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대어를 낚으려면 미끼도 큰놈이어야 한다.
내 차가 사륜 구동이라는 게 다행이었다.
이륜 구동이었다면 도망치기 어려웠을 속도로 아버지가 뒤쫓아왔으니까.
성난 황소 같은 아버지를 막아서던 삼촌들의 희생에 짧은 애도를 표하고, 이지연 주임에게 아버지와 삼촌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한참을 설명했다.
“아하하하, 진짜예요? 유기농 아니면 안 먹이는 거?”
“말도 마세요. 그래서인지 저희 보육원 애들 중에 운동선수도 엄청 많아요. 다들 하도 좋은 거만 먹어서.”
“다들 좋은 분들 같네요.”
“…….”
좋긴 하지. 매사에 지나치게 과한 게 문제지만.
이전 생에도 내 가족 얘기를 들으며 배꼽 잡고 웃던 이지연 주임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간도 늦었는데, 그럼 일 얘기는 식사하면서 할까요?”
“네, 좋아요.”
자연스럽게 그녀의 집 근처 곱창집으로 이동하자 이지연 주임은 다시 헤실거렸다.
“참 신기해요.”
“뭐가요?”
“여기 곱창집 가려는 거에요?”
“네, 다른 곳 가실래요?”
“아뇨. 들어가요.”
앞장선 이지연 주임을 뒤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내가 순대 곱창 2인분과 환타를 주문하자 그녀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다 신기하네요, 마치 제 취향을 다 꿰고 있는 것 같아요.”
“취향이 비슷한 사람도 간혹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긴 하죠.”
당연한 소릴 한다.
여길 주임님이랑 얼마나 자주 왔었는데.
과거 이지연 주임과 순대 곱창에 환타를 기울였던 때가 떠오르니 기분 좋은 웃음이 지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플랜 B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니까.
“주임님, 아까 제가 드렸던 말 기억하세요?”
“함께 일 해보자는 말이요?”
“맞습니다. 혹시 지난번에 제가 봤던 선화 작업물 말고 채색까지 된 작업물은 없을까요?”
“음……. 잠시만요.”
웹툰은 형태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색감을 얼마나 조화롭게 그리고 촌스럽게 쓰지 않느냐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내가 그릴 줄은 몰라도 보는 눈은 있지.’
핸드폰을 뒤적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긴장이 올라온다. 지난번 서점에서 봤던 이지연 주임의 선화는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녀의 채색 실력이 형편없다면, 아무리 전생에 인연이 있었더라도 함께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할 테다.
“아, 여기 있네요. 프롤로그와 1화 분량이에요. 교육 과정이 이제 막 끝나서 개인 작업을 할 시간이 좀 부족했거든요…….”
이지연 주임은 잠시 머뭇거리며 핸드폰을 건넸고, 나는 그걸 받아 들고 쭉쭉 슬라이드를 내리던 도중 말문이 막혀왔다.
“……저, 아직 많이 부족하죠? 아직 기획 중인 스토리는 없어서 요즘 인기 있다는 웹소설을 주제로 작업해 봤거든요. 정우 씨가 웹소설 원작이 앞으로는 웹툰화가 점점 더 많이 될 거라고 한 게 생각이 나서요…….”
“하……. 이거 참…….”
이지연이 그린 웹툰을 보면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갑자기 당황한 얼굴로 핸드폰을 다시 채갔다.
“죄, 죄송해요. 아무래도 많이 부족하죠? 핑계 같지만 원작자님 허락도 그리고 소통도 없이 그린 거여서 형편없을 거예요…….”
“아닌데요?”
“네, 그게 무슨……?”
“너무 잘 그리셔서 놀란 거였어요.”
내 말에 이지연 주임은 얼굴을 붉히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문해력이 좋지 않아서 사실 제대로 하긴 한 건지 긴가민가했거든요.”
“이지연 주임님, 아니 이지연 씨.”
“네…… 네에?”
“지금 보여주신 퀄리티처럼 말풍선이랑 대사까지 다 넣어서 작업 진행하시면 한 화 완성하시는 데 얼마나 걸리세요?”
“장비랑 프로그램이 없어서 아마 어려울 것—”
“아뇨, 필요한 장비랑 프로그램은 모두 다 구비돼 있다는 가정 하에요.”
결연한 내 표정에서 진심이 보였는지, 고민하는 이지연의 얼굴도 한층 진중해졌다.
“음…….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5~6일 정도요?”
“그럼 한 주에 최소 한 편은 완성 가능하신 건가요?”
“최소 1편은 가능할 것 같아요. 빠르게 하면 1.5편까진 완성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건 아직 해보지 않아서 확답할 수가 없겠네요.”
“…….”
배시시 웃는 그녀의 모습에 허세나 거짓 따윈 없었다.
‘놀라운데? 인체 형태나 색감, 연출까지……. 이 퀄리티로 주 1회씩 꾸준히 뽑을 수 있다면, 이건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잖아?’
주 7회 연재가 기본인 웹소설과 달리 웹툰은 주 1회가 기본이다. 웹툰으로 주 1회를 무난하게 뽑을 수 있다는 말은 웹소설로 주 7회를 무난하게 쓸 수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고.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이지연의 그림 실력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2014년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4,200억 원. 지금부터 10년 후에는 1조를 넘어선다. 그것도 해외를 제외한 국내에서만.
헤실거리는 얼굴로 곱창을 오물거리는 이지연 같은 사람은 앞으로 5년만 지나도 억대 연봉, 아니 월 억씩 버는 스타 작가가 될 게 분명하다.
‘사실상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지.’
나는 노력보다 재능이 더 우선시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타고난 노력보다 꾸준한 노력이 빛을 보는 작가들을 여럿 봐왔기 때문이니까. 최소 웹소설에서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웹툰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이런 ‘압도적’인 재능을 보이는 이지연의 모습을 보니 미술 쪽에는 부인할 수 없는 천재가 존재한다는 걸 납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대단한데요? 이 웹툰 이대로 진행해 보죠.”
“네? 하지만 원작자 허락도 받아야 하고, 또 장비도—”
“장비는 제가 사면 되는 거고. 원작자 허락도 필요 없어요.”
“……?”
들뜬 나머지 너무 함축해서 말했나?
“지연 씨가 웹툰 그리는 거 원작자가 허락했다고요.”
“그게 무슨……?”
“지연 씨가 그린 ‘인턴사원 회장님’을 쓴 글 작가 코즈일. 그게 바로 접니다.”
이지연은 정말 놀랐는지 컵이 넘치는 것도 모른 채 계속 환타를 부었다. 나는 급히 병을 뺏어 들고 물수건으로 테이블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웹툰 같이 해보겠다는 말, 그건 제가 다니는 출판사가 아니라 이지연 씨와 저 우리 둘이서 해보자는 뜻이었어요. 월급은 기본급 월 4백부터요. 어때요? 해볼 생각 있어요?”
“오빠라고 불러도 되나요?”
“아뇨.”
“아니면 대표님?”
“…….”
나보다 다섯 살 연상인 사람이 오빠라고 부르니 뭔가…… 묘한데?
“그냥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네, 그럴게요.”
한없이 초롱초롱해진 이지연의 눈빛.
자본주의 눈빛이다.
돈이란 이렇게 무섭다. 물론 나와 함께 하는 일이 결국 자신이 그토록 바랬던 웹툰을 그리는 일이기도 하니까 이렇게 좋아하는 거겠지만.
안정적으로 돈도 벌고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그녀에겐 이보다 더 완벽한 제안이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지연이 그리는 웹툰의 장점은 디테일도 디테일이었지만 촌스럽지 않은 배색과 깔끔하고 임팩트 있는 연출.
이런 인재를 놓칠 순 없다.
‘이 정도면 당장 각색가가 따로 없어도 되겠어.’
장기적으로 본다면 꿈돌 작가와 계약한 것보다 더 큰 기연을 만난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귀중한 인재에겐 그에 걸맞는 보상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고심을 거듭한 말을 건넸다. 나와 그녀 모두에게 득이 될 만한 보상을.
“그리고 대표는 제가 아니에요.”
“네? 저희 둘이서 하는 거 아니었나요? 다른 사람이 또 누가 있어요?”
“아뇨, 지연 씨가 하세요, 대표.”
“예에?”
대어를 낚으려면 미끼도 큰놈이어야 한다.
* * *
내가 투자금을 내는 대신 법인 설립 마무리와 자잘자잘한 행정 처리는 이지연이 도맡아 주기로 했다.
웹툰 법인 설립을 진행하면서 시간은 스쳐가는 바람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덧 3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 되었다.
즉, 출근 날이란 소리다.
“아니…… 이게 뭐야? 정우 매니저, 이거 봤어?”
“무슨 일이시죠?”
“어허, 이 사람 안 되겠네. 얼른 메일 봐봐.”
출근하자마자 코즈일 작가 교정, 정확히는 내 글 퇴고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김동현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딸칵— 딸칵—
“어…… 이건?”
역시 이지연.
아직 회사원 짬밥이 남아있는지 일처리가 무척 빠르고 정확하다.
‘하긴, 우리가 세운 웹툰 법인 LGA컴퍼니도 회사니까 회사원이기도 하지.’
나는 그동안 이지연에게 프롤로그를 포함해 3화까지 내 글을 기반으로 한 웹툰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완성이 되면 웹툰 제작 제안을 BS북 메일로 보내라고 했는데, 그게 벌써 도착한 상황이다.
‘대표 메일로 보내라고 했는데, 잘했네.’
회사에 메일이 팀 메일이 아닌 대표 메일로 도착한다면 사원부터 대표까지 모두가 그 메일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회사에서 내 주가를 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노림수였다.
“와……. 이거 연재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웹툰 제안?”
“대박이네 진짜…….”
‘새끼들. 입 벌어진 것 봐라.’
우리 2팀은 말할 것도 없고, 판무 1팀과 운영팀 그리고 콧대 높기로 유명한 로맨스팀에서도 수군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회사 규모가 크지 않으니 귀만 쫑긋 세워도 무슨 말들을 하는지 어렵지 않게 들을 수가 있었다.
연재를 시작한 지 몇 주 지나지도 않은 코즈일 작가의 신작 ‘인턴사원 회장님’의 웹툰 제작 제안, 그것도 3화까지 완성해 전달한 정성에 판무 1팀 팀장의 얼굴은 뱀심으로 일그러졌고 우리 2팀 김동현 팀장의 입꼬리는 광대까지 치솟았다.
“아니, 이거이거 우리 판무 2팀이, 어? 아~무리 코즈일 작가랑 친하다고 해도 어떻게 아직 계약도 안 하고 먼저 그림을 그려 주셔서 보냈을까? 어우야아, 말풍선이랑 대사까지 그냥 다 넣어서 보내주셨네? 아주 완성 원고야? 으허허허헛!”
“김 팀장님. 말 길어질 것 같으면 회의실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다른 팀 방해 안 되게.”
판무 1팀 한우석 팀장의 가시 돋친 말에도 김동현 팀장은 사람 좋은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아이고야,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거 그냥, 가마안히 앉아 있어도 자꾸 일이 들어오네요 일이. 어유 참, 바빠 죽겠는데, 으하하핫! 우리 그럼 주간 회의 일찍 시작해 보자고? 다들 회의실로 들어가 있어. 주간 회의록 출력해서 들어갈 테니까.”
“네, 팀장님.”
“넵.”
잠시 후.
여전히 싱글벙글한 얼굴의 김동현 팀장까지 판무 2팀 모두가 대회의실로 들어왔고 빠르게 주간 회의가 진행됐다.
“좋아, 그럼 정우 매니저. 아까 그 웹툰 제안 메일 말이야.”
이번 주도 별다른 이슈 없는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의 관련 내용은 후루룩 지나갔고.
김동현 팀장의 시선이 바로 나를 향해 꽂혔다.
“네, LGA컴퍼니에서 온 거 말이시죠?”
“응 거기. 회사명도 좀 있어 보이는데?”
“……그렇네요.”
LGA컴퍼니.
별생각 없이 지은 사명이었다.
웹툰 법인 역시 내 냄새는 최대한 빼야 했기 때문에 바지 사장인 이지연의 성 ‘Lee를 김 씨네 김밥 같은 느낌으로 지은 것이었는데, 취향에 맞는다니 딱히 할 말은 없다.
“근데 규모가 좀 있는 회사인가? 그림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던데? 정우 매니저, 코즈일 작가한테 뭐 들은 거 없어?”
규모는 앞으로 커질 거긴 한데 지금은 단둘이다. 그중 하나가 나고.
“자세히 들은 건 없고요. 코즈일 작가가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분이 그림 작가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분이 대표이기도 하고요.”
“이야, 거기 대표가 직접 그리는 거야? 대단하긴 하네. 우선 정우 씨, 담당자로선 어떻게 생각해? 이런 제안이 들어와서 좋긴 한데……. 솔직히 판타지 쪽 제안은 우리 회사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거든. 로맨스팀은 몇 번 제안 받고 진행한 적이 있었지만.”
뭘 묻냐, 당연히 좋지.
하지만 최대한 감정은 빼고 말해야 한다.
설득력을 높이는 덴 차분한 어조가 제일이니까.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아직 판무 팀에선 자체 IP로 웹툰화된 작품이 없지만, 웹툰 시장이 나날이 커지는 만큼 독자들은 점점 더 탄탄한 스토리 기반의 웹툰을 선호할 겁니다. 그리고 그에 가장 걸맞은 콘텐츠가 바로 웹소설이죠.”
“흠……. 그렇긴 하지. 데져트 스톰이나 판타지 게이머 같은 소설도 웹툰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긴 하지.”
예스K 작가의 데져트 스톰이나 정공법 작가의 판타지 게이머의 경우엔 LGA컴퍼니 같은 웹툰 제작사와 계약을 한 게 아니라 직접 그림 작가를 구해 계약을 하게 되었다는 게 다른 점이지만, 그걸 딱히 꺼낼 필요는 없지.
“그래도 좀 고민되긴 하네. 웹툰은 제작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고, 사실 웹툰 수익이 우리에겐 크지 않거든 보통 웹툰 작가가 9, 우리가 1이야. 그리고 남은 1을 코즈일 작가와 우리가 계약 했던 정산비로 나누는 거여서 웹툰 자체로는 수익이 많이 안 나오거든.”
김동현 팀장은 고민이 된다는 듯 검지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대신 웹툰이 연재되는 속도가 웹소설보다 현저히 느리니까 다음 화 내용이 뭔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웹소설을 구매해서 보니까 우리 매출이 뛰는 구조겠지. 로맨스 쪽 경우를 보니 그런 식이더라고.”
“그렇긴 하죠. 하지만 코즈일 작가 작품이 상반기 최고 이슈작인데, 웹툰화 진행 이야기도 퍼지면 더 큰 이슈몰이가 될 것 같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란 말처럼요.”
“음……. 맞는 말이긴 해.”
웹툰 정산비는 LGA컴퍼니가 9 그리고 BS북이 1. 하지만 내겐 딱히 상관없는 일이지.
양쪽 모두 내 주머니에 들어올 돈이니까.
“코즈일 작가한테 확인해보고 관심 있다고 하면 LGA 쪽이랑 바로 미팅 진행해 보자고.”
“네, 지금 확인해보겠습니다.”
작가 본인 즉시 확인 완료다.
그리고 이제 슬슬 판을 키워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