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 퇴사한다고? 이렇게 갑자기?
권미현 매니저와 술자리를 갖은 그날 이후.
나는 종종 회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뭐예요? 나 기다렸어요?”
“기다리긴요. 스트레칭 하러 올라온 건데.”
“아니면 말구요.”
애연가인 권미현 매니저완 시답잖은 이야기를 할 정도로 친해진 듯싶다. 최대한 친분을 쌓아야 나중에 말을 꺼낼 때도 수월할 테니까.
계획은 순항 중이다.
“……이제 여름이네.”
어느덧 6월 말이 다가왔고, 이제는 반팔을 입고 다녀도 좋은 날씨다. 웹소설 출판사의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복장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그간 내가 코즈일이란 필명으로 쓴 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꿈돌 작가의 글 역시 강력한 대체역사 결사대의 응집으로 무서운 매출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나의 실적과 우리 판무 2팀의 팀 매출 역시 연일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게다가 오늘의 베스트 순위 10~15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피자헛둘 작가의 ‘이세계 힐링포차’의 런칭일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기에 판무 2팀의 분위기, 정확히는 나를 향한 김동현 팀장의 애정도가 갈수록 두터워 지고 있었다.
허리와 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내게 황금손이니, 잘될 작품만 보는 천리안이 있다느니 하는 김동현 팀장의 아재개그를 떠올리며 피식 웃음 짓는 그때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우리 회사 건물은 층마다 별도의 테라스가 있기에 담배를 피는 직원 대부분은 2층 테라스나 1층 흡연실을 쓴다.
즉, BS북 직원 중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굳이 옥상까지 올라오는 사람은 권미현 매니저와 나뿐이란 뜻이다. 옥상 코너를 돌아 문 쪽으로 다가서니.
“진혁 파트장님?”
“어? 정우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쓸쓸한 발걸음 소릴 내며 옥상에 나타난 건 판무 1팀 최진혁 파트장이다.
“옥상에선 처음 뵙네요. 파트장님도 담배 피우세요?”
“아뇨, 그냥…… 바람 쐴 겸 잠시 나왔어요.”
모두가 망할 거라 여겼던 피자헛둘 작가를 내가 담당한 뒤로 승승장구하는 것을 최진혁 파트장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둘 사이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저는 그럼 이만—”
“피자헛둘 작가님 글……. 감사합니다.”
“예?”
“이세계 힐링포차……. 그 글이 잘돼서 다행이네요.”
“네……. 그렇죠.”
최진혁 파트장의 말에 나는 사무실로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섰다.
“파트장님. 하나 여쭤도 될까요?”
“아, 네.”
“듣기론 파트장님도 이세계 힐링포차 원고를 보셨다고 하던데. 파트장님이 보기엔 별로였나요?”
“…….”
한 번쯤은 묻고 싶었다.
‘이세계 힐링포차’ 원고를 봤으면서도 그 글을 계약하지 않은 게 고작 실적 때문인지.
“아……. 작가님께 들으셨군요.”
“네. 천마님의 현대생활 계약 전에 이세계 힐링포차 원고를 보여드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파트장님이 주신 인수인계 표에는 관련 내용이 전혀 없었어서요.”
지금 연재 중인 ‘이세계 힐링포차’는 비록 내가 윤문과 교정을 진행하긴 했지만, 전개의 큰 틀이 수정된 부분은 없었다.
즉, 최진혁 파트장이 처음에 넘겨받았던 초고에서도 충분히 지금과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 거였기에 나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제가 이런 말 한다고 해서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느끼기에도 ‘이세계 힐링포차’가 더 재미있는 글이기도 하고…… 그리고 작가님께서 더 즐겁게 연재하실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왜……?”
최진혁 파트장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대체 왜 그가 ‘이세계 힐링포차’를 계약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 이유를 듣고 싶다.
전임 담당자였던 그의 입으로 직접.
“저희 1팀은……. 2팀하고 분위기가 좀 달라요. 모든 작품을 컨택할 때 팀장님 허락을 받아야 하거든요.”
“파트장님도요?”
“파트장이라고 별거 있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자조 섞인 최진혁 파트장의 모습에서 씁쓸함이 풍긴다. 좋좋소 특징이 수평적인 구조를 지향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탑타운 체계인 게 현실인데, 판무 1팀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수직적인 구조인 게 분명하다
손에 든 커피를 한 모금 넘긴 최진혁 파트장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죠. 작가님들이 쓰고 싶은 글, 울림이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하기보다 돈만 좇는 현실이요. 하여간 고맙습니다. 좋은 글을 출간해 주셔서. 먼저 내려갈게요.”
“네, 들어가세요.”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건 아니지만, 회사에 제대로 된 상사가 있다면…….
그렇다면 최진혁 파트장도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축 처진 어깨로 내려가는 최진혁 파트장을 보니 괜스레 생각이 많아진다.
* * *
“팀장님, 다시 한번만 재고 부탁드립니다.”
“최진혁이. 아니 최 파트장님. 회사 사정이 지금 어쩔 수가 없어. 다 같은 출판 본부인데 파트장급이 없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로맨스팀은…….”
“일단 회의실 가서 마저 얘기하자고. 대표님이랑, 본부장님 기다리시니까.”
자리로 돌아오니 1팀에선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판무 1팀 팀장인 한우석과 최진혁 파트장을 뒤따라 대회의실로 이동하는 로맨스 팀장의 모습을 보니 상당히 묘한 조합으로 보인다.
“무슨 일이에요?”
고개를 슬쩍 돌려 옆자리 이창윤 매니저에게 물으니 그는 카톡으로 대신 대답했다.
—이창윤 매니저님: 와… 개미쳤음
—무슨 일인데요?
—이창윤 매니저님: 진혁 씨 짤리나봄
—?????
—최진혁 파트장님이
짤린다고요? 갑자기?
—우리 회사 창립 이래
한 번도 해고 안 한 거로
유명하다면서요?
—이창윤 매니저님: ㅇㅇ 정부 혜택받는 거
끊길까 봐 권고사직도 안 해줌
—그럼 무슨 소리예요?
—이창윤 매니저님: 직접 자르는 게
아니라 제 발로 나가라고 좌천시키는 거 같아
‘아니……. 좆소에 좌천 보낼 곳이 어디 있다고?’
라는 생각과 달리, BS북에도 그런 곳이 있었다.
판무 매니저가 버틸 수 없는 곳이.
—이창윤 매니저님: 로맨스 팀 팀장이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고 하는데
—이창윤 매니저님: 그래서 지금 로맨스 파트장이
팀장 되고 그러면 파트장 자리가 남잖아
—설마……?
—최 파트장님 로맨스로
보내는 거예요?
로팀 파트장으로?
—이창윤 매니저님: ㅇㅇ 개미쳤어 ㅈㄴ 잔인함
BS북은 평등한 가치관을 추구한다.
작가들에게 양아치 짓을 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원들한테도 같은 짓을 할 줄이야.
판타지팀과 로맨스팀은 같은 출판 본부에 속하지만 담당하는 업무의 결은 아예 다르다.
그렇기에 출판 본부와 협력하는 운영팀에서도 권미현 매니저같이 판무 파트 매니저와 로맨스 파트 매니저를 별도로 구분하고 있다.
게다가 판무 쪽은 실연재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로맨스 작품의 경우 단권으로 완결고까지 넘겨받고 출간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단지 판타지/무협 그리고 로맨스라는 큰 장르의 틀에서만 다른 게 아니라 업무의 방식 역시 많은 부분이 다르다는 뜻이다.
‘직책은 그대로 가는 거긴 한데……. 최진혁 파트장이 로팀 관련 업무를 알긴 하나?’
현재 판무 1팀 파트장인 최진혁이 로맨스팀 파트장이 된다고 하면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끼어버리게 되는 상황일 터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이 벌어진 상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그때, 판무 2팀 단톡방이 계속 울려댔다.
—조팟: 대박 ㅋㅋㅋ
—조팟: 다들 들었어요? 최팟 로팀 가는 거?
—김동현 팀장님: ㅇㅇ 그게 뭐?
—조팟: 들어보니 최팟 아예 쫓아내려고
작정한 거 같더라고요
—김동현 팀장님: ??
—조팟: 한우석 팀장님이 좀 마당발이잖아요
들어보니 로팀 팀장님 다른 회사 이직
추천해주고 최진혁 파트장 로팀 넣어서
BL만 담당하게 시킬 거래요
—이창윤 매니저님: 헐 ㄷㄷㄷ 넘 잔인한데……
—조팟: 최팟 크리스찬이라고 하던데ㅋㅋㅋ
그것도 모태신앙
—이창윤 매니저님: 아니…….
—조팟: 나락행 급행열차 꿀잼 ㅋㅋㅋㅋㅋ
—김동현 팀장님: 어허! 우리 일 아니야
신경 꺼 다들 일이나 합시다
—조팟: ㅋㅋㅋㅋㅋㅋㅋ 네이~
‘못난 새끼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아무리 다른 팀 일이라고 해도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인데, 최진혁 파트장이 처한 상황을 비웃고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니.
‘괜히 미안하네.’
피자헛둘 작가의 작품을 잘 케어해서 좋은 성적을 낸 게 내 잘못은 아니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
하지만 피자헛둘 작가의 좋은 성적이 최진혁 파트장에게 영향을 끼친 건 확실하기에 마음이 무겁다.
대회의실의 유리 벽 안에 비친 최진혁 파트장이 팀장들과 임원진들에게 둘러싸여 격렬히 항변하는 모습이 마치 맹수 우리에 빠진 초식동물의 마지막 발악을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든 위에서 정해진 결정을 일개 팀원이 바꿀 수 있는 힘은 없는 게 당연하다.
회의실 안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진혁 파트장의 축 처진 어깨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가 직면한 상황을 방증했다.
‘최진혁 파트장이랑 따로 얘기 좀 해 봐야겠네.’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는 법은 단 두 가지다.
물로 뛰쳐 드느냐 아니면 다른 배로 탈출하느냐.
그리고 마침 내겐 배가 있다.
아직 규모는 작지만 견고하고 단단한 배가.
최진혁 파트장이 그 배에 탑승할 자격이 되는지를 확인해야겠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무더위가 한 풀 가까이 다가온 7월 중순이다. 퇴근길에 슬슬 매미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회귀한 후에 시간이 빠르게 지나고 있다는 게 체감된다.
운영팀 권미현 매니저처럼 최진혁 파트장 역시 LGA컴퍼니로 꼬시려는 생각에 몇 차례 자리를 가지려 했지만 순조롭지 않았다. 최진혁 파트장은 커피 한잔하자는 말에도 자기랑 엮여서 좋을 거 없다며 나를 피했으니까.
‘저대로 냅두면 진짜 사람 망가지겠는데…….’
최진혁 파트장은 홀로 외딴 섬에 갇힌 것만 같다. 그는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그가 속했던 기존의 판무 1팀은 물론이고 7월 1일부로 그가 옮긴 로맨스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파트장님. 이걸 이렇게 처리하시면 어떻게 해요?”
“죄송합니다.”
“파트장님, 기본적인 용어는 알아주셔야죠.”
“미안해요. 그런데 오메가버스 라는 게 대체…….”
“매번 일일이 물어보실 거예요? 저희가 파트장님께 여쭤봐야 하는데?”
“미안해요…… 그런데 임신수가 뭔지만 물어볼 수 있을—”
“아, 진짜.”
“…….”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거는 건 오직 질책할 때뿐이었다.
최진혁 파트장과 입사 동기였던 로맨스 파트장은 이제 팀장이 되어 그를 구박했고, 그보다 더 늦게 입사한 로맨스팀 매니저들은 파트장 자리를 판무팀 출신인 그가 뺏어 갔다고 여기는지 피라냐처럼 물어뜯기 바빴다.
—조팟: 와 진짜 나 같으면 퇴사할 듯
ㅋㅋㅋ 어떻게 다니냐?
—이창윤 매니저님: 뭐가요?
—조팟: 뭐긴? 최진혁 파트장 밥도
매일 따로 먹고 그러잖아 개웃김 ㅋㅋㅋㅋㅋ
—이창윤 매니저님: 아……
—김동현 팀장님: 쫌! 남의 팀 일 신경 끄라니까
남의 아픔이 즐거움이라는 듯이 처웃는 조팟의 행동도, 남 일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김동현 팀장도, 아무 말 없이 방관만 하는 이창윤 매니저도, 모두가 실망스럽다.
—너무한 거 아닙니까?
좌천된 거나 마찬가진데
같은 회사 동료끼리
뒤에서 험담하는 건
부끄러운 행동이죠
—조팟: 아니 웃자고 하는 소리에 왜 그래?
—안 웃깁니다
—이런 말 좀 하지 마시죠
이거 험담입니다
—김동현 팀장님: ㅇㅇ 정우 매니저 말이 맞아
—김동현 팀장님: 남의 팀 신경 끄라니까!
—김동현 팀장님: 일 합시다 일!
—조팟: 거참…… 웃자는 소리에 뭘 예민하게
—조팟: 헐?
—김동현 팀장님: 또 뭐?
—조팟: 메일 ㄱㄱ 전체 메일 ㄱㄱㄱ
조팟놈은 뭐가 또 그리 신나는지 계속해서 메일을 보라고 재촉했다. 별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 떠는 게 분명하다.
“아니……. 퇴사?”
조팟이 호들갑을 떨만 했다.
전 직원이 모두 열람 가능한 그 메일은 퇴사를 알리는 내용이었으니까.
‘퇴사한다고? 이렇게 갑자기?’
다만 메일을 보낸 건 최진혁 파트장이 아니었다. 퇴사 의사를 밝힌 메일의 발신자는 한우석 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