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28화 (28/61)
  • 〈 28화 〉 27. 최고의 팀플을 위해

    * * *

    “이걸 가르쳐 준 사람은 말이지.. 음...”

    뜸을 들이는 내 말에 다들 귀를 한껏 귀를 기울였다.

    “그... 천사가 가르쳐줬어.”

    “...”

    “...”

    “...응?”

    내 말을 들은 모두의 표정이 똑같이 변했다. 이게 뭔 미친 소리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

    그 뒤로 장장 십 분간의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어떻게든 개연성 있게 거짓말 하려고 노력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다들 내가 뭔가 숨기고 있지만 말을 안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들 내가 숨기는 것에는 뭔가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거라 짐작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면.. 너가 보건소에서 쉬다가 답답해서 밖에 나왔는데, 어떤 천사같은 존재가 너한테 나타났고, 그리고 그 천사가 대뜸 기술세트를 전해주었고, 거기서 너는 또 그걸 덥석 배웠다고?”

    벨이 내 말을 요약하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그렇지.”

    나는 약간 뻔뻔해지기로 했다. 사실 그것 말고 달리 취할 수 있는 태도가 없었다. 벨이 이마를 탁 짚으며 말했다.

    “그래, 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가 너한테 기술세트를 줬다고 치자. 근데 넌 무슨 생각으로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전해주는 걸 배운거야? 그 기술세트가 뭔 줄 알고?”

    “사실 나도 의심을 하긴 했는데, 기술세트 시연해주는 거 보니까 안 믿을 수가 없더라.”

    “아...”

    벨을 포함한 다른 애들 전부가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너가 했던 시연만 봐도 그 정도인데.”

    “나였어도 그런 걸 보여주면 배울 것 같다.”

    “...나도.”

    다들 그런대로 납득한 것 같으니 나는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우리 서로 기술세트 소개하고 있지 않았냐? 내 이야기가 궁금한 건 알겠지만 하던 거는 마저 해야지?”

    그러자 애들은 뭔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라도 해줄테니까 일단 하던 거부터 하자.”

    “음... 알았어. 일단 대충 사정은 다 들었으니까.”

    유지윤이 내게 쏟던 집중을 거두며 말했다.

    “그럼 내 기술세트 소개하던 중이었으니까 계속 할게.”

    “오케이.”

    하던 소개를 이어 하겠다는 말에 다들 유지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단 화제 돌리기는 성공이었다.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화이트 하우스의 기술세트를 배웠어. 왜냐하면 거기에 나처럼 실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했거든. 그것도 두 명이나.”

    실을 쓰는 사람이 더 있었다니. 난 조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전 지옥을 통틀어서 봐도 실을 쓰는 사람은 무척이나 희귀한 케이스였다. 에초에 마력을 체외로 끌어내어 형태를 만드는 기술 자체가 드물었다.

    “그 두 명 중에 한 명은 현재 제 6 계층에서 활동하는 실력자래. 내가 전수 받은 기술세트도 그 사람이 만든 거고. 이름은 ‘브로우즈(Brose) 강사 인형술’이야.”

    이름에 인형술이 들어가는 걸 보니 아마 실을 이용해 인형을 다루는 기술세트인것 같다. 마력의 실로 인형을 조종해서 싸우는 것일까?

    “이 기술세트는 일단 내 마력에 새로운 성질을 부여해 주었어. ‘간섭’이라는 건데, 상대의 마력에 간섭해서 주도권을 가져오는 성질이야. 이걸 이용해서 악마들의 마기를 비틀거나 흐름을 꼬아버릴 수 있지. 악마들이 가진 마기도 일단 마력인건 알지? 그것에 제대로 간섭할 수만 있으면 악마끼리 싸우게 할수도 있다더라.”

    확실히 잠깐이라도 악마끼리 싸우게 만들면 적들을 크게 혼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유지윤의 개입 한 번으로 전투가 끝날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내 실력보다 확실히 격이 낮은 악마는 아예 내가 조종할 수도 있어. 이 기술세트의 이름이 인형술인 가장 큰 이유이지. 그렇게 내가 조종하는 악마는 본래보다 훨씬 강한 능력을 가지고 더 민첩하게 움직여. 그런 인형을 악마와 싸우게 만들거나 적진에 돌진시킨 다음 마력폭주로 터뜨릴 수도 있지. 폭탄처럼 말이야.”

    들으면 들을 수록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기술세트였다. 격이 낮은 악마를 조종하고 수틀리면 폭발시켜 버린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까다롭게 그지없는 능력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후위에서 너희들을 지원하는 역할이 좋을 것 같아. 후방에서 마력 간섭으로 악마들을 방해하거나 조종하는 거지. 물론 내가 원래 쓰던 함정이나 꼬챙이도 쓸거야.”

    다들 오 소리를 내면서 감탄했다. 확실히 자신에게 맞는 기술세트를 잘 배운 것 같았다. 앞으로 전투할 때 유지윤이 지원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다.

    “완전 대박인 걸로 골라 배웠구만.”

    “확실히 탁월한 선택이다.”

    “후위로는 최고일 것 같네.”

    다들 감탄하는 말에 나도 한마디 보탰다.

    “그럼 내 거 소개는 끝났는데, 다음으로 누가 할래?”

    설명을 끝낸 유지윤이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하지 뭐!”

    다른 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벨이 소리쳤다. 아무래도 다음으로 소개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벨은 유지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주자 앞쪽으로 나왔다.

    “나는 고려 클랜에서 기술세트를 배웠어. 나머지 5대 클랜 하나랑 다른 데를 다 합쳐도 거기가 제일 마음에 들더라고! 정말 나한테 딱 맞는 창법을 주더라.”

    고려 클랜은 지옥에 몇 없는 한국 계열 클랜이다. 지구에서 한국인이 차지하는 인구비율에 비해 이곳으로 넘어오는 한국인은 유난히 많다.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인구수가 한국인들이 꽤나 큰 세력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한국인 중심의 고려 클랜이 5대 클랜에 들어갈 정도였다.

    “창법 이름은 ‘유화창법(花??)’이야. 유화의 뜻은 버들꽃이지. 버들꽃처럼 바람의 흐름을 타는 듯한 부드러운 움직임이 중심인 창법이야. 고려 클랜에서 제 7 계층 공략에 참여 중인 안재현 초대자가 만들었대. ”

    부드럽다는 것을 보니 호쾌하고 강렬한 창법은 아닌 모양이다. 뭔가 벨의 전투 스타일이라면 강렬한 것을 고를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였다.

    “일단 기술세트를 배우니 신체가 이 창법에 맞게 바뀌더라고. 거기다 마력의 성질도 바뀌었어. 딱히 이름이 정해진 성질은 아닌데 창법 이름처럼 아주 부드러운 성질이야. 이걸로 유화창법의 효율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대.”

    기술세트에 맞게 신체가 변화한 건 나도 겪은 일이다. 아마 나와 벨이 배운 것처럼 육체파 기술세트는 대부분 신체 변화를 동반할 것 같다.

    “이 창법의 주된 전투 방식은, 적의 공격을 흘리거나 피하면서 나는 확실한 데미지를 넣는 거야. 부드러운 마력의 특징을 살려서 회피와 역공격에 비중을 두는거지. 그래서 식 중에는 회피기술이나 공격을 흘리는 기술이 많아. 아직 내가 쓰지 못하는 것 중에는 적의 공격을 그대로 되돌려 버리는 것도 있더라고. 그리고 보통 그 회피 이후에 빈틈에다 치명타를 넣는 식으로 기술 연계가 돼.”

    들어보니 나만 기술세트 중에 못 쓰는 식이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5대 클랜에서 기술세트를 전수 받았으니 기술세트의 격들이 높을 것이다. 그럼 다들 나나 벨처럼 잠긴 식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전위에서 근접 딜러를 맡으면 좋을 것 같아. 물론 탱킹을 하긴 좀 어려울 거야. 난 어디까지나 회피와 흘려내기에 중점을 둔 스타일이니까. 그래도 탱커 옆에서 치명타를 꽂아넣는 역할은 잘 할 수 있어.”

    벨의 기술세트를 보면 확실히 근접딜러가 어울릴 것 같다. 회피과 역공을 하다가 결정적인 치명타를 꽂는 방식의 전투. 때에 따라 벨의 한 방에 어려운 적이 절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너도 상당히 좋은 기술세트를 얻었네.”

    “근잡딜러에 최적화된 창술인 것 같다. 너에겐 아주 잘 맞을 것이다.”

    우리가 감탄하자 벨은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치? 나도 이거 처음 배울 때 진짜 장난 아니라고 생각했어. 대체 이걸 이런 걸 어떻게 만드는 걸까?”

    벨의 눈은 그 안재현이라는 초대자에 대한 동경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음, 아무튼 내 설명은 이제 끝났어. 다음은 누가 할거야?”

    “내가 하겠다.”

    벨이 다음 순서에게 차례를 넘기려 하자 선뜻 린펠이 나섰다. 어차피 이해나가 먼저 하려 들 일은 없고 나도 되도록 마지막으로 하려 했으니 상관 없었다.

    “오케이. 그럼 앞으로 나와.”

    벨이 유지윤이 했던 것처럼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러자 린펠이 앞쪽에 섰다. 린펠은 시간 끌 것 없더는 듯이 바로 말을 꺼냈다.

    “나는 유니온 클랜에게 기술세트를 전수 받았다. 나에게 많은 클랜이 암기 관련 기술세트를 건넸지만, 그곳만한 곳이 없더군. 그래서 고민 없이 선택했다.”

    유니온 클랜은 이름처럼 많은 클랜들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클랜이다. 크고 작은 중소 클랜들 다수가 뜻을 모아서 만들어졌는데, 생각보다 단합력이나 동질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하긴 그렇지 않았으면 5대 클랜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주로 유럽계 클랜들이 모여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보아 지구의 EU와 맥락을 같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세트의 이름은 ‘키르카스(Kirkas)의 달밤 무희’이다. 나도 처음에 기술세트 이름을 듣고 갸웃 했었다. 무희라는 단어와 암기술이 조금 안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은 없었다.”

    무희라. 춤추듯이 기술을 사용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걸까? 춤사위와 암기가 어우러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싶어 기대가 되었다.

    “일단 이 기술세트를 익히니 마력의 속성이라는 것이 바뀌더군. ‘그림자’라는 속성이었다.”

    린펠에 손을 펼쳐서 허공에 약간의 마력을 구현해 내었다. 구현된 마력은 칠흙같이 검은 연기 같았다. 저런 형태의 마력이 도처에 깔린다면 한 치 앞도 분별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와는 별개로 나는 나 외에도 속성이 바뀐 마력이 있다는 데 큰 흥미가 돋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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