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 최고의 브레인.
“강경진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BS북은 웹소설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은 가장 재미있고 좋은 퀄리티의 작품을 많이 낸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저, 정우 매니저! 뭐 하는 거야?”
옆에 앉은 조팟놈이 귓가에 속삭이며 나를 말린다. 누가 뭐래도 이제 내 할 말을 하긴 할 건데, 지금 상당히 거슬리는 게 있다.
“괜찮습니다. 직급에 관계없이 기탄없는 의견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편하게 말해주시죠.”
마치 내 편을 들듯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한 채 조팟을 말리는 듯한 강경진의 태도에 속이 뒤틀린다.
“그럼 기탄없이 말해보겠습니다. 올댓스토리에 새로 계약하게 될 신인 작가님들의 글을 BS북의 이름으로 출간한다면 작품 퀄리티 하락으로 저희 회사 평판에도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해결책이 있겠습니까?”
질문처럼 뱉은 말이지만 해결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물론이죠. 판무 2팀 박정우 매니저님 맞으시죠? 대표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2팀의 실적을 높인 일등 공신이자 대단한 인재라고요.”
“감사합니다.”
인사치레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는 것 자체가 곤욕스럽다. 강경진은 감정의 한 부분이 결여된 소시오패스 같은 놈이니까.
타인이 자신에게 적개심을 갖든, 갖지 않든, 강경진은 타인을 믿는 사람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이에 방증하듯 강경진은 안색 한번 찡그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 말씀하시는 부분은 딱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레이블을 분리할 생각이니까요.”
“레이블을 추가로 더 만든다는 말입니까?”
레이블을 분리한다는 말은 김동현 팀장 역시 처음 듣는 얘기인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처럼 얼굴을 붉히면 강경진에게 묻지 않았을 테지.
“맞습니다 김 팀장님. 역시 이해력이 빠르시군요.”
“…….”
“메인 플랫폼인 소설피아, 더노벨, 웹월드, 테일랜드에서 1차 독점을 진행하는 작품들은 지금처럼 BS북이라는 이름으로 출간을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올댓스토리에서 출간하는 작품들은 새로운 레이블 이름으로 진행하면 논란이 줄어들겠죠.”
강경진은 빙긋 미소 지으며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떤가요 정우 매니저님. 이 정도면 충분히 답이 됐을까요?”
“어떤 의도인지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 것처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 년 뒤면 작가님들 사이에서 새로운 레이블 역시 BS북 소속이라는 말이 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결국 기존 레이블과 새로운 레이블로 인해 급이 나눠진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느낄 작가님들도 분명 가지실 거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강경진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도 짧게나마 작가 생활을 했었고 작가님들과 여러 미팅 자리를 가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죠. 바로 작가님들께선 대부분 내향적인 성격이신걸요. 그건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매니저님들께서 저보다 더 잘 아는 사실일 겁니다.”
“…….”
“작가님들 사이에서의 정보 공유가 원활하게 이어진다면, 어느 출판사의 정산비나 선인세가 얼마고 하는 부분이 알게 모르게 공유가 되겠죠.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해외와 달리 우리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은 익명성 뒤에 숨는 걸 좋아하죠. 국토 크기가 다른 나라보다 작아서인지 아니면 보수적인 국가 성향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사람들은 자기 본명을 알리는 것조차 상당히 꺼려하죠. 그건 작가님들도 마찬가지고요.”
강경진이 말하는 바가 뭔지 이해할 수 있었다.
2014년 8월인 현재까지는 아직 작가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니까.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강경진의 말처럼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의 본명, 아니 필명조차 공개하길 꺼려한다. 나 역시 코즈일이란 필명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데, 다들 각자의 이유가 있을 터다.
그런 이유로 작가들의 모임이 활발해지는 건 카카오톡 오픈채팅이 출시되고 작가 커뮤니티가 생기는 시점인데, 내 기억이 맞다면 오픈채팅의 경우는 앞으로 최소 1년 후고 작가들의 커뮤니티는 그보다 더 시간이 지난 시작될 거다.
‘판타지 커뮤니티가 있긴 하지만 거긴 웹소설 작가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니까……. 익명성이 보장되는 시기가 오기 전까진 작가들은 양지로 나오지 않을 거야.’
마치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강경진은 내게 슬쩍 미소 짓고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 저희 평판에 관한 부분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30억의 투자금 유치를 대가로 올댓스토리에 저희 작품을 넘기는 건 단 5년뿐입니다. BS북의 평판을 걱정하기보다 저희가 더욱 양질의 소설을 뽑아낸다면 정우 매니저님이 우려했던 부분보다 더욱 좋은 결과가 나올 거로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강경진은 BS북의 평판이 하락될 것을 걱정한 나를 순식간에 양질의 소설을 뽑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물론 이런 우려 역시 매니저님들이 회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매니저들은 출판계를 이끄는 사람들로서 신인 작가님들의 입장도 헤아려야 하죠.”
신인 작가들의 입장을 헤아린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지?
“정우 매니저님처럼 우리 편집자들 입장에선 신인 작가님을 새로운 레이블 그리고 올댓스토리라는 비교적 덜 유명한 플랫폼에서 연재 요청드리는 게 차별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인 작가님들 입장에선 그게 아니죠. 아무리 작은 플랫폼에서라도 우선 연재를 하고 기성 딱지를 받고 싶어하시는 작가님들이 계시니까요. 제가 말하는 신인 작가님들은 그런 분들을 뜻하는 겁니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들리지만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현재 메인 플랫폼으로 분류되는 소설피아, 더노벨, 테일랜드, 웹월드에 연재 중인 신인 작가만 보더라도 매니저들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으니까.
“망생이 글엔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 참나, 똥글 쓰는 주제에 무슨 교정을 바래? 양심이 있어야지.”
“타일작 작가들이 전개 물어보면 그냥 잘 되고 있다고 말하면 돼요. 글은 재능 싸움이에요. 스스로 뭐가 문젠지 모르는 사람한테 알려줘봐야 시간만 낭비하는 거지.”
“원고 받으면 업로드나 하면 돼. 무슨 오탈자를 잡아? 요청 오면 그때 수정하면 되지.”
타일작.
바닥에 깔리는 타일 같은 글을 출판계에서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 판무 2팀, 1팀 그리고 로맨스팀을 가릴 것 없이 다수 매니저들이 타일작을 대하는 태도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걸 신인 작가들을 위한 기회로 포장한다고?
메인 플랫폼에 연재 중인 신인 작가들의 글도 저런 대우를 받는 일이 허다하다. 올댓에 연재될 글들은 저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을 게 분명하다.
거기다 작가들을 급으로 나누는 행위보다 아무리 신인 작가라 하더라도 자신이 연재하고 싶은 플랫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권을 박탈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하지만—”
“하하, 제가 너무 회사와 작가님들 기준으로만 말했군요.”
내가 반론을 펼치기도 전에 모두를 향해 시선을 돌린 강경진은 바로 말을 이어갔다.
“회사의 성장이 직원의 성장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계약을 진행시키면서 직원분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방법을 대표님께 제안드렸습니다. 매달 올댓스토리에 작품을 런칭하는 매니저님들에겐 별도의 인센티브가 있을 예정입니다.”
인센이라는 강경진의 말에 판무 1, 2팀뿐만이 아니라 로맨스팀에서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애사심 따위라곤 조금도 없는 이들에게 회사의 장래보다 자신의 주머니에 담을 수 있는 돈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테니까.
“팀장님, 인센 책정은 어떤 식으로 되는 걸지 궁금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BS북의 평판 걱정을 시늉이나마 하던 사람들은 인센이란 말에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눈을 반짝이며 묻는 조팟의 말에 강경진은 웃는 얼굴로 화답했다.
“올댓스토리에 신규 작품을 런칭하는 매니저님들은 10만 원 인센이 런칭된 그 달 월급에 즉시 추가로 지급될 예정입니다.”
“저……. 올댓스토리와 투자금 유치 조건이 매달 판무 5작품이라고 하셨는데, 판무팀 내에서 해당 달에 런칭하는 작품 수가 5종 이상으로 넘어가게 될 경우에 인센 지급은 어떻게 됩니까?”
조팟을 시작으로 판무 1팀에서도 질문이 시작됐다. 오직 인센에 연관된 질문들이.
“하하, 우리 판무팀 매니저님들 벌써부터 열의가 넘치시는군요? 출간 작품이 달 기준으로 5종이 넘게 되도 인센은 지급됩니다. 다만 5종이 넘어가게 되면 10만 원이 아닌 7만 원이 지급될 예정이니 이점 참고 바랍니다. 게다가 판무 5종의 경우 수량을 반듯이 팀별로 나눌 필요도 없죠.”
“팀장님, 저도 질문 있습니다. 만약 매니저님 한 분이 5종을 모두 출간하면 그달 인센은 50만 원이 추가로 들어오는 게 맞나요?”
질문은 로맨스팀에서도 이어졌다.
“맞습니다. 매니저님 한 분이 만약 6종을 모두 올댓스토리에서 출간하신다면 해당 달의 인센은 57만 원이겠죠.”
강경진의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이제 팀을 가릴 것도 없이 매니저들의 눈빛에선 당장이라도 올댓스토리에 출간할 작품을 계약할 욕망으로 이글거릴 뿐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계약 많이 하겠습니다!”
“하하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고작 10만 원의 돈.
지폐 두 장의 액수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좋은 작품을 독자에게 보여주겠다는 사명감도 중요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출판사 매니저들에게 10만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으니까.
‘이대로 둬서는 안 돼.’
타이밍이 좋지 않긴 하지만 이대로 두고 봐서는 안 될 일이다. 분위기가 강경진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었지만, 더 늦어지기 전에—
“그리고 이 자리에 출판 본부 매니저님들 그리고 대표님과 본부장님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려는 점이 있습니다.”
타이밍이 어긋났다.
강경진에 말에 끼어들려는 그 찰나, 강경진은 마치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 대화를 이어나갔다.
“현재 로맨스팀 파트장을 맡고 계신 최진혁 파트장님은 차주부터 원래 자리로 돌아오실 예정입니다.”
“……?”
대표와 본부장 그리고 로맨스 팀장을 제외하곤 모두가 놀라하는 표정이다. 당사자인 최진혁 파트장 역시 이 사실을 지금 처음 듣는지 목이 멘 듯 울먹였다.
“저희 판무 1팀은 앞으로 더욱 인원을 충원해 2개의 파트로 나뉠 예정입니다. 갑작스럽게 다시 보직 변경이 이뤄지면 어수선한 분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다 모인 자리에서 말씀드리게 됐습니다. 최진혁 파트장님 같은 유능한 분을 다시 판무팀으로 모시고 로맨스 팀에는 더 적합한 분을 추가로 채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팀장님.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유능한 인재와 함께 하는 건데. 오히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올댓스토리란 망해버릴 플랫폼에 작품을 출간해야 한다는 말로 악역처럼 등장했던 강경진은 이제 선역이 되었다.
대회의실이란 이 작은 공간 안에서 강경진에 반감을 갖는 이는 김동현 팀장과 나, 단둘뿐으로 보인다.
강경진이 판무 1팀 파트장으로 돌아온 날부터
지옥문이 열려버렸다. 눈앞의 사내가 악마임을 모르고 대회의실 안의 모든 이들은 강경진을 귀인처럼 여기는 눈빛을 보낸다.
‘……젠장. 내가 나설 수도 없게 만들었네.’
신인 작가들을 위한 기회 제공?
매니저들을 위한 복지 혜택?
아니다. 놈의 목적은 오직 처음부터 올댓스토리의 투자금 30억이 전부였을 터다.
하지만 그의 탐욕은 작가들 그리고 매니저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교묘히 포장됐고, 모두의 앞에서 최진혁 파트장을 구제하는 선역의 모습을 보이며 그의 음습한 속내를 이타심으로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희 BS북은 웹소설 출판사 1위답게 수많은 자체 컨텐츠를 보유하고 있죠. 투자받은 금액은 웹툰 법인을 설립하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자체 IP를 활용한 웹툰화. 분명히 좋은 일이다.
다만 그 선두주자가 BS북이어서는 안 된다.
기습적인 강경진의 말에 숨이 막혀온다.
내가 과거로 회귀하면서 강경진이 이전 생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부분까지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거다. 강경진은 나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이번에 2팀에서 코즈일 작가님의 소설이 웹툰화가 진행된다는 걸 들었습니다. 좋은 작품들 앞으로는 BS북에서 함께할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리죠.”
지옥문이 열리는 걸 나는 막지 못했다.
LGA컴퍼니의 활성화를 더욱 앞당겨야겠다.
* * *
퇴근 후,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곧장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 손잡이를 열고 안에 탈 때도, 차 시동을 켤 때도 계속해서 고민이 됐다.
아무리 강경진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이런 부탁을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으니까.
“하아……. 일단 가보자. 한숨만 쉰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나는 지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강경진은 고작 하루 만에 출판계를 더럽혔고 이대로 둬서는 강경진의 폭주를 막을 수가 없다. 이지연 그리고 권미현 매니저가 나를 돕겠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조력자다.
지금 내겐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서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강경진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는, 내가 보지 못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후우……. 전화라도 하고 올 걸 그랬나?
그게 내가 이곳까지 온 이유다.
내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나의 고향 ‘인의 보육원’으로.
하지만 막상 보육원에 도착하니 발걸음이 떨어 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전화를 먼저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며 자동차 핸들에 고개를 박고 있는 그때.
똑똑—
“이 간나새끼. 삼촌 보고 인사 안 박니?”
내가 도움을 청하려 했던 바로 그 사람이 차 문밖에서 밝게 미소 지었다. 내가 아는 최고의 브레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