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21화 (21/201)

#21화 - 절대 알지 못할 거다. 내가 밝히기 전까지는.

오성민 대표의 소환에 판무 2팀 팀장 김동현은 빠른 걸음으로 대표실로 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요.”

“아니, 대표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김동현 팀장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속에 품었던 말을 뱉었다. 그 역시 1팀 팀장 한우석의 퇴사 사실을 오늘 처음 듣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아……. 일단 자리에 앉지.”

오성민 대표는 짙은 한숨을 내뱉고는 말을 잇기 시작했다.

“한우석 팀장. 퇴사 통보를 이렇게 하네.”

“설마……. 대표님도 오늘 아신 겁니까?”

BS북 대표 오성민은 바짝 마른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한우석 팀장 이거 완전 양아치 새끼 아닙니까, 예? 아니…… 그동안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예의를 어디 밥말아 먹었나. 아니 한우석 그 양반 어디로 가길래 이런 식으로 회사를 그만둡니까?”

“더노벨로 간댄다.”

“더노벨이요? 와이씨 이 양아치 새끼. 뭐 어떻게 잡을 방법도 없겠네요, 쯧.”

“그러게 말이다. 뭐 키워서 써 먹을 만하면 도망치고, 일 좀 한다 싶으면 도망치고. 아니 여기가 무슨 용병 양성소야? 아니 다른 놈은 몰라도 한우석이 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네, 이런 쓰레기 같은 놈.”

이 시기 더노벨은 소설피아와 함께 웹소설계를 양분하던 거대 플랫폼. 둘만 있는 자리여서 그런지 오성민 대표의 숨겨진 본색이 가감 없이 튀어나왔다.

“여하튼 플랫폼으로 이직하는 거라 어떻게 손 쓸 수도 없고, 쯧. 웃으면서 보내줘야지 어쩌겠나. 괜히 잡아뒀다가 더노벨 측이랑 트러블 생기는 것도 골치 아파질 테고, 쯧.”

“걱정 마시죠 대표님. 한우석 팀장 하나 없는 게 대수겠습니까? 판무 1팀, 2팀 모두 조금도 문제없이 굴러가게 하겠습니다”

곰 같은 여우 김동현 팀장은 마치 제 일처럼 분개했다.

“그렇지,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지. 그래서 김 팀장 부른 거야. 부탁도 해야 하고.”

“아니 대표님! 부탁이라뇨? 저는 머슴입니다, 머슴. 한우석 팀장같이 어디로 이직할 생각 따윈 조금도 없으니 염려 붙들어 매시죠.”

“허허, 이 사람도 참.”

결연함이 가득 담긴 김동현 팀장의 말에 오성민 대표는 가볍게 웃음 지었다.

“하여간 한우석이 갑작스럽게 퇴사한다고 해서 당황스럽긴 하지만, 새로운 1팀 팀장이 올 거야. 김 팀장이 선배로서 잘 좀 리드해 달라고. 그 말 하려고 부른 거야.”

“1팀 팀장을……. 벌써 구하셨습니까?”

“일전에 말했던 강경진이라고 있지? 그 친구가 앞으로 1팀 팀장을 맡게 될 거야.”

“아…… 예……. 대표님 처조카라고 하셨던 그분 말씀이시죠?”

판무 1, 2팀을 자신이 통합해서 관리하게 되리란 김동현의 희망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허공으로 흩날려졌다. 하지만 김동현은 이내 당황스러운 속내를 감추고 대표의 말을 경청했다.

“순문학 작가 생활도 잠시 하긴 했는데, 그보다 아이비리그 나온 인재야. 골드만 삭스 다니다 지금은 개인 사업 하고 있는데, 가족을 떠나서 애가 머리가 좋아. 그래도 웹소설 쪽 사업 관련해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을 테니까 김동현 팀장이 잘 좀 도와주라고.”

“걱정 마시죠 대표님. 새로 올 강 팀장하고 힘을 합쳐 저희 BS북이 웹소설 업계뿐만 아니라 출판계의 최고가 될 수 있는 회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보자고.”

밝은 미소를 지은 채 대표실에서 나온 김동현 팀장의 얼굴은 뒤를 돌아서자마자 싸늘하게 굳었다.

“씨벌 거. 아주 가좆 같은 회사네.”

* * *

나의 생활 루틴은 상당히 규칙적이다.

눈을 뜨면 출근하기 전까지 글을 쓰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자기 전까지 계속 글을 쓰는 생활의 반복이다.

돈을 벌어야 해서, 아니면 출판계를 갈아엎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글 쓰는 게 가장 재밌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우 씨 무슨 일이에요?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다면서요?”

하지만 오늘은 글을 쓰기보다 내 사업 파트너인 이지연과 이야기를 나눠야만 했다. 어시들이 아직 퇴근 전이라고 했기에 나는 이지연을 내 집으로 잠시 불렀다.

“퇴근 시간인데 미안해요. LGA컴퍼니 관련해서 논의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아……. 일 얘기에요? 뭔데요?”

“아무래도 사업 확장을 조금 더 빠르게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요.”

“사업 확장이요? 어시 더 뽑는 거 말하시는 거죠?”

“아뇨. 그거 말고 웹소설 부문 확장 관해서요.”

“바로 진행하시게요? 원래는 내년 초에 진행하기로 하지 않았어요?”

처음 LGA컴퍼니를 설립하면서 이지연에게 앞으로의 사업 로드맵을 공유했었다.

이지연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일정보다 빨라진 웹소설 부문 확장이 당혹스러운 모양이다.

“상황이 급박해져서요. 아무래도 계획을 조금 더 앞당겨야 할 것 같아요.”

과거 나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처박았던 그 사기꾼. 강경진 그 절대악이 한우석 팀장 대신 새로운 판무 1팀 팀장으로 들어올 게 분명하다.

결국 내가 아무리 좋은 실적을 내도 강경진의 BS북 입사를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플랜 B를 좀 더 빠르게 진행해야만 한다.

이지연에게 현재 BS북의 상황과 조만간 강경진이 입사하게 될 거란 내용을 설명했다.

“음……. 그런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겠네요. 그래서 판무팀부터 진행할 계획인 거죠?”

“네. 출판사로서 자리를 잡으려면 결국 판무와 로맨스 레이블이 모두 있어야 하지만 급하다고 사람을 아무나 뽑을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요.”

로맨스 쪽은 내가 전문가가 아니기에 함부로 발을 들이기엔 위험할 수 있다. 지금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이니까.

“그럼 판무 쪽 채용은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이세요? 따로 염두해둔 분이 있으세요?”

“둘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한 명은 확정이고요.”

권미현 매니저는 이미 내 면접은 통과했다.

물론 당사자는 아직 모르고 있겠지만.

“그래서 사무실도 지금처럼 오피스텔이 아니라 규모가 조금 더 큰 곳으로 이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미현 씨 생각은 어때요?”

“음……. 3명 정도는 문제없을 것 같긴 한데, 그 이상 늘어난다면 좁기는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생각엔 바로 이전하는 것보다 우선 지금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해요.”

“같이요?”

내가 집으로 쓰는 오피스텔 크기와 LGA컴퍼니 사무실 크기는 동일하다. 다만 파티션도 따로 없이 중앙의 기다란 탁자를 마주 보고 빙 둘러앉는 형태라 키보드 소리가 우렁찬 판무 매니저가 입사한다면 서로 불편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LGA컴퍼니 법인이 사실 웹툰 법인이 아니라 출판 법인이잖아요?”

“그렇죠. 출판 법인 내에 웹툰 부서가 따로 있는 형태니까요.”

“네, 그래서 같은 사무실에 있어도 같은 법인이니 이상할 건 없을 것 같아요. 거기다 당장 확정된 분도 1명뿐이라니까 굳이 지금 당장은 더 큰 사무실로 이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요. 지금보다 좁아지긴 하겠지만 3명 정도 늘어난 걸로 지금보다 아주 불편하거나 하진 않을 것 같아요.”

“교정하느라 키보드 쓰는 소리가 좀 신경 쓰일 수도 있을 건데, 괜찮겠어요?”

“일할 때 다들 이어폰으로 노래 들으면서 작업해요. 웹툰 부서에선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거 같아요.”

이지연과 어시 둘까지 LGA컴퍼닌 아직 총 셋뿐이다. 하지만 웹툰 부서라는 말에 괜스레 사업이 커진 것 같아 가슴이 웅장해진다.

“3명 정도는 괜찮다라……. 어시 추가 채용은 괜찮나요? 원래 총 4명 정도 뽑기로 했었잖아요.”

“두 분 다 빠르게 적응해서 추가 채용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어시분들도 다들 손이 빨라서 한 분 정도만 더 뽑으면 충분할 것 같아요.”

내가 LGA컴퍼니의 실질적인 대표인 걸 밝힐 수가 없기에 어시들 관리는 전적으로 이지연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들 모두 적응을 잘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좋네요. 그럼 어시 한 분 그리고 판무 직원 한 분 마지막으로 전문 경리 직원 한 분 이렇게 총 세 분을 우선 채용하도록 하죠.”

“경리 직원이요? 소담 씨가 병행하는 건 그만하고요?”

박소담은 LGA컴퍼니 어시로 경리를 겸해 뽑았던 직원이다.

“네, 판무 부서에선 수익이 바로 발생할 거니까 이젠 경리 업무를 전문적으로 맡을 분이 필요해 보여서요.”

“벌써 계약하려는 작가님이 계세요? 아직 판무 쪽 레이블 이름도 안 정했는데?”

“제 첫 연재작이 조만간 완결될 예정이거든요. 새로 직원들 뽑을 때 그때 신작 런칭도 진행할 예정이에요.”

코즈일이란 필명으로 썼던 내 첫 작품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가의 완결이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즉, 내가 새로운 작품을 LGA컴퍼니에서 런칭하면 바로 수익을 만들 수 있을 테다.

“갓작가님이 계약해주시는 거면 든든하네요. 그런데 코즈일 필명으로 계약해도 괜찮을까요? 판무 레이블 이름을 별도로 만들어도 코즈일 작품을 계약하게 되면 어느 출판사랑 계약했는지 LGA컴퍼니가 쉽게 노출되지 않을까 해서요. BS북에서도 작가 빼갔다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무리 우리 회사의 판무 레이블을 꽁꽁 숨긴다고 해도 출간된 도서는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이란 사이트에서 ISBN, 즉 국제 표준 도서 번호를 등록해야 한다. 그리고 ISBN을 등록하게 되면 발행처가 노출되기에 레이블 이름을 숨길 방법이 없다.

“괜찮아요. 제가 BS북 전속 작가도 아니고.”

“그렇긴 한데…….”

내가 LGA컴퍼니를 만든 건 음지로 숨어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

하지만 이지연의 말처럼 코즈일의 신작이 BS북이 아닌 LGA컴퍼니에서 출간된다면 BS북에서의 내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내가 BS북에서 떳떳하게 행동할 수 있는 건 내가 코즈일이란 흥행 작가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BS북의 입속에 넣어줄 수 있기 때문이니까.

그런데 내가 코즈일의 글을 더는 BS북과 계약시키지 못하고 다른 출판사에 뺏긴다면?

그때는 BS북 내에서의 내 입지 또한 하락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LGA컴퍼니 소속으로 글을 써도 BS북은 절대 알지 못할 테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우 씨가 코즈일이잖아요?”

“그렇죠. 제가 코즈일이죠.”

이지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LGA컴퍼니 소속 첫 작품으로 제 글을 출간할 거지만 코즈일이란 필명을 쓰진 않을 거예요.”

“아! 그럼 아예 다른 필명을 쓰시는 거예요? 코즈일이 아니라?”

“네, 그 뜻이에요.”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까요? 코즈일이란 이름값이 있을 텐데…….”

이지연은 여전히 우려 섞인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나는 전적으로 판무 독자들을 믿기 때문이다.

“물론 기성 작가의 글이면 독자들에게 더 큰 관심을 받겠죠. 하지만 아무리 이름 있는 기성 작가여도 판무 독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아니에요. 판무 독자들은 잘 쓰고 재미만 있으면 보거든요. 재미가 깡패예요, 이 바닥에서는.”

“재미요?”

“네, 재미요.”

전작에서 연중 하고 잠수 탄 작가도.

150화 조기 완결 친 작가도.

용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 있다.

그건 신작을 잘 쓰면 되는 일이다.

재미가 없으면 보지 않는다.

하지만 재미가 있다면 욕을 하더라도 본다.

그게 바로 웹소설이다.

“처음 보는 필명이어도 재미만 있으면 독자들은 볼 거예요. 그러니 매출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정우 씨 말이면 맞겠죠.”

“하하, 네. 믿어줘요. 그럼 지연 씨는 어시 한 분이랑 전문 경리 직원 채용 공고 부탁드릴게요.”

BS북은 LGA컴퍼니의 신인 작가가 코즈일이란 사실을 절대 알지 못할 테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코즈일이 누구인지 밝히는 때는 오직 나만이 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는 모든 게 다 준비되어 있을 때다.

BS북 그리고 강경진을 모두 짓밟을 준비가 되었을 때, 나는 밝힐 예정이다.

코즈일이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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