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36화 (36/61)
  • 〈 36화 〉 35. 거점의 수호자들

    * * *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하지만 나와 유지윤의 선공으로 기세를 확실하게 잡았다. 이 기세를 끝까지 몰고가며 저 메뚜기들을 상대로 살아남아야 했다.

    우우우우우웅 ­ !!

    키이이 ­ !

    키이이익 ­ !

    짐승처럼 울부짖는 메뚜기 악마들과 근접 딜러들의 창검이 격돌했다.

    ***

    “하아, 하아, 하아...”

    처음 악마들에게 달려든 이후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을만큼 무아지경에 빠져서 검을 휘둘렀다. 폐가 터질 것 처럼 숨이 차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훨씬 격렬하게 움직인 것 같았다.

    “카악, 퉤!”

    입에 고인 피가래를 뱉어낸 한민아 교관이 주위를 살폈다. 패도적인 수준의 검기는 계속 유지한 상태로 주변에 어떤 악마가 더 남아있는지 살폈다.

    이미 숲의 초입부로 넘어온 로커스트들은 반 이상이 궤멸 당했다. 그 중 상당수를 한민아 교관 한 명이 죽였다. 얼추 150마리 정도가 그녀에 의해 한줌의 마석으로 화해버렸다.

    한민아 교관의 전신은 이미 로커스트들의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 흥건한 피 중에는 유독 초록색을 띄는 것도 있었다. 린트부름의 피였다.

    그녀는 로커스트들을 베어넘기며 제일 먼저 린트부름에게 향했었다. 사실 다른 악마들보다 놈이 가장 큰 피해를 입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린트부름이 수시로 뿜어대는 입김은 정말 강력한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마다 한가닥 한다는 교관들이 떼몰살을 당할 수준이었다.

    한민아 교관은 놈에게 접근하여 시선을 자신에게로 집중시켰다. 놈이 공격을 하면 빠르게 이동해 피하면서 놈의 몸을 난도질 했다. 다른 교관들이나 부교관들이 보고도 피하지 못하는 공격들을 너무나 자연스레 회피했다.

    그러다 약이 오른 린트부름이 사방으로 독성 입김을 뿜어대었다. 그러나 한민아 교관은 놈이 입김을 뿜기 위해 머리를 낮추었을 때 높이 도약해 피해냈다. 이어서 놈의 머리 위에 착지한 그녀는 그레이트 소드를 높이 들어올렸다.

    ‘검기 응용 ­ 가속 회전’

    그레이트 소드에 둘러진 검기가 맹렬한 소리와 함께 회전하더니 그대로 린트부름의 미간에 꽂혔다. 검이 꽂히자마자 놈은 뽑으려고 발광을 3초 정도 했지만, 그 후 린트부름의 머리가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터져 버리면서 끝이 났다.

    그후 한민아 교관은 계속해서 로커스트들을 학살하고 다녔다. 맘 같아선 저 안개 악마까지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저것은 검을 휘두른다고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었기 때문에 못 잡았다. 그래서 한민아 교관은 자신이 베어 죽일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죽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온 몸에 린트부름과 로커스트들의 잔해를 뒤집어 쓴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다.

    한민아 교관은 숨을 고르고 마력을 돌려 몸 상태를 회복시키면서 주변을 계속 둘러보았다.

    그녀가 린트부름을 죽인 뒤로 교관들 측의 싸움이 훨씬 수월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독성 입김을 뿜어대는 괴물이 없으니 다른 악마들을 처리하는 데에 집중할 수가 있는 것이다. 덕분에 로커스트들은 거의 대부분이 시체나 마석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고, 불안정한 안개도 빙()과 수(?) 계열 기술에 의해 제압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좀 상황이 정리되가나 싶은 순간이었다.

    돌연 숲의 입구 쪽에서 세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셋 다 검은색의 후드를 눌러 쓴 채 살짝 아래를 보고 있어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노골적으로 수상한 차림새였다.

    한동안 가만히 있던 그들은 한창 격전이 벌어지는 장소로 조용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마다 자신의 무기를 챙겨들며 다가 오는 것이 절대 좋은 의도 같아 보이지 않았다.

    중급 악마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갈 즈음에 나타난 의문의 세 인물.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옷차림에다 피가 짙게 베어 있는 무기들. 마지막으로 이 진득거리는 듯한 기분 나쁜 마력.

    한민아 교관은 저들이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해낼 수 있었다.

    잠시 기세가 줄어들었던 검기가 다시 찬연하게 타올랐다. 방금 전까지 혹사 당하다시피 회전한 스톡이 다시 맹회전을 시작했다.

    쏜살같이 쏘아진 한민아 교관이 순식간에 그들의 앞에 다다랐다.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을 한 그녀가 그레이트 소드를 들어올려 그들을 똑바로 가리켰다.

    “이 쓰레기들이.”

    한민아 교관의 마력이 폭사되듯이 주변으로 뿜어졌다.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들여놓는거냐.”

    세 변절자가 고개를 살짝 들어 한민아 교관을 바라보았다.

    “아, 방금까지 신나게 우리가 준비한 안배들을 박살내던 그 검사군.”

    가운데 남자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너를 제물로 바치면 그분도 좀 만족하시려나?”

    그 말과 동시에 남자가 한민아 교관을 향해 팔을 들어올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한민아 교관이 검을 정면으로 들어올리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남자의 소매가 잠시 펄럭 거리더니 안에서 길쭉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이전에 한민아 교관은 자리를 박차며 회피했다. 회피하며 곁눈질로 본 그것은 검은색의 두꺼운 사슬이었다.

    사슬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한민아 교관을 따라 움직였다. 게다가 속도도 상당히 빨라서 회피는 의미가 없어 보였다.

    별 수 없이 한민아 교관은 사슬을 쳐내거나 자를 생각으로 검을 들어올렸다.

    그 모습을 본 남자의 눈이 긴 호선을 그렸다.

    사슬 중 한 가닥이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왔다. 한민아 교관은 검을 휘둘러 쳐내려고 하였다. 하지만 사슬이 검에 닿자 마자 검날을 사슬이 휘감아버렸다.

    “합!”

    검기를 끌어올려 빼내려고 하여도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검이 묶여 있는 사이 다른 사슬들이 한민아 교관을 꿰뚫을 기세로 쏘아졌다.

    검을 빼낼 수 없음을 알아차린 그녀가 빠르게 검을 놓았지만 이미 피할 타이밍은 놓친 상태였다.

    그렇게 한민아 교관의 눈에는 당혹이, 후드를 쓴 남자의 눈에는 조소가 담기는 순간이었다.

    서걱 ­

    갑자기 무언가가 잘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양팔로 앞을 가로막은 한민아 교관은 사슬이 날아오지 않자 살짝 눈을 떠서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누군가가 보였다.

    “우리 유능한 수석 교관에게 그리 막 대하면 쓰나.”

    손에는 레이피어를 들고 있고 그 레이피어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검기가 씌워져 있었다.

    “요즘 쓸만한 교관이 별로 없어서 인력이 부족해. 그러니까 너희들 손에 우리 한민아 교관처럼 뛰어난 교관이 죽게 놔둘 수는 없단 말이야.”

    장난스럽게 웃으며 알리시아 교관이 뒤를 돌아보았다.

    “수고했어, 수석 교관. 나머지는 나랑 저치들이 처리할 테니까 쉬어 둬.”

    한민아 교관은 잠시 벙 쪄 있다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알리시아 교관을 포함한 거점의 수호자들이 도착한 것이다.

    “알리시아님!”

    “그래, 그래. 저 사람들 다 데리고 오느라고 조금 늦었다. 와서 보니까 덕분에 훨씬 잘 버틴 것 같네.”

    “...쯧.”

    죄다 두동강이 나버린 사슬을 회수한 남자가 혀를 찼다.

    “수호자들이 벌써 기어나온 건가?”

    “존, 아니스. 전투 준비해라.”

    그리고 지금까지 조용하던 오른쪽의 남자가 말을 꺼내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자신이 좀 넘치시는 모양이네? 그새 변절자들이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기라도 한 건가?”

    “에이, 능력도 인성도 딸려가지고 악마들 앞에서 빌빌 기는 것들이 실력은 무슨.”

    그러자 어느새 옆에 다가와 있던 한 남자가 말했다. 그 남자의 등에는 대문짝만 한 대검이 메여져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이미 두 명이 추가로 와 있었다. 알리시아 교관을 포함해서 총 4명이었다. 분명 한민아 교관의 감각은 절대 둔한 편이 아니건만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도 못했으니 저들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는 거점 총책임자인 오웬스 루이스도 있었다. 백발의 머리를 뒤러 넘긴 그가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분명 저놈들이 숲 안쪽에도 수작질을 해놨을 거다. 진짜 목표는 초행자들일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들어가서 살펴보고 해결하겠다. 너희들이 한 명씩 저 모지리들 상대 좀 해주고 있어라.”

    “오케이~”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대검을 맨 남자와 알리시아 교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바로 가보지.”

    오웬스가 발에서 하얀색 번개 같은 마력을 뿜어내며 말했다. 그런 오웬스의 앞을 아까 전 아니스라고 불린 여자가 가로막았다.

    “어딜 멋대로.”

    그런 아니스의 미간을 향해 갑자기 화살 한 대가 날아들었다. 아니스는 급히 고개를 꺾어서 피했지만 화살이 지나간 후폭풍만으로도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네 상대는 나란다 눈 빨간 꼬맹아~”

    아까 전 활기차게 대답한 여자가 활을 가누며 말했다.

    “쳇, 선수를 뺐겼구만. 나도 오랜만에 흡혈귀 놈들이랑 한바탕 해보고 싶었는데.”

    등에 매고 있던 대검을 한 손으로 들어올린 남자가 불만스레 말했다.

    “그럼 내가 사슬쟁이를 상대할테니 란델 너가 저 반쯤 악마화 된 놈이랑 싸우고, 레이샤가 흡혈귀를 처리하는 걸로 하자. 다들 동의 하지?”

    알리시아 교관이 레이피어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오케이~”

    “알았다.”

    이를 지켜보던 오웬스가 다시 출발했고, 그를 막으려던 다른 변절자들은 각자 수호자 한 명씩에게 저지당했다.

    “...망할.”

    “존, 아니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 한다. 아니면 우리가 죽을 거다.”

    “알고 있다고.”

    변절자들이 지그시 입술을 씹으며 인상을 구겼다.

    그런 그들을 향해 폭풍과도 같은 기세를 뿌리는 세 명의 수호자가 달려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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