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38화 (38/61)
  • 〈 38화 〉 37. 깔끔한 일처리

    * * *

    벗겨진 후드 너머로 그녀의 기괴한 얼굴이 드러났다. 나는 좀 더 향상된 시력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일단 얼굴 전체가 온통 하얀색으로 떡칠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여러가지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특히 눈 주위에 가장 화려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녀의 생김새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럼 정식으로 인사할게.”

    그녀가 한 쪽 손을 배에 올리고 허리를 숙이며 독특하게 인사했다.

    “잔혹한 악어와 계약한 선구자, 클라운(Clown)이라고 해.”

    광대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로 그녀가 히죽 미소를 지었다.

    ***

    “쯧.”

    방금 전 오웬스를 막으려 들었던 아니스가 혀를 찼다.

    “웬 미친년에게 걸렸네.”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린 그녀가 후드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혈법술 ­ 마기 치환’

    안 그래도 빨갛던 아니스의 눈이 더욱 짙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들이 공중으로 떠올라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그렇게 아니스의 몸에 닿은 핏방울들은 전부 그녀에게 흡수되었다. 피를 흡수하면 할 수록 그녀가 풍기는 마기의 농도가 짙어져 갔다.

    “같잖은 짓을 하네~?”

    그걸 지켜보던 수호자 궁수, 레이샤가 활을 당겼다.

    ‘버스터 샷 ­ 범위 타격’

    레이샤가 잡고 있는 화살에 두꺼운 마력이 둘러졌다. 둘러진 마력이 빨갛게 변하며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순간,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콰아아앙 ­ !

    화살이 아니스에게 쇄도하여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화살에 둘러진 마력이 넓게 퍼지며 주변을 초토화 시켰다.

    “크읏...”

    아니스의 손에는 피로 이루어진 방패가 들려 있었다. 겨우 폭발을 막아낸 막아낸 아니스가 침음성을 흘렸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방금의 범위 폭발로 주변에 깔린 피가 전부 증발해 버렸다.

    “눈 빨간 것들은 주변에 피만 없으면 별거 아니지~”

    어느새 새로운 화살을 꺼내든 레이샤가 말했다. 아니스는 불리해진 상황을 반전시킬 필요를 느꼈다. 방패를 이루었던 피가 흩어져 그녀의 손에 모였다. 뭉친 피에 방금 전 끌어모은 마기가 깃들었다.

    ‘혈법술 ­ 레드 오브’

    뭉친 피가 더 조밀하게 모이며 하나의 구체를 이루었다. 이내 약간의 마기를 조금씩 뿜어내던 붉은 구체가 아니스의 마기와 연결되었다.

    피를 오브 형태로 모아서 사용하는 이 기술은, 자신의 마기 운용과 기술 사용을 보조하고 지원하려는 목적의 기술이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피가 있을 때 위력은 낮지만 효율은 높게 혈법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빨간 탱탱볼 만드는 거야? 뭔진 모르겠지만 만나는 흡혈귀마다 다 그거 만들더라구.”

    ‘크레이지 샷 ­ 분열탄’

    레이샤의 시위를 떠난 또 하나의 화살이 아니스에게 날아들었다. 그 화살은 날아오던 도중 갑자기 여러개로 갈라지며 나뉘었다. 그렇게 나뉜 화살 조각들은 저마다 제멋대로의 궤적을 그리며 아니스에게 접근했다.

    하나하나가 너무 불규칙한 궤적을 그려서 어디에 맞을지가 예상이 안되었다. 아니스는 하는 수 없이 온몸에 붉은 보호막을 형성해 화살을 막았다.

    터더더더덩 ­

    “크윽!”

    상당한 반동이 보호막 너머로 전해져 왔다. 갈라진 화살 조각들이 저마다 강력한 마력을 품은 상태였던 모양이다.

    상황이 갈수록 안 좋아졌다. 아까 전 방패와 지금의 보호막을 만드느라 피를 꽤 많이 소모했다. 상황을 바꾸려면 조금이리도 피가 더 남아 있을 때 승부를 봐야 했다.

    아니스의 손에 들린 붉은색 오브가 빛을 발했다.

    ‘혈법술 ­ 블러디 슬래쉬’

    붉은 오브로부터 몇개의 핏방울이 떨어져 나왔다. 떨어진 핏방울들은 급격하게 크기를 키우더니 기다란 칼날 모양이 되었다. 그렇게 변화를 마친 피의 칼날들이 레이샤를 베기 위해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레이샤가 씩 웃으며 화살 3개를 꺼내들었다. 한 번에 여러 개의 화살을 활에 끼운 그녀가 날아오는 피의 칼날들을 향해 활을 당겼다.

    ‘블로킹 샷 ­ 마력 방해’

    발사된 3개의 화살은 정확히 정삼각형을 그리며 날아갔다. 날아가는 화살들은 저마다 화살촉에 마력이 둘러져 있었다.

    화살과 칼날이 교차할 즈음, 갑자기 화살에서 소규모 마력 폭발이 일어났다. 극도로 불안정한 마력이 공중으로 퍼지며 피의 칼날들을 이루는 마기를 뒤흔들었다.

    불안정한 마력이 칼날을 타고 흐르며 마기를 전부 흩어 버렸다. 칼날을 구성하던 마기가 사라지자 피의 칼날은 그대로 무너져 핏물이 되어 바닥에 쏟아졌다.

    “어?”

    사라진 피의 칼날들을 보며 잠시 당황하던 아니스의 옆에서 갑자기 화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이샤가 있는 위치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리콜 애로우 ­ 마력 조종’

    그와 동시에 레이샤의 입에 진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녀는 몰래 마력을 길게 늘어뜨려 미리 쏘아둔 화살에 연결해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 화살에 기술을 사용했다. 본래 이 기술은 화살 회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술이지만 가끔 이렇게 허를 찌르는 기습 공격으로 쓰이기도 했다.

    뒤늦게 화살의 존재를 알아차린 아니스가 방어를 하려 했지만, 이미 화살은 아니스의 지척까지 파고든 상태였다. 급한대로 아니스는 기본적으로 둘러져 있는 약한 방어막을 증폭시키며 대응했다.

    푸욱 ­

    “커헉!”

    하지만 생각보다 화살에 담긴 마력이 예리했다. 화살은 방어막을 가볍게 찢고 들어오며 그녀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그와 동시에 화살에 담긴 마력은 그녀의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날뛰는 마력이 아니스의 내장과 각종 장기를 휘저었다. 순식간에 내부가 진탕이 된 아니스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 둘러진 마기가 몹시 불안정해졌다. 손 위에 띄워둔 붉은 오브는 다시 한줌 핏물로 돌아갔다.

    순간 무방비가 된 아니스를 향해 레이샤가 빠르게 화살을 쏘아 날렸다. 별다른 기술 없이 강한 검강을 두르기만 한 화살이었다. 하지만 반쯤 죽어가는 흡혈귀 하나를 끝내기에는 충분했다.

    푹 ­

    “끅 ­ ”

    화살이 아니스의 하얀 목덜미를 파고 들었다. 강맹한 화살의 위력에 아니스의 목이 꺾이며 남어갔다. 바닥에 쓰러진 그녀의 몸은 잠시 움찔거리다가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후...”

    한껏 소비한 마력을 추르스며 레이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참 몸을 풀며 날뛰고 있는 알리시아와 란델이 보였다. 예상대로 둘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으하하하!”

    육중한 대검을 들고 휘두르는 란델이 호쾌하게 웃었다.

    “크윽!”

    몸을 악마화 시킨 남자는 버겁게나마 대검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 충격을 전부 상쇄할 수는 없는지 침음성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왜 그러나? 모든 날붙이를 막아내는 악마화 기술 아닌가? 뭐가 그리 힘들어 보이는지 모르겠구만. 하하하!”

    거대한 크기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대검은, 남자가 다른 행동을 할 기회를 일체 주지 않았다. 한껏 인상을 찌푸리던 남자가 돌연 기술 하나를 사용했다.

    ‘악마화 연계 신체 변화술’

    대검을 막아내던 손이 우그러들며 형태를 잃어버리더니 갑자기 쭉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손은 이제 기다란 랜스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원뿔형의 랜스가 대검을 옆으로 빗겨내며 전진했다. 순식간에 가슴팍으로 파고들어오는 랜스를 본 란델이 히죽 웃음을 지었다.

    ‘하멜류 대검술 ­ 걷어내기’

    갑자기 대검에 실린 힘이 막강해지며 치고들어오는 랜스를 밀어냈다.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듯이 대검을 휘두른 란델이 가볍게 랜스를 제쳐 버렸다.

    이어서 란델이 하늘로 대검을 치켜들며 남자를 내려다 보았다. 남자는 어느새 두꺼운 방패를 만들어 전방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을 본 란델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하멜류 대검술 ­ 내려찍기’

    태산을 가를 듯한 기세로 내려 찍어진 대검이 방패를 강타했다. 견고해 보이던 방패는 순식간에 두 쪽이 나버렸다. 갈라진 방패 사이로 란델의 대검이 거침없이 밀고 내려왔다.

    “크아악!”

    무자비한 대검은 멈추지 않고 악마화된 남자의 몸까지 파고들었다. 대검에 둘러진 패도적인 마력이 종잇장 처럼 남자의 몸을 갈랐다.

    두 개로 반갈죽 당해버린 남자는 죽음과 동시에 악마화가 풀려버렸다. 짙은 마기가 주변으로 뻗어나가며 이리저리 흩어졌다. 그러자 마기가 빠져나온 남자의 시체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란델 쪽이 끝나자 레이샤는 알리시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리시아는 황금빛 검강을 줄기줄기 뽑아내며 사슬쟁이를 압박하고 있었다.

    존은 소매에서 사슬 더미를 뽑아내어 정신없이 알리시아에게 날렸다. 하지만 그 많은 사슬 중 어느 하나도 알리시아의 몸에 닿지 않았다.

    “망할!”

    이를 악문 존이 검은색의 사슬을 더 쏟아냈다

    ‘레만의 사슬 ­ 영원감옥’

    허공을 수놓은 사슬들이 알리시아에게 떨어졌다. 사슬들은 떨어지며 이리저리 얽히더니 철장과도 같은 모양으로 변했다.

    자신에게 떨어지는 감옥을 바라보던 알리시아는 걸음을 일순 물렸다. 그리고는 몸 전체에서 압도적인 마력을 쏟아내었다.

    ‘마력 전개 ­ 로열 로드’

    그러자 알리시아의 발밑에서부터 곧게 뻗은 길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금색으로 빛나는 길은 열심히 사슬을 휘두르는 중인 존에게로 이어졌다.

    “어?”

    존의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그가 잡고 휘두르던 사슬들이 점점 통제를 벗어났다. 금색의 길을 따라 달려오는 알리시아를 향해 휘두르려고 해도, 길에 접근하기도 전에 모조리 튕겨나갔다. 마치 사슬들이 그 길에 가까워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말을 듣지 않는 사슬들을 안간힘을 써서 모으려 했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미 한 번 튕겨나간 사슬은 두 번 다시 그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살짝 훑어 보니 길에 닿았던 사슬들에는 금색의 마력이 조금씩 묻어있었다.

    망연한 표정을 짓는 존의 앞에 검을 든 알리시아가 당도했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그는 그나마 있는 사슬들을 끌어 모아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을 본 알리시아는 말 없이 레이피어에 검강을 둘렀다.

    ‘차징 피어스 ­ 관통형 검강’

    기다란 원뿔 모양으로 바뀐 검강이 매섭게 타올랐다. 이어서 금빛으로 빛나는 검강이 사슬들 사이로 제쳐들어갔다.

    검강을 두른 레이피어는 닿는 사슬들을 모조리 분쇄하며 나아갔다. 완전히 관통해버린 사슬 너머로 경악하고 있는 존의 얼굴이 보였다. 검을 조금 고쳐쥔 알리시아가 그대로 돌진을 계속했다.

    푸욱 ­

    “크허억!”

    레이피어가 존의 흉부를 관통했다. 파괴적인 검강이 지나가자 그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다.

    흉부에 난 구멍으로 피를 쏟아내는 존의 몸이 쓰러졌다. 온통 찌푸린 표정의 얼굴이 바닥에 떨어지고 얼마 안가 그 눈의 생기가 사라졌다.

    알리시아는 피 묻은 레이피어를 한 번 털고는 검집에 집어넣었다.

    알리시아 쪽까지 끝나자 레이샤는 주변을 한 번 쓱 둘러본 뒤에 숲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상황 정리가 끝난 교관들이 부리나케 숲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살아있는 초행자들을 구해내려는 모양이었다.

    이제 이쪽은 끝났으니 숲 안에서 변절자들을 때려잡고 있을 오웬스만 잘해주면 된다.

    “뭐, 그 인간은 여기 셋을 다 합쳐도 못 이기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레이샤는 가볍게 몸을 돌려 싸움을 끝낸 동료들에게 향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