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7화 (7/201)

#7화 ―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이야아, 정우 씨 진짜 능력자네? 입사 이래 교육 기간 중에 바로 두 작품 계약은 정우 씨가 처음이야, 와핫핫!”

꿈꾸는돌 작가와 계약한 지 몇 주가 흘렀고 그의 대역 신작 ‘조선으로 간 발명가’가 미친듯한 성적을 연일 보여주기 시작했다.

당연히 김동현 팀장의 입은 귀까지 찢어졌고 내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이창윤 매니저도 맞장구를 치는 건 일상이 되고 있다.

“정우 매니저님이 정말 보는 눈이 있는 거 같아요. 올드한 게임물 쓰던 작가님한테 대역으로 기획작 쓰게 한다길래 솔직히 그게 무슨 소린가 했거든요? 그런데 진짜 감탄했어요 정우 매니저님.”

“별말씀을요. 창윤 매니저님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에이, 무슨 금칠을 그렇게.”

“하하하.”

꿈꾸는돌 작가와의 지난 미팅에서 내가 전한 소재, 정확히는 그가 미래에 쓸 내용을 전하면서 꿈돌 작가 다음으로 가장 놀란 건 나였다.

‘참…… 아빠라는 게 뭔지. 아들 좋아할 만한 글 쓴다고 자기가 쓴 글은 올리지도 않고 미련하게 비축만 만들어 놓다니.’

내 얘기를 들은 꿈돌 작가는 실은 내가 말한 소재의 글을 이미 100화분이나 비축을 만들어 둔 상황이라고 했다.

‘어쩐지 예전에 조선으로 간 발명가 연재하실 때 매주 연참을 살벌하게 하시더만.’

당시 꿈돌 작가는 850화까지 연재를 했었는데, 이미 100화분이 이 시절에 이미 완성이 되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꿈돌 작가는 어떻게 자기가 생각했던 걸 이렇게도 잘 아냐며 신통하다고 감탄을 했었는데, 되려 나는 그의 꾸준한 노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단지 이것만으로 꿈돌 작가가 나와 바로 계약을 하기로 결정한 건 아니었다.

꿈돌 작가가 당했던, 아니 미래에서 당할 전설의 사기 내용이 나와의 계약을 확정 짓게 한 거지.

“저희 BS북과 계약하지 않으시더라도 계약하실 땐 꼭 주의해서 살펴보셔야 해요 작가님. 예를 들자면 계약 기간이 3년이라고 적혀있는데, 중간에 특약 사항으로 종이책 출간 후 3년이라고 적혀있다거나 하는 식이면요.”

“아니, 왜요? 종이책으로도 수익 나면 더 좋은 거 아닌가요?”

“아이고, 작가님. 이미 그런 제약 받으셨구나?”

“예에……그런 계약 제안받긴 했는데…….”

“모든 출판사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간혹, 아아주 간혹! 음식물 쓰레기보다 못한 더러운 양아치 출판사들이 있거든요. 종이책 출간 후 3년간 계약이라고 하고선 종이책 제작을 아예 안 하는 거죠.”

“……네? 그, 그러면 계약 기간은?”

“뭐, 소송 가고 난리 치지 않는 이상은 계속 계약이 묶여 있는 거죠. 염전 노예처럼 영원히.”

“어, 어떻게 그런 양아치 같은 놈들이! BS북! 아니 매니저님과 계약하겠습니다!”

“아하하, 그럴까요?”

종이책 출간이니 뭐니 하는 달콤한 말로 순진한 작가를 속이는 사기꾼 놈들은 더는 출판계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자자,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오늘 회식이라도 한번 할까? 생각해보니 우리 정우 매니저가 입사한 지 벌써 1달이 지났네?”

“그러게요. 지난달에는 바빠서 회식 못 했으니까, 정우 매니저님 늦은 환영회 겸, 교육 기간 끝난 겸 그리고 대박 작품도 2개나 계약한 것도 합쳐서 회식하면 좋겠는데요?”

“좋아 좋아. 창윤 매니저, 베리 굿 아이디얼.”

“쯕, 바쁜데 뭔 회식을 해요. 팀장님 집 가서 애 돌보기 싫으니까 회식하자는 거 아니에요?”

“배드 아이디얼, 조팟. 오늘 금요일인데 다들 퇴근하고 가볍게 한잔 어때? 다들 뭐, 약속 있나?”

“네, 가능합니다.”

“저도 가능이요.”

“조팟은?”

“뭐 바쁘긴 한데, 잠깐 있는 건 괜찮아요.”

불금인데 팀원 모두 아무런 약속이 없다니.

하긴 나도 마찬가지니 남 말할 처지는 아니다.

6시 정각이 되자 김동현 팀장이 칼같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다들 그럼 가시죠.”

“고생하셨습니다!”

“빨리 가서 스겜하고 헤어져요.”

집 가서 애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가득 느껴지는 김동현 팀장의 힘찬 발걸음을 따라 우리는 회사 근처 이자카야로 향했다.

다들 삼겹살을 먹자고 했지만 조팟놈이 옷에 냄새 밴다고 염병을 떨었기 때문이다.

“정우 씨, 사케 마셔봤어?”

“아뇨.”

“훗, 역시 모르는구나? 사케는 말이야. 이 도쿠리 라고 부르는 호리병에 담아 마시는데, 겨울에는 도쿠리를 따듯하게 데워서—”

꼰대 중에 젊꼰이 제일 무섭다더니.

이제 28살이라는 조팟놈은 아는 척이 아주 오지다. 말하는 뽄새가 야스쿠니에 조상님 모시는 느낌. 조팟놈의 말을 한 귀로 시원하게 흘려들으며 우리는 술잔을 채웠다.

“자자, 우리 회사에 복덩이가 왔으니 짠 한번 합시다! 정직원 된 걸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이제 탈출도 못 하겠네.”

“……다들 감사합니다.”

꼬치와 탕을 안주로 사케가 담긴 도쿠리 몇 병을 비우기 시작하니 어느새 취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정우 씨. 돌발 퀴이즈! 눈앞에 1달러, 1,000원, 100엔이 있어. 정우 씨는 그럼 어떤 걸 주을 거야?”

“천 원이요.”

“아니야, 아니이잌! 내가 언제 하나만 주으랬어? 왜 다 안 줍고 하나만 주워? 하나만 줍는 사람은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 그리고 다 줍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 바로 주! 도! 적! 인!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일을 찾아내는 그런 사람이란 말이야아~ 어? 그런 사람이 돼야 해, 알아?”

“……한잔 더 하시죠.”

“그러취! 그래야 시키는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주도적인 리더가 될 수 있는 거야. 리이더어가! 리이더! 뤼이더억! 되고 싶어 리더어흐흨”

나는 타고나길 술을 잘 마시는 편이다.

김동현 팀장과 이창윤 매니저는 진작에 뻗었고 안주만 조금 먹고 집에 가겠다던 조팟놈은 연신 헛소리를 내뱉고 있다.

‘개패고 싶다. 진심으로.’

역시 출판계에 이런 머저리 같은 놈들이 존재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다시 가득 드는 그때.

“……어? 저거 우리 대표님 아니야?”

흐리멍덩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조팟놈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표님, 여기 계신 줄 지금 봤습니다.”

“어? 성훈 파트장이 여긴 어쩐 일이야?”

“저희 신입 매니저님 챙겨드리려고 팀 회식 하자고 했습니다, 하하.”

조팟놈, 어떤 면에선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매 회의 때 김동현 팀장이 대표 욕, 회사 욕 엠바고를 외칠 정도로 지랄을 떨던 놈인데, 지금은 주인 만난 개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

거기다 나를 챙겨주기 위해 마치 자신이 회식을 기획했다고 착각하게 하는 말까지. 대표의 자리와 꽤 떨어져 있었지만 조팟놈의 아부가 워낙 큰 데시벨로 흘러나오는지라 내 자리에서도 잘만 들린다.

열정적인 눈물의 똥꼬쇼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데, 대표 맞은편에 앉은 사내의 뒷모습에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 때, 아부가 끝난 조팟놈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돌아왔다.

“정우 씨, 창윤 씨 깨워. 얼른 가자. 대표님이 계산 하신데. 팀장님, 일어나세요 팀장님!”

조팟은 자신 덕에 회식비가 굳었다고 연신 자랑하며 잠든 김동현 팀장과 이창윤 매니저를 깨웠고 그들을 먼저 택시를 태워 보냈다. 불편하게도 이제 남은 건 나와 조팟 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

“정우 씨. 내가 비밀 얘기 하나 해 줄까?”

비교적 말짱해 보이는, 아니 멀쩡하지 않더라도 조팟의 택시까지 기다려 줄 아량은 없었기에 바로 고시원으로 돌아가려는데, 조팟이 나를 불러 세웠다.

‘비밀은 지랄. 뒷땅이나 까겠지. 근데 궁금하긴 하네?’

조팟처럼 욕을 처먹는 놈들은 꼭 뒷말을 좋아한다. 비밀 얘기니 뭐니 하며 너한테만 하는 얘기니 뭐니 하는 고전적인 개수작.

지난 삶에서 갈릴 만큼 갈린 회사 생활과 강경진 그 쓰레기 놈한테 당한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조팟이 개소리를 지꺼리려 한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도 조금은 술기운이 올라와서인지 조팟이 내뱉을 개소리가 문득 궁금해졌다.

“뭔데요?”

“크큭, 아까 대표랑 술 마시던 게 누군지 알아?”

“모르죠.”

“들으면 깜짝 놀랄걸?”

“말을 해줘야 놀라죠.”

“쯧, 요즘 것들은 어? 참을성이 없어요 참을성이.”

발끝부터 올라오는 딥한 빡침에 바로 발길을 돌리는데.

“원래 우리 팀장님 잘릴 뻔했어.”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김동현 팀장이 잘릴 뻔했다니?

“정우 씨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지만, 우리 대표가 경쟁시키는 거 엄청 좋아하거든. 근데 말이야 내가 입사한 지 지금 3년 짼데.”

“네?”

이 말에 정말 놀랐다.

조팟이 그동안 보여준 하찮은 업무 능력들.

3년 차의 업무 능력이라곤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뭘 그렇게 놀래? 아직 말도 안 했는데. 여하튼, 내가 입사한 3년 동안 단 한 번도. 다안 한 번도! 판무 1팀을 이긴 적이 없단 말이야. 연 매출은 당연하고 월 매출도. 근데 여튼…… 잘했어. 그 계약 최근 한 것들.”

“…….”

뜬금없는 조팟의 칭찬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양극성 장애가 의심되는 놈이다.

“팀장님이 내색은 안 하고 있었지만, 이번 달이 마지노선이었어. 이번 달까지 실적 안 나오면 잘리는 거였는데. 크큭, 행운인지 요행인지 여튼 덕분에 살았네.”

빙구처럼 웃고 다니기에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줄 알았는데, 김동현 팀장이 그런 상황이었다니…….

‘그러게 평소에 잘했어야지.’

출판사는 전쟁터다.

산부인과 의사처럼 작품이란 소중한 아이를 받고 그 아이를 모든 힘과 정성을 쏟아부어야 하는 게 바로 이곳이니까.

김동현 팀장처럼 좋은 게 좋은 거지 같은 우유부단한 태도로 매사에 일관한다면 회사에도 그리고 작가들에게도 독일 뿐이니까.

솔직히 아직 안 잘린 게 더 신기하긴 하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어딜 가? 아직 이야기 시작도 안 했어!”

고개를 돌려 집에 가려는데 조팟이 다시 내 팔을 잡아 세웠다.

“뭡니까? 추운데 빨리 말하시죠.”

“크큭, 아까 대표 앞에 있던 사람 말이야.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정말 스핑크스 같은 새끼다.

왜 자꾸 퀴즈를 내고 지랄이지?

그것도 길거리에 세워 두고?

빡침에 대답 없이 그를 응시하는데 조팟은 이미 만취했는지 혼자 히죽대며 술술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까 대표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그 새로 올 뻔한 팀장 후보였어. 김동현 팀장님 대신 올 뻔한!”

“그렇군요.”

“거기다 더 놀라운 건 뭔지 알아?”

“아, 시발.”

“응?”

“모른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게 뭡니까?”

“크큭, 바로 대표 조카래 조카! 정확히는 처조카! 와이프 조칸데 순문학 작가래. 그것도 엄청 안 팔리고 안 유명한 순문학 작가. 크크큭, 이게 웃긴 게 또 이력은 어엄청 화려해요. 아이비리그 나와서 골드만 삭스에서 일했다는데 그런 사람을 어? 판무 1팀 팀장으로 뽑는다는 게 말이 되냐는 소리냐고!”

그래도 애사심이나 팀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없어 보였는데, 이렇게 열을 내면서까지 김동현 팀장의 퇴사를 걱정했던 걸 보니 조팟도 완전히 나쁜 면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진급 시켜야지. 내가 파트장인데 말이야. 안 그래?”

감동은 1초도 지나지 않아 짜게 식었다.

역시 BS북 놈들은 모두 쓰레기다.

두 번 다시 흔들리지 않아야겠다.

“조팟님 택시 왔습니다. 들어가시죠.”

“크큭, 정우 씨도 어여 들어가!”

눈이 사팔로 벌어진 조팟새낀 택시 창문을 내리고서도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빨리 택시 기사님이 조팟놈을 데리고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아, 그 대표 조카 순문학책 찾아서 읽어봐. 진짜 드럽게 못 씀, 크큭. 이름이 강……경진 이랬나?”

“네? 지금……뭐라고?”

“어, 간다! 담 주에 봐.”

나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내 첫 편집자 강경진.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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