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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35화 (35/61)

〈 35화 〉 34. 격전

* * *

그 생각이 들 때 즈음에 여느 악마들처럼 메뚜기 악마의 시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역겨운 냄새가 나는 체액들도 함께 사라졌다.

다들 코를 막았던 손을 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우리는 귀를 때리는 소음을 다시 들어야 했다.

우우우우우우웅 ­ !

소리를 들은 모두가 크게 당황하면서도 빠르게 무기를 고쳐쥐었다. 어수선하게 서 있던 팀원들이 전부 다시 진형을 이루었다.

그렇게 사방을 둘러보던 우리는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수많은 메뚜기 악마들을 볼 수 있었다.

***

“끄아아아악!”

“사, 살려줘!”

“물러서지 마! 전위가 뚫리면 다 죽는다!”

여기저기에서 끔직한 소음이 들려왔다. 사람이 죽어가며 내는 비명 소리, 살려달라고 아우성 치는 소리, 살이 찢기는 끔찍한 소리...

“이런 미친.”

나직하게 욕을 내뱉는 한민아 교관에게 또 로커스트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이미 한참 전에 놈의 접근을 예상하고 있던 한민아 교관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푸르스름한 검기가 맺힌 그레이트 소드가 로커스트의 몸을 이등분 했다. 날아오는 기세 그대로 검에 들이받혀서 두 동강이 나버린 로커스트가 땅에 떨어졌다.

한민아 교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로커스트 시체에 빠르게 다가가 마력을 풀어해치며 기술을 사용했다.

‘이그나이트’

시체 주변으로 퍼져나간 마력이 삽시간에 이글거리는 불꽃으로 바뀌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은 로커스트의 시체가 폭발하며 아군을 불러내기 이전에 완전히 불살라버렸다.

이미 많은 로커스트가 숲 초입부로 넘어와서 큰 의미는 없는 행동이었지만, 적어도 다른 로커스트들이 흥분으로 날뛰는 것은 방지할 수 있었다.

“대체 어쩌다가...”

정말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된 것일까.

왜 안전하고 평화롭게 진행되었어야 할 실전훈련이 이렇게 지옥도가 되었다는 말인가.

지금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로커스트들은 얼핏 봐도 수천 마리는 되어 보이니 중급 악마라고 봐야 한다. 이놈들은 개체 수에 따라 급이 정해지는 악마인데 천 마리 이상은 중급에 해당한다.

이것들 말고도 저기서 맹독성 입김을 뿜으며 두 발로 뛰어다니는 도마뱀 역시 중급 악마이다. 날개와 앞발이 없는 불완전한 용종. 사실 용종이라고 치기 좀 애매한 수준이기는 하나 어쨌든 그 흉폭성 만큼은 알아주는 린트부름까지 날뛰고 있다.

거기다 한창 교관들에게 수(?)나 빙() 계열 기술로 얻어맞으면서 기세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저 안개도 중급 악마이다. 마기 저항 능력이 약한 이들은 순식간에 몸 안으로 침투하여 마력을 오염시켜 죽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형체를 가진 안개로 기습을 한다. 어느 정도 레벨과 실력이 있다면 버티는 건 어렵지 않으나 그 끈질김 때문에 악명이 높다.

이렇게 총 셋이나 되는 중급 악마가 대뜸 난입을 한 것이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기껏 나와봤자 하급 악마가 다인 1 계층에서 중급 악마 3마리라니. 단순한 돌발 상황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앞뒤가 안 맞는다.

거기다가 시기도 너무 적절하다. 갑자기 중급 악마가 습격한 것이 하필 초행자들의 실전 훈련 때라니. 누가 봐도 초행자들을 노리고 벌어진 고의적인 사건이다.

이번 초행자들이 숫자도 많고 전체적으로 수준도 높아서인지 초행자들을 노리고 이루어진 이례적인 습격이 터져 버렸다. 수많은 클랜들을 비롯한 인류 쪽 세력과 전면전을 할만한 일을 누군가 기어코 저지르고 말았다.

지금 이렇게 중급 악마들을 이용해서 교관들을 혼란시키고 시간을 끄는 동안, 초행자들을 정리할 생각이겠지.

그리고 이런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할만한 것들은 하나밖에 없다.

변절자들.

그 역겨운 배신자들.

그 해충같은 놈들이 드디어 선을 넘었다.

뿌드득 ­

한민아 교관의 눈에 강한 증오가 담기며 마력을 줄줄 내뿜었다. 어금니가 갈리는 듯한 소리가 나며 이가 악물렸다.

더욱 선명한 마력을 두른 그레이트 소드가 악마들을 향해 곧게 겨누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급 악마의 출현을 눈치 챈 수호자들이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 버텨야 한다.

한시라도 초행자들을 구조할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악마의 숫자를 줄이거나 힘을 빼놓아야 한다.

그러다가 운 좋게 이 일을 주도한 변절자 중 하나를 만나 목을 친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한민아 교관의 스톡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온 몸에 마력을 공급했다. 마력으로 강화시킨 신체 능력으로 땅을 거칠게 박차며 질주했다. 이어서 파괴적인 마력을 담은 그레이트 소드가 악마들의 목을 노리고 쇄도하였다.

***

좆됬다.

우리가 숨어있는 수풀 쪽으로 벌떼처럼 날아오는 메뚜기 악마들을 본 순간 든 생각이었다.

톱날같은 입을 불똥이 튀길 정도로 돌려대며 날개가 안보일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다. 그렇게 섬뜩하게 생긴 것들이 얼핏 봐도 수십 마리 단위가 한꺼번에 이쪽으로 돌진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아주 엿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최대한 덜 엿 같아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법이다.

나는 악마 무리가 몰려드는 것을 보고 얼타고 있는 모두에게 소리쳤다.

“앞쪽으로!”

지금 우리의 위치는 숨어있기 위해 잡은 장소였다. 나무 밑이라 어두운 데다 수풀이 많아서 시야가 제한되고 장애물도 많다.

여기서 싸우면 악마들을 제대로 공격하지도 못하고 오는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도 못할 것이다. 실수로 다른 팀원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내 의도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팀원들은 일단 나와 함께 밖으로 뛰쳐나왔다. 앞쪽에 있는 나무 사이에 넓은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진형을 빠르게 바꾸었다.

나와 벨, 이해나가 삼각형 형태로 서서 유지윤과 린펠이 있는 가운데를 보호하는 진형이었다. 고블린 같은 것들이 사방에서 몰려들 때를 대비해 미리 합의해둔 건데 상대가 저런 거대 메뚜기가 될줄은 몰랐다.

이 진형이 저 득달같이 달려드는 메뚜기놈들을 상대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안 하고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수십 마리의 악마들이 풀풀 풍겨내는 마기가 주변을 잠식했다. 그 짙은 마기의 농도를 가늠한 우리는 여기서 버티려면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기의 수준이 절대 최하급따위가 아니었다. 한 놈 한 놈이 전부 하급 악마 정도는 되어보였다.

가진 것을 전부 쏟지 않으면 개죽음 당한다. 저 흉측한 메뚜기들의 입에 갈리면서 고깃덩어리가 될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위장에 자리한 스톡이 맹렬히 회전하며 마력을 전신에 순환시켰다.

긴 검신을 따라 찬연한 성화가 피어올랐다.

‘전투 천사 강림 ­ 오파님(Ophanim)’

기술을 사용함과 동시에 눈부신 빛기둥이 내가 있는 것을 강타했다. 머리 위에 금색으로 빛나는 월계관이 생겨나고 등 뒤로 순백의 날개 한 쌍이 펼쳐졌다.

벌써 지척까지 다가온 메뚜기 악마들이 갑작스러운 이변에 주춤거렸다.

더 격렬하게 타오르는 성화를 검에 두른 채로 나는 검을 땅에 내려 찍었다.

‘심판하는 불을 내리라’

기전제압 및 선제타격에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기술이었다.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땅위를 내달렸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불꽃은 자신을 가로막는 것들을 죄다 태워버리면서 나아갔다.

키이익 ­ !

키이이이익 ­ !

메뚜기 악마 네 마리 정도가 방금의 일격으로 불에 휩싸이며 무력화 되었다. 저걸로 바로 죽지는 않겠지만 다시 일어나서 달려들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악마들은 까마득하게 많았다. 나는 긴장을 놓지 않고 검을 들어올렸다.

그렇게 다음 상대를 향해 검을 내지르려는데 갑작스레 메뚜기 한 마리가 우뚝 멈추었다. 덕분에 뒤에서 같이 달려들던 세 마리가 멈춘 놈의 몸에 부딧혀서 나자빠졌다.

돌발적인 상황에 당황한 와중에 주변을 보니 이렇게 갑자기 멈춰선 악마가 한둘이 아니었다. 멈춘 놈들은 모두 영혼이 빠져나간 것마냥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자세히 보니 멈춘 놈의 몸에 매달린 희미한 마력사 하나가 보였다. 그제야 나는 이게 유지윤의 기술임을 알 수 있었다.

‘제 1막 광기 ­ 인형 폭주’

유지윤이 무언가 기술을 사용함과 동시에 악마들에게 연결된 마력사가 거칠게 꿈틀거렸다. 무언가를 꾸역꾸역 주입하듯이 부풀었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하였다.

그렇게 잠시 움직이던 마력사들은 갑자기 뚝 끊어져버렸다. 허공에서 나풀거리다가 사라지는 것이 마치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했다.

그러더니 멈췄던 악마들이 죄다 뒤를 향해 돌아섰다. 그런 놈들을 본 다른 악마들이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채고 멈칫거렸다.

그 직후 마력사가 연결 되었던 5마리 정도의 메뚜기 악마들이 미친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이빨이 부서질 듯이 입질하는 것이 정말 미친 것 같았다.

그렇게 쏜살같이 뛰쳐나간 악마들은 동료들의 무리로 파고들어가서 마구 헤집었다. 덕분에 이리로 날아오던 상당수의 메뚜기들이 자기들끼리 엉키거나 날개가 부서져 땅에 처박혔다.

그렇게 하드캐리를 한 악마들은 한동안 난리치며 돌아다니다가 픽 쓰러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 기묘한 현상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모두가(참고로 정작 기술을 사용한 유지윤도 벙 쪄 있었다.) 다시 달려드는 악마들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하지만 나와 유지윤의 선공으로 기세를 확실하게 잡았다. 이 기세를 끝까지 몰고가며 저 메뚜기들을 상대로 살아남아야 했다.

우우우우우웅 ­ !!

키이이 ­ !

키이이익 ­ !

짐승처럼 울부짖는 메뚜기 악마들과 근접 딜러들의 창검이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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