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0화 (10/201)

#10화 ― 집은 역시 위험하다.

“고민하고 말씀드릴게요…….”

“아니 뭘 그렇게 빼? 지연 씨가 워낙 잘하니까 같이 술도 한잔하면서 자연스럽게 소개시켜 주겠다는 건데. 알잖아요? 이 업계 좁은 거.”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그만 놔 주세요.”

양아치 같은 놈에게 손목이 잡힌 여자는 이지연 주임이 분명하다.

아직 3월 중순이라 오늘 평균 기온은 3.4 도.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인데 이지연 주임의 손목을 잡은 양아치 놈은 덕지덕지 그린 지저분한 문신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덜덜 떨면서도 팔뚝을 훤히 드러내 놓고 있다.

‘여기가 주임님 학원 근처였나? 그보다 대체, 저거 뭐 하는 놈이야?’

빵빵—!

짧고 굵게 두 번 울린 클랙슨 소리에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차를 향했고, 나는 양아치 녀석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뭐야? 구경났어?”

눈을 희번덕이는 양아치 놈의 팔을 가까이서 보니 더 가관이다. 그의 어릴 적 꿈이 파브르였던 건지 놈의 팔엔 거미, 풍뎅이, 나방 같은 벌레가 잔뜩 이었고 전갈과 뱀같이 징그러운 것들이 벌레들 사이로 어지럽게 뒤엉켜있었다.

그래서 지체 없이 놈의 팔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더러운 벌레는 잡아야 하니까.

“아악! 뭐, 뭐야 씨발?”

“어라? 벌렌 줄 알았는데……그림이네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이지연 주임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녀도 날 알아본 모양이다.

“누나, 오래 기다렸어?”

“네? …….어, 응.”

이지연 주임을 안전하게 피신시키기 위해 그녀의 손을 끌어내 뒤로 옮겼는데, 양아치 놈이 나를 바라보며 입가를 씰룩였다.

“누나? 야, 넌 뭐냐? 뭔데 껴들어?”

양아치 놈의 키는 나와 비슷한 180 중반.

그는 관상에 맞게 목을 좌우로 꺾으며 팔을 더 걷어 올리는데, 팔을 걷어 올릴수록 지저분한 먹물이 가득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따윈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우와. 닭살 돋았는데. 안 추워요?”

“하…… 이 새끼. 지금 뭐라 씨부리냐?”

입이라도 돌아가면 가뜩이나 추한 몰골이 더 추해질까봐 건넨 염려였지만, 양아치 놈은 바이브레이터처럼 부들거렸다.

“……제, 제 남자친구예요! 그만 하세요!”

“뭐?”

“네?”

잠시 놀랐지만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이지연 주임의 아담한 어깨를 팔로 슬쩍 감쌌다.

“못 들었어? 남자친구라고. 근데 넌 뭐야?”

해맑게 건넨 말에 양아치 놈의 얼굴이 다채롭게 일그러졌다.

“하…… 씨발.”

양아치 놈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눈을 부라렸다.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침을 뱉으면 경범죄 처벌 대상이란 걸 모르나 보다.

관상은 역시 사이언스다.

“애새끼가. 말하는 거 보니 지연 씨보다 어린 거 같은데, 어른한텐 예의를 지키지?”

“어른? 푸흫.”

“지금 웃어?”

장례식장에서도 터질 법한 개소린데 어떻게 안 웃어?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멘트에 입가를 씰룩이니 양아치의 얼굴이 더욱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웃기냐고 씨발!”

“응, 니 얼굴.”

양아치 놈은 분을 이기지 못했는지 일그러진 얼굴로 내게 주먹을 날렸다.

“이 개 새……아아앜? 손! 손!”

내게 휘두른 느려 터진 주먹을 그냥 덥석 잡아버렸다. 손에 힘을 살짝 주니 양아치 놈은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바닥에 엎어져 파닥대기 시작했고 주위에 길을 가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키득댔다.

“가자.”

“……으응.”

이지연 주임의 어깨를 감싸고 그대로 차 쪽으로 이동하는데,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양아치 놈이 뒤에서 악을 질렀다.

“씨발, 지연 씨! 돈 많은 남자 옆에 있다고 이 업계 들어올 수 있을 줄 알아? 지금 이대로 가면 내가 아는 인맥 총동원해서 웹툰 바닥에 앉아있지도 못하게 해줄 거야! 완전히 매장시켜버릴 거라고! 알아?”

협박 섞인 양아치 놈의 으름장에 이지연 주임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주임님, 차 안에 들어가 계세요. 금방 갈게요.”

“……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지연 주임에게 차 키를 건네고 나는 다시 양아치 놈에게 걸어갔다.

“왜? 크크, 여자친구 앞길 막힌다니까 쫄리냐? 씨발, 이제 늦었어 병신아. 니가 웹툰 회사라도 있는 거 아니면 도게자나 박고 빌어. 그럼 정성을 봐서 용서해 줄지도, 크큭.”

어찌 된 게 부모 없이 자란 나보다 입이 저렴하다. 대체 뭘 보고 자랐길래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

“야.”

낮게 내리깐 말에 놈의 동공이 흔들렸다.

“내가 웹툰 회사 있으면. 그러면 도게자 니가 박냐?”

“어디서 개소릴……윽!”

“닥치고 들어. 네가 남보다 웹툰 좀 더 일찍 시작했다고 뭐라도 된 줄 착각하지 말라고. 먼저 시작했으면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 도울 생각을 해야지. 뭐? 매장?”

“크윽…….”

패기롭게 이지연 주임을 협박하던 좀 전과 달리 놈은 내 앞에서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내가 놈의 쇄골 뼈를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네가 아는 인맥? 다 데려와 봐. 이지연은 네가 아는 그 누구보다 더 대단한 작가가 될 거니까.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그러니 밑바닥에서 눈 닦고 지연이가 올라가는 거 보기만 하라고. 나대지 말고.”

“끄으윽…….”

내 아귀힘이 고통스러웠는지 놈은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쇄골 뼈를 으스러뜨리고 싶었지만 어느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처먹었겠지.

“잊지 마라. 다음에 또 지연이한테 개수작 부렸다간 입으로 그림 그리게 해 줄 테니까.”

내가 놈의 손을 지긋이 응시하자 양아치 놈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사시나무 떨듯 바들댔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버지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놈이다. 그래야 참교육을 받을 텐데.

“괜찮으세요? 곤란하신 것 같아서요.”

“하아…… 고마워요.”

차 안으로 돌아와 이지연 주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괜찮다는 말과 달리 무척 파리한 안색을 보니, 홀로 진정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잠시 혼자 있을 수 있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차 안에 두고 나는 빵을 한 아름 사왔다. 이지연 주임이 걱정되긴 하지만 할 일은 해야 했으니까.

“저…… 이렇게 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감사—”

“이거 동생들 주려고 산 건데…….”

“…….”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지만 너무 무안해 하니 오히려 내가 더 민망한 기분이다.

“장난이에요. 주임님 거도 있어요.”

“아, 감사해요.”

이지연 주임은 빵순이.

애들 거 산다고 내가 주임님 거를 빼먹을 리가 없지.

이지연 주임은 특히 우유크림 빵을 딸기 우유랑 같이 먹는 걸 좋아하는데, 대체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빵을 조금씩 오물거리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좀 진정된 것 같다.

‘예전엔 그렇게 어른 같았는데…… 그냥 애네 애야.’

빵을 오물거리는 그녀에게 딸기 우유를 건네자 한입씩 번갈아 가며 야무지게 먹는다.

속으로 피식 웃던 와중 문득 양아치 놈이 이지연 주임을 웹툰계에서 매장시켜 버리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저…… 죄송해요. 생각해보니 주임님한테 피해가 갔을지도 모르겠네요. 주임님한테 너무 무례하게 굴길래 나선 거였는데……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아, 아니에요. 곤란하던 참이었어요. 오히려 도와주셔서 감사하죠.”

“…….”

고맙다는 말과 달리 그녀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일단 전후 상황을 좀 더 들어봐야겠다.

“주임님은 어느 쪽 사세요? 전 노원 쪽 가는데 같은 방향이면 데려다 드릴게요.”

“아, 정말요? 저도 노원 쪽인데?”

“잘됐네요. 그럼 출발할게요.”

그녀 집과 내가 살던 집은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 그게 나와 이지연 주임이 더 친해진 이유이기도 하고.

“근데…… 아까 그 사람은 누구에요? 웹툰 관련된 사람 갔긴 하던데.”

한참을 노래만 들으며 이동하는데 영 분위기가 뻘쭘해 슬쩍 입을 열었다.

“그게…… 웹툰 학원 강사에요.”

“강사요? 강사라는 사람이 찝쩍거린 거예요?”

“…….”

이지연 주임은 예쁘장한 외모 때문에 찝쩍거리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원래 삶에서는 내가 퇴사한 후, 벽만 보고 글만 쓰겠다고 동굴로 기어 들어가면서 연락이 완전히 끊겼었는데, 이런 일에 종종 시달렸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지 않다.

“네…… 그분이 아는 웹툰 작가 문하생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준다면서 그 작가님과 술자리에서 보자고 막무가내로 그러셔서요…….”

“문하생이요?”

작가와의 첫 미팅을 술집에서 하자라…….

밤꽃 향이 진동하는 놈들의 더러운 속내에 구역질이 난다.

“네, 학원에서 웹툰 그리는 기술을 다 배운다고 해도 업계가 워낙 좁고 다른 웹툰 작가들과의 관계가 향후 생계까지 좌우한다면서…… 하지만 그 웹툰 작가 소문이 안 좋아서 가기 싫었거든요…….”

“소문이요?”

“권현조라는 작간데…….”

“아!”

“아세요?”

“네, 조금요.”

웹툰계는 잘 몰라도 권현조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미성년자 문하생들을 지속적으로 건들고 태국으로 빤쓰런했다가 공개수배까지 된 놈이었으니까.

‘태국에서도 사기 치다 총 맞아 뒤졌다고 했지 아마?’

대략 예상하긴 했지만, 웹툰 쪽도 상상 이상으로 양아치 같은 놈들이 많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문하생 생활 않고 혼자 할 수는 없나요?”

“스토리 구상이나 글, 그림 콘티는 어렵지 않죠. 하지만 스케치 작업을 할 때 3D 프로그램을 써요. 그래야 배경 그리는 속도를 줄일 수가 있거든요. 근데 필요한 장비나 프로그램 등은 다 돈 주고 사야 하는 거여서요…… 그래서 다들 처음엔 문하생 생활하면서 개인 작업도 조금씩 한다고 해요.”

결국 이 세상은 돈이 없다면 재능의 꽃을 피우기 쉽지가 않다.

“꿈을 찾겠다고 퇴사하긴 했는데, 막상 퇴사하니 벌어둔 돈 안에서 버텨야 하는 거라서…… 솔직히 막막하네요, 하하.”

“…….”

“정우 씨 말 듣고 퇴사한 건데, 책임져요.”

장난스러운 말을 하는 걸 보니 이지연 주임은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해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지. 자기 마음만 편해지면.

“그럴게요.”

“네? 뭐가요?”

“책임진다구요. 웹툰 같이 해봐요.”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출판계를 바로 잡을 플랜 B.

그걸 빠르게 해결할 방법이 떠올랐다.

“장난이에요. 무서워서 장난도 못 치겠네.”

입술을 샐쭉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저는 장난 아닌데요? 아까 그 양아치 말 들어보니 저 때문에 문하생 생활 못 하게 된 거 아니에요? 그럼 책임져야죠.”

확고하게 내뱉는 내 말이 점점 진심으로 다가왔는지 이지연 주임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예? 아……아니에요. 문하생이야 다른 곳 더 찾아보면 되는 거고…….”

“제가 이지연 주임님이랑 딱히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기부하겠다는 말도 아니에요. 제가 웹소설 출판사 다닌다고 그때 말씀드렸죠?”

“……네.”

“완성된 웹소설이 가장 빠르게 널리 알려지는 방법이 바로 웹툰이에요. 물론 주임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좀 더 정확히 확인해보긴 해야겠지만, 주임님도 문화생 생활하면서 고생하기보다 바로 웹툰을 그리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저랑 같이하는 거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는 게 어때요?”

“…….”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이지연 주임은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요 정우 씨.”

“말씀하세요.”

“같이하자는 게 정우 씨 회사 웹툰 팀으로 들어오라는 말인가요?”

“아뇨.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달라요.”

“그게 무슨…… 정우 씨 입사한 지 두 달도 안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그런 제안할 위치가 되나요?”

토끼 눈을 하는 그녀의 물음에 피식 웃었다.

“당연하죠, 제가 제안드리는 건 다른 법인이니까요.”

생각해보니 플랜 B를 진행한다고 해도 처음부터 웹소설 법인을 만들 필요는 없다.

웹툰을 메인으로 한 법인을 먼저 만들어 자리를 잡고 웹소설 레이블을 따로 만들면 될 일이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이해가 잘 안 가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같이 이야기해 보죠. 그럼 시간 좀 내줄 수 있어요? 웹툰 법인 관련한 이야기 좀 더 나누고 싶어서요.”

이지연 주임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무래도 걱정될 테지.

이지연 주임이 내 이력서를 봤다면 내가 이제 고작 20살인 걸 알 테다.

게다가 몇 번 보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입사한 지 2달도 안 된 애송이가 같이 일하자는 모호한 말을 하니까.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하는 말은 모두 진심이다. 비록 빠르게 내린 결정이지만, 회귀를 한 시점부터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나는 늘 고민을 해왔으니까.

“그럼 이야기 나누기 전에 동생들 잠시 보고 갈 수 있을까요? 빵이랑 선물 좀 가져다줄 게 있어서요.”

“동생들이……잘 먹나 봐요?”

뒷좌석에 가득 찬 빵들과 선물을 흘깃거리는 걸 보니 궁금한 모양이다.

“네, 동생이 많기도 하고요.”

노원구 끝자락인 수락산역.

그 산자락 바로 아래엔 아이 쉰다섯, 종사자 서른셋이 함께 사는 보육원이 있다.

이름하여 ‘인의 보육원’.

“동생분이 보육원에서 일하세요?”

“아뇨, 제가 여기서 살았거든요. 금방 다녀올게요.”

“…….”

익숙한 보육원 마당에 차를 주차하는 그때.

“꺄아악!”

“?”

어느새 차 앞뒤로 빼곡히 둘러싼 험상궂은 얼굴들이 유리창 앞에 바싹 달라붙자 이지연 주임이 소리를 질렀다.

“어이, 좀 나와 보쇼. 어이!”

“이보쇼, 귀먹었소? 나와 보라고! 안 들려?!”

흉터 가득한 흉악한 얼굴로 차를 툭툭 치며 고함치는 검은 정장남들. 좀전의 어설픈 양아치와 달리 누가 봐도 조폭이 분명해 보이는 덩치들의 거친 행동에 이지연 주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저……정우 씨?”

내 팔을 잡고 오들오들 떠는 모습을 보니 많이 겁먹은 게 분명하다. 아, 이 사람들 좋은 차만 보면 이 난리다. 여하튼 여기선 애들이 왕이다.

“시펄, 누가 애들 사는 곳에 이런 차 몰고 오래? 위화감 들게!”

“팍 씨! 어이, 안 내려?! 얘들아 다들 연장 들어라.”

조금 더 지체했다간 큰일이 날 것 같다.

나는 빠르게 창문을 내렸다.

지잉—!

“삼촌들, 나야.”

“삼촌? 시벙 댁이 뉜데 우리보고 삼촌이라……어억? 정우? 정우여?”

“와따, 참말로 정우네? 이노무 쉐키 그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더만. 때깔 좋아진 것 보소?”

삼촌들은 그제야 차 안에 탄 게 나인 걸 알아봤는지, 칼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해맑게 미소 지었다.

“다들 연장 내려, 정우여, 정우.”

내가 차에서 내리자 삼촌들이 우르르 몰려 들며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어이구, 이놈 훤칠해진 것 보소. 개구리 정자 때 생각나는구먼.”

“다음부턴 올챙이라고 말해, 삼촌. 그보다 아버지는?”

“큰형님? 지금 안에 계시지, 어이, 다들 뭐혀냐? 싸게싸게 큰형님 안 불러오고!”

귀 한쪽이 반밖에 없는 오동 삼촌이 다른 삼촌들을 시켜 아버지를 부르려 하자 나는 다급히 그를 말렸다.

“오동 삼촌, 안 돼. 아버지가 이 차 보면 어쩌려고 그래?”

“아, 그르네?”

“게다가 나 애들 줄 선물도 사 왔단 말야.”

“서, 선물?”

“이런 미친…… 선물을 사왔단 말여? 먹을 거 아니지? 제발 먹을 거 아니라고 해!”

선물이란 단어에 삼촌들의 험상궂은 얼굴이 빠르게 창백해졌다.

“화이트 데이인데 어떻게 안 사와? 빵이랑 과자 좀 사왔어, 빨리 옮겨.”

“아니 옘병! 어쩔려고 그러냐아! 어쩔려고! 아니, 저그 누구여? 지금 큰형님 계신 곳으로 뛰어가는 놈 누구여억? 단풍이지? 단풍이 저 새끼부터 말려! 어서!”

내가 아버지라 부르는 인의 보육원의 원장, 구광적. 아버지는 음식 선물을 극도로 싫어한다.

애들 먹는 건 무조건 100% 유기농이어야 한다는 뒤틀린 신념에 갇힌 사람이니까.

화학 조미료가 조금만 들어가도 펄쩍 뛰는데, 내가 사온 조미료 범벅의 빵을 봤다 간 눈이 뒤집힐 게 뻔하다.

그래도 가끔 이런 걸 먹어야 맛있지.

아버지 덕분에 수제 햄버거가 아닌 프랜차이즈 햄버거를 처음 먹어본 것도 중학생이 되어서였으니까. 그렇기에 동생들이 얼마나 불량 식품 맛을 원할지 난 알고 있다.

‘아빠가 해주는 밥이 맛있긴 해도, 맨날 건강식만 먹으면 질려. 빨리 내리고 도망치면—?’

“그아하하! 이게 누구야? 정우 왔냐, 이노옴!”

2층 보육원 원장실 창문에서 뛰쳐나온 하얀 황소.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거구의 근육질 사내가 새하얀 정장을 입은 채 성난 황소처럼 내 차를 향해 맹렬히 뛰쳐왔다.

앞을 가로막는 난초 삼촌, 모란 삼촌, 흑싸리 삼촌을 순식간에 튕겨내며 구광적, 내 아버지가 불같이 고함을 치며 내게 달려오고 있다.

“정우야, 어여 가아. 뒤는 삼촌들이 막을 테니.”

오동 삼촌이 마른침을 삼키며 다급히 말했다.

이미 애들에게 줄 선물은 다 내린 상황.

삼촌들은 각개 전투를 하며 애들에게 선물을 나눠줄 것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삼촌들, 미안. 뒤 좀 부탁해.”

“흐흐, 시벌 거. 후딱 가라이.”

벌써 눈물을 글썽이는 오동 삼촌을 뒤로한 채 나는 이지연 주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꽉 잡아요. 밟을 거니까.”

“네? 꺄아아아아악!!!”

집은 역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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