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56.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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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조건을 생각할 때 내가 중앙신전에 들어가는 것은 적절한 선택지라고 볼 수 있었다. 어차피 다른 집단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천사들이나 악마들로부터 보호막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가진 힘을 생각해볼 때 특정 성향의 신들은 확실히 나를 선호할 것이 분명했다. 카마엘의 조각을 품고 성화의 마력을 두른 그릇. 신에 따라서는 군침을 흘리는 신도 있으리라.
물론 신전 연합에 가서 신의 부름을 받을 때 결국 어떤 신이 나를 찾아올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
이러한 계획에 대해 팀원들에게 말해주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신전으로 들어가면 우리 중 한 명이랑 같은 집단이 되진 않겠네.”
“뭐 아쉽긴 하지만, 몸 담을 곳이 그곳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너랑 잘 맞는 신을 만났으면 좋겠다.”
처음에 이해를 못했던 팀원들도 이후의 설명을 듣고 납득한 모양이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전부 클랜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집단에 소속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자신들은 클랜에 소속되어 있지만 클랜을 신뢰할 수 없다는 나를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
이야기를 듣고있던 린펠이 말을 꺼냈다.
“우리 모두 2계층에 갈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게 먼저겠군.”
“그렇지.”
“그렇네.”
2계층에 가기 위해서는 달성해야할 조건이 있다. 사실 2계층만이 아니라 지옥에 있는 모든 계층은 입장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계층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2가지의 특정한 조건은 공유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무작위 소환을 최소 한 번 이상 겪어야 한다는 것. 이는 곧 다른 조건들을 전부 만족했더라도 무조건 한달 가량을 머물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그 한 달 사이에 다른 층으로 넘어갈 만큼 강해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상관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두 번째는 정해진 수만큼 그 계층의 악마를 죽여야 한다는 것. 이 숫자는 층계마다 다르지만 악마를 일정 수 죽여야 한다는 것은 항상 같았다. 2계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1계층의 악마를 80마리 이상 죽여야 했다.
첫 번째 조건은 무사히 거점까지 복귀하면 해결될 일이었고, 두 번째는 거의 달성 직전이라서 거점으로 가는 길에 충당하면 될 듯 싶었다.
“그럼 2계층으로 넘어가는 조건은 거점까지 가면 다들 완성되겠네?”
“그렇지. 일단 거점에 도착하면 챙길 것들을 챙기고 바로 떠나자. 1계층에 오래 남아있으면 또 누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래. 그 다음 진운이 중앙 신전에 들어가고 나서는... 그때 다시 의논하자.”
그렇게 계획에 대헤 어느 정도 이야기를 마친 우리는 다시 주변에 대한 경계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걸음 속도를 올리며 거점으로 향하는 길을 서둘렀다. 이어서 린펠과 지윤이 각자의 방법을 이용해서 길을 찾아내자 우리의 발걸음에는 더욱 가속이 붙었다.
세상에 게획대로만 되는 일은 없다지만, 그래도 무언가 제대로 된 첫 발을 내디딘 것 같았다.
***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최하급과 하급 악마들은 우리와 마주치는 족족 죽어나갔다. 사실 이미 우리 실력이 1계층에서 애먹을 실력이 아니었기에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중간에 폴른 페어리들이 환각의 숲 효과를 극대화 시켜서 우리를 교란하려 했을 때가 그나마 위험하긴 했다. 하지만 시의적절하게 펼친 내 성역화에 그 모든 시도가 의미를 잃었다. 그와 동시에 뻗어나간 팀원들의 무기가 그들을 썰어버리면서 싱겁게 끝났다.
그렇게 악마들을 쓸어버리며 나아가던 우리는 곧 중심 대로로 이어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대로를 중심으로 나뭇가지나 갈비뼈처럼 뻗어있는 길 중 하나를 찾은 것이었다.
그렇게 길을 따라 가는 드문드문한 초대자 행렬에 합류하고 나니 행렬의 구성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을 걸어가는 초대자들 중에는 우리와 같은 인간도 있었지만 다른 이종족들도 많이 보였다.
창백한 피부와 기다란 귀, 긴 수명이 특징인 엘프들은 경계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키와 덥수룩한 수염을 가졌고 다양한 기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드워프들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몸이 반투명한 영체로 이루어졌고 각종 마력에 가장 친화적인 종족인 스피릿은 나른한 표정으로 조용히 부유하고 있었다.
이 세 종족들이 가장 많이 보였으며 그 외에 여러 소수 종족들도 있었다. 다들 각자 개성적인 모습을 보이며 이동하다 종종 길에 침범하는 악마와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길에서는 암묵적으로 악마가 나타나면 가장 가까운 팀이 처리한다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몇 차례 전투를 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꼬박 하루를 걸어서 대로에 도달하였다. 중간에 야영을 한 번 한 뒤에 대로에 합류하자 아까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많은 초대자들이 대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정말 대로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넓고 긴 길이었다. 그런 길을 따라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초대자들이 걷고 있었다. 개중에는 이미 알던 사이인지 아니면 협력하기로 약속을 한 건지 5명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함께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초대자 행렬에 우리도 재빨리 합류했다. 대로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이미 2계층에 넘어가기 위한 악마 처치 숫자는 전부 채웠다. 그 덕분에 내 레벨도 43레벨이 되었고. 그러니 이젠 최대한 빠르게 거점으로 복귀하는 것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거점에서 지급받은 지도를 살펴보니 현재 우리가 있는 길은 동쪽으로 뻗은 대로, 즉 인간의 거점인 사르비나 거점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익숙한 장소로 이어진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른 종족의 거점을 구경하지 못해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로를 따라 걸으며 거점으로 이동했다. 대로에 사람들이 많다 보니 대로를 습격하려 드는 하급 악마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초대자들이 많은 만큼 강력한 초대자들도 행렬에 여럿 섞여있었다. 그러다 보니 겁 없이 대로를 습격하는 악마들은 대체로 순식간에 목이 썰리거나 머리가 터지는 등 뭘 해보지도 못하고 퇴장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거점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저 멀리 보이는 거점의 장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도착할 떄가 가까운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이제 거의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우리는 거점에 도착한다고 마냥 끝이 난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조금 더 길을 따라 걸으니 거점이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거점 바깥에서는 복귀하는 초대자들을 체크하고 치료하기 위함인지 여러 초대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점에 거의 다다르자 눈앞에 메세지 창이 나타났다.
[거점 복귀의 성공을 확인.]
[초대자 김진운 생존]
[처음으로 무작위 소환을 완수했음을 확인.]
[칭호, ‘자격을 증명한 자’를 획득한다.]
[무작위 소환 1회 이상 완수 조검 달성(1/2)]
[1계층 악마 80마리 이상 처치 조건 달성(2/2)]
[2계층 개방 조건 충족을 확인.]
[칭호, ‘1계층 통과자’를 획득한다.]
[초대자 김진운은 원하는 시점에 2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
거점 복귀에 성공하자 여러 가지 알림들이 쏟아졌다. 거점 복귀로 얻는 칭호와 2계층의 개방, 그리고 그를 통해 얻는 칭호까지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칭호 창을 열어보았다.
칭호
최악의 시험을 통과한 자: 난이도 ‘상’ 시험을 최초로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보유할 시 각종 상황에서 행운이 따르며, 3일마다 죽음에 이르는 일격을 무조건 한 번 막아낸다.
악마 사냥꾼(하급): 15Lv 이하의 레벨로 하급 악마를 사냥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보유할 시 격이 높은 악마를 마주할 때 압도 당하거나 상태 이상에 빠질 확률이 줄어들고, 하급 ~ 중상급 악마에게 주는 데미지가 25% 증가한다.
최고의 파트너: 다른 초대자와 힘을 합쳐 입문자의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최대 3명까지 서로 지정한 초대자와 함께 전투할 경우 마력 흡수율 20% 상승, 적에게 주는 데미지 15% 상승의 효과를 받는다. 또한 하루에 한 번 지정한 초대자와 즉시 자리교체를 할 수 있다.
현재 등록된 초대자 유지윤, 린펠 하이드리히, 이해나, 아미르 벨
자격을 증명한 자: 첫 무작위 소환에서 무사히 생환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이를 보유함으로서 비로소 지옥에서 살아갈 자격을 증명했다 볼 수 있다. 보유할 시 자연적인 상처 회복 속도가 10% 상승하고, 미약한 수준의 정신 면역을 얻는다.
1계층 통과자: 2계층 개방 조건 두 가지를 달성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보유할 시 원하는 순간에 한 번 2계층으로 이동이 가능하며, 타계층의 안전지역에서 한 달에 한 번 1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
무작위 소환을 완수한 것과 2계층을 개방한 것에 대한 칭호가 추가되어 있었다. 입문자의 시험을 통과한 이후로 시스템의 인정을 받아 칭호를 얻기는 처음이었다.
‘자격을 증명한 자’ 칭호는 아무래도 거의 모든 초대자가 얻을 수 있다보니 주는 효과가 대단하진 않았다. 물론 앞서 얻은 칭호들이 너무 대단해서 내 눈이 높아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1계층 통과자’는 말 그대로 2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티켓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른 계층에서 원하는 때에 1계층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생각보다 유용한 기능이었다. 한 달에 한 번이긴 하지만 수틀릴 때 도주 수단으로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칭호에 대한 정리를 끝낸 나는 팀원들과 함께 거점으로의 발걸음을 서둘렀다. 거점에 대문 앞에 다다르자 우리는 체크를 기다리는 초대자 줄에 서서 우리의 차례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기다리는 도중이었다.
“...뭐지?”
유지윤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뭔가 싶어 유지윤이 바라보는 쪽을 바라보니 분주하게 움직이는 초대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검문하듯이 줄에 서있는 초대자 하나하나를 강압적인 태도로 확인하고 있었다. 다양한 양식의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여러 집단에서 파견된 사람들 같았다.
그에 불만을 제기하는 초대자도 있었지만 검사하던 제복차림의 초대자들이 마력을 한 번 방출하자 입을 싹 다물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력 파동이 생생히 느껴졌다. 하나같이 상당한 강자들임에 틀림 없었다.
그렇게 무력을 과시해가며 뭔가를 찾는 듯한 초대자들은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사르비나 거점 수뇌부 초대자들을 보니 범상치 않은 이들임이 확실했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가 서 있는 곳까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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