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불입호혈이면 부득호자다.
“과거로 돌아왔다라…….”
신의 장난인지 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10년 전 과거로 돌아왔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상태창!”
“스테이터스 오픈!”
타인에겐 절대 보일 수 없는 부끄러운 행동을 몇 차례 했지만, 이능이 생기진 않았다.
수중의 돈은 보육원 퇴소 후 받은 자립정착금과 과거의 내가 알바로 저축한 827만 3,210원.
“거참…… 통장 잔고 차암 조촐하네.”
10년 전 지금 이맘쯤.
처음 800이 넘는 돈이 생겼을 때 나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당시 난 이런 거금을 만질 일이 살면서 조금도 없었으니까.
그때는 단지 열심히 살기만 하면 보답받는 세상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니 고등학교 졸업 후에 뭣도 모르고 그 똥 같은 회사에 취직해 대리까지 버텼지.
그리고 웹소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던 타이밍에 다니던 회사는 주가조작과 온갖 비리로 망하게 됐고, 나는 졸지에 전업 작가 생활을 하게 됐다.
벽만 보고 글을 쓰는 외로운 싸움이 몇 년간 지속됐지만, 세 번째 작품을 집필하며 드디어 성공한 작가로 살 수 있다고 믿었었다.
소송에 휘말리기 전까지는.
“BS북…… 생각하니 또 빡치네.”
구원의 동아줄이라 여겼던 그 끈은 희망의 색으로 코팅된 썩은 동아줄이었다. 나를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트렸던 출판사 놈들을 생각하니 피가 들끓는다.
“후우…… 참자. 아직 일어난 일도 아니잖아.”
이제 돈은 문제가 아니다.
수중의 돈은 천만 원도 안 됐지만, 정보는 곧 힘. 그리고 나는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해봤지만 정말 회귀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럴 줄 알았다면 로또 번호라도 하나 외워뒀어야 했는데.
“상관없지. 자본금만 생기면 대기업 주식이랑 비트코인에 장투하면 돼. 그리고 이젠 글만 쓰면 되니까.”
비록 사기 계약으로 내 커리어는 박살났지만 나는 내 능력을 알고 있다.
출간했던 내 글들은 모두 삼대장이라 불리는 메인 플랫폼에서 대박이 났었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돈은 문제가 아니다.
“하…… 이 개새끼들.”
다만 내가 1인 출판사라도 차리지 않는 이상 신작 유료화를 하려면 무조건 계약을 해야만 한다. 이건 과거로 돌아왔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
나는 작가들이 당할만한 사기는 모두 당했다고 볼 수 있기에 이 시점에 어느 출판사가 양아치 짓을 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비단 강경진 그리고 BS북만 그럴까?’
그딴 말 같지도 않은 사기로 작가들의 피눈물을 빨아먹는 놈들. 그런 놈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이 업계에 그런 역겨운 놈들이 숨어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속이 매스껍다.
“안 돼…… 안 되지. 속이 안 좋은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제 돈은 문제가 안 된다.
미래에 인기 있을 트렌드 그리고 먹히는 글을 쓰는 방법, 나는 그 모든 걸 체화했으니까.
그러니 돈은 돈대로 벌면서 내가 사랑하는 이곳, 출판계의 물갈이가 필요하다.
조질 것이다. 그 쓰레기 놈들을.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불입호혈이면 부득호자지.”
마음을 먹었으니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네 피시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력서를 쓰기 위해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니까.
* * *
2014년으로 회귀한 지 한 달 정도가 흘렀다.
오늘은 구정이 지난 첫 출근날인 2월 3일.
고인물 독자이자 기성 작가인 내게 출판사 입사 면접과 교정 테스트 따위는 조금도 어려울 게 없었다.
“후우…… 춥네. 여기였나?”
합정역 5번 출구에서 상수 방면으로 쭉 내려오면 보이는 9층짜리 작은 빌딩.
면접 때 두 차례나 오긴 했지만, 1층 입구에 BS북이라고 써진 소간판을 보니 여전히 기분이 더럽다.
‘그동안 많이도 처 잡수셨구만. 얼마나 뜯어먹었으면 이딴 건물에서 강남으로 가냐?’
이전 생에 왔었을 때는 강남 한복판의 거대한 사옥이었는데, 지금은 고작 9층짜리 건물이다.
그것도 모든 층을 다 쓰는 것도 아니고.
“그럼 가볼까.”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모습으로 잠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버튼을 눌렀다.
팅—!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2층에 도착했고 BS 북이라고 적힌 유리문이 보였다. 출근 시간 10분 전인데 아직 빈 자리가 많아 보인다.
“네, 작가님. 그 부분은 늘어지는 감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수정을…… 자암시만요 작가님.”
다크서클이 유독 진한 후드티 차림의 젊은 남자가 통화를 멈추고 나를 빠르게 훑어봤다.
“어떻게 오셨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판무팀으로 첫 출근한 박정우라고 합니다.”
“1팀? 2팀?”
“2팀입니다.”
“들어가서 왼쪽, 직진. 2팀이라고 써 있을 거예요.”
“네, 감사—”
“죄송합니다 작가님. 그러니까요 2화 도입부를 보시면…….”
옷차림이 영락없는 대학생 같던 쾡한 눈매의 남자는 빠르게 계단을 향해 사라졌다.
흔히 매니저라고 부르는 웹소설 편집자들은 이직이 잦다고 하던데, 대체 업무량이 어떻길래 사람 몰골이 저렇게 되는 거지?
딱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바쁘겠지. 사기 치러 다니려면.’
나는 이제 외모로는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저 앳돼 보이는 놈도 사기꾼일 가능성이 농후하니까.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직접 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선량한 편집자라고 재단할 수 없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로 BS북 판무팀 매니저로 함께하게 된 박정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내가 배정받은 판무 2팀의 자리는 총 넷.
시계는 8시 51분을 가리키는데, 자리에 있는 건 얼굴도 보지 않고 건조한 인사를 건네는 뿔테 안경뿐이다.
“안녕하십니까.”
“…….”
바로 옆 팀인 판무 1팀에게도 인사를 건넸지만 그쪽 사람들은 아예 대답도 없고.
‘노랗네. 싹수가 노래.’
한 줌의 기대도 없었기에 실망도 없었지만, 이런 싸가지 없는 매니저들 때문에 작가가 피해 보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다.
“정우 씨 왔네요?”
“안녕하세요, 팀장님.”
속으로 갈아엎을 게 많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 곰 같은 덩치의 사내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1차 면접 때 봤었던 판무 2팀 팀장 김동현이다.
“정우 씨 자리는 여기.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에 주간 회의 있거든요? 오늘 회의하면서 따로 소개하는 시간 갖기로 합시다. 앞으로 같이 잘 해봐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하, 파이팅 넘쳐서 좋아. 그럼 이창윤 매니저 들어오면 주간 회의 시작하자고요.”
“저 왔습니다. 바로 시작 하시죠.”
“오케이. 다들 그럼 회의실로.”
다크서클의 이름이 이창윤인가보다.
김동현 팀장의 말에 팀원들은 표정 없는 로봇처럼 일어서 사무실 한쪽 끝에 있는 대회의실로 이동했다.
‘회사 문이랑 회의실이랑 싹 다 유리네.’
블라인드도 없는 대회의실의 모습이 비리의 온상인 BS북과 달리 투명하기 그지없다.
잠시 후 김동현 팀장이 유리문을 닫고 들어와 ‘주간 회의록’이라 적힌 A4 용지를 나눠줬다.
팀장 옆자리에 앉은 뿔테 놈은 회의록을 읽지도 않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 진짜 퇴사하고 싶다…….”
“어허, 조성훈 파트장님! 신입 입사 첫날인데 그런 소리 말랬지?”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파트장을 향해 잠시 눈을 부라리던 팀장은 나를 보며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조성훈 파트장님이 그동안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 그래. 그렇다고 우리 회사가 나쁜 회사는 아니니 오해 말고. 월급은 많지 않아도 밀리거나 이런 일은 절대 없어요. 매월 25일에 아주 칼같이 들어오니까, 아하하핫!”
월급이 제때 들어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당연한 걸 특혜라도 되는 양 말하는 게 신박하다.
“자자, 여하튼 우리 판무 2팀의 영광스러운 올해 첫 신입, 박정우 매니저님입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능력자예요. 대여점 소설들은 말할 것도 없고 트렌드 분석 이런 건 운영팀보다 나은 것 같아, 하하. 그리고 교정, 교열, 윤문 테스트 만점이야 만점! 만점자는 회사 창립 이래로 처음인 거 다들 알지?”
“만점이 뭐 대수에요? 여기가 순문학 출판사도 아니고 작가 계약이 메인인데, 어차피 빵점이 아닌 이상 상관도 없잖아요. 그리고 운영팀이 일을 하는 게 있나? 실수나 안 하면 다행이지.”
의례적인 신입 금칠에도 태클을 거는 파트장.
싹수가 노랗다 못해 썩어 문드러진 놈이다.
“어허, 조팟! 자꾸 이상한 말 할래?”
“팀장님, 이름 줄여서 부르지 말라니까요?”
“여하튼 다시 한번 정우 매니저님 입사를 환영하고, 앞으로 한 달간 신입 교육은 이창윤 매니저가 담당할 거예요. 교육받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조팟이나 저한테도 언제든 물어보시고.”
“네, 알겠습니다.”
이때 조팟의 입가가 씰룩였다.
“저한텐 묻지 마요. 바쁘니까.”
“어허?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정우 매니저님 걱정 마요. 우리 조팟이 말은 이렇게 하지만 궁금한 거 물어보면 언제든 성심성의껏 답해줄 거니까. 그렇지 조팟?”
“하…… 귀찮은데…….”
회귀 전 내가 얻었던 기술.
이름하여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란 기술이 있다. 소설 속 상태창을 불러오는 것 같은 이능력은 아니지만,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란 사람이 숨기는 미세한 표정을 읽는 기술이다.
훌륭한 영업 사원일수록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능통한데, 이는 1/25초 내의 매우 짧은 순간을 포착해 상대방이 거짓을 말하는지 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는 능력이다.
‘팀장은 정말 모르는 건가? 조팟놈의 얼굴은 완전 진심인데?’
금세라도 독설을 퍼부을 듯한 여드름 가득한 얼굴에 당장이라도 화장실을 가고 싶은 듯한 표정. 조팟은 누가 봐도 진실을 말하고 있었지만 팀장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얼굴이다. 아니면 귀찮아서 방관하는 걸 테고.
“자, 그럼 2014년 2월 1주 차 주간 회의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조성훈 파트장은 오크는핑크 작가 런칭 준비 잘 되고 있어요?”
“뭐……네. 작가 새끼가 원고를 안 주긴 하는데, 계속 쪼는 중이에요.”
“오우케이. 그럼 다음은…….”
방송국 놈들보다 더한 놈들이 편집자 놈들이라고 하더만.
입사 첫날부터 작가 새끼라는 말이 입에 붙은 파트장의 태도 그리고 이걸 당연한 듯이 넘어가는 팀장의 반응을 보니 윤리관이나 직업 의식이 썩어 문드러져 보인다.
“좋아. 조팟은 그럼 추가 컨택 신경 써 주시고 다음은 우리 에이스 이창윤 매니저.”
다들 초췌한 안색이었지만 내 사수인 이창윤의 다크서클이 유독 진한 게 그가 팀 에이스라는 걸 방증하는 듯하다.
“지난주에 코즈일 작가 컨택 쪽지 보냈다고 했는데, 아직 답변 없어요?”
“네, 없습니다.”
‘코즈일? 잠깐…… 그건 내 필명인데?’
흔히 컨택이라고 부르는 출판사의 쪽지.
출간 계약을 원하는 출판사가 작가에게 보내는 연락을 뜻한다.
‘어처구니가 없네. 벌써 입질이 들어왔을 줄이야.’
나를 가장 먼저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던 BS북에서 다시 컨택을 했다니.
짜릿하다. 이제 조질 일만 남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