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대체역사? 그런 걸 누가 읽어요?
귀찮은 내색을 가득 담아 말없이 손짓하는 김동현 팀장을 따라 나는 다시 소회의실로 이동했다.
“왜? 또 뭔데요?”
“팀장님, 코즈일 작가님께서 계정 공유가 꼭 필수인지 물으시네요? 가능하면 계정 공유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셔서.”
“아, 그건 진짜 안 돼. 이건 내가 뭘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경영지원팀에서 정산 이슈 때문에 꼭 알아둬야 하는 거라니까? 이건 대표님 지시 사항이기도 하고.”
‘대표의 지시 사항이라…… 재밌네?’
김동현 팀장의 말에 회귀 전 강경진에게 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 소설피아 계정을 알던 강경진이 다른 출판사에서 오던 컨택 쪽지를 몰래 삭제했던 그 통수의 기억이.
“작가님, 독자들 댓글이나 쪽지 알람은 아예 다 꺼두시는 게 좋아요. 글 쓰실 때는 벽만 보고 써야지 괜히 독자들 반응 신경 쓰다가 완결도 못 친 작가님들 여럿 봤습니다.”
“괜찮아요 매니저님. 저는 어차피 독자들 댓글이나 쪽지도 확인 잘 안 해요.”
“훌륭한 자세입니다 작가님, 하하. 소설피아에 로그인하지 마시고 이왕이면 앱도 삭제하시는 게 좋아요. 괜히 알람 뜨거나 해서 신경 쓰지 마시고요. 작가는 온전히 글만 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에이, 그래도 인풋 하려면 글은 봐야죠?”
“아이고 작가님! 집중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풋 때문에 필요하신 거면 제 계정 알려드릴게요. 작가님 계정 말고 이거 쓰세요.”
“예? 굳이 그럴 필요가…….”
“제가 미리 말씀을 못 드려 죄송하네요. 저희 BS북에선 작가님 같은 몇몇 기대주 작가님들께는 도서지원비를 따로 지원해 드리거든요. 다만 그 계정이 작가님 계정은 아니고 따로 정해져 있어서요. 제가 그 계정 알려드릴 테니까 앞으로 글은 그 계정으로만 보세요. 인풋용 골드도 다 아껴야죠, 하하하.”
강경진 십새끼의 가스라이팅에 휘둘렸던 과거가 떠오르자 아직도 이가 으드득 갈린다.
병신같이 고작 골드 몇 푼 아끼겠다고 강경진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놀아났다니.
‘그땐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어서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했지.’
그런데 뭐? 정산 차이가 없는지 확인을 해 봐야 해? 그래서 작가 계정을 알아야 한다고?
어디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하지?
하지만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읽히는 김동현 팀장의 표정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김동현 팀장도 이게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건데…….
솔직히 놀랍다.
작가의 소설피아 계정 공유라는 악법을 만들어 낸 게 나는 여태껏 당연히 강경진의 생각인 줄로만 알았으니까.
그런데 그 독을 푼 게 강경진이 아니라, 사람 좋아 보이기만 하던 오성민 대표였다고?
역시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는 법이다.
“여하튼 계정 공유를 안 할 수는 없어요. 이건 무조건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니까.”
“그럼 어쩔 수 없이 특약을 추가로 넣어야겠는데요? 아, 이건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코즈일 작가님이 하신 말입니다. 계정 공유를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신 특약을 꼭 추가해 달라고 해서요.”
“또? 특약을 또오?”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는 김동현 팀장을 향해 나는 최대한 비굴하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나도 원하진 않지만 코즈일 작가가 억지로 시켰다는 느낌이 들도록.
“저도 진짜 원해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요. 코즈일 작가님이 계정 공유를 꼭 해야 한다면 특약에 이 내용을 추가해야만 계약하겠다고 하는데……에이씨. 그냥 하지 말까요? 생각해보니 코즈일 이 새끼 싸가지가 없어도 너무 없네? 신인 작가 주제에!”
“어허이? 무슨 소리야 정우 매니저. 진정해!”
진정하라는 김동현 팀장의 말에 나는 더욱 미간을 좁혔다. 발작 버튼을 잠시 수동으로 눌러 줄 타이밍이다.
“아니 그깟 계정 알아봤자 뭘 하겠습니까? 제가 담당잔데 텍본을 뿌리겠습니까? 아니면 내서재에 있는 비공개 글을 몰래 읽기라도 할까요? 것도 아니면 개 씹 양아치 새끼처럼 다른 매니지에서 온 쪽지를 삭제하기라도 할 거라 생각하나?”
“어우야. 정우 매니저, 워딩이 너무 세네. 진정해, 다 왔어. 괜찮아. 계약 과정이 원래 좀 늘 그래.”
김동현 팀장의 동공이 흔들린다.
혹여 내가 코즈일과 계약을 파투낼까봐 두려운 모양이다. 코즈일은 BS북에서 오직 나만 계약할 수 있는 작가이니까.
“진정하고, 그래서 추가할 특약이 뭔데?”
“아, 그건 말이죠? 별건 아니고 제13조 비밀유지의무 조항에 이 내용만 추가해달라고 하시는데요…….”
내가 요청한 특약은 별게 없었다.
앞서 말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장난질을 BS북의 누구라도 저지른다면, BS북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단순한 내용이었으니까.
‘단순하지만, 터질 땐 강력하겠지.’
이건 내가 BS북에 푸는 무색무취의 극독.
독이 효과를 발하는 시점은 오로지 나만 정할 수 있다.
“오케이. 뭐 크게 문제없는 내용이네? 이 내용도 추가시킵시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작가님께 해당 내용 전달 드리고 계약 마무리 짓겠습니다.”
내가 요청한 추가 특약 사항의 내용은 겉보기엔 별문제가 없었다. 그렇기에 김동현 팀장은 바로 해당 내용의 추가를 승인해 준 거겠지.
이건 평범한 독이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무협의 고독(蠱毒)과도 같은 성질의 독이겠지. 내가 이 독을 풀었을 때 헐떡댈 BS북 양아치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훤히 보이는 듯하다.
비록 특약 사항의 조율이 끝났지만, 계약의 모든 내용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진 않았다.
‘쌍팔년도도 아니고 분기별 정산 지급이 뭐야 대체? 그나마 선인세라도 바로 들어와서 다행이네.’
익월 아니 익익월도 아니고 1년에 4번 나눠서 받는 분기별 정산이라니. 정말 지옥 같은 조항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BS북도 더는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단순히 게으른 건지 아니면 3달 동안 이자 놀이나 환치기라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리한 특약을 넣은 시점에서 나도 이 정도는 양보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BS북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2월의 마지막 주가 됐다.
“창윤 매니저님, 코즈일 작가 원고 교정 완료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에이, 됐어요. 교정 손볼 것도 없던데. 이제 따로 확인 안 받아도 돼요.”
“그래도 괜찮나요? 팀장님께서 교육 기간 동안은 창윤 매니저님께 계속 확인받으라고 하셨어서요.”
이창윤 매니저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피식 웃었다.
“이제 교육 마지막 주잖아요. 솔직히 손 볼 것도 없고. 귀찮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깔끔하게 교정 잘했으니까 더는 안 물어봐도 돼요. 다음 주부터는 교육 기간 끝이니까 이제 슬슬 작가 컨택도 시작해 보구요.”
당연히 손볼 게 없겠지.
코즈일이 나고, 내가 코즈일이니까.
퇴근 시간에 글을 쓰고 회사에 와서는 내 글을 퇴고한다. 정말 완벽한 회사 생활이다.
루팡의 느낌이 들긴 하지만 내 할 일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니까, 미안한 마음은 없다.
전생에 당한 것도 많고.
‘여하튼 허락도 받았겠다, 슬슬 컨택할 작품 좀 찾아볼까?’
내가 BS북에 입사한 이유는 놈들이 예뻐서 돈 벌어다 주려고 한 게 아니다.
BS북을 필두로 매니지 놈들이 불공정 계약을 당연히 여기는 문화를 뜯어고칠 생각으로 들어온 게 가장 크니까.
불공정 계약, 사기 계약을 당한 수많은 작가들 중에선 그 과정을 극복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절필을 선언한 작가도 여럿이었다.
내가 BS북에서 매니저로 있는 한은, 최소한 내가 계약하는 작품에 한에서는 단지 종이 쪼가리인 계약서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꿈을 저버리는 이는 없게 할 생각이다.
‘흠…… 근데 딱히 계약할 만한 글이 없네.’
작가 구제도 구제지만 상업성을 보이는 작품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좀 괜찮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은 이미 계약을 했는지 러프 표지를 올라온 상태고.
그렇게 괜찮은 글이 없는지 소설피아의 오늘의베스트, 장르별베스트 순위를 뒤적이던 그때, 낯익은 필명이 들어왔다.
“어? 이 작가님은?”
“왜요? 벌써 괜찮은 작품 찾았어요?”
“아…… 네. 아마도요?”
현판 베스트 순위 32위에 찍힌 익숙한 필명.
분명히 그 작가다.
전설의 사기를 당했던 작가, 꿈꾸는돌.
‘대역의 신’.
또는 ‘대역의 아버지’.
혹은 ‘역사 사기꾼’.
꿈꾸는돌 작가를 일컫는 말은 무수히 많다.
허구의 역사를 워낙 실제같이 생동감 있게 묘사하던 탓에, 국사 시험을 준비하는 고3 수험생들과 공무원생들에게 꿈꾸는돌 작가의 대역물은 공식 금서로 지정됐을 정도니까.
컨택할 작품을 찾던 와중 현판 순위에 찍힌 꿈꾸는돌이란 필명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자 이창윤 매니저가 내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괜찮은 작품 같으면 너무 걱정 말고 쪽지 보내봐요. 작가님에게 처음 컨택하기 전에는 떨리는 게 당연하니까요.”
“…….”
이창윤 매니저의 헛다리와 달리 내가 놀란 이유는 꿈꾸는돌 작가의 글이 대역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꿈돌 작가의 게임물이라…… 전설의 사기 작품 실연재를 내가 보게 될 줄이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있을 여러 사기 계약들 중 내가 당한 사기와 버금가는 유명한 사기 계약, 일명 ‘전설의 사기’라고 불리던 사기 계약이 있었다.
‘그게 꿈돌 작가님이 신인 때 당했던 사기였지.’
꿈돌 작가는 나를 모르지만, 내겐 은인이나 다름없다. 작가 지망생들을 위해 유튜브에 무료 웹소설 강의를 활발히 진행하셨고 나도 그 덕을 많이 봤으니까.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망생이 시절엔 꿈돌 작가님 강의가 도움 많이 됐었는데…….’
작가 지망생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글을 써라’라는 말을 강조하던 그였는데,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자기가 원하는 글이 아닌 게 너무 분명히 보였다.
“이창윤 매니저님. 저, 이 작가님 컨택해도 괜찮을까요?”
“게임물이네요? 음……지표는 그렇게 좋지 않은데, 계약하려는 이유가 있나요? 저도 초반 회차 읽어보긴 했는데 게임물치고 너무 올드한 느낌이 많이 나서요.”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꿈돌 작가가 연재한 회차를 읽으며 그가 고전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으니까.
꿈돌 작가가 연재 중인 게임물은 제목과 배경만 게임물이지 읽는 내내 밀려오는 묵직함과 무거운 문체는 흡사 구무협이 연상될 정도다.
“네, 기획작으로 한번 진행해 보고 싶어서요. 서사를 이끌어가는 방식이나 캐릭터 묘사는 상당히 좋으셔서 지금 쓰시는 게임물 말고 다른 장르로 한번 같이 작업해보자고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요? 어떤 장르? 무협?”
“아뇨, 무협보다는 대체역사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체역사? 그런 걸 누가 읽어요?”
“예?”
내 입에서 진심으로 당황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한 템포 더 뒤늦게야 떠올랐다.
지금은 아직 2014년. 대역의 봄이 아직 도래하기 전의 시기라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