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앞으로 잘 적응해 보라고.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팀장님? 신입이……작가를 담당한다뇨?”
아니나 다를까 반론의 포문을 연 건 조팟이었다.
“저나 창윤 매니저가 아니고 정우 매니저가요? 이제 입사한 지 이틀짼데?”
조팟의 뿔테가 바들거리는 걸 보니 툭 치면 울 것 같다. 애초에 자기가 컨택한 글도 아니면서 부들대는 걸 보니, 저건 타고난 인성 혹은 가정 교육의 문제다.
“음…… 우선 정우 매니저, 코즈일 작가한테 따로 들은 말 없어?”
“네, 전혀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가네요…… 저는 분명 교육 기간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 그보다 제가 왜 코즈일 작가 글을 담당한다는 건지…….”
조금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혼신의 연기에 김동현 팀장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입술을 잘근거렸다. 난감할 테지.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하……솔직히 말하자면 어제 코즈일 작가가 정산비 7 대 3에 선인센 2천으로 맞춰줄 수 있다고 했어.”
“와! 정산비뿐만이 아니라 선인세도 낮춰졌어요? 저한테 쪽지 보냈을 때는 8 대 2에 선인세 2천 500 불렀었는데.”
불쑥 끼어든 이창윤 매니저의 말에도 김동현 팀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아…… 그런데 7 대 3이어도 대표님이 승인하실지…….”
“그건 내가 다시 말씀드려볼게. 반 정도는 이미 허락하신 것 같으니까.”
“예? 전속이나 기성도 아닌데 7 대 3을 허락했다고요? 대표, 그 짠돌이가?”
필터 없는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엠바고! 한 달간은 엠바고랬지! 크흠, 여하튼 나도 다른 출판사에 아는 사람들 있으니까 좀 물어봤어. 그런데 코즈일 작가가 다른 출판사에도 선인세 8 대 2에 선인세 3천 부른 게 맞다고 하더라고. 심지어 몇 곳은 특약 걸고 그렇게 계약 진행한다고도 하고.”
“근데 팀장님? 코즈일 작가가 다른 곳에는 8 대 2에 선인세 3천 얘기 하던데 왜 저희한테는 더 낮은 조건으로 계약한다는 거예요?”
조팟, 좋은 질문이다.
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더니, 너도 도움이 될 때가 있구나.
“음…… 그게 좀 애매한 부분인데, 코즈일 작가가 대신 특약으로 건 조건이 있어. 우선 담당자를 꼭 박정우 매니저님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네. 그래야만 계약하겠다고 해서.”
“네? 무슨 그런 미친…… 아, 실례했습니다.”
나는 마치 내 일인 듯 성을 내며…….
아, 내 일 맞지?
나는 주먹에 힘을 꽉 줘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회의실 책상을 내리치며 분이 풀리지 않는 듯한 액션을 취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 친구한테 공과 사는 똑바로 지켜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는데, 제가 헛소리하지 말고 다른 출판사 찾아보라고—”
“워허이? 어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정우 매니저! 아니야, 저얼대 아니야! 어제 한 말 기억해요? 우리 회사는 정우 매니저를 가족같이 생각한다고. 가족의 친구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지.”
“하지만 그래도 저는 아직 신입인데…….”
김동현 팀장은 곰같이 거대한 손을 허공에 휘적이며 손사래를 쳤다.
“원래, 신입이 다 일 배워가면서 하는 거지. 정우 씨, 너무 화내지 마. 안 그래도 어제 코즈일 작가가 정우 씨한테 이 말 하면 엄청 화낼 거라고 하더라고.”
“하아……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혼신을 담은 연기에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는 붕어같이 눈만 끔벅였다. 혼란스러울 테지.
지들 입구멍으로 넘어갈 줄 알았던 밥숟가락이 딴 놈 입으로 들어가니까.
“괜찮아, 여하튼 그렇게 됐으니까. 창윤 매니저가 기본 교정부터 작가님 소통 방법 관련해서 먼저 교육 진행해줘요.”
“네, 팀장님.”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간 이창윤 매니저와 달리 조팟은 아직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조금만 더 빨개지면 놈의 얼굴에 가득 난 여드름이 화산처럼 폭발할 것만 같다.
“하…… 아니, 팀장님! 아무리 그래도 신입이 하는 건 좀…….”
“좀, 뭐?”
“예?”
“이미 결정 난 거니까 거기까지 해.”
“……네.”
어제와 달리 신경질적인 팀장의 말투에 조팟은 당황한 얼굴이다.
‘조팟놈은 팀장이 왜 저런 태도인지 전혀 감도 못 잡겠지.’
어제저녁 내가, 아니 목소리 톤을 내리깐 코즈일 모드로 팀장과 통화를 했을 때.
나는 막무가내로 내 자신, 그러니까 박정우 매니저를 담당자로 해달라고 하진 않았다.
‘오히려 상세하고 논리 정연하게 그 이유를 전달했지.’
첫째. 조팟은 말도 어버버 거려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내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래서 내 담당으로 하기엔 매우 불안하고 신뢰가 안 간다.
둘째. 조팟과 계약을 할 바에야 이창윤 매니저와 하는 게 낫겠지만, 조팟은 어제 자신의 교정교열 능력이 팀 전체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했다. 덕분에 이창윤 매니저도 신뢰할 수 없다.
셋째. 박정우 매니저는 자신의 친구긴 하지만 천재다. 엄청난 속독 능력과 한 번 본 것은 좀처럼 잃지 않는 사진기 같은 기억력.
게다가 소설을 쓰게 된 이유도 박정우 같은 친구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등.
‘간단하게 내 금칠 플러스 조팟 병신 이 말이었는데…… 잘 먹혔네?’
이런 말을 들었는데도 김동현 팀장이 나와 계약을 시키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부턴 김동현 팀장의 문제이다.
하지만 어제 작가로서 통화해본 결과, 김동현 팀장은 곰 같은 외모에 여우같이 엉큼한 놈이었다. 어찌나 똥꼬를 성실히 핥던지 브라질리언 왁싱샵인 줄 알았으니까.
“그럼 특약은 그게 다예요?”
조팟이 입술을 샐쭉거리며 물었다.
“몇 개 더 있어. 하나는 자기 이름이랑 주소 대신 아버지 이름으로 하겠다더라고.”
“허, 진짜 까다롭네. 무슨 청소년이라도 돼요?”
“아니, 그건 아닌데. 그…… 뭐라 말해야 하나…….”
김동현 팀장이 내 눈치를 슬쩍 보자 그가 원하는 말을 도왔다.
“그 친구가 대인기피증이 심하게 있기도 하고 저도 그 친구도 고아거든요. 그래서 고아원 원장님 이름으로 계약하려는 건데, 그게 문제가 된다면 제가 계약 저희랑 하지 말고—”
“어허어이! 정우 씨. 무슨 말을 그렇게 직설적으로 해에!”
툭 던진 말에 팀장은 자기가 듣기 괴롭다는 듯 몸을 배배 꼬았다. 괴상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니야,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원래 정상적인 계약 방식은 아니지만 사정이 있는 건데, 그 정도는 당연히 회사 차원에서 배려해 줄 수 있지, 암.”
팀장이 이렇게 발 벗고 나서서 말하니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하지. 하루 만에 내 글의 성적은 더 미친 듯이 오르는 중이었으니까.
거기다 누가 추천글도 올려서인지 소설피아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 오늘의베스트 순위 1위, 장르별베스트 순위 1위 등 각종 순위에서도 1위가 됐는데, 인제 와서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다.
“일단 코즈일 작가와 계약은 이렇게 됐다고 알고 있고, 정우 매니저는 먼저 들어가도 돼요. 우린 따로 더 할 얘기가 있어서.”
“네, 팀장님.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회의실의 유리문을 닫고 나갔지만 그들의 말이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마지막 특약 사항, 그걸 말하나 보네.’
전날 코즈일 모드로 김동현 팀장과 통화하면서 내가 요청했던 마지막 특약 사항은 바로 코즈일 작가의 담당 매니저인 바로 나, 박정우의 계약 관련 내용이었으니까.
“……어, 그러니까요 작가님. 지금 말씀하신 특약 조건이 박정우 매니저가 중도에 퇴사하게 된다면 계약도 해지 된다, 이 말씀이 맞을까요?”
“맞아요. 앞서 말했듯이 이 내용은 절대 정우가 알지 못하게 해주세요. 저는 정우 덕분에 글을 쓰게 된 거예요. 제 글을 누구보다 자세히 분석하고 교정할 사람은 정우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요.”
“하지만 보통 그런 식으로는 계약을…….”
“제 글이 완결되기 전에 정우가 퇴사라도 하게 돼서 다른 편집자가 제 글을 담당한다면 계약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아요. 솔직히 아까 통화했었던 조팟? 그런 사람이 에이스라고 하는데 도저히 믿고 맡길 자신이 없습니다. 마지막 조건, 이 부분이 꼭 특약에 들어가야만 계약할 겁니다. 대신 정산비 7 대 3에 선인세 2천에 계약해 드릴 테니까요.”
훌륭하다 박정우.
급조해서 넣은 제안이었지만 정말 명안이다.
이로써 웬만해선 내가 BS북에서 잘릴 일은 없을 테니까.
‘첫 단추는 잘 끼워졌네.’
이제는 내 글만 잘 쓰면 될 테다.
내 성적이 오르면 오를수록 BS북은 코즈일 작가를 그리고 나를 놓치지 못할 테니까.
* * *
코즈일, 즉 나와 BS북의 계약에 앞서 대표와 출판 본부 본부장, 판무 2팀 김동현 팀장 사이에선 고성이 몇 차례 오갔다.
“후우…….”
그 짧은 시간 동안 몇 년은 나이를 더 먹은 듯, 지친 얼굴의 김동현 팀장이 대표실 밖으로 빠져나오는 걸 보니, 이제야 그들 사이에서 합의가 마무리된 모양이다.
“정우 매니저. 잠시만.”
“네, 팀장님.”
나를 따로 불러낸 김동현 팀장의 뒤를 따라 소회의실로 들어가니 곰 같은 체구의 그가 히죽였다.
“대표님하고 본부장님 설득하느라 혼났어. 진짜 우리 측에서도 신인 작가한테 이렇게 양보 많이 한 거 처음이야. 아, 이런 얘기는 작가님한테는 따로 전하지 말고. 괜히 생색내는 거 같으니까.”
“물론이죠.”
어처구니가 없네?
특약 넣은 건 조금 애매하긴 해도, 정산비랑 선인세 정도는 당연히 맞춰 줘야지?
BS북에선 계약서로 작가 후려치는 게 일상이라 그런지 이 성적이면 당연히 받아야 할 계약 조건을 아주 선심 쓰듯 말한다.
“계약서도 정우 매니저 말대로 전자 계약서로 진행할 테니까, 코즈일 작가님한테 계약서 양식 읽어보시고 공란에 개인 정보 기입해서 회신해달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좋아, 고생했으. 아! 그리고 계약 후에 코즈일 작가님 소설피아 계정 아이디랑 비밀번호 전달받아서 경영지원팀에 공유해주고.”
잘 나간다 싶더니만.
뒷말에 자연스러운 개소리가 섞여있다.
“팀장님?”
“왜? 더 할 말 있어요?”
“코즈일 작가님 계정은 왜 필요할까요? 원고 예약 등록은 작가님께서 직접 하기로 하셨는데요?”
“아아. 별거 아니고. 그건 정산 때문에 필요해요.”
“정산이요?”
“어, 소설피아에서 매달 정산 내역을 보내주기는 하는데, 경영지원팀 자체 정산이랑 차이는 없는지 확인 절차를 걸치거든. 소설피아 아이딜 우리가 안다고 작가님이 버시는 금액이 줄어들거나 그런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하, 그렇군요?”
긍정의 끄덕임 후 나는 회사 근처 카페로 가 음료를 하나 사 마셨다. 카페에서 잠시 느긋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천천히 자리로 돌아와 김동현 팀장을 찾았다.
“팀장님, 코즈일 작가님께서 계약서에 추가로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하셔서요.”
“어후…….”
김동현 팀장의 얼굴에 귀찮은 기색이 가득하다.
하지만 어쩌겠어? 니네 회사가 이따군데?
앞으로 잘 적응해 보라고.
이제 나도 여기 다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