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29화 (29/61)

〈 29화 〉 28. 최고의 팀플을 위해

* * *

“기술세트의 이름은 ‘키르카스(Kirkas)의 달밤 무희’이다. 나도 처음에 기술세트 이름을 듣고 갸웃 했었다. 무희라는 단어와 암기술이 조금 안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은 없었다.”

무희라. 춤추듯이 기술을 사용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걸까? 춤사위와 암기가 어우러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싶어 기대가 되었다.

“일단 이 기술세트를 익히니 마력의 속성이라는 것이 바뀌더군. ‘그림자’라는 속성이었다.”

린펠에 손을 펼쳐서 허공에 약간의 마력을 구현해 내었다. 구현된 마력은 칠흙같이 검은 연기 같았다. 저런 형태의 마력이 도처에 깔린다면 한 치 앞도 분별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와는 별개로 나는 나 외에도 속성이 바뀐 마력이 있다는 데 큰 흥미가 돋았다.

내 마력 속성인 ‘성화(?火)’는 악마들을 대상으로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성능을 내기 위해서 바뀐 속성은 이전과 판이하게 다른 마력에 적응할 것이 요구된다. 정말 마력의 정체성 자체를 바꾸어 버리는 느낌의 변화이다. 그런 변화에 적응한다면, 다른 이들과는 다른 독보적인 나만의 스타일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속성 변화를 거치니 내 몸에 흐르는 마력이 전부 바뀌었다. 이 검은 연기 같은 마력으로 말이다. 그랬더니 마력을 사용할 때 눈에 띄는 마력 유동이 확실히 적어졌다. 그러니까 결국 은밀해지고 조용해졌다는 말이다. 지금으로서는 이것 밖에 모르겠지만 아마 훨씬 더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전수해 준 스카우터도 그리 말했다.”

일단 주된 특성은 은밀함과 고요함인 모양이다. 암기를 사용하는 린펠에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런 속성 변화도 동반하는 기술세트인데, 암기술답게 암기 관련 기술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암기를 강화하거나 경로를 비트는 기술이 있다. 좀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마력만으로 암기를 만들어내거나 수많은 암기를 한꺼번에 다루는 기술도 있더군. 전투 중 불의의 일격을 꽂을 때 유용할 것 같다.”

원래 암기를 다루기도 했지만, 기술세트를 보니 린펠은 확실히 도적과 같은 포지션이었다. 원거리에서 은밀하고 치명적인 일격을 꽂는 방식의 전투. 벨이 그렇듯이 린펠도 적의 숨통을 끊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기술이 춤사위와 같은 동작을 포함한다. 그래서인지 부드럽게 하나로 이어지는 연계 기술이 많은 편이다. 스카우터의 시연을 보니 정말 연계 동작이 춤 동작과 유사하더군. 왜 이름에 무희가 들어가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아름다운 동작에서 나오는 위력은 무시무시하지만 말이다.”

달밤 무희라는 것은 이래서 붙은 이름인 모양이다. 춤과 같은 동작으로 암기를 던져댄다니, 린펠의 시연을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런 식의 암기 관련 기술세트를 익혔다. 그래서 나는 유지윤처럼 후위에 서는 게 좋을 것 같다. 뒤쪽에서 암기를 날리며 전위를 지원하는 방식이 딱일 것 같군.”

사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 하긴 했지만 후위에는 유지윤과 린펠이 설 것 같다. 어딜 봐도 둘은 원거리 지원이 적합한 유형이다.

“이걸로 나는 끝이다. 다음은 누가 할거지?”

린펠의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이해나를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이해나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이해나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를 주었다.

어떻게 해도 내가 먼저 나갈 기미를 안 보이니 이해나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손을 살짝 들며 말했다.

“...내가 할게.”

“음, 알았다.”

린펠이 자리를 비켜주니 이해나가 앞으로 나갔다. 이해나는 늘상 그렇듯이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저 정도면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것이다. 내가 반강제로 우리 쪽으로 포섭시킨 뒤로 이해나는 우리와 거의 함께 다녔는데, 전보다 말도 많아지고 표정도 밝아졌다. 물론 그래봤자 드라이아이스에서 얼음으로 바뀐 정도이긴 하다.

“나는 벨처럼 고려 클랜에서 기술세트를 전수 받았어. 물론 벨과는 다른 기술세트야.”

이해나도 고려 클랜에서 전수를 받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같은 한국인이니 고려 클랜 쪽에서 더 후하게 대해줬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 클랜이 은연 중에 한국인을 더 우대해주는 경향이 있다는 건 유명하니까.

“기술세트 이름은 ‘무월야검(無月??)’이야. 무월야(無月?)는 달이 뜨지 않은 깜깜한 밤을 말한다고 해. 그만큼 고요하고 깊은 어둠을 기반으로 하는 검법이야.”

꽤나 독특한 컨셉의 검범이다. 달조차 안 보이는 어두운 밤이 어떤 식으로 검법과 어울릴지 궁금해졌다.

“일단 이 기술세트를 배우면 마력의 성질이 변화해. ‘잠식’이라는 성질인데 이름처럼 닿은 상대를 잠식해가는 마력이야. 이 성질의 마력을 두른 검으로 적을 베면 그 적의 몸에 마력이 침투해 들어가. 그리고는 상대의 마력과 신체를 전부 내 마력의 성질과 동일해지게 만들지. 그러면 그 마력과 신체부위는 어떠한 기능도 하지 않게 돼. 죽은 것처럼 말이야.”

상대를 침식해서 일부분을 죽이는 마력이라. 마치 치명적인 독과 같은 느낌의 마력이다.

“이 기술세트에 무월야(無月?)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 중 하나가 마력 성질 때문이야. 상대에게 빛 한 점 안 보이는 흑암과도 같은 절망을 준다는 거지. 물론 성질 말고도 기술도 이름값을 해.

식 중에는 어두운 마력을 흩뿌려서 상대의 시야를 차단하는 식이 있어. 그리고 아예 상대를 어둠으로 휘감아서 감각을 상실 시키거나 좀 무리를 하면 절대적으로 실명 시킬 수도 있지. 물론 실명은 대가가 좀 크긴 해. 아무튼 그렇게 시야가 봉쇄되거나 감각을 상실한 적의 숨통을 끊는 방식이야. 감각을 차단하는 식과 목숨을 끊는 식을 바꿔가며 운용하는 거지.”

정말 이름처럼 상대를 어두운 밤에 가두어 버리는 기술세트이다. 특히 그중에서 절대적인 실명은 상당히 대단한 기술이다. 대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에 따라 정말 치명적인 한 수가 될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악마라 하더라도 눈이 멀어버리면 전투 능력이 크게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근접전을 벌이는 기술세트야. 그러니 나는 탱킹을 하는 사람 옆에서 보조도 하고 딜도 넣는 근접 딜러가 맞을 것 같아. 적을 혼란시키거나 약화시키는 건 내게 맡겨주면 돼.”

확실히 이해나의 능력이라면 전투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감각을 봉쇄하는 게 성공한다면 그 이후 할 일은 마음껏 딜을 넣는 것 밖에 없을 테니까.

“저렇게 말 잘 하면서 평소에는 왜 그런담.”

벨이 추임새를 하나 넣었지만 이해나의 살벌한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그럼 내 소개는 끝이야. 이제 마지막으로 너가 하면 되겠네.”

이해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에 살짝 날이 선 것은 아까 전에 고집스럽게 굴어서 그런 걸까? 나는 일단 알았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이고는 앞으로 나갔다. 대충의 사정 설명은 이미 했으니 간단하게만 다루고 기술세트 설명으로 넘어가도 될 것 같았다.

“음, 일단 나는 아까 전에 말했다시피 정확히 누군지 모르는 초대자에게 전수를 받았어. 누군지는 몰랐지만 기술세트가 너무 엄청났기 때문이지.”

“아름다운 천사님한테 말이지?”

벨이 장난스럽게 끼어들었지만 린펠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조용해졌다.

“기술세트의 이름은 ‘세라프 카마엘(Seraph­Camael)의 수호 검술’이야. 기술세트의 이름처럼 무언가를 수호하게 위해 만들어진 건지 공방일체의 형태를 이루고 있어. 공격기술과 방어기술, 그리고 영역기술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지.”

나는 내가 훈련장에서 펼쳤던 기술 세 가지를 상기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 기술세트를 익히면 마력의 속성이 바뀌어. ‘성화(?火)’라는 속성이야.”

나는 린펠이 한 것 처럼 손바닥 위에 마력을 조금 구현해 내었다. 하얀색 불꽃이 일렁거리며 손 위에서 타올랐다. 그러자 다들 그 불꽃을 몽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마 무심코 촛불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일 것이다. 나도 처음엔 내가 피운 불꽃을 하염 없이 바라보았었다.

“이 속성은 마(?)나 악(?) 속성에게 절대적인 이점을 가져. 대부분의 악마들이 보유하고 있는 속성이지. 그럼 악마들의 마기에 침투하여 끈임없이 불사르는 속성이야. 거기다 이 마력은 악마들에게 어마어마한 고통도 선사한대. 이 기술세트를 만든 사람은 정말 악마들에 대한 엄청난 적개심을 가지고 만들었나봐.”

나는 피웠던 불꽃을 끄며 말을 이었다.

“이런 속성을 바탕으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해내는 스타일의 검술이야. 영역기술은 아군에겐 이로운, 적에겐 해로운 효과를 제공하지. 그야말로 종합적이고 다채로운 검술이라고 할 수 있어. 그래도 수호 검술인 만큼 적을 쫓아내고 방어하는 데 좀 더 치중되어 있는 편이야.”

이건 카마엘이 모든 식을 내 앞에서 시연해줄 때 느낀 감상이었다. 이 기술세트는 분명 적을 무찌르기 위해서라기 보단 적을 축출하고 막아내는 데 탁월한 편이다. 마치 견고한 성벽을 연상시키는 검술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탱킹을 하는 역할로서 선두에 서는 것이 맞는 것 같아. 굳건한 방어와 다채로운 공격과 지원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냥 혼자 해도 다 씹어먹을 것 같은데...”

궁시렁 거리던 벨이 린펠에게 한 대 더 얻어맞고는 조용해졌다. 나는 일단 이쯤에서 설명을 마치기로 했다.

“내 설명은 다 끝났어. 그럼 이제 다들 소개 했으니 다음은 뭘 할거야?”

내 자리로 복귀하면서 내가 말했다. 그러자 유지윤이 다시 일어나며 앞으로 나왔다.

“소개가 끝났으니 이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야지.”

다들 이제 서로의 기술세트에 대해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팀워크를 맞출 때가 온 모양이다.

“그럼 다들 설명 들었으니 각자의 역할이나 포지션은 알겠지? 그래도 알기 쉽게 정리해 두면 좋으니 한 번 정리해 봤어.”

유지윤이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종이를 보여주었다.

유지윤 ‘브로우즈(Brose) 강사 인형술’

아미르 벨 ‘유화창법(花??)’

린펠 하이드리히 ‘키르카스(Kirkas)의 달밤 무희’

이해나 ‘무월야검(無月??)’

김진운 ‘세라프 카마엘(Seraph­Camael)의 수호 검술’

“이건 각자의 기술세트이고,”

전투 진형

후위: 유지윤, 린펠 하이드리히

전위: 김진운, 아미르 벨, 이해나

“이건 대강의 진형이야. 이 정도면 다들 기억하기 쉽겠지?”

확실히 알기 쉽다. 그리고 이렇게 보니 상당히 밸런스가 잘 맞는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같이 다닌 것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다. 거기다가 하나하나 강력하지 않은 기술세트가 없다.

“아무튼 이렇게 각자를 알아보는 건 마무리해도 좋을 것 같아.”

유지윤이 종이를 다시 치우며 말했다.

“그럼 이제 제일 가까이 다가온 일정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보자. 다음 일정이 우리가 팀으로 활동하는 첫 일정이기도 하고.”

팀으로 활동하는 일정이 있었나? 내가 쓰러진 사이에 공지가 나온 건지 나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다음주에 거점 밖에서 진행되는 실전 훈련. 최대한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어.”

거점 밖에서 진행되는 실전 훈련이라고? 상당히 심장이 쫄깃해지는 주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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