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교체 요청하셨습니다…….
딩동— 딩동—
“잠시만요!”
‘LGA컴퍼니’라고 조그맣게 새겨진 현판 아래 인터폰을 누르니 안쪽에서 빠른 발걸음 소리와 함께 즉각 대답이 들려왔다.
“오셨어요 대표님?”
“아직 퇴근 안 했을 것 같아서요. 근데, 그 대표님 소리는 좀…… 안 하면 안 돼요?”
“에이~ 그럴 순 없죠. 원래 작은 조직일수록 체계가 잡혀있어야 해요. 그래야 규모가 커질수록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겠어요?”
생긋 웃는 것과 달리 이지연은 무척 피곤한 기색이다. 아무래도 BS북과 계약 후부터 피로가 많이 누적된 모양이다. 점점 바빠 보이기도 하고.
“대외적으론 지연 씨가 대표잖아요. 그럼 저도 대표님이라고 부를까요?”
“으으, 싫어요 그건.”
이지연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 우리끼리 있을 땐 편하게 부르기로 해요. 근데 그건 뭐예요? 와! 초밥이네요!”
“퇴근길에 사 왔어요. 근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요즘 거의 사무실에서 지내시는 거 같던데.”
“에이이. 삼시 세끼 다 챙겨 주는 회산데 야근 정도야 참을 수 있죠. 그리고 정우 씨 말대로 저도 LGA컴퍼니 대표잖아요. 물론 바지 사장이긴 하지만 더 열심히 해야죠.”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눈가 아래엔 다크서클이 진득하다.
LGA컴퍼니를 세우면서 나는 햇빛 한 줌 안 드는 고시원에서 방을 빼 회사 근처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하나는 내 거주용, 다른 하나는 LGA컴퍼니 사무실로.
‘그나마 옆집이라 다행이긴 한데…….’
웹툰 법인 설립과 편집자 생활 그리고 두 작품 집필을 병행하는 작가 생활까지 겸하다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이른 더위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4월 말이다.
작가 생활과 편집자 생활을 병행하는 건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지만, LGA컴퍼니는 약간의 난항을 겪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파트너인 이지연이.
“집에 들어가긴 하는 거죠?”
“제가 좀 게으르기도 하고 출퇴근 시간도 아낄 수 있으니 편해서요. 왜요? 전기세 아까워서 그래요?”
“아뇨, 그건 아닌데……. 일단 드세요. 배고프겠어요.”
오피스텔 특성상 방음이 그리 잘 되지 않는 편인데, 4월에 들어서는 이지연이 출퇴근하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내 방과 사무실로 쓰는 오피스텔 모두 복층 구조. 일을 하다 피곤할 때 쉴 수 있게 침대를 설치해 뒀는데, 빌트인 세탁기와 건조기가 며칠에 한 번씩 윙윙대는 걸 보니 이지연은 거의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것 같다.
‘음……. 이러면 안 좋은데.’
아프니까 청춘이다!
페이는 열정으로!
같은 좋좋소 모토를 지향하는 대표들께선 직원이 야근을 한다면 그어허허 너털웃음을 내뱉으며 좋아하겠으나, 나는 이런 상황이 조금도 달갑지 않다.
이지연은 내가 채용한 첫 직원이자 사업 파트너다. 회사의 성장 속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회사와 직원이 공생해야 한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이전 삶의 시작은 밑바닥부터였으니까.
거기다 내가 알고 있는 이지연은 그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미라클 모닝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출근하던 사람이 게으르다는 건 터무니 없는 소리다.
‘그만큼 힘들다는 소린데……. 이지연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이었어.’
이지연은 회사 운영부터 그림 작업까지 자신이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의욕과 달리 그녀가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인다.
현재 이지연이 처리 가능한 업무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 실수다.
경영자들이 하는 단순한 실수 중 하나는 너무 숲만 보려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숲의 규모를 빠르게 늘려나갈 생각만 하기에 어떤 나무가 썩어나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나무 몇 그루가 죽어봤자 다른 나무를 대신 심으면 된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 있으니까.’
하지만 숲의 겉모습을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민다 해도, 썩은 나뭇가지 하나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숲 전체가 잿더미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LGA컴퍼니는 절대 그래선 안 돼.’
직원이 어려움을 말하기 전에 미리 해결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 나는 그게 모든 경영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라 생각하니까.
“음……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저희 직원을 더 뽑는 게 어떨까 해서요.”
“직원이요?”
초밥을 오물거리던 이지연이 놀란 토끼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고개를 슬쩍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지연 씨가 잘해 주고 계시지만, 너무 무리하시는 거 같아서요. 그림 작업도 하면서 회사 운영을 병행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미리 알아보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아직 회사가 자리 잡히기 전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인 건데…….”
젓가락을 든 채로 허공을 맴도는 이지연의 손부채질에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어쩔 수 없다고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되죠.”
회사라는 정글에 발을 들인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수많은 이해를 요구받는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
너만 힘든 게 아니다.
지금 모두가 고생하는 거 모르냐 등.
나는 정말로 싫다. 그런 개소리들이.
직원들이 그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건 전적으로 회사의 잘못이자 경영자의 책임이니까.
“아직은 회사 규모가 작아서 경영만 담당하는 직원을 뽑기에는 시기상조로 보이지만, 대신 어시를 4명 정도 추가 채용하는 게 어때요? 그중 한 명은 회사 규모가 커지기 전까진 전반적인 경리를 겸하는 조건으로요.”
“음……. 4명이면 확실히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기겠네요. 운영 관련해서 정우 씨가 결정을 내리고 제가 업무 지시하는 식이라면 저도 그림 작업에만 더 집중할 수 있을 테고요.”
따로 알아본 바로 이지연이 그리는 극화 스타일 웹툰엔 어시가 최소 두셋은 더 붙어야 작업이 수월하다고 한다.
그렇기에 넉넉히 어시 4명을 추가해 5인 체재로 업무를 진행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반색하리란 예상과 달리 이지연은 무언가 고민되는 모양이다.
“4명이면 좋긴 한데…….우선 경리 겸하는 직원만 우선 뽑아도 될까요?”
“한 명으로 괜찮겠어요?”
“저도 경력으로만 따지면 웹툰을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여러 명을 한 번에 교육하고 다루기보단 한 명씩 늘려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일리 있는 말이다.
이지연의 그림 실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사람을 다룬다는 건 별개의 일이니까. 게다가 처음부터 여러 명을 들인다면 직원들을 관리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물론 서류와 면접에서 걸릴 테니 그런 일은 없을 테지만, 이지연의 웹툰 경력이 짧은 것을 보고 그녀를 무시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 어시들이 생길 수도 있다. 아무래도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뒷말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좋아요 그럼 TO는 한 명으로 공고 올리고, 대신 면접에서 괜찮은 분들은 후보로 추려놓도록 하죠. 처음 뽑히는 어시분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조금씩 늘리는 식으로요.”
LGA컴퍼니는 아직 출판계에 명함도 들이밀 수 없는 구멍가게 수준. 하지만 이지연 같은 인재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결국엔 이들이 웹소설 그리고 더 나아가선 출판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출판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내가 할 일은 앞으로 심을 묘목들이 흔들리지 않고 곧게 자랄 수 있는 기둥 역할을 하는 거다. 그리고 어린나무가 곧게 잘 자랄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지연 씨.”
“네?”
“그럼 어시들 연봉은 어떻게 할까요?”
나무가 자라나는 가장 쉬운 방법.
그건 돈이지.
돈을 잘 주면 나무는 잘 자란다.
* * *
5월 내내 진행된 어시 면접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원래는 한 명만 뽑으려 했는데, 면접을 담당한 이지연이 정말 괜찮은 사람이 둘 있다고 해서 둘을 모두 채용하기로 했다.
바로 다음 주인 6월 2일부터 출근하기로 했으니 6월부턴 이지연도 덜 바빠지겠지.
일반 어시는 기본급 300에 경리 업무를 겸하는 어시는 350. 분기별 인센티브는 별도.
어시들 월급이 BS북 팀장급 월급보다 높다는 게 짧은 현타를 줬지만, 지금 내게 지속적인 현타를 주는 건 고라니처럼 고성을 질러대는 판무 1팀 팀장 한우석 때문이다.
“장난해? 작가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잠수를 타? 런칭이 코앞인데 제정신이야? 제정신이냐고 새끼야!?”
“……죄, 죄송합니다 팀장님.”
판무 1팀 팀장 한우석은 우리 2팀에게 월 매출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지랄병이 도진 상황이다. 그런데 하필 오늘은 대표와 이사급이 모두 미팅을 나간 무두절. 호랑이 없는 굴엔 여우가 왕이기에 눈이 돌아 가버린 한우석 팀장의 폭주를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죄송? 죄송하면 원고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입 벌리면 들어와? 들어 오냐고 이 머저리 새끼야!”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이! 죄송 말고 원고를 받아 오라고 원고를! 야, 최진혁이. 파트장이면 파트장답게 일을 해야 할 거 아냐? 원고를 안 주면 집에라도 찾아가야 할 거 아니냐고!”
“저, 그게…….”
“하……. 이런 월급이나 축내는 기생충 놈이 파트장이라니 회사 꼴 자알 돌아간다. 잘 돌아가! 어?”
김동현 팀장이라도 있었으면 저런 폐급 발악을 하진 않았을 터다. 하지만 김 팀장 역시 작가와 통화를 하러 자리를 비웠고, 자리에 남은 팀장이라곤 로맨스팀과 운영팀 팀장들뿐.
물론 같은 팀장이라도 경력과 실적에 따라 회사 내 영향력이 다르다. 그렇기에 본부장급의 임원들을 제외하곤 가장 경력도 길고 실적도 높은 1팀 한우석 팀장의 발작을 아무도 말리지 못하고 있다.
“그 작가 새끼 어디 살아?”
“피자헛둘 작가님 동대문 쪽에 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뭐?”
“……예?”
“알고 있는데 왜 여기 서 있냐고? 얼른 가야 할 거 아니야 이 새끼야? 가서 무릎을 꿇든 똥꼬쇼를 하든 원고 받아 오라고!”
“…….”
한우석 팀장에게 모욕적으로 깨지고 있는 건 판무 1팀 파트장 최진혁이다. 팀이 달라 평소에 말을 섞을 일은 별로 없었지만, 우리 2팀 공식 토렌트인 조팟이 말하기로 판무 1팀에서 가장 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게 바로 최진혁 파트장이라고 했다.
“정우 씨. 우리 회사 장점이 뭔지 알아?”
“월급 제때 나오는 거랑 간식 많은 거 그리고 연차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거 정도 될까요?”
“그렇지, 이제 좀 아네. 그런데 하나 더 있어. 궁금하지?”
“예…… 뭐.”
“버티면 돼. 능력이고 실적이고 상관없이 꾸역꾸역 다니면 진급하거든. 김동현 팀장님 나가시면 내가 팀장 되는 거야.”
“네…… 축하드려요.”
조팟의 말처럼 BS북은 웹소 매니저들 사이에서 맷돌처럼 직원을 갈아 넣는 게 명인 반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퇴사하지 않고 다니기만 한다면 알아서 진급이 된다고 했고. 조팟이 그 예시로 말한 게 바로 최진혁 파트장이다.
‘조팟 놈도 파트장인 걸 보면 말 다 했지. 그래도 이상하네……. 저 정도면 움직일법한데?’
평소에도 최진혁 파트장이 1팀 팀장에게 깨지는 일이 종종 있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최진혁 파트장은 사고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었다.
그런데 지금 최진혁 파트장은 한우석 팀장의 계속되는 고성과 갈굼에도 고개만 푹 숙이고 있을 뿐,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반응을 하든 안 하든, 한우석 팀장은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위인이 아니었다.
“야. 이제 귀도 먹었어? 뭘 멀뚱히 서 있어? 안 움직여?”
“저…… 피자헛둘 작가님께서 연락을 끊으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있는데…….”
“하아……. 야, 내가 지금 골든벨 나왔냐? 지금이 퀴즈 타임이냐고 새끼야아! 말 똑바로 안 해?”
하필 내 자리는 1팀의 모습이 훤히 보이는 자리다. 게다가 나는 선키도, 앉은키도 큰 편이기에 모니터 너머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시선을 피할 방법도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하지만 어떤 경우더라도 ‘적당히’라는 게 있는 법. 마냥 즐기기엔 도가 지나치는 폭언이었다.
김동현 팀장에게라도 연락해 말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그때, 최진혁 파트장이 덜덜 떨리는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피자헛둘 작가님께서……. 다, 담당자 교체 요청하셨습니다…….”
지옥문의 틈이 벌어졌다.
전보다 더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