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34화 (34/61)

〈 34화 〉 33. 중급 악마

* * *

그렇게 모두가 숨을 죽이고 주변을 살피던 도중이었다.

툭 ­

투둑 투두두둑 ­

투두두두둑 투두둑 ­

투두둑 투둑 ­

갑자기 무언가가 땅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정신 없이 들려왔다. 상당한 숫자의 어떤 물체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소리로 미루어 보아 그 무언가가 떨어지는 장소는 나무 위와 땅을 가리지 않는 듯 했다.

우리는 전부 바짝 긴장한 채 무기의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전방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

“히야, 많기도 해라.”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로커스트들을 보며 수다쟁이가 감탄했다.

“개체 수에 따라 급이 달라지는 악마는 아마 쟤네가 유일할 거야.”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굉음이 들려오지만 후드를 쓴 사람들은 전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흐뭇한 표정으로 악마들을 바라보던 수다쟁이가 여전히 원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완드를 치켜들었다.

“그럼 이제 다음 손님을 불러와야지?”

원 형태의 완드가 다시 꿈틀거리며 맥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저쪽도 슬슬 입질이 올테니 말이야.”

수다쟁이가 멀리 보이는 사르비나 거점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번째 관문 개방’

로커스크가 나왔던 관문이 닫히며 원 너머의 모습이 무질서한 비틀림으로 변했다. 이어서 그 비틀림이 뒤바뀌며 다시 어떤 풍경을 비추었다. 이번엔 크고 작은 바위들이 가득한 암석지대였다.

‘제 3 계층 연결 완료’

‘지정된 중급 악마 호출’

‘백색의 린트부름(Lindwurm)’

두 번째 악마가 호출됨과 동시에 원 너머로 보이는 암석지대에서 쿵쿵 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커지는 발소리가 원 내부의 관문에 파문을 그려냈다.

잠시 후 그 파문을 뚫고 하얀색의 거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쏘아지듯이 튀어나온 그것은 나무 꼭대기에 가뿐히 올라섰다.

놈의 모습은 마치 날개 없는 용과도 같았다. 거기다 날개만이 아니라 앞발도 없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었다. 두 개의 튼튼한 뒷다리로 나뭇가지 위에 잘도 올라서 있었다. 몸은 이름처럼 잡티 하나 없는 하얀색이었으며, 기다란 꼬리를 쉴 새 없이 움직여댔다. 입에서는 짙은 녹색의 연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딱 봐도 닿으면 좋은 꼴을 못 볼 것 같은 연기였다.

나무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던 린트부름이 한달음에 땅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쿵 ­ !

묵직한 소리와 함께 착지한 놈은 바로 숲 입구의 교관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집이 무색할 정도로 빠른 달리기였다.

불과 수 초만에 숲 초입부에 도달한 린트부름이 교관들을 향해 입김을 내뿜기 시작했다. 입김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교관들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지독한 독기를 품고 있는 녹색의 연기가 교관들을 혼란에 밀어넣었다. 안그래도 로커스트들의 출현으로 바쁘게 움직이던 교관들은 날벼락을 맞은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숲 입구를 바라보던 수다쟁이가 다시 시선을 완드로 돌렸다.

“판이 다 깔렸구만. 그럼 바로 마지막 손님까지 불러내 보자구!”

‘세 번째 관문 개방’

린트부름이 나왔던 관문이 닫히며 비틀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잠시 후 비틀림이 사라지며 원 내부에 또다른 풍경을 비추었다. 온통 물밖에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의 모습이었다.

‘제 5 계층 연결 완료’

‘지정된 중급 악마 호출’

‘불안정한 안개(Unstable Fog)’

원 너머로 보이는 바다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지더니 이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로부터 잠시 후 원 바깥으로 희뿌연 안개가 넘실거리며 쏟아졌다. 막대한 양의 안개가 끝없이 흐르며 덩치를 불려나갔다.

계속해서 쏟아지던 안개가 겨우 멈춘 것은, 거의 빌딩 수준의 높이를 자랑하는 나무를 몇 채나 감쌀 수 있는 크기가 되었을 때였다. 이동을 끝마친 안개가 숲 바닥에 넓게 깔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큰 면적의 바닥을 뒤덮어버린 안개는 바로 숲의 입구를 향해 이동했다.

미끄러지듯이 이동한 안개는 곧바로 숲 가까이에서 움직이던 교관들을 뒤덮었다. 자신들을 뒤덮는 안개에 일부 교관들이 저항했지만 대부분이 질식하거나 형체를 갖춘 안개에 몸이 난도질 당해 죽었다.

이제 숲의 초입은 완벽히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최하급이나 하급만 나오는 1 계층에서 중급 악마가 셋이나 등장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 중 교관들을 공격한 것은 둘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7 계층까지도 꾸준히 등장하는 중급 악마들은 결코 얕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수다쟁이를 비롯한 후드를 쓴 사람들 전원은 자신의 무기를 챙기며 나설 준비를 하였다.

이정도면 사르비나 거점에서 즉각 움직임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다. 거점을 수호하는 거물들이 뛰쳐나올 것이고 어쩌면 그 백발의 노괴까지 나올지도 모른다.

아무리 중급 악마라고 해도 그런 실력자들을 상대로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이 상황을 전부 정리해 버리기 전까지 빠르게 일을 끝마쳐야 했다.

후드를 쓴 사람들은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한 쪽은 숲의 입구로, 다른 한 쪽은 숲 내부로 이동했다. 숲의 입구로 향한 반절은 거점의 수호자들을 상대로 시간을 끌 사람들이었다. 반면 숲의 내부로 향한 반절이 이번에 그들이 1 계층까지 올라온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이들이었다.

“다들 ‘악어’가 해준 말 기억하지? 우리가 잡아야 하는 놈 특징 말이야.”

수다쟁이가 숲 내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이동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성(?) 계열의 마력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얗게 불타오르는 검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됨. 혹시라도 까먹은 사람은 없기를 바래.”

수다쟁이가 요상한 문양이 그려진 얼굴로 히죽 웃음을 보였다.

“그러니까 그냥 기분 나쁜 마력이 느껴지면 다 죽여버리라는 거야. 하는 김에 초행자 애들 숫자도 좀 줄일 겸 말이지. 그래도 너무 죽이면 5대 클랜 같은 덩치 큰 곳에서 전면전을 걸어올지도 모르니 적당히 알아서 조절들 하시고.”

수다쟁이의 말에 다른 후드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인 뒤 사방으로 넓게 흩어졌다.

초행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 사신들이 숲에 잠입하기 시작했다.

***

긴장으로 땀이 흐르는 이마를 닦으며 전방을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그 수많은 소리들 중에 가장 가까운 소리가 바로 앞에서 났기 때문이었다. 나무 아래 풀숲 사이에 팀원들과 숨어있던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앞을 내다보았다.

눈만 내놓고 앞쪽을 보니 우리 앞에 자리를 잡은 무언가의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메뚜기였다.

정말 상상 이상으로 커다란 메뚜기였다.

나는 놀라서 들이키려는 헛숨을 눌러 참았다.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채로 그 메뚜기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놈은 메뚜기처럼 생기긴 했지만 정말 메뚜기는 아니었다. 단지 그것과 상당히 닮은 악마였다. 긴 몸통과 길쭉한 뒷다리가 메뚜기와 같은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입에는 톱날같이 생긴 이빨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눈은 곤충의 눈이 아니라 빨간 바탕에 선명한 검은색 동공을 가진 눈이었다. 그 비대한 크기의 눈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어느새 내 옆까지 이동해온 린펠이 보였다. 린펠 역시도 약간 고개를 들어서 악마의 모습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나와 린펠은 눈을 마주쳤다. 린펠은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보이더니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린펠이 정확히 어떻게 저 악마를 처리하겠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린펠을 믿어 보기로 했다.

내가 슬금슬금 뒤로 이동하여 자리를 비켜주자 린펠이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메뚜기같은 악마를 잠시 노려보던 린펠이 허리춤에서 비도 여덣 자루를 꺼내 들었다. 린펠의 손에 잡힌 비도들은 빠르게 검고 은밀한 마력으로 감싸졌다.

이내 린펠의 전신에서 마력이 크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린펠은 유려한 동작과 함께 비도를 앞으로 내던졌다.

‘두 번째 춤사위 ­ 달빛을 가리는 장막’

린펠의 손을 떠난 비도들은 둥글게 나열된 상태로 악마에게 날아갔다. 늘어선 비도들을 따라 이어지는 커다란 마력의 장막이 악마를 뒤덮으려 들었다.

계속 눈알을 굴리며 주변을 살피던 악마의 눈에 날아오는 비도와 장막이 잡혔다. 하지만 악마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여덣 개의 비도가 전부 몸통에 꽂혔다. 비도가 꽂히자 마자 검은색의 장막이 악마를 완전히 감싸버렸다.

악마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지만 장막 바깥으로 벗어나지는 못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격렬한 움직임을 보이며 난리를 치는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 저 장막을 만들어내는 기술의 효과인 듯 했다.

노림수가 성공했음을 확인한 린펠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벨을 바라보았다. 난동을 부리는 악마를 멍하니 지켜보던 벨이 퍼뜩 정신을 차리는 것이 보였다. 린펠은 눈짓으로 악마를 가리켰다. 벨이 잠시 린펠을 바라보다가 그 뜻을 이해했는지 알았다는 수신호와 함께 앞으로 나섰다.

린펠이 자리를 비켜주자 벨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악마를 향해 이동하였다. 수풀 바깥으로 이동하기 전에 주변에 다른 누군가가 없는지 확인하고는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쓰러진 악마에게로 향했다.

악마의 근처에 도달한 벨은 들고 있던 창을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렸다. 그에 이어서 창 끝에 선명한 연녹색 검기가 맺혔다.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잎새’

벨의 창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악마의 목덜미로 쇄도했다. 나풀거리는 버들 잎처럼 변한 검기가 쭉 늘어나며 거침 없이 악마의 목을 갈랐다.

목이 잘린 메뚜기 악마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며 굴렀다. 몸통과 머리 사이로 찐득한 진액같은 체액이 흘러내렸다.

벨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팀원들을 바라보며 자리로 복귀하였다. 우리는 벨과 린펠에게 소소한 감탄을 보냈다. 이번에 보여준 둘의 기술세트는 정말 궁합이 좋았다. 린펠이 조용히 악마를 구속하고 벨이 그 숨통을 깔끔하게 끊었다.

소란스러운 기술을 썼다간 주변의 악마들이 죄다 몰려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최고의 연계를 보여주었다.

벨이 자리로 돌아와 은폐를 하자 우리도 다시 주변을 면밀하게 살피며 추가로 다가오는 악마가 있는지 확인했다.

이변은 그때 일어났다.

푸확 ­ !

갑자기 앞쪽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앞쪽을 바라보았다.

터진 것은 죽은 메뚜기 악마의 시체였다. 죽은 뒤에 부풀어서 터진 건지 체액이 이리저리 흩날려져 있었다.

“흐읍!”

“어우!”

문제는 거기서 나는 코가 쏘는 수준의 악취였다. 다들 급히 코를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말 체액이 무엇으로 이루어진 건지 궁금할 만큼 지독한 냄새였다.

그러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들은 죽어서 그 몸이 사라지고 마석만을 남긴다. 그런데 어떻게 저 메뚜기 악마는 죽고 나서도 시체가 남아있던 걸까? 게다가 그 시체가 터지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 생각이 들 때 즈음에 여느 악마들처럼 메뚜기 악마의 시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역겨운 냄새가 나는 체액들도 함께 사라졌다.

다들 코를 막았던 손을 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우리는 귀를 때리는 소음을 다시 들어야 했다.

우우우우우우웅 ­ !

소리를 들은 모두가 크게 당황하면서도 빠르게 무기를 고쳐쥐었다. 어수선하게 서 있던 팀원들이 전부 다시 진형을 이루었다.

그렇게 사방을 둘러보던 우리는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수많은 메뚜기 악마들을 볼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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