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 대표 면접은 통과했습니다.
“여기예요.”
“일찍 오셨네요?”
권미현 매니저가 보내준 주소로 가니 이미 그녀가 가게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뭐 좋아해요?”
“저는 뭐든 괜찮아요. 감사해서 사는 거니까 미현 매니저님 드시고 싶은 걸로 주문하세요.”
“그럴게요 그럼.”
팀 회식이나 비지니스 파트너인 이지연과 따로 밥을 먹는 건 어색함이 없었지만, 회사 사람과 업무 외적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기에 왠지 낯선 기분이다.
“사시미 슈토아에와 꿀크림치즈 하나랑, 치킨가라아게 하나, 스끼야끼 나베 하나 주세요. 전 하이볼 마실 건데 정우 씨는요?”
“저도 같은 걸로 할게요.”
반면 권미현 매니저는 조금도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왜 여기로 온 줄 알아요?”
“글쎄요…… 여기가 맛집인가 봐요?”
어색함에 몸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던 그때 권미현 매니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 술집 이름이 ‘소설가’예요. 그래서 회사 사람들은 여기 절대로 안 오거든요.”
“의외네요? 저라면 이름 때문이라도 더 오고 싶을 거 같은데?”
별생각 없이 툭 던진 말에 권미현 매니저가 피식 웃었다.
“그런 말 못 들어봤어요? 요리사들은 집 가서 요리 안 한다고? 회사에서 하루종일 글 보는 게 우리 일인데, 퇴근하고 나서도 이름이 ‘소설가’인 술집에 오면 짜증 나지 않겠어요?”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실 온종일 글을 보고 읽는 게 즐거운 내겐 딱히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운영팀인 그녀의 입장에선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출판사 그리고 플랫폼과 이메일, 문자, 통화를 주고받고 각종 출간 회의를 진행하는 운영팀의 업무량은 살인적인 수준이었으니까.
“하여간, 잘 마실게요.”
권미현 매니저는 술이 나오자마자 짠도 않고 꿀꺽꿀꺽 하이볼이란 것을 들이켰다.
그녀를 따라 나도 한 모금 넘기니 처음 느껴보는 달착지근함과 청량감이 식도를 타고 시원하게 퍼져 나간다. 맥주와는 또 다른 상쾌함이다.
“오……. 좋네요.”
“괜찮아요?”
“처음 마셔보는데 맛있네요. 이게 뭘로 만든 거예요?”
“몰라요. 맛있어서 그냥 마시는 거니까.”
잠시 후 주문한 안주가 나왔고, 술을 몇 잔 적시기 시작하니 서로 편하게 말이 이어졌다.
“저 남자친구 없어요.”
“네?”
“회사에서 사귀자고 하신 분들이 종종 있어서 둘러댄 말이에요. 남자친구 있는데 술 마시자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볼까 봐.”
“아니에요. 직장 동료끼리 술 마시는 건데요, 뭘.”
회사에서 집적거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흥미롭기만 했지만, 딱히 놀랍진 않았다.
그 말이 충분히 납득될 정도로 권미현 매니저는 외적으로 매력적이었으니까.
“그거 알아요? 나도 원래 편집자 지원한 거?”
“네? 근데 왜 운영팀에 계세요?”
“그게 말하자면 좀 어이없는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은 권미현 매니저는 남은 하이볼을 쭉 들이켰다.
마치 그래야만 짜증 나는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듯이.
“저희 2차 면접이 임원진 면접이잖아요. 그때 제가 포트폴리오를 준비해 갔어요.”
“포트폴리오요? 포폴로 준비할 게 있었나요?”
“메인 플랫폼별 현재 어떤 출판사가 어떤 장르에서 강세다 하는 걸 나름 분석했었거든요. 연도별로 그래프랑 표로도 분석하고요.”
우리 판무 2팀 내에서도 권미현 매니저는 일을 꼼꼼하게 잘하기로 소문나 있었는데,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 성향 자체가 꼼꼼한 사람인 것 같다.
“반응 좋았겠는데요?”
“맞아요. 반응이 너무 좋아서 말아먹은 거지만.”
“……?”
“술 한 잔 더 시켜도 돼요?”
“네, 마음껏 드세요.”
권미현 매니저는 새로 나온 하이볼을 들이키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원래 판무 쪽 소설을 좋아하거든요. 판타지, 현판, 무협 가리지 않고 다 읽었어요. 그래서 편집자로 지원한 거였는데, 제가 면접 때 낸 포폴 보더니 마케팅 업무는 어떤지 묻더라고요?”
이상하다.
BS북에는 마케팅 부서나 팀이 따로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느 회사든 마케팅팀이 가장 힘 있는 곳이란 인식이 있잖아요. 꿀 빨러 온 벌처럼 마케팅이란 말만 듣고 운영팀에 입사했는데, 지금 포토샵으로 인스타랑 트위터 배너 짜고 있어요. 생각하니 더 빡치네.”
권미현 매니저는 아직도 면접 당시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듯이 하이볼을 연거푸 들이켰다.
“업무량도 많고 비상식적인 페이퍼워크까진 그렇다 치는데, 제일 화나는 게 뭔지 알아요? 아니 이 미친 회사가 포토샵을 정품으로 안 써요. 쪼잔한 새끼들.”
“하긴……. 한글 프로그램도 그렇죠.”
생각해 보니 이건 나도 간과했던 일이다.
정품 프로그램이 아니라 불법 크랙 버전인데, 저작권이 중시되는 출판사에서 이런 불법 프로그램이 버젓이 사용된다는 건 부끄러워야 할 일이니까.
“하여간 마케팅이란 있어 보이는 말에 코 꿴 거라 저도 딱히 할 말은 없긴 한데, 진짜 속 터지는 일 많네요. 오늘 김동현 팀장님이 계속 매출 알려달라고 하신 것도 그렇고요. 아니 CP 사용 방법 나스 폴더만 뒤져보면 상세히 나오는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아…… 하하하. 그러게요.”
차가운 도시 여자 같은 모습과 다르게 그녀가 풍기는 기운은 술독을 앞에 둔 장비와도 같다.
영웅호걸은 술을 좋아한다는 말처럼 권미현 매니저는 속 안에 들끓는 화염을 잠재우려는 듯이 계속해서 술을 들이켰다.
어느새 권미현 매니저 옆에 술잔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지만, 다행인 건 그녀가 이지연처럼 술에 약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하……. 빨리 경력 쌓고 회사 때려쳐야지. 거지 같아서, 쯧.”
아직 입사 1년 차도 안 된 직원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게 씁쓸하게 느껴졌다.
“매니저님은 그럼 퇴사하면 편집자로 취업하실 생각이세요?”
“음……. 글쎄요?”
간단한 질문에 권미현 매니저는 턱 끝을 쓸며 한참을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출판사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저도 책이 좋아서 들어온 거거든요. 그런데 판무팀이나 로맨스팀 매니저님들이 일하는 거 보면 글이 싫어질 것 같아요.”
“글이…… 싫어질 것 같다고요?”
활자의 세계에 평생을 파묻혀 살고 싶은 내게 글이 싫어질 것 같다는 말이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점 때문에요?”
“정우 씨는 해당되는 거 같지 않긴 해요.”
나는 아니라고?
묘한 표정으로 내뱉는 권미현의 말이 더욱 아리송하다. 대답을 바라는 표정으로 권미현 매니저를 응시하자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원래 편집자로 지원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입사 초기엔 판무팀 매니저님들을 유심히 봤어요. 그런데 다들 글을 돈으로만 보는 거 같아서요.”
“…….”
정곡을 찌르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저는 편집자라면 이 작품이 재밌다. 아니면 이 작품은 어떤 부분을 어떤 방향으로 개선하면 재밌어지겠다 같이 온전히 작가님들의 작품에 집중해서 소통하는 게 편집자의 일인 줄로만 알았죠.”
“…….”
“그런데 우리 회사 판무팀, 로맨스팀 매니저님들 보면 솔직히 그런 느낌은 안 들더라고요. 실적, 매출 관련된 얘기는 늘 듣지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말해서가 아니라 내가 공감하는 사실을 BS북의 다른 누군가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기에.
BS북의 편집자들은 권미현 매니저의 말처럼 계약한 글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실적과 연관된 돈으로만 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니라는 말은 못 하겠네.’
결코 그녀의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권미현은 출판사의 현실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솔직히 운영팀인 제 입장에서 봤을 때, 출판본부 매니저님들이 하는 일은 편집자라기보다는 공인중개사나 인스타 광고 모델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
내 본업이 작가다.
하지만 편집자의 업도 함께하고 있기에 그녀의 말이 별다른 추가 설명 없이도 쉽게 이해됐다.
팀장급이 없는 무두절엔 출판부 매니저들 사이에서 종종 나오던 말이었으니까.
“하……. 여기가 부동산이에요? 대중성만 따지고 남들 다 아는 맛만 컨택해서 계약하는 일이 편집자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사람들 잘 아는 맛의 글만 계약하고 표지 만들어서 출간시키는 일만 반복하는데, 이게 무슨 편집자예요?”
“내 말이. 내가 무슨 협찬 받는 인스타 스타도 아니고 광고주가 팔라고 하는 상품 돈 받고 홍보만 하는 느낌이랄까?”
“편집자 일 다들 몇 년 했다고 벌써 그런 말들을 한대. 공인중개사나 인스타 광고 모델 같다고 느껴지는 정도면 아직 편집자 생활 할 만하네. 몇 년만 더 다녀봐. 그때는 실적 압박 때문에 익숙한 맛이고 뭐고 그냥 닥치는 대로 계약해야 하는 게 보험팔이나 마찬가지니까.”
“이러려고 편집자 한 게 아닌데…….”
“하아…….”
출판부 매니저들이 한탄처럼 내뱉던 말들이 머리에 떠오르자 더욱 착잡한 기분이다.
회사의 사전적 의미는 영리 행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를 일컫는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글을 좋아하거나 한때 좋아했던 이들.
그렇기에 우리가 애정하는 글이 돈으로만 평가되는 현실이 편집자들에겐 그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출판사에서의 삶은 마치 인디언들이 믿던 마음의 삼각형과 같다. 글을 글로써 좋아했던 마음, 작가의 의도와 그 안에 담긴 철학을 파악하고자 했던 마음까지.
‘여기선 그 모든 게 너무 빨리 닳지…….’
그리고 입사한 지 몇 달도 지나지 않은 사이 매니저들의 마음엔 오직 돈이라는 둥근 구슬만 남게 된다.
‘글에 대한 낭만 따위가 남아 있을 수가 없어…….’
고작 몇 주 전에 있었던 최진혁 파트장의 상황만 보더라도, 판무 1팀 팀장 한우석은 아직 출간도 안 된 피자헛둘 작가의 작품을 똥글이라 폄하했었다.
한우석 팀장은 지금 피자헛둘 작가의 작품이 잘되어서 배가 아픈 게 아닐 거다. 그가 속상해한다면 그건 피자헛둘 작가의 매출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아쉬움. 단지 그뿐일 테니까.
“하아…….”
“미안해요. 판무팀 매니저님 앞에서 너무 까는 얘기만 했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에 나도 모르게 쉰 한숨에 권미현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아, 그런 거 아니에요. 편집자 현실을 떠올리니 한숨이 쉬어져서요.”
“그죠? 건배나 해요.”
속이 쓰릴 때 마셔서인지 들이키는 하이볼에 불처럼 끓어오르던 속이 조금은 잠재워지는 것 같다.
“여하튼 그래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퇴사하게 되면 이쪽 일은 안 하지 않을까 싶어요. 매출보다 작품을 생각하고, 작가의 의도를 조금 더 고려하면서 계약 진행을 할 수 있는 그런 이상적인 회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요.”
“그렇죠. 그런 이상적인 회사가 있을 리가…….”
잠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런 이상적인 회사가 내가 차리려는 회사잖아?
“미현 매니저님, 그럼 만약에 말이죠. 돈보다는 작품을 먼저 생각하고 작가를 먼저 위하는 그런 출판사가 있다면 그쪽으로 이직할 생각도 있으세요?”
“누가 마다하겠어요? 드래곤같이 현실성 없는 느낌이긴 하지만, 뭐 존재하기만 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짐 싸서 가고 싶죠.”
두 눈을 반짝이는 권미현 매니저의 눈빛에 그녀의 말이 진심인 게 여실히 느껴진다.
그럼 사상 검증 좀 해볼까?
“만약 그 회사가 BS북처럼 출판계에서 입지가 큰 회사가 아니라 신생 출판사라면요? 직원도 10명, 아니 5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여도?”
“뭐, 월급만 꼬박꼬박 나온다면야. 회사 크기가 대수겠어요? 애초에 돈만 보고 들어왔으면 병신북, 아니 BS북 같은 양아치 회사는 안 들어왔죠.”
“그렇단 말이죠?”
거듭된 내 질문에 권미현 매니저의 눈이 새초롬해졌다.
“그 눈빛 뭐예요? 아는 곳 있으면 나도 좀 꽂아줘요. 혼자만 알지 말고.”
“하하, 아니에요. 지금은 아닌데 조만간 그런 회사가 생길지도 모르겠어서요. 여하튼 퇴사 하게 되면 미리 알려주세요.”
“남자가 싱겁게. 술이나 비워요. 막잔하고 가죠. 내일도 그 거지 같은 곳에 출근해야 하니까.”
“하하하, 그래요.”
권미현 매니저는 모를 거다.
그녀가 LGA컴퍼니 대표 면접을 통과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