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4화 (14/201)

#14화 ― 작가님, 제가 왔습니다.

“박정우 매니저, 잠깐 얘기 좀 해. 소회의실로.”

“예, 팀장님.”

1팀 한우석 팀장과의 폭풍이 지나가고 김동현 팀장은 한소리를 하려는 건지 나를 따로 불렀다. 소회의실 문을 닫고 들어가자마자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골치 아프겠지. 하지만 어쩌겠어 나는 실험 쥐가 필요한 상황인데?’

하지만 나도 사회생활이라면 충분히 해본 사람.

비록 출판사는 아니었지만 회사라는 구조는 다 거기서 거기다. 지금은 시늉을 해 줄 때다. 굽히는 시늉을.

“죄송합니다 팀장님. 다른 팀이어도 같은 출판본분데 제가 한우석 팀장님 말에 함부로 끼어들어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뭔 소리야?”

이게 아닌가? 예상과 다른 반응이 살짝 당황스럽다.

“잘했어. 한우석 팀장 그 양반 속이 아주 쥐 불알 만해서 툭하면 열 내는 사람이야. 그게 다 결혼을 못 해서 그래, 결혼을.”

“아…… 네.”

“여하튼, 나보다 고작 한 달 빨리 입사했는데 그걸로 지가 선배라고 몇 년간 난리 치던 사람이니, 그런 건 신경 쓸 필요 없고.”

“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한우석 팀장을 들이받은 건 별문제가 안 되는 모양이다.

“그보다 어쩌자고 그래? 조팟한테 얘기 들어보니 피자헛둘 작가 2주 뒤면 웹월드 런칭이라며? 지금 원고도 없고. 일정도 못 맞추면 정우 매니저가 다 뒤집어쓰는 거 알잖아.”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왜 나서서 일을 키웠냐는 원망이 담긴 말투다. 웹월드는 소설피아, 테일랜드와 더불어 몇 년 후에는 부동의 3대장 플랫폼이라 불릴 곳이다.

물론 지금은 작품 수가 없어서 출판사에 작품 구걸을 하는 입장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출판 업계 만고불변의 진리는 ‘플랫폼과 싸우려 하지 말라’다.

출판사가 돌고래라면 플랫폼은 범고래 같은 놈들. 2014년인 지금은 아쉬운 소리를 하며 작품 좀 더 달라 웃으며 말하지만, 플랫폼은 근본적으로 힘숨찐인 놈들로 언제 칼춤을 추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당연히 국내에서 가장 큰 웹소설 출판사인 BS북에서 이 사실을 모를 리도 없을 테고.

“런칭 일정 잘 알고 있습니다. 팀장님이 걱정하시는 일 없게 인수인계 받고 피자헛둘 작가에게 비축분도 바로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아……. 상황이 애매하긴 한데, 이렇게 된 거 어쩌겠어. 우선 급한 불부터 꺼야지. 하지만 정우 매니저, 만약에 일정 못 맞추면 시말서는 피할 수 없을 거야. 1팀에서 요청한 게 아니라 이건 정우 매니저가 먼저 작가 넘겨받겠다고 한 거니까. 이제 연재 펑크나거나 일정 못 맞추는 건 다 정우 매니저 책임인 거니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어.”

“네, 팀장님. 일정 꼭 맞출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시말서 따위야 쓰든 안 쓰든 상관없다.

어차피 난 안 잘릴 테니까.

‘그렇다고 시말서를 쓸 생각은 없지.’

나는 반드시 원고를 받아낼 테니까.

* * *

최진혁 파트장은 내게 인수인계를 하는 도중에도 연신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사회생활 하는 데 이렇게 나약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달리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내가 맡은 일이나 잘 처리하는 수밖에.

‘근데 이 사람은 왜 연락이 없는 거야?’

인수인계가 끝나고 바로 피자헛둘 작가에게 담당자 교체 사실을 알리며 원고를 요청했지만,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메일도, 문자도, 카톡도, 전화도 받지 않는다.

웃긴 건 처음에 보냈던 카톡 숫자 1은 사라졌는데, 그다음 카톡부터는 1이 그대로다.

‘우리 작가님…… 설마 연락을 피하시겠다는 건가?’

이게 말로만 듣던 담당자와의 기 싸움이라는 건지, 피자헛둘 작가가 요청한 대로 담당자 교체까지 했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다.

‘내가 찾아 가야지 뭐.’

실종자처럼 답변이 없는 피자헛둘 작가에게 집 주소로 직접 찾아뵙겠다는 메일, 문자, 카톡을 연달아 남긴 후 나는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회사 코앞인 내 오피스텔 주차장으로 가 차를 끌고 바로 작가의 집이 있는 회기역으로 출발했다. 이제 본격적인 추노가 시작됐다.

“그래, 무슨 사정이 있으신지 한번 들어나 보자고요 작가님.”

이동하는 중간중간 문자와 카톡 알림 소리가 차례대로 들려온다. 보지 않아도 우리 귀하신 작가님일 게 뻔하지만 나는 읽지 않았다. 운전 중에 핸드폰을 만지는 건 범칙금 대상이니까.

“슬슬 다 왔는데?”

계약서에 적힌 주소지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피자헛둘 작가님

010―xxxx―xxxx

바빠서 연락도 안 되던 분이 전화까지 주시다니. 황송하기 그지없다. 10초 정도를 기다린 후 통화 버튼을 누르자.

—저어……. 여보세요?

상당히 앳된 목소리가 블루투스에 연결된 자동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목소리가 고우시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답변이 없으셨을까? 이제 다 도착했는데?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번에 새로 작가님 작품을 담당하게 된 박정우 매니저입니다. 운전 중이어서 전화 받는 게 늦어졌습니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하하.”

—예? 도, 도착하셨다고요? 저 급한 일이 없어서 지금 집에 없어요. 집에는 부모님만 계세요.

아 급한 일이 있어? 그랬구나.

그런데 어쩌지? 나도 급한데?

“아, 그러시군요? 괜찮습니다. 천천히 오세요. 댁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아니. 예? 집까지 이렇게 불쑥 찾아오시면 어쩌세요? 저,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빨리 못 들어가요.

“작가님. 다다음 주 화요일에 웹월드에서 40화 런칭하기로 한 원고 보내 주시면 바로 가겠습니다. 원고 지금 바로 보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 그게……. 나중에 집 가서 보내드릴게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20대 초반 특유의 어설픈 거짓말이 담긴 목소리가 들린다. 일단 내뱉긴 하지만 결코 지킬 생각이 없는 그 목소리가.

“아뇨, 작가님. 2달 전부터 원고 보내 주시기로 이전 담당자님께 약속하지 않으셨나요? 그런데 제가 인계받은 런칭작 원고를 보니 투고로 보내 주셨던 10화 원고밖에 없었습니다. 준비된 원고 지금 부탁드립니다.”

—그…… 원고는 다 있는데 퇴고가 아직 안 돼서……. 그러니 진짜 집에 가면…….

“괜찮습니다, 작가님. 저희 매니저들마다 다 장점이 있습니다만, 제 장점이 마침 또 윤문입니다, 하하하. 교정, 교열, 윤문 빠짐없이 빠르게 진행해 드릴 테니 걱정 말고 보내 주시죠. 아, 잠시만요, 작가님.”

통화를 하는 도중 피자헛둘 작가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고, 나는 창문을 내리고 바로 차단기에 달린 호출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오셨을까요?

“205동 902호 방문이요.”

차단기가 올라가는 소리와 함께 피자헛둘 작가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하하, 작가님. 저는 도착했습니다. 주차하고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저, 매니저님! 매니저님!

피자헛둘 작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에 울려 퍼졌지만, 나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운전 중 통화는 범칙금 대상이니까.

“작가님, 제가 왔습니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작가님과의 즐거운 미팅 시간이 다가왔다.

* * *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그때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네, 작가님! 지금 막 도착해서 연락드리려던 참이었는데요.”

—도, 도착이요? 저희 집이요?

“예, 지금 주차장입니다. 그래서 원고 지금 바로 보내 주실 수 있으신 건가요?”

사람이란 간사하다.

아침부터 메일, 전화, 문자, 카톡을 남겼을 땐 밑 닦고 버린 휴지처럼 무시하더니, 이제는 헤어진 연인처럼 집착광공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작가님?”

—…….

지하라 통신 상태가 나쁜 건가?

노이즈가 들리진 않는데 작가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가?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문제는 신축 아파트여서 그런지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스크린 도어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하더니, 감사하게도 때마침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온 분이 스크린 도어를 열어 주셨다.

“작가님 통신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왔네요. 위로 올라가서 다시 연락드리지요.”

—자, 잠시만요! 매니저님! 그게…….

이것 봐. 잘 들리잖아?

나는 가차 없이 전화를 끊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어차피 엘리베이터에 타면 전화가 끊길 테니까.

띠링—

우리 작가님께서 기거하시는 9층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바, 박정우 매니저님?”

문이 열리자마자 후드 티를 뒤집어쓴 대딩 같은 녀석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쑥 들어왔다. 꼬질꼬질한 모습을 보니, 해가 중천에 뜬 지금까지 자다가 이제 막 일어난 모습이다.

“피자헛둘…… 작가님?”

“마, 맞아요. 그러니 저희 내려가서 이야기해요.”

“집에…… 계셨었네요?”

“죄, 죄송해요. 그게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 내려가서 얘기하면 안 될까요?”

혹시는 역시로 바꼈다.

집 안에 있었으면서 없는 척을 했다라?

‘우리 작가님 안 되겠네?’

나는 거짓말쟁이를 매우 싫어한다.

사기꾼한테 당해 착취 당했던 내게 거짓말이란 건 극악의 죄.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을 업무에 쏟아낼 생각은 없다. 나는 프로 편집자니까.

“네, 그럼 근처 카페로 가서 이야기 나누시죠.”

우리는 마치 다툰 후 서먹해진 연인처럼, 아무런 대화 없이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그리고 주문한 음료 두 잔이 나옴과 동시에 나는 공손히 명함을 건네며 다시 인사를 건넸다.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작가님을 담당하게 된 박정우 매니저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그럼 인사도 건넸으니 바로 본론에 들어갈 차례다.

“작가님께서 바쁜 일이 있다고 하셨으니 용건만 빠르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다음 주 화요일인 6월 10일에 런칭 준비 중이신 ‘천마님의 현대 생활’ 40화 오픈 예정인데요. 제가 전달받은 원고는 10화분뿐이네요. 나머지 30화 원고 우선 부탁드리고 비축분도 부탁드립니다.”

“저…… 그게…….”

“말씀하시죠.”

나는 피자헛둘 작가가 입을 열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지만, 우리 작가님께선 또다시 묵언 수행을 시작하신다.

그렇게 몇 분을 기다렸음에도 작가님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계약서에 적힌 주민등록상 그의 나이는 스물셋. 그런데 행동을 애같이 하시는 지병이 있으신 모양이다.

‘그럼 내가 어른처럼 잡아드려야지.’

나는 여기 놀러 온 게 아니니까.

“작가님께서 말씀이 없으시니 제가 먼저 여쭤보겠습니다. 비축 원고 없으십니까?”

“…….”

“하나도 없으신가요?”

“…….”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슨 사정이 있다 한들 그걸 듣는 건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상엔 편집자도 많고, 작가도 많고 이상한 사람도 많다. 그리고 내게 문제가 되는 건 담당 작가가 이상한 사람일 경우다. 그리고 지금 그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음…… 이런 상황은 별론데?’

내가 최진혁 파트장 대신 피자헛둘 작가를 담당하려 했던 건 그가 무슨 사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 큰 성인이 애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겠다면, 그에게 줄 기회 따윈 없다.

나는 편집자다. 심리상담가가 아니고.

“작가님, 최진혁 파트장님과 주고받으신 메일 제가 포워드 받아 모두 확인했습니다. 프로모션 일정 내에 글을 써 주실 수 있다고 해서 표지 제작도 다 된 상황이고요. 그런데 차주에 런칭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면 작가님께서 사전에 미리 알려 주셨어야 했죠.”

“죄송…… 합니다.”

“작가님께서 원고를 주신다고 했던 그 약속을 믿고 저희가 플랫폼 측에 전달 해 일정이 정해진 상황인데, 지금 상황에서 작가님이 원고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하시면 저희는 플랫폼에 비는 것 말곤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이죠.”

“죄송……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대학생이라 하는 일이 많아서…….”

“인수인계서에 적힌 내용을 보니 전업 작가 하시겠다고 휴학하셨다고 되어있던데요?”

“……죄송합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나를 바보로 아는 건가? 아니면 습관성 거짓말?

혹은 해리성 장애? 이제 뭐든 상관없다.

이해 가지 않는 행동은 이해할 필요가 없으니까.

“작가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작가님께서 저희 매니저들을 한 팀으로 생각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매니저의 일은 분명합니다. 작가님께서 글이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함께 방향성을 잡으며 문제를 해결해 드리고 작가님께서 약속하신 작품을 독자께 보여드릴 수 있도록 더욱 윤택하게 다듬는 일을 하는 거죠.”

싸늘해진 내 표정에 작가의 얼굴이 시시각각 굳는 게 보인다. 좋은 징조다.

“담당자인 저뿐만이 아닙니다. 운영팀은 플랫폼에 연락해 일정을 조율하고 저희는 작가님의 작품을 위해 출간 회의를 진행하고 등록팀은 작가님의 원고를 플랫폼에 등록 요청을 하는 등 여러 일을 진행하죠. 반면 작가님께서는 단 한 가지 일만 해주시면 되십니다. 바로 글을 써 주시는 거죠.”

“…….”

“글을 쓰시는 일, 단 한 가지만 해야 한다고 해서 그 일이 쉬운 일이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쉽고 어렵고의 문제를 떠나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저희 출판사와 계약을 하셨다면 약속하신 글을 써 주셨어야 했겠죠?”

“…….”

어떤 업을 하든 그 업에 맞는 일을 해야만 한다. 육상 선수는 뛰어야 하고 수영 선수는 물에 들어가야 한다.

“어떤 연유인지는 작가님께서 말을 않으시니 제가 알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여 주시는 행동을 보자면 계약은 파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지 않는 작가?

그건 작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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