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57. 긴급한 탈주
* * *
뭔가 싶어 유지윤이 바라보는 쪽을 바라보니 분주하게 움직이는 초대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검문하듯이 줄에 서있는 초대자 하나하나를 강압적인 태도로 확인하고 있었다. 다양한 양식의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여러 집단에서 파견된 사람들 같았다.
그에 불만을 제기하는 초대자도 있었지만 검사하던 제복차림의 초대자들이 마력을 한 번 방출하자 입을 싹 다물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력 파동이 생생히 느껴졌다. 하나같이 상당한 강자들임에 틀림 없었다.
그렇게 무력을 과시해가며 뭔가를 찾는 듯한 초대자들은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사르비나 거점 수뇌부 초대자들을 보니 범상치 않은 이들임이 확실했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가 서 있는 곳까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뭔가 심상치 않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렇게 갑작스런 조사가 있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거기다 저런 식의 강압적인 태도로 초대자를 한 명 한 명 수색한다는 것은 분명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시기에 소환에서 복귀하는 초대자 중 누군가를 찾는다?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엄습했다.
“어..? 저거 고려 클랜 같은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벨이 말했다. 벨은 제복을 입은 초대자들 중 몇몇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복의 등 쪽에 고려 클랜의 태극 문양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맞는 것 같았다.
“...진짜네.”
“저기 화이트 하우스도 있어.”
그러다 유지윤도 자신이 속한 클랜을 찾아내며 한 마디 보탰다. 아무래도 5대 클랜을 비롯한 대형 클랜들이 나서는 일인 모양이었다.
나는 결국 내 불안감에 대해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낙관적으로 아무 일 없다고 생각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얘들아. 이거 아무래도..”
그렇게 내가 이제 막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앞을 살피던 나와 제복을 입은 초대자 중 한 명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순간 멈칫 하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 눈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내가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그녀의 눈에 마력이 모여들었다. 눈에 마력을 순간적으로 집중하는 것으로 보아 색적 계열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 ㅈ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뭔지는 모르지만 분명 초대자에 대한 정보는 엿보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기 있다!!!!”
“어.. 저기!!”
“잡아라!!!”
이렇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망할!!”
나는 곧바로 3단계 가속을 밟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임프를 잡다가 얻은 스킬이지만 의외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도약 스킬까지 사용하며 빠르게 숲을 향해 달렸다.
그런 내 뒤를 클랜에서 파견한 초대자들이 매섭게 쫓아왔다. 수색을 하던 초대자들이 모조리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벌어진 추격전에 다른 초대자들은 크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초대자들에게 클랜 소속 초대자 한 명이 소리쳤다. 마력을 성대에 때려넣는 건지 뭔지 모르겠으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초대자 분들께 알립니다! 저희는 인간 측 클랜 연합에서 나온 초대자들 입니다! 지금 도망치는 저 ‘배반자’를 잡는데 협력해 주십시오! 저 자를 잡는 초대자에게는 클랜 연합에서 큰 보상을 드릴 것입니다!”
“저 자는 본래 천사들의 소유였던 중대한 물건을 빼돌려 그것으로 악마들을 끌여들었습니다! 어제의 참사도 저 ‘배반자’가 일으킨 것입니다! 이에 클랜 연합에서 저희를 파견하여 잡아오도록 시킨 것이니 모든 초대자들은 협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저 망할 클랜들은 아예 나를 공적으로 만들 생각인가 보다. 천사들인지 악마들인지 혹은 둘 다인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수작질이 분명했다. 자기들의 끄나풀들을 움직여서 기어코 클랜 연합까지 움직인 모양이었다.
문제는 공신력과 신뢰를 가진 집단인 저들이 저렇게 나오면 일반적인 초대자들은 믿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마냥 당황하던 초대자들이 하나 둘 정신을 차리고 나를 쫓기 시작한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환각 가스 살포’
‘지면 성질 변화 유화’
나는 그동안 1계층에서 다양한 악마들에게서 탈취해 얻어낸 기술들을 아낌 없이 펼쳤다. 폴른 페어리를 잡고 얻은 일정 범위에 환각을 일으키는 기술이나, 웜을 잡고 얻어낸 지면의 성질을 일시적으로 바꾸는 기술 등 생각나는 대로 마구 펼쳤다.
물론 이런 잡기술에 클랜 소속의 초대자들은 당하지 않았지만 다른 1계층의 초대자들의 발을 묶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벌써 저들끼리 충돌하거나 서로의 발목을 잡으며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클랜 소속 초대자들은 벌써 내 지척까지 따라잡은 상태였다. 가속을 3단계로 밟고 스톡을 혹사 시키는 수준으로 전신에 마력을 돌리고 있건만 기본적인 스펙 차이가 너무 컸다. 거의 내 뒤를 따라잡은 초대자들이 날 잡기 위해 기술 사용 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추방자를 베어가르는 검’
‘열폭발’
수평으로 뻗어나가는 성화의 검기로 틈을 만들고, 갑작스런 폭발로 초대자들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그것만으로 저들을 떼어내기에는 택도 없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간 벌기일 뿐,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초대자들은 단순 달리기로 나를 잡기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기술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클랜 연합에서 내린 지침 중엔 나를 사지 멀쩡하게 데려오라는 말은 없었던 모양이다.
날아드는 빛의 화살을 피하고, 다리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검기를 같은 검기로 받아쳤다. 주변 마력이 갑작스레 무거워지며 나를 붇잡으면 성화의 마력으로 불태우며 나아갔다.
놀랍게도 어찌어찌 버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잡히는 건 그야말로 시간 문제인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 도망칠 방법이 있을까?
도망을 쳐도 어디로 가지? 저들이 못 쫓아오는 곳이 있긴 한가?
온 몸의 마력을 과부하에 가깝게 운용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도망칠 수 있는지, 저들을 따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 없이 고민했다.
그러던 도중 카마엘의 말이 머릿속에 꽂혔다.
‘계층 이동해! 2계층으로 튀라고!’
‘뭐..? 아!!’
그렇다. 정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면 다른 계층으로 튄다는 마지막 선택지가 있었다. 물론 원래대로 라면 안전지역에서만 이동이 가능하기에 지금은 불가능 했겠지만, 계층 이동 조건을 만족한 다음 첫 이동에는 제한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예외 조건에 정확히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물론 계층 이동을 했을 때 정말 운 없이 인간 거점에 떨어진다면 꼼짝 없이 잡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종족의 거점에 떨어질 가능성이라도 있으니 적어도 지금보던 무조건 나을 것이다.
결심을 마치자 마자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젠 정말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초대자들이 바짝 추격해오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당당히 중지를 치켜들며 외쳤다.
“느X마 루시퍼다 이 개새끼들아!!”
‘2계층으로 이동.’
지지지지지지지직!!!
빡침으로 일그러지는 초대자들의 얼굴을 뒤로 하고 내 몸은 노이즈에 뒤덮이며 사라졌다.
***
지지지지지지지직!!!
지옥의 제 2계층. 부정한 늪지라고 불리는 곳 허공에서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나타났다. 점점 커지던 노이즈는 사람 몸통만 한 크기가 되었을 때 확장을 멈추더니 이내 사람 한 명을 뱉어냈다.
“흐어어억, 허억, 헉.”
바닥에 엎어진 채로 거친 숨을 고르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온 몸의 근육과 장기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방금 전까지 목숨을 걸고 추격전을 벌이다가 계층 전송으로 속이 뒤집어지기까지 하니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몸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다른 종족의 랜덤한 거점으로 떨어졌다면 문제가 없지만 인간의 거점이라면 당장 거점 밖으로 도망을 가야했다.
주변을 살피는 내 눈에 비친 것은 온통 초록색이었다. 지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색깔인 초록색. 나는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으려 애쓰며 사방에 가득한 초록색을 둘러보았다.
일순간 시야를 가득 매웠던 초록색은 주변에 무성한 식물들 때문이었다. 작은 잡초들부터 기다란 갈대, 적당한 크기의 관목이나 크고 무성한 나무도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상당한 이질감을 느꼈다. 이 황무지에 가까운 지옥에서 식물이라니? 지금까지 한 달 간 이곳에 살면서 전혀 본적이 없는데? 환란의 숲을 구성하는 나무들처럼 층의 환경으로서 조성된 나무가 아니면 그림자도 본적이 없는 것이 식물이었다.
그럼 이 장소는 대체 무엇일까?
그런 내 상념은 갑자기 내게 말을 건 누군가에 의해 깨졌다.
“저기요...”
기다란 귀, 색감이 옅은 머리카락, 호리호리한 몸매, 미(美)형의 얼굴.
“괜찮으세요?”
“아...”
그렇다.
나는 엘프들의 거점에 떨어진 것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