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5화 (15/201)

#15화 ― 선택지는 백업 플랜뿐이다.

“계, 계약 파기요?”

눈이 부릅떠진 그에게 나는 대답 대신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그의 한결같은 태도에 더는 대화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갑(피자헛둘)은 을(BS북)에게 약속된 일정까지 원고를 인도하지 않을 시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여기 하이라이트 친 부분이 제20조 내용입니다.”

나는 계속해서 계약서 사본을 넘겼고 좀 더 아랫부분에 있는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보시면 계약 기간 중 제20조의 사유로 계약이 해지, 및 해제되었을 때 ‘갑’은 표지 제작 비용을 ‘을’에게 반환한다. 라고 명시되어 있군요. 표지 제작 비용은 타이포 포함 52만 원입니다.”

“아, 안 돼요 매니저님! 저 정말 연재 하고 싶어요. 믿어 주세요.”

뭘 그렇게 놀라? 귀엽게.

걱정 마라 기니피그야 계약 파기할 생각은 나도 없으니까. 단지 충격 요법일 뿐이다.

피자헛둘이 사는 아파트는 신축 브랜드 아파트다. 후줄근한 차림새와 달리 입고 있는 옷도 신발도 모두 누구나 알 만한 브랜드 메이커. 대부분의 신인 작가들과 달리 금전적인 문제로 글을 쓰지 못하는 건 분명히 아니다.

그렇다면 정작 집필에는 별 관심이 없는데 ‘작가’라는 겉멋에 빠져 계약을 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글이 정말 써지지 않는 상황일 거로 생각했는데, 다행히 피자헛둘은 후자인 모양이다.

‘전자에 속했어도 어차피 해결책은 준비 돼 있지만 말이야.’

나는 심리 상담가가 아니라 출판사 매니저다.

습관성 거짓말에 의욕도 없는 작가에게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에 한 문장, 한 문장을 고쳐 쓰며 피, 땀, 눈물을 흘리고 있을 테니까.

만약 피자헛둘이 전자에 속했다면 나는 계약 파기를 하고 바로 백업 플랜을 진행했을 터다.

비록 내가 좀 바빠 질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작가님께서 연재를 정말 하시고 싶으셨다면 일정 안에 원고를 준비해서 주셨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껏 보여 주신 태도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

“계약을 유지하고 싶으시다면 진솔한 모습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처럼 아무런 설명 없이 계약을 유지하고 싶다는 말을 하셔도 부연 설명이 없으면 제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게 사실……. 지금 쓰는 글은 제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에요. 그래서 더 쓰기가 힘든 것 같아요.”

피자헛둘은 각오가 되었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임 담당자님께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문창과 출신이에요. 애초에 문창과에 들어온 것도 글을 쓰고 싶어서 온 게 가장 컸고요. 출판사 중에 가장 규모가 큰 BS북과 계약 후에는 정말 꿈을 꾼 것 같았어요. 이제는 정말 작가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니, 그의 말은 틀렸다.

계약만 해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글도 쓰지 않는 작가란 있을 수 없지.’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가 처음 투고했던 글은 무협이었어요. 무협을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웹소설에선 무난하게 먹히는 게 무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럼 저희와 계약하신 천마님의 현대생활이 쓰고 싶었던 글이 아니란 말씀이세요?”

“예…… 계약까지 한 마당에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제가 좋아하는 글이 아니라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더라고요. 실은……. 천마님의 현대생활은 멈추고 새로운 글을 쓰고 있었어요.”

“…….”

터무니 없는 말이다.

소설가란 직업상 예술인에 분류되기에 그들이 일반인들보다 얼마나 더 자유로운 영혼인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이라 하더라도 소설가 역시 하나의 직업. 즉, 프로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쓰기 싫은 글이든 좋은 글이든 계약을 한 이상엔 그 글을 써야 하는 게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니까.

“새로 쓰신 글. 볼 수 있나요?”

그 글을 볼 수 있을 거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물은 게 아니었다. 지금껏 피자헛둘이 보여준 태도로 봐서는 이마저도 거짓일 확률이 높았으니까.

그럼에도 확인은 해야 했다.

그게 편집자의 일이니까.

진위 여부를 가려내야 백업 플랜으로 넘어갈지 판단 할 수 있기도 하고.

“아, 네! 메일로 지금 바로 보내드릴 수 있어요.”

피자헛둘 작가는 상황에 맞지 않게 밝게 웃으며 카톡으로 한글 파일을 하나 틱 보냈다.

‘진짜 뭘 쓰긴 했네?’

나는 말없이 그가 보낸 글을 쭉쭉 읽어 내려갔다. 확실히 문창과 출신이어서 그런지 기본적인 필력은 나쁘지 않다. 등장인물 간의 대화도 자연스럽고 연출 역시 매끄럽고.

‘아니…… 좋은데?’

그가 보내준 글은 옴니버스식 구성의 잔잔한 힐링물이다. 한국식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주인공이 이세계로 넘어가 다양한 종족의 아인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요리를 선보이는 국뽕 요소가 가미된 글. 요리 힐링물인가?

“제가 취미로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요…….”

“예, 잠시 마저 읽겠습니다.”

피자헛둘이 보내 준 원고의 총 글자수는 25만 자가 조금 넘는다. 한 화 원고가 5천 자 기준이니 대략 50화 정도 분량.

일본에서 유행했던 잔잔한 힐링물을 한국식으로 로컬라이징한 게 나쁘진 않지만 주인공의 목적성이 다소 아쉽다.

메인 캐릭터의 뚜렷한 목적 의식은 각 플랫폼에서 원고 검토 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 중 하나다. 이 부분만 조금 더 다듬고 독자들이 거부감을 일으킬 만한 왜색이 짙은 표현들만 교정한다면 좋은 글이 될 것 같다.

“지금 보여주신 글 비축분이 더 있을까요?”

“아뇨……. 비축은 더 없어요.”

좋은 글이다. 그래서 피자헛둘 작가의 행동이 더 화가 나고 이해할 수가 없다.

“비축이 이렇게 있었으면 전 담당자님께 왜 안 보여주셨나요?”

“아, 아니에요! 보여드렸어요.”

“……보여드렸다고요?”

인수 인계 파일엔 없던 내용이다.

“네……. 투고 직후에 계약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때 지금 쓴 글도 보여드렸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이 글이 더 쓰고 싶고 재미있는데, 무협 말고 이 글로 계약하면 안 되냐고요.”

“음……. 전임 담당자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너무 밋밋하다고 하셨어요. 뚜렷이 나타나는 갈등 구조가 없다는 것도 아쉽다고 하셨구요.”

“지금 내용하고 달라진 부분이 있었나요?”

“아뇨, 수정된 내용은 따로 없어요. 어차피 출간할 수 없는 글이라는 생각에, 천마님의 현대생활 쓰다가 막힐 때 그냥 편하게 일기처럼 쭉쭉 쓰던 거라……. 근데 글에 정이 붙어서…….”

“…….”

1팀 파트장인 최진혁의 입장도 피자헛둘 작가의 입장도 모두 이해가 된다. 최진혁 파트장의 입장에선 투고가 왔던 작품이 무난하게 더 잘 팔릴 글이라고 판단했을 테니까.

‘게다가 지금 이 시점엔 잔잔한 힐링물로 대박을 친 작품이 존재하지 않았을 테지.’

라이브 연재만 10종 이상을 담당하는 최진혁 파트장의 입장에선 당연히 수익성이 담보 된 안전한 작품으로 진행하기를 원했을 거다.

그러니 계약을 했을 테고.

결국 잘 팔릴 글만 계약을 하겠다는 최진혁의 눈이 그리고 어떤 작품이던 작가 데뷔만 먼저 하고 싶다는 피자헛둘 작가의 욕심이 합쳐져 결국 이런 파국에 이르게 된 거다.

물론 주된 잘못은 명확히 자기 의견을 표현하지 않고 연재 코앞까지 잠수를 탄 피자헛둘 작가의 잘못이 커 보이지만.

‘그래도 아무리 글이 좋으면 뭐 해. 이걸로는 웹월드를 설득할 수가 없을텐데…….’

아직까진 웹월드와 테일랜드의 규모가 커지기 전이라 어지간한 글은 심사를 넣는 족족 다 통과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런칭까지 고작 이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원래 출간하려 했던 작품이 아닌 다른 작품으로 넣는다고 하면 플랫폼과 출판사의 사이가 나빠질 건 뻔한 일이다.

‘불안하긴 나 역시 마찬가지고.’

힐링물이 먹히지 않는 장르인 건 아니지만 연도별로 트렌드라는 게 있다. 아직까진 겜판 장르가 대세인 웹소설 시장에 힐링물을 그것도 런칭 이주일 전에 연락해서 바꾸고 싶다고 연락하면 플랫폼에서 결코 좋아할 수가 없다.

게다가 BS북의 위상도 떨어질 테고.

그렇다면 결국 선택지는 백업 플랜뿐이다.

‘한 작품 더 쓰지 뭐. 웹월드엔 내가 대신 들어간다.’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김동현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박정우 매니저입니다.”

—어, 그래. 피자헛둘 작가랑 미팅 어떻게 됐어? 잘됐어?

“작가님과 이야기 나눠 봤는데요. 그게—”

나는 우선 김동현 팀장에게 현재 상황을 간략히 전달했다. 일정이 빠듯한지라 팀장에게 바로 선 보고를 해야 운영팀이 웹월드에 바로 연락해 조치를 취할 수 있을 테니까.

통화 시작 땐 한숨을 쉬던 김동현 팀장의 목소리는 코즈일 작가의 신작 계약 이야기가 나오자 점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크아하하하! 아, 좋아. 매우 좋아. 코즈일 작가님이 신작을 대신 넣어 주시는 거면 걱정할 게 전혀 없지. 아니, 오히려 잘됐어!

신작 계약 조건은 정산비 9:1에 선인세 3억, 계약금은 500을 불렀지만 딱히 문제가 없었다.

이미 ‘남작가 성형 천재’와 ‘인턴사원 회장님’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고 거기다 ‘인턴사원 회장님’은 웹툰화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다만 내 조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코즈일 이란 필명은 웹소설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코즈일로 계약할 때 만드는 조건 하나하나가 웹소설 작가들 사이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정산비와 선인세를 수정한 것에서 그칠 생각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 정산은 분기별이 아니라 익월이나 못해도 최소 익익월 정산으로 받고 싶다고 하시는데…….”

—아…… 그건 힘들어. 코즈일 작가한테 말해서 어떻게 좀 안 될까? 정산비나 선인세까지는 내가 어떻게 말을 한다고 해도, 정산 지급 관련해선 경영지원팀 일이라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거 알잖아.

알지. 매우 잘 알고 있지.

그런데 어쩌겠어? 아쉬운 사람이 뛰어야지.

“이 부분이 해결이 안 되면 피자헛둘 작가님 신작을 그냥 웹월드 쪽에 넘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코즈일 작가님께서 이번에는 ‘제 부탁’으로 신작을 추가로 계약해 주시는 거여서 정산비나 선인세만으로는 타협이 힘들 것 같아서요.”

—아니 그래도…… 어떻게 잘 좀 말해주면 안 될까? 코즈일 작가도 이제 3번째 계약하는 거면 우리 사정 대충은 아실 거 아냐?

내부 사정? 알지. 그 누구보다 더.

코즈일 작가는 판무 2팀에 다니고 있으니까.

“네, 확실히 안 될 것 같습니다. 원래 이번 신작은 다른 쪽에서 더 좋은 계약 준 회사와 이야기가 나오던 작품이라고 해서…….”

—…….

김동현 팀장의 무언의 응답에 그의 고뇌가 여실히 느껴졌다.

안 먹어본 음식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아는 맛의 음식이 자기 밥그릇이 아닌 다른 사람의 밥그릇에 들어간다는 걸 눈 뜨고 보기만 해야 한다면?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게 없지.

“무리한 조건이면 그냥 피자헛둘 작가님 신작으로…….”

—아니야, 잠깐. 흐음……. 내가 경영지원팀 가서 들이받더라도 해결해달라고 할게. 바로 확인해 볼 테니까 코즈일 작가님껜 조금만 더, 아니 꼭 조건 맞출 수 있도록 할 테니 절대 다른 출판사랑 계약 못 하게 꼭 잡고 있어.

옳지. 잘한다.

곰 같은 여우가 이제야 일을 한다.

한 팀이라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예, 팀장님. 걱정 마시죠. 피자헛둘 작가님과는 신작 회의가 많이 길어질 것 같은데, 여기서 바로 퇴근해도 될까요?”

—그러엄! 당연하지! 출장보고서는 내일 작성해.

“예, 내일 뵙겠습니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10분.

오늘은 일찍 퇴근해봐야겠다.

이런 게 소확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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