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30화 (30/61)
  • 〈 30화 〉 29. 제 1 계층 ­ 환란의 숲

    * * *

    “아무튼 이렇게 각자를 알아보는 건 마무리해도 좋을 것 같아.”

    유지윤이 종이를 다시 치우며 말했다.

    “그럼 이제 제일 가까이 다가온 일정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보자. 다음 일정이 우리가 팀으로 활동하는 첫 일정이기도 하고.”

    팀으로 활동하는 일정이 있었나? 내가 쓰러진 사이에 공지가 나온 건지 나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다음주에 거점 밖에서 진행되는 실전 훈련. 최대한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어.”

    거점 밖에서 진행되는 실전 훈련이라고? 상당히 심장이 쫄깃해지는 주제가 나왔다.

    “다들 이미 교관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알겠지만, 이번에 1에서 3클래스까지 실전 훈련을 나가. 나머지 4에서 5클래스는 아직도 실전을 치르기 힘들다고 하더라. 그것들은 진짜 어떻게 살아남을 생각인지 모르겠다니까.”

    전체의 반 정도가 거점 밖에서 실전 훈련을 하는 모양이다. 상위 클래스만 데려가는 것은 미리 실력을 시험하여 초대자가 동행하지 않아도 될지 확인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만약 여기서 지나치게 부진한 결과가 나온다면 무리해서라도 초대자를 동행시킬까?

    “특히 1클래스는 말이 훈련이지 그냥 실전이나 다름 없을 거래. 교관들도 최소한의 개입만 할테니 악마들과 전투하고 생존하는 건 전부 우리가 알아서 해야할 거야. 그러니 우리끼리의 팀워크가 중요한 거지. 이미 우리보다 먼저 합동 훈련을 하는 팀들도 있더라.”

    유지윤은 살짝 조급한 듯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도 빠르게 훈련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당장 다음 주가 실전 훈련이기도 하고 그 이후 며칠 뒤에 첫 소환이잖아. 어차피 남은 기간은 자유롭게 개인훈련 하는 기간이니 모일 시간도 많겠지.”

    유지윤이 동의를 구하듯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기간 모여서 훈련 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정말 지금 아니면 이렇게 함께 훈련할 시간이 없기도 했다.

    “그럼 언제 어디서 만날지부터 정하는 게 좋겠군. 다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협동 훈련은 빠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남은 기간을 알차게 보낼 수록 우리가 살아남을 확률도 증가할테니까 말이다.”

    린펠이 동의하며 말했다. 전부 동의한 것 같으니 구체적인 계획을 짜자는 말이었다.

    그 후에 우리는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시간은 매일 아침 훈련 이후, 장소는 1클래스에 몇 군데 할당되는 단체훈련실이었다. 다들 개인적인 일정 보다 협동 훈련을 더 우선시 하는 분위기라 일사천리로 약속이 잡혔다.

    “그럼 오늘은 이만 해산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하도록 하자. 오늘 기술세트 배우느라 모두 수고 많았고,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보자구.”

    진행을 맡던 유지윤이 모임이 끝났음을 알렸다. 그 뒤로 확실히 다들 피곤하긴 했는지 빠르게 흩어졌다. 그렇게 내 숙소에서 진행된 갑작스러운 모임은 끝이 났다.

    ***

    앞으로 매일같이 만나서 훈련하기로 약속한대로 우리는 일주일간 맹훈련을 했다. 함께 훈련하면서 서로의 기술세트와 전투 스타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최적의 효과를 고려한 연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훈련캠프에서 들었던 여러가지 유형의 적들에 대한 대비책을 세웠다. 악마의 유형마다 다른 연계기와 전략을 만들고 이를 숙지했다. 유사시에 발빠른 대응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의 생존 여부를 가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실전 훈련 전 며칠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드디어 거점 바깥으로 나가는 훈련 당일날이 되었다.

    각자 완전 무장을 마친 초행자들이 공터에 모였다. 자신이 속한 팀의 팀원들과 함께였다.

    1클래스에서 3클래스까지 100명 정도가 모인 공터에는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입문자의 시험 이후로 처음 악마를 상대하러 가는 것이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중에서 훈련을 게을리 한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실전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하다. 이 지옥은 노력이 절대 배신하지 않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꽤 경직 되어 있는 초행자들 앞으로 교관이 나왔다. 여러 명의 교관을 대동한 알리시아 교관이었다. 공터에 서 있는 초행자들을 쭉 둘러본 알리시아 교관이 말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30분 뒤에 실전 훈련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초행자 여러분은 마지막 정비를 끝내주십시오. 10분 뒤에 캠프를 나가서 거점 입구로 향하겠습니다.”

    알리시아 교관 뒤로 많은 교관들과 외부 초대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긴장해야 하는 건 초행자들만이 아닌 모양이다.

    “모두들 여기까지 따라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마지막 관문인 실전 훈련을 앞두고 계십니다. 이 훈련 이후 여러분 각각은 한 명의 초대자로서 인정 받게 됩니다. 더 이상 초행자라고 불릴 일도 없어지는 것이죠.”

    알리시아 교관은 살짝 뒤를 돌아 준비 상황을 확인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만만한 시험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훈련캠프 기간 동안 갈고 닦은 것들을 전부 쏟아내야 할 것입니다. 거점 바깥의 지옥에선 절대 쉬운 마음가짐으로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찰나의 방심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심하지 않고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생환할 것이며, 이전 보다 더욱 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초행자들을 둘러본 알리시아 교관이 씩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 모두 훌륭하게 해내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시험 진행을 돕고 만일의 사태를 막기 위해 저희 교관들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훌륭한 초대자가 되어 다시 만나길 기다리겠습니다.”

    이내 뒤에서 한 교관이 다가와 알리시아 교관에게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알리시아 교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초행자들에게 알렸다.

    “그럼 전부 교관의 통제에 따라 거점 바깥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순서는 1클래스부터 먼저 나가고 다음으로 2, 3 클래스가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1클래스 담당인 한민아 교관과 몇몇 부교관들이 우리를 거점 입구로 이끌었다. 나를 비롯한 1클래스 초행자들은 한 달 정도 만에 캠프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여전히 약간 어설픈 도시 같은 느낌의 풍경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길거리에는 저마다 개성있는 무장을 한 초대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서 거점 입구에 다다르자 커다란 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문이 열리면서 거점 바깥의 모습이 점점 눈에 들어왔다. 이내 활짝 문이 열렸고 나는 제 1 계층의 경치를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지옥 특유의 붉은색 하늘이 지평선 너머까지 길게 펼쳐져 있었다. 그 지평선까지의 땅을 뒤덮고 있는 것이 첫 번째로 눈에 보였다. 캠프 기간 동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말이 안 나오는 스케일이었다.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숲.

    마치 지구의 냉대림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숲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물론 지구에서 처럼 싱그러운 초록색이 가득한 숲은 아니었다. 나무마다 저마다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체적으로는 붉은색과 보라색이 많이 보였다. 여기 저기에는 언덕이나 산이 솟아 있었지만 그리 높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바다와 같이 넓게 펼쳐진 숲이었다.

    이것이 제 1 계층, 환란의 숲이라고 불리는 계층의 모습이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1클래스 초행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나 장엄한 숲의 모습과 그와 동시에 온 숲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이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문이 열리고 천천히 이동하던 우리가 문을 다 빠져나오자 교관들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무장을 한 한민아 교관이 우리 앞에 섰다.

    “모두 집중해 주십시오.”

    한민아 교관의 서늘하고 날카로운 눈빛에 다들 정신을 차렸다. 압도적인 풍경에 넋을 잃었던 초행자들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경계를 끌어올렸다.

    다시 태도를 바로잡는 초행자들을 보며 고개를 몇 번 끄덕인 한민아 교관이 말을 이었다.

    “자신이 속한 팀원들과 모여서 서 주십시오. 시험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개인 정비를 확인하시고, 준비를 마치셨다면 부교관에게 알리시기 바랍니다.”

    곳곳에서 부산스레 정비를 확인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내 장비를 다시 한 번 체크한 뒤 인벤토리를 열어 식량을 비롯한 지원 물품이 잘 있는지 확인하였다.

    다들 확인을 마치고 부교관들에게 알리자, 부교관들 중 하나가 한민아 교관에게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그 말을 들은 한민아 교관이 모든 초행자에게 알렸다.

    “그럼 지금부터 훈련캠프의 마지막 과정, 실전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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