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22화 (22/201)

#22화 - 드래곤 찾았거든요.

“성훈 파트장님, 안녕하세요.”

“예, 무슨 일이에요?”

조팟을 부르는 권미현 매니저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보니 또 무슨 사고가 생긴 것 같다.

“다름이 아니라 폭행몬 작가님 양산 헌터가 되었다 이슈가 생겨서요.”

“이슈? 뭔 이슈요?”

“금일 회차 모니터링 중에 확인했는데 소설피아 업로드된 회차와 테일랜드랑 웹월드에 연재된 회차 내용이 달라요.”

“예에? 그게 뭔 소리예요?”

눈을 부릅뜬 조팟의 말에 권미현 매니저는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다 싶었는지 스마트폰 화면을 그에게 디밀었다.

“121화가 중복이에요. 소제목은 순서대로가 맞는데 121, 122화 같은 순서가 아니라 내용을 확인해 보니 121, 121, 122, 123 순서로 되어있어요. 127화까지요…….”

“예? 아니 이게 무슨…….”

권미현 매니저의 스마트폰을 확인한 조팟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다 점차 붉어지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소설피아엔 제대로 연재됐는데 웹월드랑 테일랜드에선 왜 이런 거예요? 등록팀에선 뭐래요?”

“등록팀에선 우선 서브 플랫폼에서도 회차 꼬인 문제가 없는지 확인 중에 있어요. 파트장님께서도 한번 확인을—”

“아니, 무슨 경우가 이래요?”

권미현 매니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팟이 인상을 와락 구기며 말을 끊었다.

“이거 등록 실수잖아요. 등록 실수가 났으면 전후 사정 떠나서 사과가 먼저 아니에요? 이런 이슈 터졌을 때 작가님께 연락해서 사과하는 건 우리 판무 매니저들인데? 안 그래요?”

출판 본부 내에 판무 1팀, 2팀 그리고 로맨스팀이 있는 것처럼 운영 본부에는 권미현 매니저가 포함된 운영팀과 판무, 로맨스 매니저들에게 전달받은 원고를 각 플랫폼에 이펍(e-PUB: 전자 출판) 파일로 제작하고 등록하는 등록팀이 있다.

즉, 권미현 매니저가 속한 운영팀은 등록팀과 별개의 팀이다.

‘아니 다른 팀인 거 뻔히 알 텐데. 왜 저러는 거야? 거기다 권미현 매니저 업무도 아닌데?’

실적 때문인지 같은 팀인 내겐 찍소리도 못 하면서 사고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알리러 와 준 권미현 매니저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는 조팟의 행동이 치졸하기 짝이 없다. 선택적 분노 조절 장애라는 생각이 드는 그때.

“저…… 성훈 파트장님.”

“은지 매니저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이런 등록 실수가 이렇게 생기면 어떻게 해요?”

해당 사건의 당사자로 보이는 등록팀 정은지 매니저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게…….”

“그게 뭐요?”

“성훈 파트장님이 전달주신 원고대로 올린 거였는데요……. 보내 주신 원고가…….”

“뭐요? 지금 제가 원고 파일을 잘못 줬다는 말이에요?”

“네……. 보내주신 메일 확인해 보시면…….”

“…….”

조팟은 역시 조팟이다.

말없이 마우스 휠을 드르륵거리며 메일을 확인하던 조팟의 얼굴이 시시각각 질려 갔다.

조팟놈의 실수가 분명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가 121~127화 원고 지지난 주에 드렸는데 이걸 이제 확인 하시면……. 하…… 됐습니다.”

“……이펍 다시 교체해서 말씀드릴 테니 확인 부탁드릴게요.”

“예, 그러세요.”

상황이 희한하게 돌아간다.

분명 원초적인 실수는 조팟놈이 한 게 분명한데, 사과의 말이 왜 등록팀 정은지 매니저에게서 나오는 거지?

“성훈 파트장님, 그런데 애초에 실수는 파트장님이 하신 거 아닌가요?”

“뭐라고요?”

다행히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넘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 권미현 매니저의 말에 조팟이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구겼다.

“처음부터 회차가 안 꼬인 원고를 주셨으면 이런 문제가 안 생겼을 거 아니에요? 소설피아엔 폭행몬 작가님이 직접 업로드하는 거여서 문제가 없었고 그걸 담당자인 파트장님이 제대로 확인을 안 해주셔서 문제가 생긴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은지 매니저님만 잘못한 것처럼 되는 거죠?”

“아…… 아니예요 매니저님, 전 괜찮아요.”

상황이 악화될 것을 직감한 정은지 매니저가 중재하려 했지만 조팟놈은 이름값을 하는 놈이었기에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거 봐요. 본인도 괜찮다는데. 아니 그리고 지금 같은 운영 본부라고 감싸는 거예요? 그리고 제대로 확인을 안 했다는 것도 좀 그렇네요. 이펍 제작하면서 내용 확인하는 게 등록팀 일 아니에요?”

“네?”

“아니, 그렇잖아요? 말 그대로 그게 등록팀 일 아니냐고요. 저희 판무 매니저들이 담당하는 작품이 한두 개도 아닌데. 제가 아예 다른 원고를 준 것도 아니잖아요? 순서가 아예 꼬인 것도 아니고 다른 글 원고가 들어간 것도 아니고 한 회차가 중복만 된 건데. 그거 하나 가지고, 참나.”

조팟과 권미현 매니저는 서로 언성을 높이진 않았다. 하지만 여름이란 걸 잊게 할 정도로 주변의 온도는 살얼음판처럼 차갑게 가라앉는 기분이다.

“조성훈 파트장님. 그렇게 말하시는 건 아니죠. 제가 같은 운영 본부여서 말하는 게 아니라 파트장님 담당 작품이잖아요? 담당 종수 많다고 하셨는데 운영팀에서는 판무 2팀 작품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 1팀 작품 로맨스팀 작품 그리고 다른 출판사 작품까지 이펍 제작 하는 거 알지 않으세요?”

권미현 매니저는 호랑이였다. 내가 도와도 됐겠지만 권미현은 LGA컴퍼니의 유력한 판무 매니저 후보. 그녀가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가 궁금하다.

“아니 그래도 등록 실수는—”

“그리고 이펍 제작하면 나스(NAS)에서 같이 확인하는 게 업무 매뉴얼 아닌가요? 이펍 제작되면 파트장님도 제작된 이펍 파일 확인하고 확인 체킹해주셔야 했을 텐데요? 이래도 등록팀만의 실순가요?”

“아니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해요? 등록팀에 ‘등록’이라는 이름 들어간 거 모릅니까? 매뉴얼 떠나서 등록 관련은 등록팀에서 더 꼼꼼히 해야죠!”

“그게 무슨 억지세요? 매뉴얼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다들 그만합시다.”

조팟과 권미현 매니저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려는 그때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동현 팀장이 파리를 쫓듯 허공에 손을 휘휘 저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서로 일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조성훈 파트장, 바쁜 건 알지만 원고 넘길 때 그래도 확인 잘해 주시고. 그리고 권미현 매니저님, 정은지 매니저님. 전후 사정이 어떻게 됐든, 조성훈 파트장 말처럼 이런 상황 생기면 작가한테 빌어야 하는 건 우리라고. 여하튼 일하면서 뭐 이런저런 실수는 다 생길 수밖에 없는 거니까 다들 얼굴 붉히지 말고 일 봅시다.”

“등록 실수가 아니라고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다만—”

“권 매니저. 이쯤에서 그만하자고 한 말 안 들립니까? 사고 수습부터 해야 하는데 계속 뭘 어쩌자는 거야?”

김동현 팀장이 우리 팀을 아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런 식으로 팔이 안으로 굽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권미현 매니저가 실망과 분노가 가득 담긴 무형의 오오라가 풍겼지만, 그녀는 별도의 실적도 없는 일개 직원일 뿐. 나처럼 별도의 보호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억울하겠네. 억울하면 안 되지.’

나는 자리에서 불쑥 일어나 김동현 팀장과 권미현 매니저 사이로 불쑥 들어갔다.

“미현 매니저님. 진정하시죠.”

“좋게 좋게 갑시다. 좋게 좋게.”

김동현 팀장은 내가 자기 편을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내심 기분이 좋아보였고, 반면에 큰 눈이 튀어 나올 듯 나를 쏘아본 권미현 매니저는 짧은 묵례를 한 뒤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잠시 텀을 두고 옥상에 올라가니 담배 연기를 폐 끝까지 땡기는 권미현 매니저의 모습이 보인다.

“저기, 미현 매니저님.”

“……?”

나를 향한 권미현 매니저의 표정은 냉랭했다.

“실망이네요. 지난번에 최진혁 매니저님이 부당한 대우 받을 때는 본인 일같이 나서시더니. 제가 사람 잘못 본 거 같네요.”

“잠시만요.”

제 할 말만 하고 돌아서려는 그녀를 다급히 부르자 권미현 매니저는 살짝 충혈된 눈으로 나를 올려 봤다.

“아, 왜 울고 그래요. 미안해요.”

“됐어요. 할 말 더 없으면 갈게요. 플랫폼에 연락도 해야 하고, 저 바빠요.”

“잠시만요. 할 말 있어서 온 거 맞아요. 잠시만 시간 내주세요.”

“……?”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권미현 매니저를 두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옥상을 한 바퀴 쭉 돌았다.

BS북의 회사 건물 옥상은 치첸이트사의 엘카스티요 같은 구조. 옥상 출입문을 끼고 사람이 없는지 확실히 확인을 해야만 한다.

다행히 옥상에는 우리 둘 말곤 아무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진 모르겠는데. 됐어요. 됐으니까 그냥—”

“퇴사하고 싶으세요?”

“예?”

내 말에 권미현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그때 그랬잖아요. 돈보다 작품을 먼저 생각하고 작가를 먼저 위하는 그런 출판사가 있다면 그쪽으로 이직할 생각 있다고요.”

“……드래곤 같은 회사요?”

“네, 그 드래곤 같은 회사.”

피식 숨을 내뱉은 권미현 매니저는 담뱃갑을 뒤적여 꺼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돛대에요. 스트레스 받는 말 하면 나 무척 슬플 거 같은데. 괜한 말 하려는 거면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권미현 매니저는 자신의 선전포고를 돛대에 불을 붙이는 걸로 대신했다.

“괜한 말이 아니에요. 그 드래곤 찾았거든요.”

“……?”

“아직은 드래곤 크기가 좀 작긴 한데. 아직 관심 있으세요?”

“무슨 시답잖은 소릴—”

“기본급은 3백부터.”

“들어볼게요.”

권미현 매니저의 손에 들린 꽁초가 재떨이 안으로 튕겨졌다. 귀한 분을 모실 때 마음을 사로잡는 첫 번째. 그건 언제나 돈이다.

* * *

퇴근 후 권미현 매니저와 저녁 식사를 하며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후에 우린 LGA컴퍼니로 자리를 이동했다.

“와……. 정우 매니저님, 아니 대표님. 무서운 분이셨네? 언제 회사를 다 차려뒀데요?”

“그럼 제가 거짓말이라도 한 줄 알았어요?”

“사실 반 정도는 못 믿었죠. 그걸 어떻게 다 믿겠어요? 지금 직접 회사 보고서도 긴가민가한데.”

“그런데 아직 입사한 것도 아닌데 대표라고 부르는 건 좀…….”

“무슨 소리세요. 식사 하면서 저 입사하기로 한 거 잊으셨어요, 대표님?”

“네, 뭐. 그러시던가요.”

권미현 매니저는 사무실 안을 두리번거리면서도 놀란 표정을 숨기질 못했다.

“회사 규모는 많이 작죠? 그래도 자리 잡히기 시작하면 직원들도 더 늘어날 테고, 점점 더 큰 곳으로 옮길 예정이에요.”

플랜 B.

즉, 제대로 된 웹소설 출판사를 차리겠다는 계획은 전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권미현 매니저를 회사로 들어오게 하니 막상 생각만 하던 게 현실로 다가오는 게 체감된다.

“진짜…… 놀랍네요.”

“하하, 그렇죠? 회사 바로 코앞에 다른 회사를 차려놓고 있었으니까요.”

“그것 말고요. 그것도 대단하긴 한데, 정우 씨가 코즈일 작가라는 게 솔직히 처음엔 믿기지가 않았어요. 저도 코즈일 작가, 아니 정우 씨 글 다 읽고 있거든요.”

“어…… 감사합니다.”

이지연은 회귀 전에도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던 사람이었기에 내가 코즈일이라는 걸 밝혀도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권미현의 경우엔 이지연과 같은 유대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내 독자라는 사실이 나를 낯간지럽게 했다. 나를 코즈일로 알고 있는 독자를 직접 만나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으니까.

“내일 바로 사직서 낼게요. 그럼 한 달 뒤에 뵙겠습니다.”

“예? 그렇게 빨리 결정해도 되겠어요?”

LGA컴퍼니로의 이직을 내가 요청한 거긴 하지만, 생각보다 빠른 추진력이 조금은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반면 권미현 매니저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빠를수록 더 좋은 거 아니겠어요? 눈앞에 용이 있는데 지렁이가 마음에 들 리 없죠. 마음 같아서는 당장 때려치고 싶은데요?”

“하하, 고마워요. 미현 씨 입사 전까지 사무실 세팅은 완료해둘게요.”

“그런데요 대표님.”

“예?”

“저희 판무 레이블 이름은 정해졌나요?”

얼마 전 이지연과도 같은 얘기를 했었는데, 이제야 마음에 드는 이름이 떠올랐다.

“드래곤 어때요? 세상에 없을 만한 그런 글. 우리는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요.”

LGA컴퍼니는 아직 작은 이무기.

하지만 용이 비상하는 그때, 세상 그 어느 것도 용을 막을 수는 없다.

LGA컴퍼니가 거대한 용이 되어 모든 걸 집어삼킬 그 날이 기다려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