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36. 클라운(Clown)
* * *
이를 지켜보던 오웬스가 다시 출발했고, 그를 막으려던 다른 변절자들은 각자 수호자 한 명씩에게 저지당했다.
“...망할.”
“존, 아니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 한다. 아니면 우리가 죽을 거다.”
“알고 있다고.”
변절자들이 지그시 입술을 씹으며 인상을 구겼다.
그런 그들을 향해 폭풍과도 같은 기세를 뿌리는 세 명의 수호자가 달려들었다.
***
“흐음~ 그럼 어디로 가볼까?”
한결같이 말이 많은 수다쟁이 후드가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기왕 흩어져서 다니는 김에 자신이 가장 가능성 높은 곳을 선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성(?) 속성이라. 그런 기분 나쁜 힘을 쓰면 웬만해서는 기척이 느껴질텐데...”
그렇게 그녀가 잠시 멈춰 선 상태로 기감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였다.
지루한 표정으로 끝없는 숲을 살피던 수다쟁이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멀찍이 보이는 숲에서 갑작스레 얇은 빛기둥 하나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성스러움을 느낄 만큼 찬란한 빛기둥이었다. 진운이 사용한 전투 천사 강림의 효과가 하필 수다쟁이의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흐음~”
수다쟁이의 눈이 길게 호선을 그렸다.
“저기네.”
숲 한가운데 멈춰있던 수다쟁이가 빠르게 빛기둥이 나타난 방향으로 이동했다.
“저렇게 나 여기 있다고 광고를 하는데 어떻게 안 찾아가겠어?”
수다쟁이의 품에서 긴 반달 모양의 곡도 하나가 빠져나와 손에 잡혔다. 그와 동시에 수다쟁이의 몸에서 불길하고 끈적거리는 마기가 흘러나와 그녀를 가속시켰다.
그렇게 한 명의 변절자가 진운의 위치를 향해 이동하는 도중, 진운과 그의 팀원들은 전력을 다해서 로커스트들과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한참 로커스트들을 저지하고 있던 린펠의 몸에서 마력이 거칠게 맥동했다.
‘다섯 번째 춤사위 검은 부슬비’
린펠의 몸에서 빠져나온 검은 마력이 그의 손에 뭉쳐졌다. 이내 린펠이 그 마력의 덩어리를 높이 던져올렸다.
나무 하나와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간 마력 덩어리가 잠시 꿈틀거리더니 풍선처럼 터져버렸다. 덩어리가 터짐과 동시에 검은색 마력의 가닥들이 이리저리 비산하며 떨어졌다. 그 마력의 가닥들은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비도의 형태로 바뀌었다.
잠시 후 검은색 비도가 로커스트들의 위로 빗발치며 떨어졌다.
키익 !
키이이익 !
비도를 맞고도 살아있는 악마들은 비명을 질러댔고, 운 없이 비도에 치명타를 입은 악마들은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나이스 린펠!”
한참 로커스트들을 휘저으며 방어하던 벨이 기분좋게 소리쳤다.
“나도 한 손 보태야지!”
창을 쥐고 휘두르던 벨의 몸에서도 연녹색의 마력이 뿜어졌다.
‘흩날리는 버들 꽃잎’
벨의 창에 둘러져 있던 검기가 돌연 길게 늘어나며 위력도 훨씬 강맹해졌다. 그러자 벨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집중하더니 창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그러자 벨의 검기가 마치 바둑판처럼 선이 그어지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완전히 조각조각 갈라진 검기를 만든 벨이 힘차게 악마들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창이 휘둘러지면서 창날에 붙어있던 검기 조각들이 앞으로 퍼져나갔다. 연녹색 조각들이 흩어지며 악마들 사이로 파고드는 것이 정말 버들 꽃잎이 흩날리는 것만 같았다.
검기 조각에 맞은 악마들은 작은 조각에 맞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숨통이 끊어진 악마들도 적지 않았다.
벨 쪽의 악마들은 방금의 일격으로 얼추 정리가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나와 이해나 쪽 악마들이었다.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이해나였다. 로커스트들을 상대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이해나가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갔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상당한 양의 마력 유동이 느껴졌다.
‘공간 잠식 무월흑야(無月??)’
이해나가 부드럽게 검을 휘두르자 그와 함께 상당한 양의 마력이 주변으로 뻗어나갔다.
뻗어나간 마력은 마치 검은 물감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 물감은 한없이 몸집을 불리며 커져나가더니 이내 이해나의 앞쪽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하지만 그 물감 같은 마력은 이해나의 앞쪽만 삼키고 끝나지 않았다. 그 커다란 몸집이 옆으로 더 늘어나더니 나와 벨의 앞마저 채워버렸다.
키이이익 ?
키이익 ?
키익 키이이이익
그 너머로 혼란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악마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해나의 마력 성질에 의해 잠식을 당했거나 이해나가 일전에 말했던 감각을 상실시키는 종류의 기술인 듯 했다. 당장에 방향도 잡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저 악마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일단 저 악마들이 무력화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근접 딜러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놈들을 처리할 절호의 기회였다.
“좋았어!”
“이야, 기술 끝내주네!”
덕분에 신이 난 나와 벨이 소리치며 악마들을 베었다. 이해나도 묵묵히 악마들의 숨통을 끊었고 린펠과 유지윤도 끊임없는 원거리 공격으로 악마들의 수를 줄여나갔다.
그렇게 유지 시간이 끝난 이해나의 기술 효과가 걷히자, 거의 대부분이 죽어버린 로커스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온갓 기술을 사용하며 놈들을 도륙했더니 어느새 거의 다 처리해 버린 모양이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그래, 조금만 더 힘내서 끝내버리자구.”
린펠과 유지윤이 한마디씩 하면서 놈들과의 마지막 충돌이 시작되었다.
로커스트들은 자신들의 수가 줄어들자 갑자기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며 한 데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슬슬 우리를 피하며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작은 무리 하나를 형성했다. 저걸로 어쩌겠다는 건지 궁금해질 즈음에 놈들이 갑작스레 쐐기 형태로 대열을 갖추어 모여들었다.
나는 놈들이 저 상태로 이쪽을 향해 달려들 작정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대형의 앞쪽으로 튀어나가며 급히 기술을 사용했다.
‘저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성화를 두른 검을 땅에 꽂아 넣자 검을 따라 막대한 양의 마력이 땅에 흘러 들어갔다. 그 직후 내 바로 앞쪽에서 하얗게 타오르는 방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기술을 사용하자 마자 쐐기 대형을 갖춘 악마들이 달라들었다.
쏜살같이 우리 앞에 도달한 놈들은 거룩한 불로 타오르는 벽을 만나야 했다.
쿵 !
둔중한 소리와 함께 악마들의 대형이 박살나고,
키이이이익 !
키이이이이이익 !
놈들은 자신들의 몸을 불태우는 성화에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원래 성화의 특징 중 하나가 마(?)나 악(?) 속성을 가진 대상에게 압도적인 고통을 선사하는 것인지라 더 저러는 것 같았다.
그 이후 팀원들이 성화가 옮겨붙어 땅을 뒹구는 악마들을 처리했다. 막대한 데미지와 고통에 이성을 잃은 듯이 보이는 놈들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일사천리로 악마들을 정리하니 드디어 상황이 종료된 듯 싶었다.
하지만 아직 다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 악마들이 고작 이 정도가 끝일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누가 뭐라 말하지 않아도 바로 마석의 회수부터 시작하였다. 바쁘게 돌아다니며 놈들이 죽고 남긴 마석을 모았다. 그후 마지막으로 놓친 것이 없는지 잘 살핀 다음 마석을 한 데 모았다. 그리고 빠르게 개수를 센 후 인원에 알맞게 나누어 가졌다.
이렇게 급하게 마석 정산을 하는 이유는 다들 레벨 업이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달려드는 악마들을 다 처리했지만 또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거기다 지금처럼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와중에는 다욱 그렇다. 그렇다면 최대한 레벨을 올려 마력과 신체의 성능을 끌어올려야 했다.
레벨업을 함으로서 얻는 상처 회복과 마력 회복은 덤이었다. 다들 열심히 잘 싸워주었지만 아무래도 자잘한 상처가 많이 난 상태였다. 레벨업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지친 체력을 회복시키는 것은 앞으로 있을 다른 전투들을 훨씬 수월하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분배받은 마석을 바로 입에 넣고 씹었다.
[로커스트의 마석을 흡수.]
[로커스트의 마력을 흡수.]
...
[Lv 25 > Lv 31]
레벨이 한번에 여섯 계단이나 올라버렸다. 확실히 로커스트라는 그 악마들은 최하급이랑은 격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런 로커스트를 수십마리 죽이고 그중 5분의 1을 먹었으니 이런 레벨의 급상승이 있을 법도 했다.
그렇게 레벨업으로 늘어난 내 마력과 신체능력을 가늠해보는 중이었다.
갑자기 막대한 양의 마기가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농밀한 마기가 점성을 가진 액체처럼 흐르며 나와 팀원들의 주변을 감싸들었다. 순식간에 짓쳐드는 마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공간이 일시적으로 빛을 잃고 어두워질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리는 압도 당할 것 같은 느낌을 거스르며 무기를 들고 한 데 모였다. 그리고 다시 대형을 이루어 서서 주변을 최대한 주시했다. 이렇게 강렬한 마기를 쏟아내는 대상이 누구인가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우리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한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후드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살짝 비틀거리는 듯한 걸음거리로 다가오던 그 후드는 어느 순간 멈추어 섰다.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소름 끼치도록 짙은 마기가 저 사람의 몸에서 뿜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껏 긴장하며 무기를 고쳐쥐었다.
대체 저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이기에 이렇게 말도 안되는 양의 마기를 뿌리는 걸까?
애초에 이 정도 양의 마기를 사람이 다룰 수 있나?
저것이 진짜 사람일까? 아니면 사람의 모습을 한 악마는 아닐까?
온갖 의문이 머릿속에 따올랐지만 지금은 그런데 집중할 수가 없었다.
무지막지한 존재감을 뽐내며 등장한 저 사람을 살피고 대응하는 게 먼저였다.
대응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역시 대단하구나?”
지금까지 조용하던 후드가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이 정도의 마기 앞에서도 전의를 잃지 않고 맞선다니. 다들 자질이 뛰어난 걸?”
그 말과 함께 슬며시 후드가 뒤로 벗겨졌다.
“지명 대상만 처리하려고 했는데, 이게 웬 떡이람?”
벗겨진 후드 너머로 그녀의 기괴한 얼굴이 드러났다. 나는 좀 더 향상된 시력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일단 얼굴 전체가 온통 하얀색으로 떡칠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여러가지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특히 눈 주위에 가장 화려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녀의 생김새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럼 정식으로 인사할게.”
그녀가 한 쪽 손을 배에 올리고 허리를 숙이며 독특하게 인사했다.
“잔혹한 악어와 계약한 선구자, 클라운(Clown)이라고 해.”
광대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로 그녀가 히죽 미소를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