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26화 (26/201)

#26화 - 세전이냐 세후냐?

“단풍 삼촌!”

“인사는 내려서 박아야지.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야.”

단풍 삼촌은 삼촌들 중 가장 막내 삼촌이다.

나와 고작 8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20대 후반이었지만, 탈북자 출신인 단풍 삼촌의 얼굴은 다른 삼촌들 못지않을 정도로 험상궂다.

“작은 형님들이랑 큰형님 다 안에 계신다.”

“나 삼촌 만나러 온 거야.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내를?”

“응.”

내가 차를 세운 곳은 보육원 밖의 등산로 길의 주차장. 저녁 시간에는 늘 텅 비어있는 곳이고 이 시간쯤이면 단풍 삼촌이 산책을 나오는 곳이다. 그리고 단풍 삼촌은 인의 보육원 최고의, 아니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삼촌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이 쌍간나! 내가 토토는 손도 대지 말랬디?”

“아, 거참! 그런 거 아니야. 시간 돼, 안 돼?”

“싸가지 하곤. 기다려.”

단풍 삼촌은 짧은 말만 남기고 보육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1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정장 차림이 아닌 사복으로 갈아입은 단풍 삼촌이 두 손 가득 연장을 들고 조수석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 제끼면 돼? 파트장? 팀장?”

“……. 그냥 대화만 하려고 부른 거야.”

“그 쌍간나들 구역 어디냐고?”

“…….”

꽃제비 출신이었던 과거가 떠올라서일까?

단풍 삼촌은 보육원 애들이 무슨 일만 당하면 종종 눈이 뒤집히곤 했다. 단풍 삼촌이 진정하길 바라며 보육원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로 이동했다.

한적한 카페 2층 구석에서 나는 단풍 삼촌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것 그리고 출판계를 바꾸고 싶다는 포부 그리고 오늘 입사한 강경진이 어떤 일을 벌이려는지도.

“니미, 대가리에 핵 처맞을 소리 하네? 출판사가 돈을 벌려면 좋은 글을 내야지. 세상 물정 모르는 애들 코 묻은 돈 털어먹으면 좋나? 그런 개간나들 때문에 통일이 안 되는 거야. 뷰티플 월드. 이게 힘드냐고? 어?”

“나도 나름대로 준비를 하긴 하는데……. 일이 갑작스럽게 벌어져서 그런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전 생엔 보육원을 퇴소하고 삼촌들과 아버지에겐 이런 고민을 단 한 번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를 친부모보다 더 친자식같이, 친조카같이 키워준 그들에게 힘들어하는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번 삶에는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아보려 한다.

“미안해 삼촌. 오랜만에 와서 이런 얘기나 하고.”

“정우야. 너 퇴소할 때 삼촌들이랑 큰형님이 말했지? 어려운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라고. 없어도 연락하고.”

“고마워 삼촌.”

“아가리.”

단풍 삼촌은 아직 내가 애처럼 보이는 듯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웃었다. 그러곤 품에서 팬을 꺼내 냅킨 위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일단 보자. 강경진이란 새끼가 난데없이 들어왔는데 이 새끼가 대표 빽이 있는 쌍간나야.”

“응, 맞아.”

“근데 이 쌍간나가 빽만 있는 게 아니라 꼴에 능력도 있네? 30억 받고 회사 애들한텐 보너스 주겠다고 이빨을 까. 그렇게 니네 회사 접수한 상황이란 말이지. 그리고 너는 더 좋은 출판계 만든다고 거기 처박혀 있는 거고…… 아 씨발 눈에 먼지.”

“뭐……. 대충 비슷하지.”

단풍 삼촌은 감동충.

포인트가 잘 잡히지 않는 부분에 종종 감동하곤 했는데, 지금 눈가를 훔치는 것도 대략 그런 맥락인 것 같다.

단풍 삼촌은 내가 했던 말을 정리하듯 냅킨에 계속 글씨를 끄적이더니 그걸 구겨 찰랑이는 커피잔 안에 빠트렸다.

“잘 들으라 정우야. 일단 그 회사는 글렀어. 휴지조각같이 침몰하는 배지. 딱 들어보니 대표는 뒷방 늙은이고 실권 잡은 건 그 강경진이란 새끼야. 그러면 지금 너한테 중요한 게 뭘까?”

“그게…….”

“최진혁이 같은 놈 데리고 나오는 거라고 하면 대가리 뽀갤거니 하지 말고.”

나는 BS북에서 빛을 보지 못한 인재들을 구하고 싶었다. 그걸 궁예처럼 뚫어본 단풍 삼촌의 관심법에 괜스레 마음이 뜨끔하다.

“하지만 최진혁 파트장님도 마음은…….”

“아가리. 근묵자흑이 괜히 있냐? 너네 회사 대표가 지금 골골거린다고 해도 강경진이 회사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까진 시간이 걸릴 거야. 너는 지금 피똥 싸면서 기반 다져야 한다는 거지. 근데 뭐? 간잽이를 뽑을 생각을 해? 마음이 고우면 뭐 해? 행동이 병신인데.”

“그래도…….”

“아가리.”

“…….”

단풍 삼촌의 말에 머리가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 같다. 예상보다 빠른 강경진의 등장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진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처음 이지연을 채용할 때만 해도 신중했던 마음이 권미현을 채용하고 강경진이 들어온 후에는 LGA컴퍼니를 확장시킬 생각에만 너무 급급했던 것 같다.

최진혁을 향한 내 마음은 동정이다.

내 감정에 솔직해져야 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출판계를 갈아엎는 대업을 이루려는데 썩은 잎사귀를 자르지 않으면 안 되니까.

LGA컴퍼니를 빠르게 확장시키고 싶었고 강경진이란 어둠에 물들어 갈 최진혁 파트장이 안타까웠지만, 단풍 삼촌의 말처럼 사업을 시작하는 상황에선 그 밑거름이 될 사람들을 제대로 뽑아야만 한다.

“그리고 웹소설의 웹툰화? 강경진 그 새끼도 진행하는데 자금력, 쪽수 그걸 니가 어떻게 이겨? 30억은 씨발 보이스피싱범 새끼들도 뚝딱 못 벌어 새끼야. 그럼 네가 어떻게 해야 돼? 그 새끼들이 돈지랄 한다고 맞다이 뜨지 말고 다른 쪽으로 시야를 넓혀야디.”

“시야를 넓히라고?”

“그래. 강경진 그 종간나가 놓치는 거를 봐야 한다고. 그 종간나 새낀 할 수 없거나 아니면 할 생각이 없는데 너는 할 수 있는 그런 걸 보라고.”

“놓치는 거라…….”

강경진이 웹툰 사업을 한다는 건 코즈일의 작품이 LGA컴퍼니와 계약해서 대박이 날 걸 예감했기 때문일 터다. 강경진은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 놈이니까.

하지만 당장 놈이 생각하는 건 올댓스토리에서 유치한 30억으로 BS북의 소설 원작 활용을 최우선시할 게 분명하다. 자체 IP를 이용해야 남는 이윤이 더 클 테니까.

자체 IP를 활용한 소설 웹툰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다면 BS북이 유통하는 출판사의 작품들을 계약하는 정도일 테고.

‘그렇다면 나는 이보다 좀 더 멀리 봐야 한다는 소린데…….’

얼마나 더 멀리 봐야 하는지 감조차 잘 잡히지 않는다. 숲이 아니라 바다 건너서라도 봐야 하는……. 바다 건너?

‘해외?’

아니, 아직 해외는 이르다.

단지 ‘재밌으면 통한다’라는 생각으로 국내 기반도 없는 상황에 해외로 눈을 돌리는 건 시기상조니까.

물론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소설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 소설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혹은 그 세계관을 완벽하게 정립시킨 것에 의의가 높은 작품이다.

내 글이 그리고 앞으로 드래곤이란 레이블로 출간할 글들이 아무리 재미있다 하더라도 이 글들을 가지고 당장 해외로 나간다는 건 국내에서 자리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 리스크가 너무 크다.

‘단풍 삼촌이 국비 지원 사업 전문가이긴 하지만…….’

다시 고민해봐도 당장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건 무리수다. 웹월드나 테일랜드 역시 웹소설이 아닌 웹툰을 먼저 시장에 유행시켰던 게 아무런 이유가 없진 않았을 테니까.

문화와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해외의 문학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여러 장벽이 존재한다.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언어의 장벽이고 그 장벽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 바로 소설이다.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타는 일본의 서브컬쳐 역시 시작은 결국 만화책부터였다. 언어 그리고 문화의 장벽을 낮출 수 있는 건 활자보다 그림이 월등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LGA컴퍼니는 국내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확장시켜야 한다는 건데…….’

내가 아무리 여러 질을 쓴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30억 원이란 BS북의 자금력을 현실적으로 이길 수는 없다.

LGA컴퍼니에선 BS북처럼 박리다매식 작가 계약이 아닌 양질의 글을 작가와 출판사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할 거다.

웹툰 부문 역시 이와같이 차별점을 둬야 한다.

BS북과 우리 LGA 모두 웹소설을 웹툰화 하는 시장에 발을 들였지만 BS북은 결코 눈여겨보지 않을 그런 부분을.

‘그런 게 뭐가 있을까…….’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인력도, 자본도, 업계 영향력도 비교할 수조차 없는 우리 LGA컴퍼니만의 힘. BS북뿐만이 아니라 다른 출판사들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런 틈새가.

“삼촌, 내 웹툰 나온 거 어땠어? 이런 점이 좋다 하는 거 없었을까?”

“존나 많지. 그림도 잘 빠졌고 분량도 많고. 지금 연재 하는 직장인물이 없어서 다른 웹툰하고 비교하긴 좀 그런데, 확실히 그림이라 소설보다 접근성은 좋아 보이더라.”

“접근이라…… 접근…… 어?”

단풍 삼촌의 말을 듣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

그리고 강경진이 놓치고 있을게, 아니 안다고 해도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을 분야가 떠올랐다.

“굳이 웹소설로 한정 지을 필요가 없었어. 대여점 소설 웹툰화를 진행하면 되겠는데?”

“대여점? 니 어릴 때 보던 종이책?”

“응, 아직 웹소설로 진출하지 않거나 은퇴한 대여점 시절 작가님들이 많아. 그 작가님들의 글을 웹툰화 하는 쪽으로 진행해 보려고 해.”

내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단풍 삼촌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정우 너랑 다른 애새끼들 글공부 좀 시켜 보겠다고 대여점 소설 많이 따라 읽어서 알지만. 대여점 시절 소설이랑 웹소설은 좀 다르지 않냐? 문체랑 전개 방식 같은 게 차이가 있던데?”

“그렇긴 하지. 대여점 시절은 좀 더 벽돌체가 많기도 했긴 한데, 그런 건 딱히 문제없어. 각색을 하면 되니까.”

“각색?”

“심폐소생술 하겠단 말이야. 옛날 글을 요즘 스타일로.”

회귀 전에도 대여점 시절 소설을 각색해 웹툰화하는 일은 상당히 늦게 진행됐다.

하루에도 끝도 없이 신작이 쏟아지는데 굳이 옛날 소설을 웹툰화 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BS북 같이 출판사에서 웹툰화를 눈여겨보는 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자체 IP를 활용해 웹툰을 제작하면 웹툰이 인기를 얻을수록 원작 소설 구매수가 급등하기 때문이다.

‘이북 제작도 안 된 종이책 소설을 BS북이 눈여겨볼 일은 없다는 거지.’

앞으론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지식으로 글을 쓰고 작가들을 계약하는 것 외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함이 분명해졌다.

마치 내가 내년 초부터 비트 코인을 사 모으려는 것처럼, 사업 부분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미래의 지식을 활용하면 LGA컴퍼니를 더욱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을 게 분명하다.

해외 웹소설 플랫폼 외에도 지금까진 웹소설 작가들만을 위한 커뮤니티가 생기는 시점을 기다리기만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잖아? 나라면 더 제대로 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하다.

단풍 삼촌의 말처럼 단순히 믿을 수 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누구보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사업 감각이 좋은 경영 전문가가. 그리고 웹소설과 웹툰을 비롯한 문화 컨텐츠에도 지식이 많은 사람이.

“그래서 부탁이 있어 삼촌.”

“부탁은 니미. 그냥 말 해라 간나야.”

인의 보육원 아이들은 조금도 고아 같은 생활을 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풍족하게 먹고 좋은 브랜드 옷만 입는다. 그리고 이게 가능했던 건 온갖 국비 지원을 받아오는 단풍 삼촌이 있기 때문이지.

“나 일하는 거 도와줄 수 있어?”

“우리 정우 많이 컸네? 삼촌보고 니 따까리 하라고?”

“내 사업 경영을 맡아 줄 전문가가 필요해. 부탁할게 삼촌.”

“새끼야. 삼촌이 노는 줄 아냐? 애들 공부 가르치랴, 나랏돈 타먹으랴 존나 바빠.”

단풍 삼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 정도로 물러설 거였다면 애초에 삼촌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터다.

“삼촌 그 똑똑한 머리 여기서 애들 공부나 가르치는 데 쓰는 거 아깝지 않아? 그리고 삼촌도 알잖아. 우리 애들 중에 공부 관심 있어 하는 애들 거의 없는 거. 차라리 학원을 보내줘. 애들은 학원 가서 공부하는 거 더 좋아해.”

“새끼가? 삼촌 가슴에 대못을 박네?”

“우리 보육원 정부 지원금 타는 건 자주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계속 병행하게 해줄게. 그리고 삼촌도 원래 직장 생활 해보고 싶었다며. 그런데 못 한 거 아냐.”

“누, 누가 그래?”

“면접 때마다 조선족 보이스피싱범 같다고 탈락 됐다며. 그래서 취업 포기한 거고. 흑싸리 삼촌한테 들었어…….”

남한에 와서도 말투로 차별받고, 외모로 차별받던 단풍 삼촌은, 차별받던 그때의 아픔이 떠올랐는지 눈가가 촉촉해졌다.

전 세계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단풍 삼촌이었지만, 과거 삼촌이 일자리를 구하던 그땐 탈북자라는 출신 하나만으로 회사 서류 단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맞봤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엔 아직 탈북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북한 억양이 덜 빠져서인지 기적적으로 면접까지 가더라도 결과는 탈락일 뿐이었다. 토플 만점조차 단풍 삼촌에겐 의미 없는 숫자일 뿐.

“단풍 삼촌.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보육원 사람들은 다 알잖아. 삼촌이 얼마나 똑똑한지. 삼촌 능력을 제대로 한번 써보고 싶은 생각 있을 거 아냐.”

“…….”

“부탁이야 삼촌. 회사 경영을 맡을 사람이 필요해.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삼촌 말고는 없어.”

“황송해서 뒤지겠네. 정우야 알아 둬라. 삼촌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게 아니다. 삼촌도 나만의 인생이 있어. 그리고 그건—”

“기본급 500에 인센 별도.”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디.”

단풍 삼촌은 피식 웃으며 악수를 청하듯 내게 손을 내밀었다.

“세전이냐 세후냐?”

“세전이지.”

나는 삼촌의 투박한 손을 잡았다.

내게 제갈량이 생겼다.

단돈 500만 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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