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23. 설레는 마음으로 차력쇼를 해보자
* * *
전수해주는 천사가 바뀌었더니 아예 기술세트가 바뀌어 버렸다.
물론 기본적인 틀은 대부분 같아 보이지만, 훨씬 업그레이드 된 버전인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예상치도 못한 상위 버전의 기술세트를 익혀버렸다.
그리고 메세지를 보아하니, 내 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히죽 미소를 짓는 이 여천사의 이름은 카마엘인 듯 하다.
***
뜻밖의 난입자인 카마엘로 인해 더 상위의 기술을 배우게 된 것은 좋다. 분명 이것은 예상치 못한 행운이다. 기술세트의 효과와 성능은 생존 가능성과 직결되니 그녀에게 넙죽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란 판이다. 아마 내가 다른 감각이나 몸의 움직임이 정상이었다면 진짜 그리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 고마운데, 아무래도 나한테 너무 부담스런 관심을 주는 것 같다.
아까부터 이 여천사는 대놓고 나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말이다. 얼굴을 불쑥 앞으로 들이밀고 날 바라본다거나,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본다거나,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내 몸을 살펴본다거나 하면서 나를 살펴보고 있다.
뭐가 그리 신기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천사는 나에 대해 흥미가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아니면 단순히 인간을 신기해하는 걸까? 어쩌면 이 기술을 전수받는다는 것이 그녀의 흥미를 끌었는지도 모른다.
기술세트 이름도 ‘세라프 카마엘(SeraphCamael)의 수호검술’이었으니 말이다. ‘세라프(Seraph)의 수호검술’도 아니고 그 뒤에 그녀의 이름이 따로 붙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 검술은 그녀만의 고유한 기술일 확률이 높다. 메세지 중에서도 카마엘의 고유 비기를 얻는다는 말이 있었으니 아마 확실하지 않나 싶다.
그런 특수한 기술세트를 전수해 주었으니 흥미가 갈 만도 하다. 나 같아도 내 개인적인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면 어떤 놈인가 한 번 보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찰흙 만지듯이 볼을 만져보거나 하진 않겠지만.
그렇게 한동안 나를 주무르던 카마엘이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덩달아 나도 주변을 둘러보니 하얀색 공간이 점점 깨지듯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먼 쪽부터 천천히 부스러지면서 없어지는 것이 보였다.
다시 카마엘을 보니 그녀는 조금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와 헤어지기 싫은 것인지 그저 더 만지작거리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아쉽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문득 남천사 쪽을 바라보니 반쪽이 되어버린 얼굴로 이미 해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기 상급자가 어떤 기행을 벌이던 말던 그냥 다 포기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일단 일은 해야 하는지 이쪽으로 다가와서 카마엘에게 말을 걸려고 하였다.
공손한 자세로 카마엘 옆에 선 남천사가 뭐라고 말을 하였으나 물론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카마엘이 뭐라 대답을 하니 남천사가 또다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카마엘은 또 그녀 특유의 악동같은 미소를 짓고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검으로 힘차게 허공을 베어갈랐다.
그러자 그녀가 처음 이곳으로 넘어올 때 보았던 공간의 찢어짐 같은 것이 나타났다. 카마엘은 검을 뒤로 홱 집어던지더니 양손으로 틈을 붙잡았다. 그리고 힘껏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공간의 틈은 카마엘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크게 벌려졌다. 틈이 벌어지는 것을 본 그녀는 바로 그곳에 몸을 던져넣었다. 그렇게 그녀는 사라졌다.
참 올 때도 갈 때도 제 멋대로인 사람, 아니 천사였다.
그걸 멍하니 보던 남천사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걸었다. 이어서 그가 손을 휘젓자 공간의 일그러짐이 나타났다. 그는 터덜터덜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다 문득 뒤를 돌아 나를 보았다. 그렇게 한동안 나를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다시 뒤를 돌아 어깨를 으쓱였다.
말은 안 했지만 뭔가 ‘에라 나는 모르겠다’같은 말을 한 것만 같았다.
그러고는 남천사도 공간의 일그러짐으로 넘어갔다. 마침내 남천사까지 사라지자 하얀색 공간이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도 다시 어딘가로 빨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공간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몇 차례 시야의 점멸이 있은 뒤에 나는 다시 내 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눈을 뜨니 침대에 누운 상태 그대로였다. 나는 일단 몸을 일으켜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유지윤이 온 뒤로부터 약 세 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슬슬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일정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그 아공간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다. 체감하기로는 한 20분 정도 있다가 나온 것 같은데 말이다. 그만큼 카마엘이 보여준 검술에 빠져있던 것인지 아니면 시간의 흐름 자체가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만큼 힘이 없던 몸이 더 회복 되었다. 정신은 아공간에서 열심히 기술세트를 전수 받았는데 몸은 여기서 편히 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도중 눈 앞에 메세지 창이 하나 떠올랐다.
[기술세트, ‘세라프 카마엘(SeraphCamael)의 수호검술’의 습득을 확인.]
[해당 기술세트는 초대자 김진운에게 귀속된다.]
[기술세트의 격이 초대자의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음을 확인.]
[기술세트의 12식과 중 3식만 개방되고 나머지 식은 잠금 상태로 전환된다.]
[기술세트 중 ‘카마엘(Camael)의 고유 비기’는 3가지 중 첫 번째만 개방되고 나머지는 잠금 상태로 전환된다.]
[이후 초대자가 강해짐에 따라 추가로 식이나 비기를 해금할 수 있다.]
기술세트를 무사히 습득 했다는 알림이었다. 그런데 기술세트의 격이 높아서 식의 일부가 잠긴다니? 이건 예상 못한 일이었다. 애초에 기술이나 기술세트에 격이라는 것이 있었던 건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강해져야 해금할 수 있지?
수많은 의문이 머리속에 떠올랐지만 하나같이 지금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일단 예상하는 바로는 카마엘이 난입하여 전수해준 기술이 기존의 것보다 훨씬 격이 높아서 그런 것 같았다. 하긴 딱 봐도 그 남천사보다 카마엘이 훨씬 강해보이긴 했다. 기술을 펼칠 때의 기세도 차원이 달랐었고. 뿜는 빛의 양이나 날개 개수도 더 많았고. 아무튼 더 강해보였으니 기술세트도 더 격이 높았을 것이다.
그렇게 혼자 납득하고 있으니 메세지 창이 추가로 떠올랐다.
[기술 ‘작열’이 기술세트 ‘세라프 카마엘(SeraphCamael)의 수호검술’과 시너지 발생 확인.]
[기술이 ‘작열’ > ‘성스러운 불씨’로 변경된다.]
[기술 ‘성스러운 불씨’를 기술세트 ‘세라프 카마엘(SeraphCamael)의 수호검술’과 함께 사용할 경우 그 위력이 증폭된다.]
내가 애용하던 기술인 작열이 성스러운 불씨라는 것으로 전환 되었다는 알림이었다. 아마 기술세트를 배우면서 변화한 마력 속성인 성화(?火)에 영향을 받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일단 습득한 기술세트와 바뀐 기술을 확인해보기 위해 무기정보를 열었다.
무기 정보
이름: (잠김)(불완전함)
내구도: ∞
무기 특성
강력한 화염내성: 화염, 고열, 불속성 공격에...
(잠김)
(잠김)
(잠김)
무기 기술
성스러운 불씨: 검신이 성화(?火)에 휩싸이며 타오른다. 악하거나 부정한 존재에게 큰 피해를 주는 동시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한다.
모든 검격의 데미지를 25% 증가, 검의 절삭력 상승, 악(?)이나 마(?) 속성을 가진 대상일 경우 주는 데미지 150% 증가, 대상에게 ‘멸악(??)’ 상태이상 부여.
*멸악(??): 대상이 지닌 마기를 끊임없이 태워 없앤다. 태운 마기는 정화된 마력이 되어 반대로 대상을 침투한다. 극도의 고통을 선사하며 회복 속도를 저해한다.
(잠김)
(잠김)
(잠김)
기술세트
세라프 카마엘(SeraphCamael)의 수호검술: 일품천사, 즉 세라프인 카마엘의 고유 검술이다. 기반은 다른 세라프들이 쓰는 수호검술이지만 카마엘의 독자적인 개조와 추가를 거쳐 그녀만의 고유 기술로 재탄생하였다.
· 수호 검술 12식
· 카마엘(Camael)의 고유 비기
각 위계에 해당하는 악마의 피를 묻힐 때마다 해금 가능.
시스템으로 분석 불가능한 특징 및 기능 다수 존재.
확실히 작열에 비해 성스러운 불씨 쪽이 성능이 우수하다. 상의호환인 기술로 교체된 느낌이다. 특히 악이나 마속성을 대상으로 데미지가 150%나 증가 한다는 건 획기적이다. 거의 모든 악마가 악과 마를 속성으로 가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 그렇다. 상태이상도 소각보다 멸악이 훨씬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술세트의 설명을 읽어보니 카마엘이 천사인 것은 확실해졌다. 일품천사나 세라프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천사들의 계급이지 않을까 싶다. 카마엘이 천사였다면 그 남천사도 천사가 맞을 것이다. 그럼 정말로 나는 방금 전까지 천사들에게 기술세트를 전수 받고 온 것이었다.
천사가 실재로 존재한다니. 뭐 사실 지옥에 들어와서 악마들과 드잡이질 하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다. 악마가 있으니 천사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정말로 지옥말고 천국 같은 곳도 존재하는 것인가? 이곳의 사람들은 천사들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의문만 더 생겼지만 나중에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일단 머리 한구석에 질문들을 박아두었다.
어느 정도 생각과 정리를 마치자 현재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오후이니 나도 무엇이든 해야한다. 교관이 쉬어두라 했다고 해서 하루 종일 쉬기만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오늘부터 기술세트 전수 시즌이니 온갖 클랜들과 초대자들이 훈련캠프에 들어와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어느 정도의 인맥도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내가 어떤 클랜에 바로 들어갈 것이 아니더라도 인맥은 쌓아두는 편이 도움이 된다. 이것도 훈련캠프 내내 들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이 훈련캠프에서의 이미지와 인간관계가 나중에 지옥에서 살아가는데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잘 쌓아두어야 앞으로 편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일어났다. 조금 찌뿌둥 하지만 꽤 오래 자서 그런지 몸은 가볍다. 비어있던 스톡도 어느새 다 채워진 상태였다. 컨디션은 완벽하다.
일단 나는 개인 훈련장부터 가기로 했다. 이 기술세트 전수 기간 동안은 초행자들에게 자유가 허락된다. 정기적인 훈련에 참여해도 되지만 혼자서 따로 훈련을 해도 된다. 선택한 클랜이나 초대자들에게 기술세트를 전수받고 그를 익히는 데 시간을 써도 된다. 물론 클랜 스카우터들이나 초대자들과 인맥을 쌓으며 다니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나는 다 필요 없고 빨리 기술세트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과연 내가 어느 정도로 카마엘의 검술을 재현할 수 있을지, 그 위력과 효과는 얼마나 대단할지가 참을 수 없이 궁금했다.
물론 다른 이들이 내 기술세트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 처음보는 위력적인 기술세트를 초행자가 쓰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럴 때는 대충 어떤 실력을 숨긴 초대자가 가르쳐 주었다고 말할 작정이었다. 참 허접한 변명이지만 딱히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실재로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테니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개인훈련장을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