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다른 장르로 쓰시는 건 어떨까요?
웹소설에서 말하는 대체역사란 우리가 잘 아는 과거, 예를 들자면 조선 시대에 현대인이 환생하거나 그 시절로 회귀한 현대인이 실제 역사와 다른 방향으로 내용을 전개하면서 재미를 주는 장르의 소설을 말한다.
내가 회귀하기 직전에는 대체역사 장르의 봄이라고 불릴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지만, 이 시절엔 아직 대역물이 인기를 끌기 전이다.
그렇기에 이창윤도 계속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강력하게 어필해야 한다.
대역 전문 작가에게 겜판이나 무협을 쓰게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잖아?
“잘 할 수 있습니다. 믿어주세요 매니저님.”
“음…….”
이 시기에 대역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대역물은 ‘남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장르 소설로 넘어왔다고 볼 수 있는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아직은 대역 히트작이 없는 시기다.
1세대 대역물이 고증 x 국뽕물 이었다면.
2세대 대역물은 고증 위주의 캐릭터성 x 영지물. 그리고 그 후의 대역물은 캐릭터성 위주로 발전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지금 이 시점이 아직 1세대 대역물도 나오기 전인 국뽕 전쟁물 위주의 대역도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의 시점이기 때문이다.
‘술, 마약 빨고 기마대 선두에서 휘릭휘릭 끼요옷~! 외치던 그 전설의 작품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대역물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니까.’
세종에 빙의한 날백수가 병력을 이끌고 명나라와 맞다이 까던 파천황급 전개를 보여줬던 그 엄청난 작품이 나오는 건 2018년. 앞으로 4년 뒤다. 이창윤 매니저가 우려하는 게 뭔지 충분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래요 그럼. 신입 때는 아직 어떤 작품이 잘 되는지 쉽게 가늠할 수 없으니까. 직접 부딪쳐 보고 배우는 게 낫겠죠.”
이창윤 매니저의 태도는 나를 믿는다기보단 마치 대가리 한번 깨져 보고 정신 차려 봐라 같은 태도다.
하지만 딱히 신경 쓰이진 않는다.
나는 꿈돌 작가의 글을, 정확히는 미래에 그가 쓸 글을 알고 있으니까.
“대신 꿈꾸는돌 작가님께서 게임물로 계속 쓴다고 고집하면 계약 진행은 보류하는 게 좋겠어요. 지금 성적으로 유료화를 진행하면 완결쯤엔 구매 수 2자리도 안 나올 것 같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이창윤 매니저의 허락을 받고 꿈돌 작가에게 보낼 쪽지를 적었다.
꿈꾸는돌 작가님 안녕하세요! BS북의 판무팀 매니저 박정우입니다. 연재 중이신 <밥만 먹고 강해짐>작품을 보고, 작가님과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말씀 올리게 되었습니다. 작품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제 담당 번호인…….
그리고 쪽지를 보낸 지 10분쯤 지났을까?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그……소설피아에서 쪽지 받은…….”
“꿈꾸는돌 작가님 안녕하세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예, 안녕하십니까.”
내 담당 번호와 핸드폰 번호 그리고 메일 주소를 적어 쪽지를 보냈는데, 꿈돌 작가는 바로 핸드폰으로 연락을 줬다.
“작가님, 잠시만요? 회의실로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네, 선생님.”
사무실 안이 크게 소란스럽진 않았지만 꿈돌 작가의 목소리가 워낙 작았기에 소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전화를 이어받았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사무실이 조금 소란스러워서요.”
“하하, 아닙니다.”
담백하고 차분한 그의 목소리에서 영상으로만 봤던 그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확실히 기억 속의 모습보다 더 젊은 얼굴이다.
“먼저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현재 소설피아에서 연재 중이신 게임물 ‘밥만 먹고 강해짐’이 이미 계약된 작품일까요?”
“아뇨, 아직입니다. 몇 군데 계약 제안은 왔지만, 아직 계약하진 않았습니다.”
이미 계약이 된 상황이었으면 속수무책일 뻔했는데, 다행히 늦지 않았다.
“그렇군요. 작가님, 실례가 아니라면 사시는 지역은 어디실까요? 저희 회사는 서울 합정역 근처입니다. 만약 근처시면 직접 뵙고—”
“아이구 합정이세요? 저는 신촌 삽니다, 하하. 바로 근처네요?”
“그러면 만나서 이야기 나누시는 건 어떨까요? 작가님 편하신 장소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 *
신촌역 2번 출구 앞의 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오후 3시라는 애매한 시간대여서 그런지 카페 안은 한산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꿈꾸는돌 작가님 맞으실까요?”
약속 시간보다 20분 미리 도착했는데 전화로 안내받은 인상착의와 동일한 낯익은 얼굴의, 아니 내 기억 속 모습보다 훨씬 젊은 모습의 40대 후반 사내가 보였다. 그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는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화 주셨던 선생님이시군요. 반가워요. 백선규라고 합니다.”
“BS북 박정우 매니저입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음료는 어떤 거로 드시겠습니까?”
“괜찮아요. 잠시 이야기만 나누러 온 건데요. 선생님 드실 거나 주문하시죠.”
“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법인 카드를 챙겨왔는데 아무것도 안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후다닥 카운터로 가 음료와 케이크를 주문했다.
“함께 드시면서 이야기 나누시죠 작가님.”
“하하, 뭘 이런 걸 다. 잘 먹을게요.”
내가 사 온 케이크를 한입 먹으며 꿈돌 작가는 슬쩍 미소 지었다. 가까운 행복은 당분에 있다.
이건 진리다.
“실은 제가 게임을 잘 모릅니다. 해본 게임이라곤 지뢰찾기밖에 없고요.”
압니다, 작가님.
탱, 딜, 힐을 수비형 플레이어, 공격형 플레이어, 치료형 플레이어로 늘여 쓴 것부터 냄새가 나거든요. 아재의 향기가.
“그런데 첫 연재글에 많진 않아도 이렇게 계약 제안이 오는 걸 보니 신기하네요. 나름 게임 느낌 나게 상상하며 썼던 게 먹혔나 보군요, 하하하.”
안 먹혔어요 작가님.
단순히 작가님 글빨이랑 캐릭터빨로 독자 머리채 잡고 끌고 가는 것뿐이거든요.
이 글로는 어렵습니다.
“음…… 그럼 작가님께선 게임에 관심이 없으신데 어쩌다가 게임물을 쓰시게 된 건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아, 그게…….”
꿈돌 작가는 잠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잘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제겐 늦둥이 아들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꿈돌 작가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가정사를 설명했다. 십여 년 전 아내가 암으로 죽고 홀로 아이를 키운 싱글 대디의 삶이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그는 장황하게 풀어냈다.
“아내의 빈자리를…… 좋은 옷, 좋은 밥, 이런 물질적인 걸로 채워 주려 했어요. 갑작스럽게 떠난 아내의 공백은 제게도 익숙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다른 방법은 생각도 하지 못했죠…… 하지만 아이에겐 제 어미가 온 세상이나 마찬가진데…… 제가 너무 나무만 봤던 거죠…….”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신파 스토리를 간략하게 줄이자면, 결론적으로 꿈돌 작가의 아들은 진성 히키가 됐다고 한다. 20살이 된 나이까지도 집 밖에 나오지도 않고 오직 방 안에서 소설만 보는 방구석 폐인으로.
“그래서 아들의 주의를 끌어보려고 쓰게 된 거였습니다…… 아이가 제 글에 댓글이라도 달아주면…… 그렇게라도 소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하하, 아이고, 제가 처음 뵙는 자리에서 너무 이상한 얘기만 늘어놓았네요.”
“아니예요 작가님. 저희 매니저들은 단순히 작품만 계약하는 게 아닙니다. 작가님께서 평소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그리고 어떤 관심 분야가 있는지 그런 사소한 것까지 모든 걸요.”
“그……그렇습니까?”
물론 아니지.
난 미팅도 오늘이 처음인걸?
“당연하죠. 작가님의 사소한 생활 습관이나 관심사 하나라도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그에 맞춰서 작가님들이 가장 잘 쓰실 수 있고 즐겁게 집필하실 수 있는 작품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기획작을 진행할 때에는요.”
“기획작이요?”
미끼는 던져졌고 이젠 입질을 기다릴 차례다.
“네, 작가님께서 소설을 쓰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드님의 관심을 끌 만한 글을 쓰시는 게 아닙니까?”
“부끄럽지만……맞습니다.”
꿈돌 작가의 아들은 상당한 고인물 독자라고 했다. 아들이 실수로 화장실에 두고 나온 폰에서 우연히 봤던 소설피아 아이디 레벨이 99였다고 했으니까.
“음…… 솔직히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작가님?”
“어떤 것을…….”
“아드님의 레벨이 99면 소설피아의 웬만한 글은 다 읽었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인물 독자라고 해도 모든 글을 다 읽지는 않아요.”
“다 읽는데 모든 글을 읽지 않는다는 말이 대체…….”
“쉽게 말씀드리자면, 아드님은 미식가인 거죠.”
“미식가요?”
꿈돌 작가는 내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예, 미식가일수록 누구보다 다양한 음식을 접하지만 입맛은 더 까다로워지기 마련이죠. 아드님은 지금 고독한 미식가일 겁니다. 최근에 소설피아엔 그렇게 재미있는 작품이 많이 없었으니까요. 즉, 아드님은 다양한 글을 맛보되 모든 회차를 전부 읽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런가요? 최근에 코즈일 작가님이었나?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란 작품 엄청 재미있던데요? 사실 BS북이랑 바로 미팅하기로 한 것도, 그 글이 BS북 작품이기도 해서거든요.”
“남성천…… 좋은 작품이죠. 제가 직접 담당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하하.”
“이야, 정말이세요? 선생님 나이도 상당히 젊어 보이시는데 능력자셨네요? 하하하.”
내 스스로 금칠하는 상황이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앞으론 이런 상황이 종종 있을 거다. 이런 상황에도 슬슬 익숙해져야겠지.
“감사합니다. 여하튼 제가 드리려 했던 말은, 아드님 같은 열혈 독자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선 단순히 아드님 나이대의 독자층을 타겟으로 잡고 잘 모르는 분야의 글을 쓰시는 것보다 작가님께서 잘 쓰실 수 있는 글을 집필하시는 게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흠……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이라…….”
입질이 슬슬 오기 시작한다.
그럼 이제 릴을 조심히 당길 차례지.
“지금 작가님과 같은 고민을 하시는 작가님들께 저는 보통 작가님들이 가장 잘 아시는 분야에 관해서 글을 쓰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실례지만 작가님께선 본업이 따로 있으실까요?”
“아……네. 학원에서 중고등학생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꿈돌 작가가 대역물의 신이 되기 전까지 그의 직업은 학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강사였다.
그럼에도 꿈돌 작가가 자기 몸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건 단순히 자신의 아들 때문.
방구석 폐인처럼 매일같이 집 안에 박혀서 소설만 보는 아들의 관심을 끌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아들이 좋아할 만한 최신 트렌드 소설을 써보려 애쓴 거겠지.
‘작가님…… 무슨 마음인지는 알지만 그걸로는 아드님 관심 못 끌어요. 아드님이 좋아하는 건 재미있는 글이니까요.’
하지만 꿈돌 작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을 테다. 그러니 양판소의 탈을 쓴 애매한 글을 꾸역꾸역 쓰고 있겠지.
“와? 정말요? 역사 선생님이시면 대역물을 쓰셔도 잘하시겠는데요? 특히 고증 부분도 엄청 잘하실 것 같구요.”
“대역물이요? 그게 뭐죠?”
“대역, 즉 대체 역사물이란 역사적 사건들이 다르게 전개되는 내용을 담은 장르를 뜻합니다. 인류 최초의 대체 역사물은 기원전 고대 로마의 역사가인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등장하죠.”
순간 꿈돌 작가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아! 알죠! 로마사 제9권 17~19장에 등장하는 내용이죠. 티투스 리비우스는 당시 책에서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이 아닌 서방을 정복하는 내용을 썼었죠, 하하.”
“맞습니다. 전문가셔서 그런지 잘 알고 계시는군요. 작가님, 저희 BS북과 지금 당장 계약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만. 제가 소재 하나 추천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예에? 저야 좋긴 하지만…… 아직 계약을 한 것도 아닌데…….”
BS북과의 계약? 그건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 건 이 순딩한 아저씨가 좋은 글을 쓰고 어디 가서 사기를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니까.
“괜찮습니다. 이건 왠지 작가님께서 쓰시면 정말 잘 쓰실 수 있는 내용 같아서요. 그럼 설명을 드리자면 조선 전기 성종 시절에…….”
내가 설명을 이어나갈 때마다 꿈돌 작가는 경기 수준으로 얼굴을 부들대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마치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온 것만 같다면서.
당연하겠지.
내가 그에게 건넨 소재들, 전개 방식, 등장인물 등등. 모두 꿈돌 작가 당신이 썼던 내용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