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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31화 (31/61)

〈 31화 〉 30. 불길한 조짐

* * *

“자신이 속한 팀원들과 모여서 서 주십시오. 시험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개인 정비를 확인하시고, 준비를 마치셨다면 부교관에게 알리시기 바랍니다.”

곳곳에서 부산스레 정비를 확인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내 장비를 다시 한 번 체크한 뒤 인벤토리를 열어 식량을 비롯한 지원 물품이 잘 있는지 확인하였다.

다들 확인을 마치고 부교관들에게 알리자, 부교관들 중 하나가 한민아 교관에게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그 말을 들은 한민아 교관이 모든 초행자에게 알렸다.

“그럼 지금부터 훈련캠프의 마지막 과정, 실전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시험을 통과하는 조건은 각 팀에 배정된 깃발을 회수해 오는 것입니다.”

우리 팀의 번호는 1팀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빨간색 바탕에 1이 적혀 있는 깃발을 가져와야 했다.

“1클래스 각 팀의 깃발들은 모두 악마들이 서식하는 군락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깃발이 위치한 군락지를 찾으신 다음, 그 군락지 중앙에 꽂혀있는 깃발을 가져오시면 됩니다.”

악마들이 서식하는 군락지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제 1 계층에서는 대부분 최하급 악마들의 군락지만 발견된다. 하급 이상의 악마 군락지는 좀 더 마력 농도가 짙은 제 2 계층 부터 발견된다. 그래도 악마들이 떼거지로 몰려 있는 곳이니 만큼 최하급도 만만하지 않다.

“방법은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몰래 잠입해서 깃발만 가지고 나와도 좋고, 정면으로 돌파해서 깃발을 빼앗아도 좋습니다. 다른 기발한 방법을 이용하여 악마들을 쫓아내거나 틈을 만들어서 깃발을 얻어내도 좋습니다. 합격 조건은 오직, 깃발의 회수 여부에만 있습니다.”

사실 상황에 따라 저 많은 방법들 중 하나로 강제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군락지에 서식하는 악마가 어떤 종류이냐에 따라 공략 방법이 천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경우에 통하는 정면 돌파라는 방법이 있긴하다.

“이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정식으로 훈련캠프를 졸업할 수 있게 됩니다. 졸업자에게는 고품질의 방어구와 무기가 지급되며 마력 효율을 늘려주는 응집체 또한 지급됩니다. 이 시험을 통과하느냐의 여부가 여러분들의 생존 확률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초행자들이 힘들더라도 훈련캠프에 계속 남아있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저 장비와 응집체 때문이다. 장비는 말 할 필요도 없이 생존과 직결된다. 그리고 응집체는 일종의 영약 같은 것인데 마력의 효율과 질을 올려준다. 응집체가 마력의 절대량을 늘려 주진 않지만 효율과 질 상승만으로도 전투력에 큰 차이를 불러온다고 한다. 실제로 응집체를 먹은 사람과 안 먹은 사람의 검기의 농도 차이는 눈에 보일 정도다.

“그럼 지금부터 모두 지정된 자리로 이동해 주십시오. 모든 팀이 준비되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초행자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나를 포함한 우리 팀은 우리가 지정된 위치인 가장 왼쪽 지점으로 이동했다. 왼쪽부터 번호대로 배열하는 모양이었다.

위치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벨이 말을 꺼냈다.

“후우, 이거 생각보다 긴장 되지 않냐?”

마침 나도 꽤나 긴장하던 터라 바로 동의했다.

“응. 막상 나오니까 꽤 긴장되네.”

“팀끼리 모여서 훈련할 때까지만 해도 별거 아닐 줄 알았는데 말이야.”

“나도 동의한다. 뭔가 방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린펠도 동감하며 말했다.

“걱정 할 것 없어, 얘들아. 여기서 뭔가 나오든 다 이길 수 있게 훈련 했잖아? 아마 우리처럼 하나하나 전략 만든 팀도 드물걸.”

유지윤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하긴, 준비는 많이 했지. 게다가 우리가 캠프에서 제일 레벨도 높은 편이고 기술세트도 좋은데 실패하면 이상한 거 아니야? 우리가 못 하면 다 못 할걸.”

“그건 맞지.”

“맞다. 실패할 리는 없다. 다만 방심하지 말아야 하는 건 우리도 똑같다.”

그렇게 다들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서로 확신을 다지는 사이, 어느새 모든 팀의 준비가 끝났다.

“그럼 모두 출발 하십시오! 부교관의 안내에 따라 순서대로 돌입하겠습니다!”

한민아 교관의 출발 신호가 들려오자 1번인 우리 팀은 바로 돌입할 준비를 했다. 옆에 서 있던 부교관이 유쾌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 앞쪽의 숲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숲에 들어가신 뒤 중도 포기를 원하신다면 배부 받은 신호탄을 쏘십시오. 부교관들이 즉각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또한 깃발을 회수하셨을 때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저에게 주시면 합격으로 처리 됩니다. 그럼, 초행자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부교관의 안내를 들으며 우리는 숲 쪽으로 다가갔다. 멀리서 보았을 때 그리도 장엄하던 숲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왠만한 건물 크기의 거대한 나무들이 숲에 들어가려는 우리를 반겨주었다.

“자, 얼른 끝내고 돌아와서 졸업 축하 파티나 하자구.”

벨의 말에 모두 피식 웃으며 숲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환란의 숲에서 치르는 실전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

제 9 계층, 숨이 막힐 정도로 짙은 마기가 흐르는 어딘가.

한 여인이 고풍스런 붉은색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인의 몸에는 검붉은 색의 비단과도 같은 천이 둘러져 있었다. 발밑으로 길게 늘어진 천이 마치 피 웅덩이를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 옷과 함께 바닥에 늘어져 있는 여인의 머리카락도 눈에 띄었다. 짙은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여인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인은 살짝 눈을 뜬 채 아래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얼굴은 남자라면 모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들 만큼 아름다웠다. 너무나 아름다워 성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동시에 가늠하기 힘들 만큼의 요사스러움과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여인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농밀한 마기가 그녀가 그저 아름답기만 한 여인이 아님을 말해주었다.

그런 그녀의 눈이 조금 더 열렸다. 눈꺼풀 사이로 소름끼치는 핏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 눈동자는 고요한 어둠이 깔려있는 앞쪽을 응시했다.

잠시 후 그 어둠 사이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발의 머리를 가진 한 남성이었다. 검은색 로브를 걸친 그는 천천히 여인 쪽으로 걸어왔다. 그의 팔에 매달린 매 한 마리의 눈이 조용히 빛났다. 매의 색깔 역시 하얀색이었다. 그는 매를 어깨 쪽으로 옮기고는 한 쪽 손으로 얼굴을 가리던 로브자락을 살짝 올렸다.

그 사이로 드러난 남자의 서늘한 눈빛이 여인을 향했다.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색의 눈동자가 여인의 모습을 비추었다.

백발의 남자와 여인은 그렇게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여인이었다.

“아가레스.”

과연 여인은 목소리도 누구나 홀릴 수 있을 것처럼 아름다웠으나 남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 조용한 동부의 지배자가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죠?”

여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경계가 묻어나왔다.

“릴리스.”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도 느끼지 않았나?”

여인은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무얼 말하는 거에요? 당신이 움직여야 할 정도의 일은...”

“카마엘.”

남자의 한 마디에 여인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 광천사가 남긴 파편 중 하나가 깨어나고 있다.”

“...”

“그년이 뭔 수작을 부려놨는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지켜만 볼 수 없다.”

여인의 동공이 잠시 흔들리다가 멈추었다.

“그 광천사의 파편이 깨어난다구요?”

“최근 제 1 계층에서 미약한 반응이 느껴졌다. 파편이 깨어나기 시작한지는 얼마 안 됬어.”

“1계층이요? 그 미친 천사의 파편이라도 깨우려면 최소 최전선에 있는 초대자여야 하는 게...”

“나도 그게 의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가능했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로서는 더 좋은 일이지.”

백발의 남자가 씨익 하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씨앗이 자라기도 전에 제거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여인은 약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굳이 제거해야 하나요? 아니, 애초에 이 일이 당신이 직접 경계할 만큼의 큰 일인가요? 그 광천사가 소멸한 이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이제 와서 파편이 한 두개 깨어난다고 해봤자 딱히 달라지는 것도 없다구요. 그냥 강한 초대자가 하나 늘어나는 정도겠지요. 경계해야 한다면 대놓고 훼방을 놓고 있는 천사들의 계약자들이 더 위험한 거 아닌가요?”

“물론 지금은 그 파편 하나가 별 위험이 안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남자는 질문할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작은 가능성 하나도 남겨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미친년이 다시 지옥에 돌아올 일말의 가능성조차 말이다. 나는 아직도 그 미친 천사가 단독으로 쳐들어와서 벌인 짓들을 잊지 못한다. 그 때의 일이 다시 벌어지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이번에는 지난 번과 차원이 다른 수준일 것이다.”

남자는 불쾌한 기억을 떠올린 듯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그러니 아직 파편이 온전하지 못할 때 제거해야 한다. 모든 파편들을 비롯하여 그년이 이 지옥에 남겨 놓은 것들은 다 사라져야 한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여인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미 마음을 굳힌 모양이군요. 좋아요. 당신이 그 파편을 꼭 제거하고 싶어 한다는 건 잘 알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1 계층이면 우리가 거의 간섭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다른 것들을 시키자니 밖으로 말이 새어 나갈지도 모르잖아요?”

“그렇지. 혹시라도 다른 군주 녀석들이 알아차리면 무슨 짓들을 할지 모른다. 그것들 중에는 그 미친년을 죽이지 말고 꾀어서 타천사로 만들자고 한 녀석들도 많으니까 말이지. 그 외에도 다른 놈들이 파편을 건들만한 수많은 이유가 있겠군. 아예 자기가 직접 키우려고 하는 놈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요. 그러니 일처리를 할거면 우리가 움직이던가 우리에게 복속된 악마들을 부려야 하는데, 그것들 조차도 아무리 올라가봤자 제 5 계층이 한계라구요.”

“그러니 내가 널 찾아온 게 아니겠나.”

잠시 생각하다 그 의미를 알아낸 여인은 경악을 담은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당신, 미친거에요? 그 권능을 거기다 쓰려면 내가 무슨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몰라서 말하는 거에요?”

“물론 바로 그 권능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일단 일차적인 조치를 해보고 그것이 안되면 쓰라는 것이지.”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나도 거기까지 갈 일은 없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만일 너가 권능을 써야 한다면 그 부담은 내가 같이 지도록 하지.”

여인은 그 말을 듣고서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좋아요. 당신이 함께 대가를 지불한다면 할만할지도 모르죠. 그럼 그건 그리한다 치고, 일차적인 조치는 뭐에요?”

“우리에게 복속된 악마들을 부리는 거다.”

“그건 안된다고 아까 말을...”

“안 될 것은 없지. 그것들이 직접 가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남자는 다시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변절자들(Apostates)을 쓰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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