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6화 (16/201)

#16화 ―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자, 그럼 후딱 정리하고 퇴근하러 가볼까?”

현재 내가 연재 중인 글은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와 ‘인턴사원 회장님’ 두 작품.

비축분 역시 충분하다.

김동현 팀장의 반응을 보니 피자헛둘 작가로 인해 구멍 난 런칭 일정에 코즈일의 신작 런칭을 한다면 플랫폼에서도, BS북에서도 오히려 더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 같다.

2014년도인 지금 웹월드는 아직 ‘별빛등반가’라는 대작 하나로 간신히 숨만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아사 직전의 웹월드를 심폐 소생시킨 희대의 역작 ‘나 혼자만 상하차’가 런칭 되려면 앞으로 2년의 공백이 남은 상황. 즉, 빈집털이가 가능하다는 뜻이지.

“작가님, 통화가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저……. 회사에선 뭐라고 하시던가요?”

김동현 팀장과 통화를 마치고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오니 안절부절못하는 피자헛둘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우선 런칭 작품 교체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신 상황에 따라서 웹월드가 아니라 소설피아에서 연재해야 하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웹월드엔 내가, 아니 코즈일의 작품이 대신 들어갈 확률이 높으니까.

“괜찮습니다! 어디든 연재만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신작으로 진행하시는 게 확정되면 원래 작가님이 기획했던 ‘천마님의 현대 생활’ 표지 비용은 추후 작가님의 정산에서 제외될 예정입니다.”

“아유, 당연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정말 성실하게 쓰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했습니다.”

“사과는 제가 아니라 최진혁 파트장님께 하셔야죠.”

“예?”

뭘 놀란 표정을 지어?

해당 작가가 무슨 작품을 쓰고 싶은지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최진혁의 잘못도 있지만, 애새끼도 아니고 잠수 타는 우리 작가님 행동도 잘못한 건 만만치 않잖아? 그러니 할 말은 하고 가야겠다.

“작가님과 저희 매니저들이 오늘처럼 직접 뵙는 자리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 사람이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최진혁 파트장님께는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시지 않고 단지 소통이 힘들어서 담당자를 교체해 달라고 하신 후에 연락을 끊으셨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알고 있는 게 맞습니까?”

“네…… 죄송합니다.”

피자헛둘 작가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떨궜다.

하지만 내가 할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 피자헛둘 작가의 태도가 진심인지도 모르겠고.

“작가님. 저는 교정, 교열, 윤문을 최선을 다해서 진행하려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업무에 앞서 의도적으로 연락을 무시하거나 피하는 건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 지켜주실 수 있으십니까?”

“예, 물론입니다. 제가 당연한 걸 놓쳤네요. 죄송합니다.”

놓치긴 뭘 놓쳐?

모르고 한 실수와 알면서 한 실수는 명확히 다르다. 지금 피자헛둘 작가가 하는 말 같지 않은 소리는 마치 자기가 실수를 했다는 어투인데.

‘그건 실수가 아니었는데?’

우리 작가님.

똥 싼 거 다 치워드렸으니까, 이제 뼈 좀 맞아야겠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과는 저보다 최진혁 파트장님께 해주셔야 합니다. 작가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담당자 교체를 원하시는지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담당자 교체를 말하고 모든 연락을 다 끊으셨잖습니까? 그것도 런칭 바로 몇주 전에 말이죠.”

“죄송…… 합니다…….”

사랑의 매라 생각하시고 감사히 받으시길.

나도 우리 작가님 덕분에 여기까지 직접 찾아왔는데, 생각해보니 화나네?

우물쭈물거리며 피해자인 척하지만 피자헛둘 작가가 한 행동은 엄연히 갑질의 일종이니까.

“작가님과 매니저의 관계는 복싱 선수와 세컨의 관계, 야구 선수와 감독과의 관계와 동일합니다. 저희는 한 팀이란 걸 잊지 말아주세요 작가님. 계약 사항에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해 주세요.”

앞으로도 카톡 숫자 사라지는 데 답변 없으면 뒤진다?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이건 마음에만 남겨 두기로 했다.

더 말하면 우리 작가님 울 거 같으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정말 어른답지…… 아니 작가답지 못했네요. 최진혁 파트장님껜 제가 따로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작가님. 비록 작가님과의 시작은 어수선했지만, 앞으로 좋은 작품 나올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작가님의 작품을 맨 처음 읽게 되는 독자로서 최대한 꼼꼼하게 작품 피드백 드릴 수 있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피자헛둘 작가에겐 원고가 한 편, 한 편 완성되면 그때마다 바로 보내달라고 전달한 후 바로 차로 이동하는 그때, 전화가 울렸다.

나는 10초 정도를 기다린 후.

“네, 팀장님. 작가님과 함께 있어서 확인이 늦어졌네요.”

“정우 매니저! 됐어! 코즈일 작가 신작은 익익월 정산으로 해주시겠대!”

“다행이네요. 작가님께도 바로 해당 내용 전달 드려야겠네요. 그럼 이제 웹월드 측에 전달만…….”

“어허이. 그건 내 선에서 이미 다 처리됐어. 미현 매니저한테 이미 전달해서 바로 웹월드 최 대리한테 전달했고. 전혀 문제없대. 오히려 아쉬워하더라고, 하하. 더 좋은 구좌에 맞춰서 들어가야 하는데 피자헛둘 작가 자리에 들어가는 거여서.”

구좌는 상관없다. 웹월드는 지금 뚜렷한 대작이 몇 없는 상황. 구좌에 상관없이 빈집털이로는 충분할 터다.

그보다 운영팀 권미현 매니저한테 다음에 커피라도 한 잔 사줘야겠네. 갑작스러운 업무 요청으로 우리 회사와 웹월드 사이에서 상당히 곤혹스러웠을 테니까.

“괜찮습니다. 그럼 코즈일 작가한테 계약서 양식 전달하고 원고도 바로 요청하겠습니다.”

“그래, 그건 알아서 진행하고. 문제는 지금 일런데……. 우선은 디자인 표지로 먼저 진행해야겠어.”

디자인 표지란 일러스트 작가가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이미지사이트에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에 타이포만 얹어서 만드는 표지를 말한다.

출판사에서 디자인 표지를 만드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기대 매출이 현저히 낮은 작품이어서 표지 제작 비용도 아까운 경우.

그게 아니면 지금처럼 긴박한 상황일 경우다.

디자인 표지는 제작 요청을 받고 늦어도 하루, 이틀이면 제작이 완성되니까.

‘확실히 아쉽긴 하네.’

표지의 퀄리티 여부가 매출에 큰 차이를 준다는 명확한 통계는 없지다. 하지만 잘 만든 표지엔 소위 말하는 ‘어그로’를 끌 수 있는 힘이 있기에 아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아무리 표지가 예쁘고 멋져도 결국엔 내용으로 승부 보는 게 소설이니까.

“알겠습니다. 디자인 일러는 내일 출근해서 바로 요청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전 작가님이 기다리셔서 다시 가보겠습니다.”

“그래, 고생이 많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조심히 퇴근하라고.”

“네, 팀장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반.

오늘은 큰일 했으니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 * *

BS북의 오성민 대표께서는 국내의 수많은 중소기업과 궤를 같이하신다.

바로 포괄임금제라는 좋좋소스러운 이름의 제도를 시행하신 점이 특히 그런데.

대기업에 다니는 천룡인들께선 그 이름조차 생소할 포괄임금제란, 쉽게 말해서 야근 수당을 주지 않는 임금 제도를 뜻한다.

즉, 다른 직원보다 일을 더 많이 하나 적게 하나 여부와는 상관없이 같은 월급을 주는 노쓰 코리아 스타일 임금 제도다.

“야근의 신이시여. 허락하셨다 믿습니다.”

퇴근 시간인 6시가 되려면 아직 2시간 반이 남았지만 나는 포괄임금제에 희생당하는 동료들을 위해 먼저 퇴근하기로 결심했다.

생각해보니 작가 미팅을 잘 이용하면 조금 더 삶을 윤택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합법적 루팡에 어깨를 들썩이며 합정역으로 되돌아가는데 우리 직원 먹을 거나 사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BS북 말고 LGA컴퍼니 직원인 이지연에게.

—여보세요? 어,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전화를 걸기가 무섭게 자동차 스피커에서 이지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외근 나왔다가 일찍 퇴근해서요.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와, 정말요? 음…… 뭘 주문해야 하지?

통화 너머로 들리는 이지연의 목소리는 늘 밝다. 회귀 전에 함께 회사 생활을 하며 듣던 목소리보다 한결 밝은 게, 지금 그녀가 전생의 삶 보단 행복하구나 하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한다.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고민이 길어지시는 거 같은데.”

—에이, 아니에요. 그러면 간식 말고 있다가 저녁 같이 드시는 건 어때요?

생각해보니 최근엔 서로 바빠서 저녁을 같이 먹지 않을 날들이 많았다. 이지연은 중요한 사업 파트너이자 바지사장. 초심을 잃고 소홀해지지 않도록 잘 챙겨야 한다.

“좋아요. 저는 방에서 글 쓰고 있을게요. 퇴근하시면 알려주세요.”

—네, 그럼 있다 봐요.

* * *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바로 노트북을 켰다.

런칭일은 다다음 주 화요일. 즉, 신작 원고 40화를 맞추려면 15일이 남은 상황이다.

하지만 최소 10화 원고는 금주 중으로 전달해야만 한다. 아무리 코즈일 이름이 깡패라지만 플랫폼 측에서의 원고 확인은 꼭 필요한 절차니까.

계산해 보면 대략 15일 동안 하루 2.5빡 정도를 하면 되니 별문제는 없을 터다.

‘역시 비축분이 최고야.’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는 30화, ‘인턴사원 회장님’은 25화 이상 비축이 있다. 역시 비축은 늘 옳다. 그동안 쌓아둔 비축이 있기에, 다다음 주까지는 온전히 신작 준비에 몰두할 수 있을 테다.

타다닥— 타닥— 타다다닥—

나는 메모장을 키고 빠르게 회차별 소제목을 적어 내려갔다. 내 세 번째 런칭작은 다름 아닌 아포칼립스물이다.

아포칼립스란 성경의 종말론을 뜻하는 말로 웹소설에선 좀비물, 혹은 다른 차원의 괴물들이 출몰하는 세상이라던지, 던전브레이크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지는 세기말 분위기가 배경인 소설을 뜻한다.

‘급할 때는 아포물이 최고지. 내가 썼던 글이기도 하고.’

새롭게 연재할 소설로 아포칼립스물을 택한 건 비교적 유행에 덜 민감하기 때문이다. 일정이 촉박한 관계로 이번 글은 전생에서 내가 이미 썼던 글을 쓰기로 했다.

‘인턴사원 회장님’처럼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을 적는 것도 빠르지만 ‘불 지르는 파이어맨’처럼 이미 내가 한 번 썼던 글은 더욱 속도가 빠르다.

내가 이전에 썼던 내용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쓸 수는 없지만, 당시 회차별 소제목 등은 모두 얼추 기억하고 있다.

완결 회차까지 소제목을 모두 적은 후엔 소제목에 맞춰 시놉시스를 쭉쭉 써 내려갔다.

타다다닥— 타닥— 타다닥—

당시 완결 회차는 325화.

권 수로는 13권 완결이었다.

불 지르는 파이어맨은 호평 일색이었던, 흥행이 보증된 글이었기에 전과 다르게 내용이나 큰 틀을 바꿀 생각은 없다.

완결 회차까지 간략한 얼개 정리가 모두 끝났고 이제 트리트먼트만 정리해 나가면 된다.

시놉과 트리트먼트를 정리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글을 쓸 때 대부분 이런 식으로 정리한다.

비록 초반엔 지루하고 더딜지 모르더라도 글의 설계도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뒤로 갈수록 극명한 차이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딩동— 딩동—

트리트먼트를 막 작성하기 시작한 그 순간 인터폰이 울렸다. 입구로 가 문을 여니 가방을 멘 이지연의 모습이 보인다.

“전화 안 받으시길래 왔어요.”

“전화요?”

슬쩍 고개를 돌려 벽면에 붙은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은 7시다. 젠장, 이지연의 퇴근 시간은 6시인데 한 시간이나 야근을 시킨 셈이나 다름없다. 내 회사에 야근이 있어선 안 된다.

“정말 죄송해요. 집중하느라 못 들었나 봐요. 잠시 들어와 계실래요? 옷만 입고 바로 나갈게요.”

“아니에요 바빠서 그러실 텐데……. 근데, 들어가도 되나요?”

문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보니 들어오기 싫다는 게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읽힌다.

“아, 네. 바로 나가시죠. 원고 저장만 하고 나가면 돼서요.”

빠르게 원고 저장을 완료한 후 우리는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배 많이 고프죠?”

“맛있는 거 얻어먹을 건데요.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LGA컴퍼니가 아무리 규모가 작은 소기업이라 해도 나는 이지연과 앞으로 들어올 직원들이 최대한 즐겁게 다녔으면 한다.

다들 직업을 구할 때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다 못 해 관심 있는 일을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좋아하는 일 하러 가서 안 좋은 일만 겪으면 얼마나 힘들겠어.

아무리 돈을 받으며 일하는 거라 해도 회사 생활이 즐겁지 않다면 그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밑에 직원일수록 출퇴근 시간이 보장되어야 하는 건 회사로서의 기본이자 경영자로서 꼭 지켜야 하는 기본이라고 생각하니까.

“지연 씨한테 늘 감사해요. 오늘은 제가 정말 맛있는 거 살 테니까, 드시고 싶은 거 드세요.”

“진짜요? 그럼 저 가고 싶은 데 있는데.”

“그럼요. 어디든 가죠.”

배시시 웃는 이지연을 보니 그녀가 뭘 생각하는지 그 속이 훤히 보인다. 생선구이? 뼈해장국? 아니면 곱창?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 메뉴는 꿰고 있으니까.

“그럼 제가 내비 찍을게요.”

“그러세요.”

이지연이 찍은 내비를 따라가니 그녀의 집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청담동 쪽이다.

“와, 여기 꼭 와보고 싶었어요! 여기 완전 예약하기도 힘들다고 했는데. 자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아…… 예.”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와 있다.

이지연이…… 양식을 좋아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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