼굴도 트면서.

“이지연 씨는 저희 LGA컴퍼니 공동 대표로 웹툰 및 디자인 부문 총괄을 맡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이지연이라고 해요.”

“이쪽은 현재 BS북 운영팀 매니저로 일하고 계시는 권미현 씨.”

“권미현입니다.”

권미현과 이지연 역시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쪽은 회사의 경영 전반을 담당해 주실 무진 삼촌이에요. 친삼촌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마찬가지죠.”

“리, 아니 이무진입니다. 다들 반갑습니다.”

검은 양복 위로 선명히 보이는 근육과 살벌한 인상 때문이었을까? 이지연과 권미현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술이 몇 잔 들어가고, 단풍 삼촌 특유의 친화력 때문인지 식사를 시작하며 분위기는 점차 부드러워졌다.

“오늘 이 자리에 모두를 모시게 된 건 앞으로 사업 계획의 진행을 공유하고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일 얘기가 나오니 모두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이야기에 앞서 하나 다시 말씀드릴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LGA컴퍼니의 사훈이자 제가 회사를 차린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건 매우 단순하죠.”

낮뜨겁긴 하지만 한 번쯤은, 아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해야 할 말이었기에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LGA를 차리기로 결심한 건 단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니까.

“LGA에서 제가 원하는 건 단 한 가지. 상생할 수 있는 출판계를 만들자 입니다. 무척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마치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것처럼요. 작가도, 회사도 그리고 직원들도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그런 회사를 꿈꾼다는 뜻입니다.”

서로가 도움이 되는 협력적인 관계를 작가와 직원들 그리고 회사가 모두 모색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쯤 설명했으면 충분할 터다.

내가 굳이 이 이야기로 서문을 연 건 임원진들의 각오가 느슨해지지 않기를 바란 거였으니까.

“단풍 삼…… 아니, 무진 씨는 경영 총괄을 담당해 주실 겁니다. 각종 국비 지원 사업에 참여한 경험도 많은 적임자고 사업의 안정화와 확장 부분을 전담해…….”

단풍 삼촌과는 혈연 관계나 마찬가지였지만 업무적인 상황에서는 서로 존대를 하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건 주먹구구식의 가족 경영 회사가 아니니까.

경영 본부장을 맡은 단풍 삼촌과 디자인 본부장을 맡은 이지연은 이사 직위를, 출판 본부장의 직책을 맡은 권미현은 대리 직위로 정해졌다.

그리고 혼란을 줄이기 위해 대표의 호칭은 오직 내게만 붙이기로 했다. 최소 우리들끼리 있을 때에는. 낯간지럽긴 하지만 회사라는 울타리에선 체계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신인 작가 발굴, 정부 사업 제안, 웹툰화 확장 등 각자의 담당 분야와 업무 진행 계획에 관련해 여러 안건을 주고받으며 식사 자리는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든든하네요. 대표님께 대략적인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사님들이 생각하시는 사업 구상을 들으니 퇴사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째 지금까지는 조금 불안해했다는 것 같네요 미현 본부장님?”

“에이, 무슨 소리세요? 대표님 말만 믿고 바로 다음 날 사직서 낸 사람한테.”

권미현은 정말 당찬 사람이다.

이제 갓 성인이 된 나이임에도 사고방식이나 상황 판단에선 조금도 어린 티가 나지 않았으니까.

“크흐흐, 좋습네다. 내래 최선을 다해서 LGA컴퍼니를 혁명적으로 발전시켜 보갔습네다.”

반주를 걸친 단풍 삼촌 입에서 고향 말투가 조금씩 튀어나왔지만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각자 맡은 분야의 사업 계획 발표를 들으며 단풍 삼촌의 능력이 충분히 돋보였을 테니까.

이제 슬슬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분위기.

마무리만 남았다.

“무진 이사님께는 추가로 하나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날래 말하시디요. 사업적인 얘기오?”

“사업이긴 한데 비영리 사업이에요. 그래도 정말 중요한 부분이어서 이거는 꼭 부탁드리려고 해요.”

“그게 뭔가요?”

불쑥 끼어든 이지연 역시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작가 커뮤니티를 만들 계획이에요.”

“커뮤니티요?”

작가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작가들만의 커뮤니티는 원래대로라면 2017년도는 되어야 나올 예정이다.

‘굳이 3년이나 더 기다릴 필요는 없지. 그래서도 안 되고.’

강경진은 작가들이 내향적이라 치부했다.

하지만 강경진은 아직 모르고 있을 터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모니터 뒤에선 얼마나 무서운지. 작가들의 마음엔 여포의 화력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잘 봐두라고 강경진. BS북의 세컨 레이블. 자리도 잡기 전에 탈탈 털어 줄 테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알릴 때가 됐다.

출판계가, 그리고 업계 탑인 BS북이 어떤 곳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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