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55. 전략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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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적어도 너와 지금껏 동고동락한 우리라면 네말이 사실인 걸 인정 할 수 밖에 없어. 우리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고.”
유지윤도 한마디 하며 동의를 표했다.
“근데...”
그렇게 다들 이야기 하던 중, 이해나가 입을 열었다.
이해나가 말을 꺼내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다들 할 말이 있더라도 일단 입을 닫아 버렸다. 그동안 정말 말 수가 적었던 이해나가 먼저 말을 꺼내는 상황인 만큼 다들 내색은 하지 않더라도 상당히 놀라워하며 반기고 있었다.
그 묘한 정적과 기대에 잠시 부담스러워하던 이해나가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리... 엄청 위험한 상황인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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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나의 말에 일행 전체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약간 싸해진 표정과 함께 다들 말이 없었다. 다들 일부러 언급하는 것을 피하거나 미루던 것을 정확히 짚은 듯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내 말이 진실이라고 할 경우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올 게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 솔직히 밝히고 넘어가는 것이 내 목적이었으니까.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이해나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진운을 탓하자는 게 아니야. 어쨌든 진운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위험한 건 사실이잖아? 지금 우리의 수준으로는 넘볼 생각도 할 수 없는 대악마들이 진운을, 정확히는 카마엘의 조각을 노린다는 거잖아. 천사들도 진운이나 우리들에게 마냥 좋게 나올지는 모르는 거고.
당장 어젯밤에 있던 일을 생각해봐도 그래. 상당한 희생까지 감수하면서 상급 악마를 1계층에 보낼 정도로 악마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아마 진운 주변에 있다 보면 앞으로도 이런 위험한 일들이 더 생길 것 같은데..”
“그렇다고 진운을 버리자는 거야?”
이야기를 듣던 유지윤이 뭔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끼어들었다. 그러자 이해나는 약간 미간을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버리자고 말한 적 없어. 단지 그만큼 위험하다는 거야. 오히려 우리가 진운을 버리고 떠나는 건 최악의 수야.”
“...최악의 수라고?”
이번엔 내가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나는 이런 진실들에 대해 밝히면 당연히 이탈자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위험성을 이해나가 짚길래 이해나가 이탈할 생각인가보다 했었다. 그러나 전혀 생각지 못한 답이 나왔다.
이해나는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시선을 돌려 다른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생각해봐. 지금 진운은 그런 대악마들, 또 대천사들이 탐낼만큼 대단한 것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그것은 지옥과 천계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을 정도지. 하지만 진운은 현재 어디 가서 대놓고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야. 초대자 집단 여기저기에 악마들과 천사들의 눈과 귀가 숨어있으니까 섣부르게 도와달라고 말할 수 없는 거지.
그런데 만약 우리가 진운을 버리고 가버리면 어떻게 될까? 진운은 거의 혼자서 온갖 상황을 겪고 해쳐나가야 하겠지. 그리고 그렇게 되면 결국 악마들이 진운을 잡을 확률이 훨씬 높아질 거야. 아무리 강하더라도 혼자라면 명백한 한계가 있을테니까. 그럼 결국 그들이 카마엘의 조각을 가질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들을 죽이겠답시고 날뛰는 악마들이 훨씬 강대해지겠지.
그럼 우리를 포함한 인간들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어? 안 봐도 뻔하지. 이곳 저곳이 전부 피바다가 될거야. 아마 최소한 3~4개의 계층에 걸친 대학살이 일어날 거라고 봐. 그리고 그 중에 우리가 포함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차분하지만 열정적으로 말을 쏟아낸 이해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그런 이해나의 모습을 보며 나를 포함한 다른 팀원들은 꽤나 놀라워했다. 이해나가 이렇게 많은 말을 한 적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말을 잘하면서 그동안은 왜 안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해나가 말한 내용은 모두에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현재 진운이 처한 상황과 앞으로 찾아올 위험들, 그 상황들이 진운의 주변인에게 끼칠 영향, 반대로 진운의 주변인이 그 상황들에 끼칠 수 있는 영향, 그 모든 것이 모여서 만들어낼 결과.
그 결과는 재앙이 될 수도, 현상유지가 될 수도, 혹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후 이해나의 말이 계기가 되어 나와 팀원들은 충분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직 알려주지 못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말해주기도 하고, 팀원들이 가진 생각과 나의 생각을 공유하며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그 사이에 잠자코 있던 카마엘도 끼어들어 말을 하길래 내가 전달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충분히 이야기한 결과 팀원들은 전부 나를 돕기로 했다. 애초에 다들 자기 몸만 챙기려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처음부터 나를 도우려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거기에 쐐기를 박은 것이 이해나의 이성적인 팩폭이었다.
단지 곤경에 처한 팀원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로인한 나비효과로 이 세상의 미래가 바뀌는 것까지 내다보게 만든 것이었다. 거기에 중간에 끼어들어 적절히 한 마디씩 해준 카마엘도 한 몫 했다.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자 일단 나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분명 그동안 감추었던 진실에 대해 말하면 이탈자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전부 등을 돌리는 상황까지 생각해두고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이렇게 선뜻 도와주는 것을 보니 여러모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또한 다시금 내가 가진 조각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의논하고 이야기 하던 도중, 유지윤이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진운, 앞으로의 계획은 뭐야?”
“계획?”
“응. 이제부터 우리도 함께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네가 생각해둔 계획에 대해 알고 싶어서. 미리 네 계획에 대해 알아두면 우리가 그에 맞추어 행동하거나 의견을 나누고 개선할 수도 있잖아?”
“그렇지. 음...”
하긴 이제 협력 관계가 되었으니 함께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야 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동안 틈틈히 카마엘과 의논하며 생각해둔 계획에 대해 말을 꺼냈다.
***
“첫번째로, 나는 최대한 빠르게 2계층으로 넘어갈 생각이야.”
내 말에 이해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머지 팀원들은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지옥의 제 2계층. 2계층은 어떤 곳인가? 1계층이 환란의 숲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듯이 2계층 역시 그 층의 특징을 반영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부정한 늪지대’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름처럼 이곳은 계층 전체가 온통 질퍽이는 늪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나마 육지에 가까운 곳도 전혀 단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악마들은 그 늪 속에서 몸을 감추고 있다가 기습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 편이었다. 덕분에 사람에 따라서는 3이나 4계층보다 2계층이 더 성가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2계층은 왜? 오히려 아래 계층으로 내려가면 내려갈 수록 위험한 것 아니야? 대악마들이나 변절자들이 개입하기 더 쉬워지잖아.”
이야기를 듣던 벨이 질문을 해왔다. 더 낮은 계층은 더 적은 제한이 적용된다는 상식에 기초한 질문이었다.
“맞아. 하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내려가야 해. 나에게, 아니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힘이야. 무언가 해보려면 적어도 어디가서 무시당하지 않을만큼의 힘이 있어야 해. 그리고 그런 힘을 만드려면 아래 계층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지.”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갈 수록 악마들은 점점 더 강해지고 환경은 더더욱 인간에게 가혹해진다. 하지만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 악마들을 죽이고 얻는 마석의 크기도 커지고, 보상으로 획득하거나 제작할 수 있는 장비의 질도 올라간다. 그에 따라 초대자들은 이전 층계와 비교할 수 없이 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2계층 부터는 공동의 관리지역 같은 느낌이 강한 1계층과 다르게 초대자 집단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인간들이 지옥에 발을 들인 후로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만큼 그러한 초대자들이 만든 집단들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그 중에는 내가 걱정 없이 속할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의 집단 또한 존재했다.
“그리고 나는 2계층에서 몸담을 ‘종교’를 구할 생각이야.”
“종교라고?”
“중앙신전에 가입하려는 거야?”
“하긴.. 종교라면 오히려..”
많고 많은 집단 중에서 ‘종교’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앙신전’은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에 속했다. 애초에 종교라는 것 자체가 지옥에서도 아주 이질적인 무언가에 해당했으니까 말이다.
지옥에서의 종교는 지구에서 우리가 흔히 알던 종교와 매우 상이했다. 흔히들 초대자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어떤 강대한 존재들이 실제로 간섭하고 관여하는 통로이자 매개같은 것이었다. 단순히 말과 믿음으로 이루어진 종교가 아니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신의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의 중심이 되는 집단인 ‘중앙신전’은 해당 종교에 완전히 몸을 담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른 집단에 속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신을 따르는 이들의 모임.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천사나 악마들과 게약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들이 신으로 모시는 강대한 존재로부터 힘을 받아 사용했다. 그 힘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강해서 천사들이나 악마들, 대형 클랜들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세력을 이룰 정도였다.
다만 그러한 힘을 받고 중앙신전에 발을 들이면 다시 나오기 아주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신이 내리는 힘을 받았다가 다시 버릴 때의 대가가 어마어마 하기도 하고, 중앙신전은 배반자나 배교자를 절대 용서하지 않으니까. 또한 어떤 신이든 신의 힘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런 조건을 생각할 때 내가 중앙신전에 들어가는 것은 적절한 선택지라고 볼 수 있었다. 어차피 다른 집단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천사들이나 악마들로부터 보호막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가진 힘을 생각해볼 때 특정 성향의 신들은 확실히 나를 선호할 것이 분명했다. 카마엘의 조각을 품고 성화의 마력을 두른 그릇. 신에 따라서는 군침을 흘리는 신도 있으리라.
물론 신전 연합에 가서 신의 부름을 받을 때 결국 어떤 신이 나를 찾아올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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