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47. 일인군단의 광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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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번 크게 패배하고 나자 전세는 겉잡을 수 없이 기울어졌어. 미카엘은 그제야 부랴부랴 천사들을 챙겨서 악마들에게 대항했지만, 이미 너무 많이 밀린 상태라 별 소용이 없었어. 의미 없는 희생만 계속 이어질 뿐이었지.
그렇게 천계를 지켜낼 수 있다는 희망도 옅어져 갈 때, 나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 워낙 내가 멋대로 행동하는 기질이 있다보니 군대에는 동원이 안된 상황이었어. 괜히 전선을 깨뜨리거나 아군의 명령 체계를 혼란시킬 수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나는 결국 혼자서라도 나서기로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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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뭘 하냐구?
뭐긴 뭐겠어. 혼자 적진으로 돌격하는 거지.
무모해 보이는 거 알아. 하지만 그때의 나는 자신감이 넘쳤고, 또 그만한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한 생각이었어.
물론 정말 혼자 가진 않았어. 당시에 내 무위를 동경하여 나를 따르던 천사들 중 일부를 데려갔지. 사실 한 명도 안 빠지고 전부 따라오겠다고 고집 부리는 걸 어떻게든 남겨둔 거야. 최고 정예만 데려갈 거라는 핑계로 말이야.
나도 알고 있었거든. 지금 내가 하려는 돌진이 사실 자살이나 다름 없다는 걸.
그 무모한 돌진으로 나는 물론 나와 함께 간 천사들도 모두 죽을 거라는 걸.
사실 그놈들도 죽는다는 거 다 알고 자원한 거긴 하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따라오겠다고 난리 치는 천사들의 대부분을 남겨두고 길을 나섰어. 최고 정예에 해당하는 천사 6명 정도가 든든하게 내 뒤를 따랐지.
그렇게 악마들이 진을 친 곳을 향해 가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 사지로 들어가서 분전이라도 해보려면 무기라도 좋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때 당시에 내 검은 상당히 좋은 검이었지만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어. 이게 아무리 좋은 검이래 봤자 군주급이나 신격의 악마들을 썰을 수는 없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나는 가기 전에 아주 좋은 검 하나를 가져가기로 했지. 최고의 검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대단한 검을 말이야.
물론 허락은 안 해주겠지만 그건 딱히 상관 없었어. 애초에 허락 맡고 일을 벌인 적이 더 드무니까. 이제 와서 검 하나 슬쩍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었거든.
그래서 나는 생각을 해봤어. 과연 천계에서 가장 좋은 검은 어디에 있는 무엇일까. 뭘 가져가야 잘 가져갔다고 소문이 날까.
그러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오르더라.
그 시점으로부터 몇 년 전에 하계 차원 중 한 곳에 특별한 장소가 만들어졌거든. 이름이 에덴 동산이라던가? 굉장히 아름답고 풍요로운 장소라는 말을 들었었어.
근데 거기서 살던 인간들이 악마 하나의 수작질에 넘어갔다더라. 다른 먹을 것도 많은데 굳이 먹지 말라는 열매 하나를 먹었다지 뭐야. 그래서 그 동산을 만들었던 오래된 존재가 그들을 내쫓아 버렸어.
그렇게 인간들을 내쫓은 그 존재는 화가 안 풀렸는지, 아예 아무도 못 들어가게 입구를 막아버렸어. 그리고 천계에 살던 이품천사(케루빔Cherubim) 몇 명을 시켜서 그 입구를 지키게 했지.
자기가 손수 만든 검을 쥐여주고 말이야.
난 그 이야기를 떠올리자 바로 그 검을 가져와야 겠다고 생각했어. 오래된 존재, 그 중에서도 수준급의 존재가 만들어낸 검이라면 얼마나 대단할까? 악마들을 써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
내가 그렇게 중요한 검을 슬쩍하면 그 오래된 존재가 화내지 않겠냐고? 괜찮아. 그 존재는 워낙 천계에 사는 우리들을 아끼기도 했고, 내가 친 커다란 사고 몇 개를 그 존재가 해결해준 적도 있거든. 그래서 내가 천계를 위해 잠깐 빌린다고 둘러대기만 해도 될 상황이었어.
실재로 내가 그 검을 가져갈 때 그 존재는 딱히 터치하지 않았고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나는 즉흥적으로 에덴 동산을 방문했어. 불타는 검을 들고 입구를 지키던 천사가 날 알아보았지. 여긴 어쩐 일이냐고 묻는 그 천사를 한 방에 기절시킨 뒤에 검을 뺏었어.
그러자 사방에서 에덴 동산을 지키던 이품천사들이 다 몰려왔어. 그것들이 와서 호통을 치길래 한 번 쓱 쳐다봤더니 날 알아보고 합죽이가 되더라. 거기다 한쪽 눈을 치켜뜨니까 고개를 푹 숙이고 들지도 못하는 거 있지?
근데 사실 걔네가 그럴 법도 했어. 원래 나는 나에게 개기는 천사를 묵사발 내기로 유명했고, 내가 손을 안 쓰더라도 날 따르는 애들이 알아서 린치를 해버렸거든. 천사 생활이 지옥이 되기 싫으면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거지.
아무튼 그렇게 멋진 검까지 손에 넣은 나는 드디어 습격을 위한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어. 준비랍시고 한 건 패거리 모으기랑 검 훔치기 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준비한 건 한 거니까.
그렇게 나는 더 망설이지 않고 천계에 진을 치고 있는 악마들을 향해 정면으로 돌격했지.
처음에 자기들 쪽으로 다가오는 7명의 천사를 본 악마들은 당황했어. 갑자기 자신들의 진지로 미친듯이 달려오는 게 도저히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나봐. 그러나 우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직선으로 달리기만 했어.
마침내 악마들과 맞닥뜨릴 때가 되자, 악마들은 상당히 우리를 우습게 여기면서 공격을 해왔어. 그리고 그런 모든 악마들은 내 검에 목이 따여버렸지.
아니, 정확히는 내 검에 불타버렸다고 해야 하나? 검에서 뿜어지는 성스러운 불로 다 쓸어버렸거든. 오래된 존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검과 내 막대한 신성력이 만나서 정말 엄청난 시너지가 일어났어. 거기다가 내 최상급의 무력이 더해지니 내 생각보다 더 엄청나더라.
상급 아래인 악마들은 그냥 다 녹아버렸고, 상급인 것들도 좀 더 살아있을 뿐 녹는 건 똑같았어. 최상급은 꽤 잘 버티길래 직접 목을 따주었어. 군주급은 조금 어럽긴 했는데 7명이서 3명을 다구리 치니까 어떻게든 잡히더라.
그렇게 군단 하나를 완전히 박살내버린 우리는 사기가 하늘을 뚫을 정도로 치솟았지. 그 기세를 이어서 다른 군단도 습격하러 떠났어.
그렇게 우리는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악마들로 이루어진 군단을 열심히 격파했어. 그 많은 천사들이 분전해도 뒤집을 수 없었던 전황이 단 7명의 천사로 인해 바뀌는 순간이었어.
그렇게 한 4개쯤 군단을 박살내니까 나머지 3개의 군단이 합공을 해오더라. 거기엔 군주급 악마 10명에 신격의 악마까지 있었어. 사실 그때 나는 드디어 죽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 소식을 들은 천계 측에서 부랴부랴 우리를 지원할 병력을 파견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거든.
그렇게 나는 죽더라도 여한이 없이 싸우다 죽겠다는 심정으로 돌격을 감행했지.
그래서 어떻게 됬게?
우리가 걔네를 다 전멸시켜버렸어. 한 놈도 안 남기고 싹.
어이 없지? 잘 안 믿기지? 당연한 반응이야. 당시에 직접 승리를 거둔 나와 6명의 정예조차 우리가 한 일이 진짜인지 믿지 못했으니까.
생각보다 우리는 궤가 다를 정도로 강했던 거야. 물론 악마들이 뻘짓을 해준 것도 있긴 했어. 꼴에 배려를 해준답시고 일기토를 하자더라? 그래서 거기에 바로 동의한 내가 검을 들고 뛰쳐나갔어. 덕분에 군주급 몇 명의 목을 따고 시작할 수 있었지.
아무튼 그렇게 불과 7명으로 군단 셋을 아작내버린 우리는 멍한 표정으로 지원 오는 천사들을 바라보았어. 녀석들은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한 뒤 우리보다 더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지만 말이야.
그렇게 우리는 졸지에 천계의 전쟁영웅이 되어버렸어. 목숨을 버릴 생각으로 무모하게 달려든 건데 어쩌다 보니 일이 아주 잘 풀린 거지.
그렇게 수많은 공치사가 끝나고, 천계에서는 본격적으로 악마들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할지 토론이 벌어졌어. 많은 천사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었지만 결국 두 개의 파벌로 나뉘게 되었어.
복수의 일환 겸 앞으로의 침입 예방을 목적으로 지옥을 습격해야 한다는 쪽. 그리고 이정도만 해도 충분히 매운 맛을 보았을 테니 더이상의 싸움은 무의미 하다는 쪽. 나는 둘 중에 복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
하지만 천사들의 전체적인 주장은 여기서 전쟁을 끝내자는 쪽으로 기울었어. 이미 너무 많은 천사들이 죽었고 우리가 저쪽으로 쳐들어간다고 해서 승리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어. 이미 지난번의 전투로 천계와 지옥의 전투력 차이가 극명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어. 습격을 감행한 악마들에게 우리는 손쉽게 유린 당했어. 문제는 쳐들어온 악마들도 사실 지옥에서 그리 강한 악마들은 아니었다는 거야.
즉 이번 전쟁은 맛보기 수준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어.
본대라고 볼 수 있는 더 강한 악마들이 침입해오면 우리는 분명히 패배할 상황이었지. 겨우 신격의 악마 하나에 군주급 스무명 정도를 겨우겨우 이겨냈으니까. 심지어 그것들도 결국 다 내가 처리한 거였고.
이대로라면 뭘 해보지도 못하고 우리보다 월등히 강한 악마들에 의해 싹 쓸려나갈 판이었어.
그래서 난 한 번 더 목숨을 던지기로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