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39화 (39/61)

〈 39화 〉 38. 오웬스 루이스

* * *

알리시아는 피 묻은 레이피어를 한 번 털고는 검집에 집어넣었다.

알리시아 쪽까지 끝나자 레이샤는 주변을 한 번 쓱 둘러본 뒤에 숲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상황 정리가 끝난 교관들이 부리나케 숲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살아있는 초행자들을 구해내려는 모양이었다.

이제 이쪽은 끝났으니 숲 안에서 변절자들을 때려잡고 있을 오웬스만 잘해주면 된다.

“뭐, 그 인간은 여기 셋을 다 합쳐도 못 이기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레이샤는 가볍게 몸을 돌려 싸움을 끝낸 동료들에게 향했다.

***

자신을 클라운(Clown)이라 소개한 여자는 한동안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의미 모를 시선에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긴장한 상태로 마력을 가다듬는 우리를 본 클라운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기다란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일단 저 성화로 불장난 하고 있는 애송이는 죽이고,”

그녀의 손가락이 나 외에 다른 팀원들에게로 옮겨졌다.

“나머지는 다들 능력이 제법이니 함께 선구자가 되면 되겠구나?”

그렇게 팀원들을 훑던 손가락이 갑자기 우뚝 멈추었다.

“가만...”

클라운의 휘어졌던 눈꼬리가 원래대로 돌아오며 표정이 굳었다. 그러자 주변에 깔린 마기에 살기가 담기며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원래도 찐득거리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었지만 이번엔 온몸에 들러붙으며 피부를 찔러대는 느낌으로 변했다.

“짜증나는 년이 하나 섞여있었네?”

클라운의 손가락에서 돌연 마기 한 줄기가 뿜어졌다. 뿜어진 마기는 쏜살같이 날아가 유지윤의 목에 들러붙었다.

“브로우즈 그 망할 놈의 기술이잖아? 네년이 브로우즈 놈의 제자라도 되냐?”

“커흑!”

유지윤의 목에 달라붙은 마기는 그녀의 목을 휘감아서 들어올렸다. 목이 졸려지며 공중에 떠오르자 유지윤이 괴로운 신음을 내뱉었다.

“매번 내 무대를 뺏으려 드는 그놈의 제자라니... 생각외의 수확이네.”

“끄으윽!”

“좋아. 저 불장난 하는 놈이랑 너까지 죽여야겠다. 너를 죽인 다음 인형으로 만들어서 보여주면 브로우즈 놈의 표정이 볼만해질 거야. 우후훗!”

그렇게 클라운이 웃는 순간이었다.

나는 클라운의 시선이 유지윤에게 고정된 틈에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검기를 최대한 때려박아서 맹렬히 타오르는 성화가 마기 줄기를 강타했다. 튼튼한 밧줄을 자르는 것 같은 감각에 일순 당황했지만 일단 자르고 보겠다는 일념으로 밀어붙였다.

그러자 잠시 후 마기 줄기가 성화에 타들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잘려나갔다.

치이익 ­

툭 ­ !

마기 줄기가 잘리자 공중에 매달렸던 유지윤이 떨어지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줄을 자른 내게 클라운의 시선이 옮겨졌다.

“흐악, 학, 하악...”

“...이거 참.”

클라운이 손에 들고 있던 곡도를 빙빙 휘두르며 내게로 다가왔다.

“어차피 죽여줄 건데, 뭘 그리 재촉하고 그러니. 응? 그렇게 날 거슬리게 하면 빨리 썰어버리고 싶어지잖아.”

그녀는 그렇게 내 앞으로 점점 다가왔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했다.

‘하나, 둘, 셋, 지금!’

‘열폭발.’

콰아아아아앙 ­ !!

거대한 굉음과 함께 클라운의 안면에 폭발이 일어났다. 내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전부 쏟아부은 일격이었다.

“꺄아아아아악!”

클라운이 얼굴을 부여잡고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한참 성장한 내 마력에서 20/100 정도를 사용했으니 작지 않은 파괴력이었을 것이다. 대뜸 얼굴에서 폭발이 일어날지는 몰랐을테니 완전 무방비 상태이기도 했고 말이다.

마력을 다 끌어다 쓴 뒤라서 급격하게 탈력감이 찾아왔다.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바람에 다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쓰러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공격해!”

팀원들은 대답할 틈도 없이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다들 마력이 얼마 안 남았겠지만 한 번의 위력적인 공격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대로 팀원들은 가지각색의 공격을 클라운에게 때려부었다. 마력을 두른 암기가, 날카로운 꼬챙이 형태의 마력사가, 연녹색과 검은색의 검기가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얼굴을 부여잡은 클라운은 손을 떼지도 않은 채 마기를 한 번 뿜어냈다. 그 한 번의 마기 방출로 광풍과도 같은 마기가 주변을 휩쓸었다.

“커헉!”

“흐악!”

“크으읏!”

그 마기는 클라운에게로 향한 모든 공격을 날려버림과 동시에 우리들까지 날려버렸다. 마기의 폭풍에 휘말린 우리는 한참 뒤로 날아가 나무나 바닥에 처박혔다.

그 직후 클라운이 얼굴에서 손을 때었다.

그녀의 얼굴은 열폭발의 영향으로 곳곳이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상처는 실시간으로 빠르게 아물어갔다.

“이 개자식들이...”

그녀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졌다.

“그냥 다 죽여버리겠어.”

낫처럼 앞으로 휘어진 곡도가 들어올려졌다. 곡도의 칼날에 막대한 마기가 실리며 마기로 된 검강을 만들어냈다.

클라운은 도망치려는 우리를 마기를 통한 압박으로 묶어버렸다. 그렇게 클라운은 겁에 질린 우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러던 중 갑자기, 클라운과 우리 사이를 한 줄기 섬광이 나타나 가로질렀다.

‘섬뢰(?雪)’

파지지지직 ­ !

빛살과도 같은 한 줄기 번개가 클라운에게 내려찍혔다.

“끄윽?!”

클라운은 급히 곡도를 들어 막았지만, 전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꽤나 피해를 입은 듯 보였다. 아무리 강한 그녀라도 내려찍는 전광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뭐가 터지는 소리를 듣고 왔는데, 꽤 재미있는 상황인 것 같군.”

클라운과 대치하는 우리의 뒤쪽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중년 남자 특유의 중저음이었다. 나는 이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봤다는 생각을 하였다.

여전히 몸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클라운이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뇌제(?)... 늙은 괴물이 벌써 튀어나왔네.”

클라운은 그 말을 하면서 검강을 두른 곡도를 고쳐쥐었다. 그녀는 우리의 뒤에 있는 남자를 경계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 남자가 우리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잘 정리된 백발이었다. 그 다음 보이는 것은 전체적으로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몸이었다. 나는 저번에도 보았던 이 모습을 드디어 기억해냈다.

“총책임자님..?”

그 말에 사르비나 거점 총책임자 오웬스가 나를 돌아보았다.

“음, 오랜만입니다. 김진운 군이었죠?”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가 말했다.

“다시 만난 장소가 이런 곳이라서 아쉬울 따름이군요. 거점으로 돌아가고 나면 같이 차라도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걸로 합시다.”

그러고는 씨익 웃음을 지어 보여준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이렇게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클라운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곡도를 치켜들고 이쪽을 노려볼 따름이었다.

오웬스는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나가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마기가 너무 많군. 숨쉬기도 힘들 정도야.”

그런 오웬스의 발밑에서 백색의 전류가 흘렀다.

“이리 끈적거려서야, 원.”

‘뇌전지대(???)’

치지지지지직 ­

오웬스의 발밑에서 시작된 전류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촘촘한 거미줄과도 같은 전격의 망이 땅을 뒤덮었다. 어디까지 덮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눈에 보이는 모든 땅은 다 하얗게 변해있었다.

그와 함께 주변을 잠식하고 있던 마기가 빠르게 물러났다. 바닥에서부터 시작된 마력의 움직임이 마기를 모조리 몰아냈다. 방금까지만 해도 온몸이 질척거리는 마기에 의해 붙들려 있었는데, 시원하고도 짜릿한 느낌의 마력이 그 불쾌감을 싹 없애주었다.

“끄으으윽!”

신음 소리에 앞을 보니 클라운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백색의 전류에 고통받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가듯이 전격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녀를 찔러대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통 받던 클라운은 온 몸에서 마기를 뿜어내며 간신히 전류에 저항했다. 저 강대한 마기를 가지고도 마력을 몰아내는 게 한참 걸리는 것을 보아 오웬스의 실력이 상상 이상인 듯 했다.

“이거.. 좀 수지가... 안 맞는데에...”

클라운이 말을 하는데 성대가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지칠대로 지쳐보이는 클라운과 다르게 오웬스는 시종일관 여유로워보였다. 조금 전까지 주변을 잠식했던 농도 짙은 마기는 이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군주도 아니고 그 종 노릇 하는 것들과 계약한 주제에 무슨 자신감으로 올라온 거지? 너나 다른 변절자들이나 자살 희망자로 보이지는 않던데.”

“끄으... 큭, 끄으.. 이렇게 빨리.. 튀어 나올 줄은... 일반 초대자들은.. 다 어디 간 거지..?”

오웬스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빈 초대자? 아하, 그러니까 너네가 깽판을 치면 수호자들보다 일반 초대자가 먼저 나올거라 예상한 거군? 다른 계층에서 처럼 말이야.”

“.....”

“머저리같은 것들. 하긴 변절자 놈들이 제 1 계층에서, 그것도 초행자들을 상대로 일을 벌인 적이 없으니 모를 만도 하지.”

“.....”

“원래 이런 짓거리를 벌이면 수호자들 부터 달려나오는 게 당연한 거다. 너네가 습격한 게 그냥 초대자라면 우리가 나설 일은 없지만, 초행자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무슨...”

“그러니까 이 멍청이들아, 너네는 지금 자진해서 사지로 걸어들어 왔다는 거다. 아마 이번 일로 너네만이 아니라 모든 변절자들에 대한 철저한 보복이 이루어질 거야. 변절자 단체에서 뭐라 입장을 밝히든 상관 없이 말이지. 5대 클랜만이 아니라 인류 연합 전체가 너네를 집요하게 추적해서 죽여댈 거다.”

클라운의 표정은 전보다 훨씬 일그러져 있었다. 무언가가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헛소리 하지 마라.”

“초행자들이라는 이들은 그만큼 인류 전체에게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는 거지. 그들은 우리들 전체의 미래와도 같은 존재이니 말이야. 너네는 그런 창창한 미래의 씨앗들을 짓밟은 거고. 그러니 다들 악착같이 복수하러 달려들 게 뻔하지.”

“.....”

“뭐, 우리 입장에서는 꼭 나쁜 일은 아니군.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너네를 도살할 수 있으니.”

그 말과 함께 오웬스의 오른손에서 새하얀 전광이 피어올랐다.

“그러니까 잘 죽어라. 네놈들의 무지를 탓하면서 말이야.”

“망할!”

그것을 본 클라운이 급히 뭔가를 꺼내들었다. 검은색 살덩이같은 물건이었다. 혼자서 꿈틀대는 그 살덩이를 곡도가 찌르려고 하는 순간,

‘진섬뢰(?雪)’

파지지지지지직 ­ !!

백색의 번개가 그 살덩이와 함께 클라운을 덮쳐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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