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9화 (9/201)

#9화 ― 어? 저 사람은?

이지연 주임과 헤어진 후, 나는 바로 집에 돌아와 선인세로 장만한 노트북을 켰다.

타다닥— 탁탁— 타다다닥—

전체적인 줄거리와 세부 시놉시스만 정한 후 트리트먼트 없이 빠르게 초고를 써 내려갔다.

이미 머릿속에 모든 내용이 있었기에 키보드를 누르는 내 손은 번식기의 돌고래처럼 거침 없었다.

돈.

나는 돈이 좋다.

아니, 좋다는 말론 부족하지.

내 진심을 굳이 표현하자면.

“……사랑? 그래, 이 정도 표현이 적당하겠군.”

나는 돈이란 여인을 무엇보다 사랑했다.

돈은 힘이었고, 돈은 권력이었으니까.

숫자를 다 세기도 어려운 통장 잔고와 주식 그리고 부동산…….

이 글의 주인공은 평생 돈만 바라보며 모두를 짓밟고 올라간 회장.

그리고 뒤늦게 젊은날의 초상을 떠올리며 후회하던 그가 인턴 시절로 회귀하며 벌어지는 내용이다.

웹소설엔 ‘미생’처럼 웹툰과 드라마로 성공한 작품이 많지 않은 시절이기에 나는 그 틈새를 노릴 계획이다.

‘동시 연재 2 작품? 거뜬하지. 예전에도 해봤으니까.’

과거 BS북과의 계약이 끝나고 나는 악에 받친 듯 독기를 품고 글을 썼었다.

동시 연재 2개? 문제 없다.

동시 연재 3 작품까지도 거뜬했었으니까.

타다닥! 탁! 타닥!

이 시절 회귀물의 경우, 회귀하는 과정만 5화 가까이 되는 작품들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앞으론 회귀 전에 잡아먹는 분량이 4화, 3화 내로 점점 줄면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대부분 프롤로그에서 회귀 분량을 빠르게 끝내는 트렌드로 바뀌어 갈 터.

웹소설은 말 그대로 스낵 컬처, 출퇴근 길이나 휴식 시간 혹은 화장실을 갈 때처럼 짧은 시간에 즐기는 문화 콘텐츠다.

회귀 전의 주인공이 얼마나 구르고 고단하고 힘겹게 살았는지가 극적인 서사를 진행하기 위한 빌드업이 되기도 하지만.

‘고구마를 좋아하는 독자는 없지.’

내가 회귀하기 전엔 이런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유튜브 영화 요약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영화의 긴 플레이 영상을 견디지 못해 영화관 매출 감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시사 저널이었기에 반은 우스갯소리나 마찬가지였지만, 다양한 매체를 즐기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내가 지금 쓰는 글이 독자들 뿐만이 아니라 신인 작가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게 더 먹히는 글인지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

“내겐 돈과 실적이 되는 거고.”

주말 내내 신작을 쓰는 내 손은 멈추지 않았다.

키보드 위로 찍어내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다 돈이었으니까.

* * *

“와, 왔다! 정우 씨 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말이 지나고 또다시 돌아온 월요일.

출근을 하자마자 김동현 팀장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는데, 팀장이 왜 저러는지 얼핏 감이 온다.

“자자, 다들 준비 됐지? 이번 주 주간 회의는 좀 일찍 시작하자고.”

판무 2팀의 주간 회의는 보통 오전 10시에 진행 된다. 그런데 9시에 출근 하자마자 허둥대는 김동현 팀장을 보니 입질이 온 것 같다.

“이번 주 주간 회의는 빠르게 진행합시다.”

대회의실로 이동하자마자 김동현 팀장은 출력한 회의록을 나눠주며 말을 시작했다.

“우선 파트장님은 표지 제작이랑 추가 계약 더 신경 써 주시고, 창윤 매니저도 추가 계약 신경 써 줘요. 그리고 정우 매니저!”

“네.”

랩처럽 쏟아낸 말로 빠르게 조팟과 창윤 매니저를 건너 뛰고 팀장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우리랑 계약 하기로 하는 거 맞지?”

“아…… 이거요?”

“맞지? 제발 맞다고 해줘!”

김동현 팀장이 들이 민 핸드폰 화면엔 소설피아 실시간 검색이 보였고 거기엔.

1. 코즈일

2. 인턴사원 회장님

3. 인턴

4. 인턴사원

5.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

내 필명과 신작 그리고 유료화에 들어가 미친 성적을 내고 있는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가 당당히 1~5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6위엔 꿈꾸는돌 작가님이 랭크돼 있었고. 뿌듯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나는 싸늘한 표정을 유지했다.

“아뇨. 다른 출판사랑 계약하라고 했습니다.”

“뭐, 뭣! 그게 무슨 미…….”

“미?”

“미안한 소리야? 아니, 코즈일 작가님이 얼마나 귀한 분인데 다른 출판사랑 계약을……. 어? 그런 죄송하고 미안한 일을 만들어엇?”

연신 마른침을 삼키는 김동현 팀장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 코즈일 작가, 제 친구긴 하지만 정말 미친놈입니다. 계약 조건이 너무 터무니 없어서, 들을 가치도 없더라고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내 모습에 팀장의 목젖이 꿀렁였다.

“조건이…… 어떻길래?”

“말씀 안 드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아니야, 들어나 보자. 준비 됐어.”

깍지 낀 두 손으로 턱을 괜 팀장의 모습에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우선 정산비는 8 대 2.”

“으음……. 그리고?”

“계약금 500.”

계약금 이야길 듣자 마자 조팟이 펄쩍 뛰었다.

“뭐? 무슨 계약금을 달라고—”

“씁, 조팟. 조용히 있어. 정우 매니저, 그게 다야?”

아직 까진 생각보다 잘 견디고 있다.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계약을 따는 법을 알고 있군. 많이 컸네, 김 팀장.

“선인세는 2억 불렀습니다.”

“2…… 2억? 억? 일십백천만억, 그 억?”

“네 2억, 즉시 지급으로요. 그리고 나머지 기타 세부 사항 관련해서는 이전 계약에 넣었던 특약 그대로 부탁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특약이 뭔지 물어도 끝까지 말을 안 해주던데? 그게 뭔가요?”

“어흠, 흠……. 그건 별거 없어.”

셋 다 동시에 시선을 돌리는 걸 보니, 내가 나가면 코즈일과의 계약도 끝이라는 걸 모두 다 알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치, 회사는 이런 편안한 분위기여야지.

“여하튼, 특약 관련해서는 제가 모르는 내용이지만, 앞서 말한 계약 조건으로는 계약 못 하니 다른 출판사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

선인세 액수를 듣자 마자 대회의실 안은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고요해졌다.

다들 놀랐을 테지, 이때까지만 해도 BS북은 선인세나 정산비보다 각 플랫폼과의 긴밀한 커넥션을 통해 각종 배너나 프로모션 등으로 작가들을 꼬시는 데 주력하는 매니지였으니까.

‘신인 작가에게 2억 주기가 꽤나 아까울 거다.’

하지만 나도 막 내지른 말은 아니었다.

내 첫 계약작인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는 유료화 전환 후 구매수가 평균 2만 이상 씩 나오고 있었으니까.

즉 매일 매일 내가 한 회차씩 올릴 때마다 매출이 2 백만 원 씩 나오고 있고, 내 순 수익으로는 약 100만 원 씩 나온다는 소리다.

‘한 달이면 3천에 세 달이면 1억이라……. 중소기업 연봉을 매달 받네.’

같은 작가 그리고 같은 글.

전과 다른 건 오직 계약 조건 뿐이다.

단 하나의 차이가 만들어 낸 큰 변화를 보니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출판계엔 양아치 놈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여하튼 선인세는 조삼모사 같은 거여서 지금 받나 나중에 받나 내게 별 차이는 없다.

하지만 최대한 길들여 놔야 한다.

강경진 그 양아치 놈이 오기 전에 가능한 이런 선례를 가능한 많이 만들어 놔야 추후 그놈이 BS북에 합류하더라도 헛 짓을 하는데 제약이 많이 걸릴 테니까.

“팀장님? 이거 진짜 하실 거예요? 대표가 들으면 눈 뒤집어 질 거 같은데?”

“흠…….”

조팟의 물음에 고민하는 팀장의 주름진 얼굴을 보니 가슴이 아려온다. 부하 직원으로써 상사의 어려움을 모른 척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

8 대 2가 될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도움을 줘야겠다.

“아, 코즈일 작가가 그러는데요.”

“뭐를?”

“만약 저희랑 계약 못 하게 되면 소설피아 매니지하고 계약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소설피아도 연락 왔데?”

“네, 남작가 성형 천재 때보다 매니지들에서 더 연락 왔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이름 알고 있는 매니지에선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이건 사실이다.

회귀하고 나서 쓴 내 첫 작품은 올해의 화제작으로 이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코즈일이 신인이어서 꾸준히 연재를 할 수 있는지 여부가 불안하다는 등의 핑계도 궁색해졌으니까. 즉, 코즈일 이란 이름은 보장된 흥행 수표가 된 상황이다.

“소설피아 매니지는 아무래도 플랫폼 소속이니까 다른 출판사와 계약 하는 것보다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 하더라고요.”

“어떤 점이?”

“다른 출판사와 계약하면 괜히 BS북에 안 좋은 이미지가 비쳐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BS북은 정산비 조정이나 선인세에 인색하다는 식으로요.”

팀장에게 한 말이었지만 발작 스위치가 눌린 건 조팟이었다.

“소설피아 매니지는 선인세 안 주기로 유명한데요? 계약금은 아예 안 주고?”

“대신 거긴 자체 플랫폼이 있으니까 정산비가 10 대 0이잖아요. 작가가 10 매니지가 0. 대신 플랫폼 수수료만 띠니까 코즈일 작가 한테 보면 사실상 소설피아 매니지와 계약하는 게 가장 이득이긴 하죠.”

“하지만 교정은—”

“물론 교정이나 퇴고를 제대로 안 봐주는 걸로 유명하지만, 솔직히 코즈일 작가 같은 경우엔 그 부분이 크게 문제 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남성천 성적도 있어서인지 소설피아 매니지에서 1 : 1 전담 마크해준다고 하고요.”

“…….”

조팟은 역시 조팟이다.

플랫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제대로 파악을 못했는데 파트장을 달고 있다는 게 지금도 이해 가지 않는다.

BS북 뿐만이 아니라 수두룩한 출판사에 존재할 이런 무능력한 매니저들을 갈아 엎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하……. 전담까지 제안을 했다라…….”

김동현 팀장의 입술이 실시간으로 메말라 갔다.

“음……. 이건 내가 대표님하고 따로 이야기 해 볼게. 하아……. 대표님이 코즈일 작가 꼭 잡으라고 하는데 어쩌냐…….”

생긴 건 곰 같지만 김동현 팀장은 늘 여우 같이 행동한다. 뭐가 회사에, 정확히는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아닐지를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니까. 물론 지금껏 해온 성과를 보면 좋은 작품 고르는 눈은 땅에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지만.

‘판무 2팀이 1팀을 실적에서 이긴 적이 이번 달이 처음이라고 했지, 그러니 다시 찾아온 이런 대형 호재를 놓치고 싶진 않겠지.’

데구루루 흔들리는 팀장의 눈동자를 보니 도움의 손길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

“음……. 팀장님, 만약 코즈일 작가 계약 꼭 하셔야 되면 제가 계약금 관해선 줄여달라고 부탁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계약금은 미리 주는 정산금이 아니라 회사 돈에서 빠져나가는 거니까요.”

“정우 씨……. 정말……. 고맙다…….”

“아닙니다. 회사의 이득이 제 이득인걸요?”

10만 원 정도 깎아주면 되겠지.

고기나 사 먹어라.

* * *

다음 날 BS북 판무 2팀은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내가 코즈일 작가의 신작 계약을 따냈기 때문이니까.

‘내가 날 계약한 건데 어려울 건 없지.’

정산비 8 대 2에 선인세 2억은 즉시 지급.

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계약금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가끔은 편집자로서의 내 능력을 부각하는 것도 BS북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선 중요한 일이니까. 그래서인지 김동현 팀장은 내 얼굴에 꿀이라도 발라둔 듯 좋아 죽으려 한다.

매우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하하핫! 우리 판무 2팀의 황금손 왔네! 아니 무슨 고르는 작품마다 이렇게 대박이 나? 정우 씨가 회귀자 아니야?”

“하하하…….”

생긴 건 곰 같이 생겨 가지고.

나름 예리한 면이 있다.

“운이 좋아서 그렇죠.”

“에헤이! 운도 실력이야 실력!”

김동현 팀장은 판무 1팀 팀장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인지 의도적으로 1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민망한 금칠을 계속 했는데, 김동현 팀장의 자랑이 계속 되다간 1팀 매니저들이 1팀 팀장에게 갈굼 당하는 상황이 올 것만 같다.

주제를 바꿔야겠다.

“팀장님, 근데 이번 주 금요일에 저 연차 사용해도 될까요?”

“연차? 그럼, 되고 말고. 근데 무슨 일이야? 데이트?”

“아뇨. 뭐 살 게 있어서요.”

“오케이, 연차 올려. 바로 승인 해 줄게. 난 또 화이트 데이여서 데이트라도 하는 줄 알았지.”

“하하, 아니에요.”

회귀 후 글과 관련되지 않은 내 유일한 활동은 바로 면허를 딴 거였다. 1종 보통 면허를.

왜냐고? 비록 과거로 회귀 시켜 준 고마운 환생 트럭이었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느꼈던 온 몸이 으스러지던 그 느낌을 난 결코 잊을 수 없었으니까.

이제 돈도 많이 버는데 지난 삶처럼 뚜벅초로 살다가 죽는 일은 겪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번 주 금요일인 3월 14일은 내 첫 차를 인수 받는 날. 화이트 데이라니까 선물 좀 챙겨 가야겠네. 얼굴 본 지도 정말 오래 됐으니까.

* * *

회사원의 시간은 특이하다.

회사에 출근해 자리에 앉는 순간, 시간은 마치 멈춘 것처럼 흐르지 않는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면 일주일이 후딱 지나가는 마법이 일어난다. 눈만 깜빡 뜬 것 같은데 벌써 금요일이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언제든 방문해주세요.”

“……네.”

딜러의 상냥한 인사를 받으며 나는 인계 받은 차를 몰고 벤츠 매장 밖으로 나섰다.

후줄근한 옷을 입고 처음 계약금을 내러 갔을 땐 나를 하대 하는 게 공기에서 느껴졌는데, 현찰 일시불로 차를 구입하니 딜러가 날 부르는 호칭은 어느새 대표님으로 바뀌어 있다.

“역시 돈이 최고네.”

애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화이트데이를 겸해 빵이랑 사탕 등 먹을 걸 사러 고시원 근처 유명 빵집에 차를 세우는 데, 큰 키의 사내가 여자의 손목을 잡고 옥신각신 하는 게 보였다.

“뭐야, 사랑 싸움이라도 하는 건가?”

남의 연애사에 내가 관여할 필욘 없지.

깔끔히 무시하고 빵이나 사가려는 생각으로 차에서 내렸는데, 남자에게 손목이 잡혀 안절부절 하지 못 하는 여인의 모습이 묘하게 낯이 익다.

‘……어? 저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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