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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23화 (23/201)

#23화 - 너였냐 그게?

어느덧 절정에 이른 더위가 체력을 갉아먹는 8월 중순이다.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시는 대표님께선 에어컨 온도를 공기업 수준으로만 사용했고, 찜통 같은 더위에 모두는 지쳐만 갔다.

거기다 최진혁 파트장의 로맨스팀 강제 보직 변경, 한우석 팀장의 갑작스러운 퇴사 선포까지. 그리고 그들뿐만이 아니라 7월 말이 되자마자 운영팀 권미현 매니저마저 퇴직 의사를 밝혔기에 사무실 분위기는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권미현 매니저. 행동력 하나는 정말 빠르단 말이야.’

물론 권미현 매니저의 퇴사는 LGA컴퍼니로 이직하기 위함이기에, 사건의 전말을 알기에 속으로 히죽일 뿐이다.

하지만 BS북 같은 중소기업에서 8월 내에만 두 명이 연달아 퇴사한다는 건 결코 좋은 분위기일 수가 없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퇴사의 불씨를 들불처럼 키운다는 걸 알았는지, 김동현 팀장의 주도하에 판무 2팀은 퇴근 후 회식을 위해 치킨집으로 이동했다.

“다들 알다시피 요즘 회사 분위기가 여러모로 뒤숭숭해. 그래도 우리 2팀은 잘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2분기 시작부터 우리 2팀 매출이 단 한 번도 1팀에 밀린 적 없어. 우리 2팀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다들 신작 계약하느라, 작가 관리하느라 고생이—”

“맥주 식어요 팀장님. 건배사는 짧게 좀 하죠.”

찰랑이는 생맥 잔을 집어 든 김동현 팀장의 건배사는 초치기 전문가인 조팟의 말에 흐름이 뚝 끊겼다. 이런 걸 보면 조팟도 아주 쓸모없기만 한 건 아니다.

“조팟은 낭만이 없어.”

“줄여서 부르지 말라니까요?”

“여하튼 다들 고생했습니다.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퍼지지 않고! 뒤로 빽하지 않는 2팀이 되길 바라며!”

““지퍼백!””

요즘 시대에 이런 건배사를 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꼰대 중엔 젊꼰이 가장 지독하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를 방증하듯 김동현 팀장은 회식 자리만 되면 꼭 이런 건배사를 즐겨했고.

“어디 회사예요? 우리 애 실손 하나 들어야 하는데.”

“보험 회사 아닙니다. 출판사에요.”

“어머? 미안해요. 말하는 게 꼭 보험 쪽 같아서……. 양념 둘에 후라이드 둘이요. 맛있게들 먹어요, 호호.”

“…….”

김동현 팀장이 건배사를 하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모두가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 2팀 실적이 앞서고 있다고 다들 긴장을 풀어선 안 돼. 계속 근소한 차이로 이기고 있으니까.”

“뭐, 그래도 이기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요즘엔 팀장 회의 때 깨지는 일도 없지 않으세요?”

닭 다리를 집어 들고 신나게 뜯는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하……. 새롭게 오는 판무 1팀 팀장. 보통내기가 아닐 것 같아. 진짜 다들 정신 퍼뜩 차려야 해. 다음 주부터 온다니까.”

“엥? 1팀 팀장 벌써 구해졌어요? 팀장님이 맡으실 줄 알았는데. 어? 설마? 그 낙하산?”

“어허. 회사 근처다. 말 좀 가려서 하자 조팟아.”

토끼 눈을 뜨고 새로 오는 팀장이 낙하산이냐 묻는 말에 김동현 팀장은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팀장님. 그 낙하…… 아니 새로 오는 1팀 팀장 그분 맞죠? 대표님 조카인지 처조카인지 하는 사람?”

“그래.”

역시 판무 1팀 팀장으로 오는 건 강경진이다.

김동현 팀장은 강경진의 입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거푸 맥주를 들이켰다.

“그런데 한우석 팀장님 퇴사하려면 아직 몇 주 더 남지 않았어요? 새로운 팀장이 다음 주부터 오면 애매한 거 아니에요? 자리도 그렇고…….”

“한우석 팀장 이번 주가 마지막이시랜다.”

“이번 주요? 그럼 오늘이 마지막 아니에요? 내일은 빨간날이잖아요?”

“광복절에 퇴사하고 타이밍도 기가 막혀. 연차 몰아서 쓰는 거 보니 퇴사 준비는 아주 기가 막히게 했어. 더노벨 팀장급으로 이직한다는 데 뭐 무서울 게 있겠냐? 이제 살판 난 거지. 여하튼 한우석 팀장 퇴사가 당겨져서 새로 오는 1팀 팀장도 다음 주부터 나오기로 한 거야.”

한우석 팀장의 갑작스러운 퇴사를 보니 그가 BS북에 애사심이 눈곱만큼도 없었던 게 확연히 느껴진다. 하지만 한우석이 더노벨로 이직한다고 해서 딱히 걱정되지는 않는다.

‘잘 가라. 멀리 안 나간다.’

2014년인 현재까진 전성기를 누리며 소설피아의 라이벌이라 불리던 더노벨은 내가 회귀하기 전엔 잊혀진 고대 문명처럼 망해버린 플랫폼이다.

정신 나간 대표의 귀 닫은 회사 운영과 마케팅은 말할 것도 없고, 독자들이 한푼 두푼 낸 돈을 R&D에 쏟을 생각 대신 비트코인과 부동산 투자를 하다 맨틀을 뚫고 내핵까지 처박혀 나락으로 간 회사니까.

플랫폼으로 이직했다는 달콤한 꿈에 취해있는 한우석 팀장은 꿈에도 모를 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으로부터 몇 년만 더 지난다면 더노벨은 발할라행 급행열차를 타고 오체분시 될 거란 걸.

더노벨 최고의 업적은 ‘한때 소설피아와 경쟁을 했었다’가 되리란 걸 한우석 팀장도 그리고 더노벨의 대표 또한 알지 못할 테다. 나락에 목이 잠기기 직전까지 제로투나 처댈 테니까.

“팀장이 새로 온다고 해서 갑자기 1팀 매출이 앞서기라도 하겠어요? 그 사람 웹소설 경력은 하나도 없다면서요? 오히려 분위기만 어수선하겠죠. 다른 쪽 스펙은 고스펙이긴 하지만.”

“나도 몰라. 머리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대표님 처조카면 성골 아니겠냐? 우리 2팀은 암만 잘해도 진골인데 실적이라도 계속 앞서야 눈치라도 덜 보겠지. 그러니 다들 열심히 하자고.”

속이 타는지 다시 맥주를 들이켜는 김동현 팀장의 모습에 조팟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팀장님 근데 요즘 왜 이렇게 열심히세요? 웹월드랑 테일랜드 면접 보신 거 잘 안 됐어요?”

“오, 팀장님 이번에도 면접 보셨어요?”

“어허! 지금 무슨 소릴?”

이창윤 매니저도 딱히 놀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이전부터 김동현 팀장은 이직을 계속 준비하던 모양이다.

‘하긴, 플랫폼으로 이직 준비하는 게 나쁠 건 없지.’

웹월드와 테일랜드는 모기업이 대기업이기에 앞으로 웹소설의 전망을 떠나 이직하는 게 나쁘지 않은 선택지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수년 후 테일랜드는 거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현재 최대 규모의 플랫폼인 소설피아 지분을 50% 이상 인수해 사실상 자회사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플랫폼으로 이직을 할 수만 있다면, 편집자에겐 최고의 선택지일 테다. 편집자 스스로 출판사를 차리는 게 아니라면.

“뭐 어때요? 정우 씨도 입사한 지 반년인데, 이제 엠바고 풀릴 때 됐잖아요? 이미 우리 회사 개판인 거 다 알 텐데.”

“정우 매니저. 조팟이 그냥 하는 말이야, 하하. 흘려들어. 나는 이 회사에 뼈를 묻을 사람이야. 나는 정년퇴직할 때까지 BS북 다닐 거니까 정우 매니저는 절대 퇴사 생각하면 안 돼. 알았지?”

“예, 팀장님.”

“참나, 팀장님 우리 회사가 출판사에선 규모가 크다 해도 어차피 중소기업인데. 무슨 정년이 있어요.”

“조팟아. 입 다물고 소주나 시켜라. 맥주만 마실려니 밍밍하다.”

달마다 하는 회식 때마다 느꼈지만 김동현 팀장은 곰 같은 덩치와 달리 술을 정말 못 마신다. 그건 이창윤 매니저도 마찬가지고.

한여름에 마시는 술이 더 빨리 취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조팟이 말아 넘긴 쏘맥 비율이 쓰레기였기 때문인지, 이창윤 매니저는 진작에 기절했고, 김동현 팀장 역시 만취 상태다.

“하……. 정우 매니저. 내가 잘할게. 진짜 떠나지 마. 응? 난 우리 회사에 말이야…… 관 짜놨어. 어디 가지마아. 나 죽으면 다 같이 죽는 거야! 어? 순장이야, 순장!”

“……많이 드셨네요, 팀장님.”

“나는 말이야……. 나는 애가 있어. 그래서 대기업으로 가야 해. 크흐흑. 삼십 대 중반인데. 내 월급이 얼만지 알아? 200도 못 벌어. 팀장인데! 내가 팀장인데에! 200도 못 번다고! 정우 씨. 나중에 내가 플랫폼으로 이직하면 꼭 따라 드루와. 어? 알았어?”

“예, 팀장님.”

횡설수설하며 흥분해서 언성을 높이다 고개를 떨구는 김동현 팀장의 모습을 보니 이제 집에 갈 때가 된 것 같다.

‘거참……. BS북 쓰레기 같은 놈들. 버는 돈은 많으면서 월급은 염전이네. 팀장 월급이 200도 안 될 줄이야.’

2014년인 올해 최저시급은 5,210원.

그리고 나와 같은 1년 차 매니저들이 받는 월급은 세후 130만 원으로 최저 임금보다 쥐꼬리만큼 더 받는 정도다.

이것도 포괄임금제에 식대 포함 금액이니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는 직원들은 과연 남는 돈이 있기나 할지 모르겠다.

파트장 직책은 일반 사원보다 월 9만 원 정도를 더 높게 받는다고 하던데, 그러면 대략 월 140선. 팀장급이라 해봤자 파트장 월급과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거로 생각하긴 했지만 월 200도 못 번다니. 사탄이 감탄할 임금이다.

“하……. 정우 씨. 미현 매니저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크흡.”

“네?”

이창윤 매니저를 따라 김동현 팀장도 곯아떨어졌기에 한시름 놓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이젠 조팟새끼의 술주정이 시작됐다.

‘여기가 지옥인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파노라마 술주정을 맨정신으로 견뎌야 하니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아니……. 어떻게 갑자기 퇴사할 수가 있어? 아직 1년도 안 다녔는데. 하……. 설마 나 때문에 퇴사하는 건 아니겠지?”

“저야 모르죠.”

권미현 매니저는 이달 말인 8월 말까지만 BS북을 다니고 9월부터 LGA컴퍼니로 출근하기로 했다.

“크흐흑. 나쁜 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조팟님, 추하네요. 없는 사람 욕하진 말죠? 보기 안 좋습니다.”

지난 등록 이슈는 아무리 생각해도 조팟의 과실이 80% 이상이었는데, 조팟놈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나는…… 나는 진심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크흐흑.”

말하는 뽄새가 뭔가 이상하다.

설마?

“조팟님 혹시…… 미현 매니저한테 고백했었어요?”

“으흐흑. 못된 년.”

“…….”

미현 매니저가 자기한테 치근덕거리는 사람이 회사에 몇 있다고 했는데. 니가 그중 하나였냐?

테이블에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는 조팟을 보니 차가운 맥주처럼 내 마음도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이 옹졸한 새끼. 안 그래도 지난번 등록 이슈 터졌을 때 괜히 눈알 뒤집고 트집 잡더라니. 차여서 그런 거였냐?’

미현 매니저의 이름을 부르며 질질 짜는 조팟의 모습을 보니 정말…… 너무 추하다.

‘미현 매니저가 왜 뒤도 안 보고 퇴사하려는지 이해가 가네.’

LGA컴퍼니에선 저런 꼴 안 겪도록 정말 잘해줘야겠다.

* * *

광복절 연휴가 지난 8월 18일 월요일.

BS북의 암세포라 여겼던 판무 1팀 한우석 팀장의 자리엔 성인군자 같은 얼굴의 사내가 들어와 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BS북과 함께하게 돼 정말 영광이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선교사를 연상케 하는 선하고 순수한 인상.

나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절대악 강경진이 각 팀을 순회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 소시오패스 놈은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으로도 감정이 읽히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도 늘 선해 보이는 얼굴.

눈매까지 완벽히 휘어지는 놈의 연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모두가 들릴 정도의 데시벨.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으면서 울림 있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모두가 긍정의 기운이 담긴 박수를 쳤다. 심지어 조팟까지도.

“이야, 1팀에 새로 오신 팀장님은 누구랑 많이 다르네.”

“조팟아, 나 들으라고 한 소리니?”

조팟이 나직이 중얼거린 소리에 김동현 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그렇잖아요? 입사했다고 직원 한 명, 한 명 찾아와서 떡 돌리고 인사하고 이런 팀장이 어디 있어요? 팀장님도 이런 건 좀 본받아요. 이런 게 진짜 리더지.”

“조팟. 자꾸 조팟 같은 소리 말고 일이나 합시다.”

“아 거참! 줄여서 부르지 말라니까요!”

사무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이게 폭풍 전의 고요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강경진이 1팀 팀장으로 왔으니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피해자들이 속출할 거야.’

다만 그게 어떻게 시작될지, 어떤 방식일지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자자, 시간 다 됐네, 대회의실로 이동합시다.”

BS북은 매달 말에 판매 계획 회의라는 명목으로 월례 회의를 진행한다. 하지만 강경진이 판무 1팀 팀장으로 새로 입사하게 되면서 회의를 앞당기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잡힌 회의도 이상했지만 그보다 판무팀, 운영팀만 함께하는 판매 계획 회의에 로맨스팀도 함께하게 된 게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자, 이번에 새로 들어오신 강경진 팀장 다들 인사 나누셨죠?”

대표의 소개로 가벼운 인사가 팀장들 사이에 오갔고 곧이어 월례 회의가 시작됐다.

“이번에 강경진 팀장님이 새로 입사하시면서 월례 회의를 조금 더 빨리 진행하게 됐습니다. 중요한 전달 사항도 있고요.”

조팟이 김동현 팀장을 슬쩍 쳐다보자 김동현 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역시 따로 전달받는 게 없는 표정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1팀 직원들과 달리 오성민 대표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강경진 팀장님께서 입사 첫날부터 아주 큰 일을 하셨어요, 하하하.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BS북이 투자를 받기로 했습니다.”

‘투자? 그게 무슨 소리야?’

김동현 팀장의 당혹스러워하는 얼굴을 보니 그 역시 처음 듣는 사실인 게 분명하다.

강경진, 이 빌어먹을 놈이 벌써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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