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22. 뜻밖의 난입자
* * *
[2단계 완료 확인.]
[전수 3단계]
[계승자의 시연과 그를 통한 열두 가지 식의 습득]
[습득을 위해 임시 아공간으로 이동한다.]
한참 변화한 마력을 느껴보던 도중, 내 몸이 어디론가 빠르게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
“음?”
내 주변의 공간이 실시간으로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2단계 이후 하염없이 마력을 느끼던 나는 황급히 눈을 떴다. 무언가 강렬한 위화감이 엄습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눈에 비친 것은 온통 구겨지듯이 비틀리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몸, 아니 정확히는 영혼 같은 것이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당황하기는 했지만 나는 이것도 전수 과정 중에 하나이려니 하면서 마음을 편히 가졌다. 방금 메세지에서 임시 아공간으로 이동한다는 말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온통 일렁이는 통로 같은 곳을 지났고, 마침내 도달한 곳은 어떤 방이었다.
사실 방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방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구분선이나 윤곽 따위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찌 보면 무한한 공간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또 한계가 있는 것이 느껴져서 얼추 어느 정도의 공간인지 감이 잡혔다. 참으로 기묘한 공간이었다.
거기다 온통 하얀색 밖에 보이지 않아서 더더욱 공간감에 혼란이 일어났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둥둥 떠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눈치 챈 것인데, 이 장소에서는 시각 외에 다른 감각이 기능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느껴져야 할 감각들이 죄다 먹통이었다. 오로지 눈으로 보는 것만이 허락된 공간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중에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방의 한중간에서 공간의 일그러짐 같은 것이 생겼다. 나는 그것이 나를 이곳으로 이동시킨 그 일그러짐과 같은 것임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그 일그러짐이 점차 커지더니, 대뜸 무엇인가 튀어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사람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남성인 것 같은 생김새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일단 전체적으로 엄청나게 화사한 빛을 뿜고 있었다. 똑바로 직시하면 눈이 아플 정도였다. 그리고 마치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입을 것 같은 디자인의 흰 옷을 두르고 있었다. 키는 일반적인 인간보다 훨씬 컸으며 머리에는 종교적인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후광같은 것이 보였다.
무엇보다 압권인 것은 등 뒤에 있는 두 쌍의 날개였다. 순백의 날개들은 반쯤 접힌 상태로 남자의 등 뒤에 존재감을 뽐냈다. 이제 보니 남자에게서 나오는 빛의 상당 부분이 그의 날개에서 나오고 있었다. 거기다 남자의 머리 위에 놓여진 월계관 같은 것도 상당히 시선을 끌었다. 밝게 빛나는 그 관은 뭔가 성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이 정도까지 보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딱 한 단어였다.
천사.
누가 봐도 저 남자는 천사였다. 아무리 봐도 천사였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하던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너무 천사에 딱 맞는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뭐지? 진짜 천사인가? 지금 천사가 내 눈 앞에 떡하니 등장한 건가? 악마가 있는 세상이니 천사도 있다는 걸까? 그럼 지옥 말고 천국 같은 곳도 있나?
온갓 궁금증이 머릿속에서 폭풍을 일으켰지만, 보는 것만이 허락된 이 장소에서는 말을 걸어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 천사(일단 대충 천사라고 부르자.)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얼굴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잘생겼다는 말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생김새였다. 그런데 표정은 상당히 권태로워 보였다. 뭔가 지금 자신이 아주 귀찮다는 것을 팍팍 티를 내는 듯 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한 번 푹 쉬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분명 아무 말도 듣지 못했지만 하긴 싫은데 해야 하니까 해야지 같은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왜 여기에 나타났는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그가 뭘 하는지 보는데 집중했다.
그가 앞으로 팔을 살짝 뻗고 손을 펴자 갑자기 검 한자루가 나타났다. 그 검은 딱 그의 손에 안착되었다. 기다란 바스타드 소드처럼 생긴 그 검은 하얀색 불꽃에 뒤덮여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 검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을 때, 내 눈 앞에 메세지 창이 나타났다.
[계승자의 시연 시작.]
[계승자가 하나의 식을 시연할 때마다 초대자는 기술세트의 일부를 전승받는다.]
계승자의 시연이 시작된다라. 아마 저 천사가 기술세트를 전수해주는 계승자인가보다. 기술세트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기는 했는데 설마 천사가 전수해주러 올 줄은 몰랐다. 아직 천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다.
그가 검을 자신에 앞에 똑바로 세웠다. 손잡이는 양손으로 굳게 붇잡은 상태였다. 분명 시각 외의 다른 감각은 느낄 수 없는데도 그의 기세가 달라졌음이 느껴졌다. 지금부터 기술세트의 전수가 이루어질 모양이다. 나는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그가 무얼 하는지 살펴보았다.
일단 저 검을 똑바로 들고 있는 상태가 ‘준비자세’라는 것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모든 식을 펼치기 전에 취해야 하는 기초 자세인 것이다.
본격적으로 시연을 시작하려는 천사가 준비자세를 풀었다. 그리고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나는 이게 1식이라는 것을 알고 기대감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천사가 돌연 행동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홱 돌려서 한 곳을 바라보았다.
나는 잘 하다가 갑자기 뭐 하나 싶어 똑같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나와 천사가 바라본 곳에서는 또다른 공간의 일그러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나나 천사가 이곳으로 올 때와 똑같은 일그러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양이 조금 달랐다.
무언가가 나오는 입구 같은 형태가 아니라 세로로 찢어진 형태였다. 마치 누군가가 통로를 찢어 벌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틈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천사 쪽을 보니, 그도 상당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내 사람 한 명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틈이 커졌다. 그 틈을 비집고 누군가가 낑낑거리며 들어왔다. 어떻게든 완전히 틈을 빠져나오자 그 누군가는 땅을 딛고 당당하게 허리를 폈다.
그때 나는 그 난입자의 생김새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일단 생김새로 보아 여자 같았다. 그런데 그녀의 몸에서도 내 앞의 천사처럼 빛이 뿜어져 나왔다. 거기다 머리 뒤에 후광하며, 정수리 쪽의 월계관 비슷한 것까지 똑같았다. 다만 다른 점은 거기서 나오는 빛이 훨씬 밝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분명 엄청난 양의 빛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부시거나 바라보기 힘들지는 않았다.
그녀도 역시 날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내 앞의 천사와는 다르게 세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총 여섯 장의 날개가 그녀 뒤에서 빛을 발하니 상당히 아름다웠다. 자세히 보니 월계관의 형태도 더 화려한 것이 그녀에게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일단 생긴 걸로 보아 그녀도 천사인 듯 했다. 물론 뭔가 내 앞에 있는 천사보다는 훨씬 높은 천사 같았다.
잠깐 다시 남천사 쪽을 바라보니, 뭔가 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여천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저 천사가 왜 여기에 있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그런 남천사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얼굴을 보니 역시나 말이 안나오게 아름답다. 그런데 뭔가 장난기가 가득한 인상이기도 했다. 실재로 표정도 히죽 웃고 있는 것이 악동같은 느낌이었다.
그 여천사는 내 쪽을 한 번 바라보고는 또 히죽 웃어보였다. 장난치기 직전의 아이같은 표정이지만 외모 보정을 받아 그조차 너무 아름다웠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그녀는 남천사에게 다가간 상태였다.
남천사는 마치 상급자를 만난 듯이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중세시대 귀족의 예법과도 같은 자세로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뭐라 말을 했지만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천사는 그런 건 필요 없다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리고 대뜸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무언가 내놓으라는 듯한 제스처였다.
당황한 남천사가 뭐라 말을 했지만 그녀는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더 앞으로 내밀며 무언가 달라고 요구하였다. 남천사는 정말 송구하다는 듯이 예를 차리며 거절하려 했지만 그녀가 귀를 후비며 뭐라 말을 하니 행동이 우뚝 정지하였다.
그러더니 여천사는 남천사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뭐라 더 속삭였다. 하는 일이 영락없이 삥을 뜯는 불량배 같았지만 일단 나는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어느새 이야기를 마쳤는지 남천사는 풀이 죽은채 여천사에게서 풀려나 있었다. 얼굴이 헬쑥한 것이 ‘나는 이제 ㅈ됬다’라고 중얼거리는 듯했다. 한참 남천사를 갈군 여천사의 손에는 그 불타는 검이 들려있었다. 이제 보니 내놓으라고 했던 것이 저 검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저리 되면 내 기술세트 전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여천사를 바라보았다. 설마 제대로 전수 못받는 것은 아니겠지? 막 대충대충하고 넘어가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여천사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다시 자신을 가리키며 힘껏 자신있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나만 믿으라는 듯이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여천사가 돌연 검을 쥐고 준비자세를 취했다. 아까 전 남천사가 했던 것과 동일한 자세였다. 하지만 그 기세가 차원이 달랐다. 폭발적인 기세가 단숨에 주변을 장악할 정도였다. 분명 다른 감각은 느끼지 못하는데도 털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다시 히죽 웃음을 지은 여천사가 준비자세를 풀고는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본격적인 시연의 시작이었다.
나는 다시 최대한의 집중력으로 그녀의 모든 행동을 눈에 담으려 노력하였다.
***
여천사가 펼친 12식으로 구성된 기술세트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지만 그 모든 식의 발현 방식과 동작의 흐름은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았다.
여천사가 펼친 검술은 화려하면서도 강렬했으며, 동시에 보는 이를 압도하는 웅장함이 서려있었다. 여천사의 물 흐르듯이 동작을 취하면 그녀가 든 검과 검을 둘러싼 불이 이리저리 뛰놀았다. 정말 말이 안 나올 만큼 완벽한 시연이었다.
깊은 감동에 잠겨 그 동작들을 다시 되새기는 내 앞에 메세지 창이 나타났다.
[시연 도중 난입자로 인한 중대한 변화 발생.]
[기존의 전수될 예정이었던 ‘케루빔(Cherubim)의 수호 검술’이 변경됨을 확인.]
[전수되는 기술세트를 ‘케루빔(Cherubim)의 수호 검술’ > ‘세라프 카마엘(SeraphCamael)의 수호검술’로 변경한다.]
[기술세트의 전반적인 성능이 상승된다.]
[기술세트의 일부 식이 변형되어 기술 효과가 증폭 된다.]
[기술세트에 ‘카마엘(Camael)의 고유 비기’가 추가 된다.]
전수해주는 천사가 바뀌었더니 아예 기술세트가 바뀌어 버렸다.
물론 기본적인 틀은 대부분 같아 보이지만, 훨씬 업그레이드 된 버전인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예상치도 못한 상위 버전의 기술세트를 익혀버렸다.
그리고 메세지를 보아하니, 내 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히죽 미소를 짓는 이 여천사의 이름은 카마엘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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