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24화 (24/201)

#24화 ― 이의 있습니다.

“투자 제안이…… 어디서 왔다는 겁니까?”

“그 내용은 1팀 팀장님이 진행해주세요, 강경진 팀장님이 진행해주신 일이니까.”

“……?”

김동현 팀장의 물음에 오성민 대표가 강경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강경진은 자신을 향한 모두의 시선이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넘겨받았다.

“해당 내용 미리 공유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우선 올댓스토리에서 투자금 3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기로 했습니다.”

반색하는 임원진과 달리 김동현 팀장과 판무팀원은 올댓스토리라는 말에 약속이라도 한 듯 얼굴을 구겼다.

“조건은 향후 5년간 매달 판무 5 작품, 로맨스 5 작품을 올댓스토리 쪽에 1차 독점으로 런칭하는 겁니다.”

“그건 안 됩니다.”

강경진의 설명과 동시에 김동현 팀장이 반기를 들었다.

“매달 판무 5 작품을 올댓스토리에요? 올댓은 여성향 플랫폼 아닙니까? 로맨스는 몰라도 거기에 판무 작품을 1차 독점으로 넣는다는 건 아무런 매출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김동현 팀장은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말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말속에 ‘설마 그 정도도 모르는 거야?’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런 김동현 팀장의 말에도 강경진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닙니다. 판무 5 작품을 1팀, 2팀이 나눠서 하겠지만 저희가 더 많은 작품을 담당하면 되니까요.”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김동현 팀장은 진심으로 당황했는지 말을 잊지 못했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올댓스토리는 전형적인 여성형 플랫폼으로 판무의 무덤이라 불리는 마이너 플랫폼이니까.

보통 소설피아에 1차 연재를 100화까지 하게 되면 101화부터는 독점이 풀리게 된다.

즉 101화가 되는 시점부턴 전 플랫폼에 풀 수도 있고 혹은 테일랜드 등에 2차 독점으로 소설피아와 동시 연재를 완결까지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제는.

‘올댓스토리는 2차 독점으로도 판무 작가들이 가기 꺼려 하는 곳 아니었나?’

2차 독점의 경우 플랫폼마다 조건이 다르지만 테일랜드의 경우엔 완결, 마이너 플랫폼의 경우엔 몇 주에서 몇 달까지 묶여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테일랜드 같은 메인 플랫폼에 2차 독점이 들어가는 게 아닌 이상 바로 전 플랫폼에 작품을 뿌리는 게 훨씬 이득이다. 작가에게도 그리고 출판사에게도.

‘그런데 2차도 아니고 1차 독점을 올댓스토리에 맡기라고?’

이쪽 업계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절대 꺼낼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올댓 1차 독점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다른 플랫폼과 마찬가지죠. 완결까지입니다.”

이어진 강경진의 설명에 김동현 팀장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1차 독점 작품을 올댓에 매달 일정 부분 넘기라는 것 그리고 그걸 완결까지 묶어 둬야 한다는 건 곧 팀 실적이 줄어드는 소리와 동일한 뜻이었으니까.

“음……. 강경진 팀장님께서 아직 웹소설 업계에 관해 잘 모르셔서 하시는 말일 지도 모르지만, 이건 결코 받아서 안 되는 투자입니다.”

네가 아는 게 없으니 나대지 말라는 강경한 뜻이 담긴 김동현 팀장의 말에도 강경진은 조금도 상관없다는 듯이 해맑게 웃었다.

“김동현 팀장님. 궁금하신 부분은 편하게 여쭤보시죠. 회의는 원래 그러라고 있는 자리니까요. 이해가 잘 안 되시는 부분이 있다면 제가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시다면야.”

차분한 어조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강경진의 모습에 사람들은 그가 단지 예의 있고 매너 있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안다.

강경진 저 악랄한 놈이 간교한 혀로 내뱉는 모든 말속엔 음습한 속내가 담겨있다는 걸.

“저희 BS북이 타 출판사에 비해 프로모션을 잘 받긴 하지만 기본 정산율이나 선인세 그리고 계약금 관련해서는 다른 출판사보다 열위에 있죠. 그런데 1차 독점을 소설피아나 웹월드 아니면 테일랜드도 아니고 올댓스토리에 올린다고 하면 그나마 남은 이점마저 사라집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모든 작품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뜻이죠.”

“선택과 집중이요?”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김동현 팀장을 보면서도 강경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기성 작가님들 그리고 수익성이 보장된 작가님들을 올댓에 계약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분들을 임의로 ‘알파’라고 부르죠. 그리고 알파에 해당하지 않는 작가님들을 ‘베타’라고 부르겠습니다. 저희가 올댓스토리에 출간할 작품은 베타에 속하는 작가님들의 작품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매달 저희가 2 작품을 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계약 가능한 작가님들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하하, 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김동현 팀장님. 작가님들은 늘 계시죠.”

“……?”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김동현 팀장을 바라보며 강경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이어 나갔다.

“제가 말씀드리는 작가님들은 메인 플랫폼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내기엔 아직 부족한 작가님들을 말하는 거니까요. 김동현 팀장님이 생각하시는 베타의 기준을 조금만 더 낮추시죠.”

“지금……. 아마추어 수준의 글을 계약하라는 말입니까?”

김동현 팀장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게 보인다.

“아마추어라……. 그런 말로 폄하하는 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단지 메인 플랫폼인 소설피아, 더노벨, 웹월드, 테일랜드에 연재하는 작가가 아니라고 해서 아마추어인 건 아니지요.”

“지금 제 말은 그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뇨, 그 말이 맞습니다, 김동현 팀장님.”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차분한 어조.

그러면서도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강경진의 화법을 오랜만에 들으니 PTSD가 도지는 것만 같다.

“2부 리그 프로 축구 선수,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리그 야구 선수. 이들은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단지 밟고 서 있는 마운드와 필드가 다를 뿐이죠.”

그리고 강경진은 자신의 음습한 속내를 아름답게 포장하기 시작했다. 전생에도 내게 늘 그래 왔듯이.

“현재 웹소설 시장은 더욱 체계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프로 스포츠처럼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소설판을 프로 스포츠와 비교할 건—”

“비교할 수 없죠. 웹소설 시장은 앞으로 스포츠 시장을 넘어설 정도로 그 규모가 커질 테니까요. 작년도 국내 매출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대회의실에 모인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강경진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주위를 훑던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작년도인 2013년에만 국내 웹소설 시장의 규모는 100억 원이었습니다. 금년도인 2014년에는 200억 원이 예상되죠. 내년인 2015년에는 500억 원, 2016년 도에는 1,800억 원. 웹소설은 스마트폰 발전을 시작으로 더욱 그 규모가 커질 겁니다.”

“…….”

숫자의 힘으로 사람을 홀리는 것.

그게 강경진의 주특기다.

아이비리그 졸업 후 골드만삭스의 커리어를 지닌 강경진이 내뱉는 체감할 수 없는 규모의 숫자들. 대회의실 안에 가득 모인 사람들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의 배경과 출신을 무기로 나긋나긋한 어조로 내뱉는 강경진의 화법엔 사람을 묘하게 홀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으니까.

“다들 OSMU가 뭔지 아실 겁니다. 한때 망해버린다고 했던 출판 만화는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한 부활을 시작했죠. 하지만 아직 웹소설은 웹툰처럼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건…… 독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져서가 아니겠습니까?”

모두에게 묻는 듯한 질문이었지만 강경진의 시선은 김동현 팀장을 향해 있었고, 대답은 김동현 팀장의 입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답을 들은 강경진은 슬쩍 미소 지었다.

그게 정답인지 아닌지 여부는 강경진에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가 원하는 건 김동현 팀장을 자근자근 짓밟으려는 게 목적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건 단지 독자들의 탓만이 아닙니다. 플랫폼 그리고 우리 출판계 모두 웹소설을 향한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

“우리 BS북이 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였을까요?”

강경진은 다시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 모인 운영팀 그리고 판무팀 매니저님들의 노력이 가득 담긴 피, 땀, 눈물이 기본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직 다른 출판사들과 다르게 저희가 대여점을 벗어나 웹소설로 눈을 틀었기 때문이죠.”

직원들을 치켜세움과 동시에 오성민 대표의 위상을 세우는 화법으로 강경진은 조금씩 모두의 마음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저희 BS북은 웹소설이라는 꽃을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찾아냈죠. 하지만 저희가 꿀을 채취하는 걸 기존의 다른 출판사들이 두고만 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문학클럽, 글자출판 등 종이책 시절 절대 강자였던 출판사들도 웹소설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대외비에 따르면 광표문고에서도 본격적으로 웹소설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죠.”

광표문고는 국내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온오프라인 서점. 나는 미래의 지식이 있기에 광표문고가 실질적으로 웹소설 시장에 발을 들이는 게 상당히 늦어진다는 걸 알고 있다.

‘심지어 광표문고 판무 레이블은 제대로 된 작품 하나도 만들지 못했지.’

하지만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매니저들의 입장에선 광표문고의 웹소설 시장 진입이 충격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을 테다.

“과, 광표문고?”

“세상에…….”

광표문고가 웹소설 시장에 발을 담글지도 모른다는 강경진의 말에 모두들 옅은 탄성을 냈다. 다만 그 탄성의 결은 임원진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저것 봐. 애사심이라곤 조금도 없지, 다들.’

잔뜩 긴장한 표정의 임원진들과 달리 사원들의 얼굴엔 광표문고가 웹소설 시장에 나오면 바로 이직하겠다는 표정의 놀라움이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각자의 생각이 어떻든, 구체적인 숫자와 대기업의 시장 진입으로 인한 분위기 조성에 분위기는 점점 강경진 위주로 흘러가는 게 느껴졌으니까.

“올댓스토리의 투자는 그런 이유로 받아들이기로 한 겁니다. 정리하자면 새로 계약하는 신인 작가님들은 올댓에서 첫 작품 연재를 하며 역량을 쌓을 기회를 드리는 거죠.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작가님들께 프로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저희는 30억을 유치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음…….”

상황이 이쯤 되니 김동현 팀장마저 강경진에게 설득당한 모양이다. 강경진이 말하는 박리다매식 마케팅은 신인 작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아름다운 헛소리로 포장되어 있었으니까. 김동현 팀장 역시 거절할 명분이 업을 테고.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갔어.’

강경진의 말은 소설피아에서 연재하기 힘든 신인 작가에게 기회를 준다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 돼 있었지만, 결국엔 작가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큰 실수다.

올댓스토리는 앞으로 몇 년 후면 웹소설 시장에서 발을 빼는,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릴 망할 플랫폼이니까.

‘보는 사람도 없는 플랫폼에 억지로 작품을 밀어 넣어봤자 될 리가 있나? 그것도 아직 제대로 준비도 안 된 글들을?’

완성된 필력이 아닌 작가들을 계약해서 올댓에 보낸다면 이들이 어떤 성적과 매출을 낼지는 불 보듯 뻔하다.

강경진은 자신에게 넘어온 분위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말을 잇기 시작했다.

“계약 조건은 기본 5 대 5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5 대 5요? 요즘엔 로맨스에서도 점점 5 대 5 계약은 줄어드는 추세 아닙니까? 판무 쪽에선 6 대 4 계약도 점점 어려워지는 추센데? 1차 독점이 올댓스토리 그리고 정산비가 5 대 5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는 작품의 수준은…….”

“좋은 이야기가 얼마나 도처에 많이 널려 있습니까? 단지 빛을 보지 못하는 작가님들을 도우면 되는 건데요. 저희 매니저들의 일은 작가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는 거니까요.”

“…….”

“거기다 올댓스토리 1차 독점작의 경우엔 표지 제작 진행과 비용 모두 올댓스토리 측에서 부담하기로 했으니 저희 BS북 측에서도 추가 비용을 줄일 수 있죠.”

5 대 5라는 말을 저렇게 쉽게 하다니.

출판사와 7 대 3 계약을 하더라도 플랫폼 수수료를 떼고 나면 작가에게 남는 순 이익은 50%가 채 되지 않는다. 5 대 5라면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강경진은 고작 5 대 5 계약으로 멈출 인간이 아님을 난 알고 있다. 회사 내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앞으로 놈은 더 악랄하게 계약서에 장난질을 하며 신인 작가들의 영혼을 갉아먹을 게 분명하니까. 과거의 내가 당했던 것처럼.

“좋아요, 그럼 이 부분은 모두 의견 없는 걸로 생각해도 되겠죠?”

“아뇨, 이의 있습니다.”

“……?”

대표가 회의를 마무리 지으려는 그때, 내 손은 위로 올려졌다. 이대로 끝내선 안 되지.

난 이의가 많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