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22화 (22/61)
  • 〈 22화 〉 21. 인생은 한 방이지

    * * *

    [무기의 숨겨진 해금 조건 달성.]

    [해금 조건 ­ 검에 정순한 마력을 담아 검강을 만들기.]

    [무기에 잠들어있던 기술 세트가 해금된다.]

    [기술 세트가 초대자 김진운에게 귀속됨을 확인.]

    [기술 세트, ‘케루빔(Cherubim)의 수호 검술’이 해금된다.]

    “홀리..”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걸까?

    내 눈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무기에 잠들어 있던 기술세트라고? 기술세트라는 것이 일개 무기에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뭔가 상당히 있어 보이는 기술세트가?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나는 다 제쳐두고 일단 무기 정보부터 확인하려 했다.

    그때였다.

    픽 ­

    “어?”

    뭔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검강이 꺼졌다. 찬연하게 빛을 발하던 검강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피로감이 온 몸을 짓눌렀다.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눈꺼풀이 자동으로 내려가며 눈이 감겼다. 이내 나는 몸의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들은 한 마디는 교관이 외치는 합격 소리였다.

    “김진운, 통과..!”

    ***

    “끄으응...”

    살짝 눈이 떠졌다. 천천히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하나 둘 오감이 깨어나면서 주변 상황이 인지되기 시작했다.

    이 편안한 이불의 느낌으로 보아 일단 침대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얀 천장을 보니 여기가 보건소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의료 관련된 시설이지만 현대의 병원보단 많이 떨어지는 보건소는 다친 초행자들이 많이들 애용하는 곳이다.

    아무튼 이렇게 보건소 침대에 누워있는 걸 보니 난 쓰러졌던 모양이다. 기억이 끊긴 시점이 시험을 통과한 직후이니 그때 쓰러졌을 것이다.

    근데 왜 쓰러졌던 걸까? 얼떨결에 검강을 만들었다가 시스템 메세지를 본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아, 맞다. 검강.

    그거 잠깐 만들고는 픽 쓰러졌지.

    아무래도 어쩌다보니 만든 검강은 내게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때 얼마나 마력을 탈탈 털어 썼으면 아직도 스톡이 허전하다. 마력이 다 차오르지 못한 탓이다. 한 번에 지나치게 많은 마력을 몰아 쓸 때 오는 후유증 심한 마력 고갈에 대해 배운 것이 기억난다. 그걸 내가 이렇게 몸으로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차분히 스톡을 회전시키니 마력 회복이 빨라졌다. 나는 온 몸에 힘을 빼고 최대한 마력의 회복에 집중했다.

    그러고 얼마간 있자니 누가 방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어, 깨어났구나?”

    유지윤이었다.

    “정신이 좀 들어? 몸은 어때?”

    “음... 마력이 부족한 것 빼고 다 괜찮은 것 같아.”

    “그래? 다행이네. 너 갑자기 쓰러져서 다들 얼마나 난리가 났는데.”

    유지윤은 들고 접시를 옆에 놓으며 말했다.

    “나 얼마나 누워있었어?”

    “한 반나절 정도? 어제 저녁에 쓰러져서 오늘 아침에 일어났으니까.”

    쓰러져 있던 사이에 벌써 다음날이 된 모양이다. 유지윤은 주변에 있던 의자 하나를 끌어다가 털썩 앉았다. 방금까지 아침 훈련을 하다 온 건지 흐르는 땀을 닦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 이제 앞으로 꽤 고생하겠더라.”

    “왜?”

    “벌써 내일부터 기술세트 전수 시즌이잖아. 그래서 클랜들이랑 초대자들 엄청 들어올 거고.”

    “그치.”

    “근데 너는 지금 어제 검강을 만들어서 엄청 유명해진 상황이거든. 그러면 이제 당장 클랜들부터 초대자들까지 엄청 들러붙어 올걸?”

    “내가 검강을 만들었단 얘기가 그새 퍼졌어?”

    “당연하지. 그때 너 보고 있던 사람만 몇 명인데. 이미 훈련캠프 전체가 다 알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야.”

    내가 검강을 잠깐 만든 것이 무슨 빅뉴스처럼 알려진 모양이다. 하긴 검강은 빅뉴스가 될만했다. 보통 검강은 2년에서 3년 정도 지옥에서 구른 초행자들이 발현한다. 즉, 어느 정도 숙련된 초대자만 얻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막 지옥에 들어온 초행자가 발현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비록 잠깐이었고 그후에 바로 기절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 나도 만들고 싶어서 만든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어쩌겠어. 네 재능이 넘쳐서 그런 건데.”

    그때 누군가 밖에서 유지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지윤은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이제 다시 훈련하러 가야 돼. 너는 좀 더 쉬어 둬. 교관님이 너한테 일단 몸부터 안정시키라고 했거든.”

    “알았어. 훈련 잘 하고.”

    “응. 저 접시 위에 있는 거 죽이니까 챙겨먹어야 된다? 그럼 나 갈게!”

    유지윤이 활기차게 인사하며 밖으로 나갔다.

    뭐가 어쨌든 일단 쉬는게 먼저인 것 같다. 당장 마력도 부족하고 머리도 조금 아픈 것이 후유증이 남아있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다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한참 자다 일어나서 그런지 잠은 오지 않았다. 그냥 누워서 멍 때리기는 싫으니 뭐라도 하고 싶었다. 그럼 누워서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 당연히 하나 밖에 없다.

    드디어 그 정체불명의 기술세트에 대해 알아볼 때가 왔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정말 오랜만에 무기 정보를 띄웠다.

    무기 정보

    이름: (잠김)(불완전함)

    내구도: ∞

    무기 특성

    ­ 강력한 화염내성: 화염, 고열, 불속성 공격에...

    (잠김)

    (잠김)

    (잠김)

    무기 기술

    ­ 작열(??): 검신이 극도로 뜨거워지며...

    (잠김)

    (잠김)

    (잠김)

    기술세트

    ­ 케루빔(Cherubim)의 수호 검술(미습득): (습득시 설명 확인 가능)

    ­ 각 위계에 해당하는 악마의 피를 묻힐 때마다 해금 가능.

    ­ 시스템으로 분석 불가능한 특징 및 기능 다수 존재.

    무기 기술 아래 쪽에 기술세트라는 파트가 새로 생겼다. 하긴 숨겨진 것이라 했으니 전에는 볼 수 없던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기술세트 이름 옆에 미습득이라는 표시가 보였다. 습득을 해야 제대로 해금되는 방식인 모양이다. 그런데 습득을 하지 않으면 설명도 못 읽는다는 건 조금 곤란하다. 설명을 읽을 수 있어야 습득할지 안 할지 결정을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잠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기술세트가 나와서 좋긴 한데, 이걸 대뜸 익히라고 한다면 망설여질 수 밖에 없다. 훈련캠프 내내 들은 말 중에 하나가 기술세트를 고를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기술세트를 배우냐에 따라 마력의 성질과 운용 방식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때론 드물게 마력의 속성이라는 게 변하기도 한다고 한다. 아무튼 기술세트를 한 번 배우면 바꾸기가 아주아주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심사숙고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기술세트가 별거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아직 이름도 모르는 무기에 잠들어 있던 것 아닌가. 분명 계속 발전을 거듭해온 지금의 기술세트들보다 못할 확률이 높다. 정체도 모르고 다른 것들보다 낫다는 보장도 없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것 말고 다른 기술세트를 배우는 게 맞다.

    하지만 나는 뭔가 이 기술세트에 기묘한 끌림을 느꼈다. 내 직감이 내 귀에다 이건 상당한 대박이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느낌이었다. 뭔가 이게 아주 죽여주는 성능을 낼거라는 예감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이성을 특성으로 가진 나는 그것에 마냥 휩쓸리지 않았다.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손익을 계산하였다. 나는 자꾸만 동요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칭에 올리듯이 둘을 비교하였다.

    안전하고 보장된 기존의 기술세트들.

    장체는 모르지만 나를 강렬히 유혹하고 있는 미지의 기술세트.

    전자는 말 그대로 안전하고 성능도 보장되어있다.

    후자는 엄청난 대박도 엄청난 쪽박도 가능한 도박적인 선택지이다.

    나는 한동안 따져본 후에 결정을 내렸다.

    “습득하자.”

    지금은 안전한 선택지 보다는, 대박을 치는 게 가능한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이곳은 지옥이기 때문이다. 기록상으로는 100년이 넘게 인류가 끝을 보지 못한 곳이다. 아직도 7계층은 공략할 생각도 못한다고 한다. 즉, 기존의 것을 배운다면 결국 다른 이들이 이룬 것까지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것을 배워서 개선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한계가 있다. 개선하는 정도로는 이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도박을 걸어보는 것이 맞다. 이갓이 쪽박이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대박이면 어떠한 변수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어떤 훌륭한 기술세트는 그것이 창시되자 마자 새로운 층을 공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곳은 지옥이기에, 위대한 사람 한 명이 인류의 앞날을 바꾸기도 하고, 위대한 기술 하나가 그동안의 벽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러니 한 번 걸어보자. 이 도박이 나의 미래를, 가능하다면 이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래까지 바꾸어주길 기대하면서.

    [기술세트를 습득 ­ 승인/거부]

    [초대자의 승인을 확인.]

    [기술세트, ‘케루빔(Cherubim)의 수호 검술’의 전수를 시작한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일단 정자세로 앉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기술세트를 배울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자세한 것을 모른다. 그것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었다. 모르면 몸으로 배우는 수 밖에.

    [전수 1단계]

    [마력의 기질과 몸의 체질 변화]

    [초대자 김진운의 마력과 신체를 기술세트에 맞게 변화한다.]

    갑자기 온 몸을 무언가가 훑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안과 밖을 동시에 훑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지나가자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스톡을 중심으로 전신을 회전하던 마력이 요동쳤다. 억지로 활성화 된 듯이 이리저리 날뛰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잠잠해졌다. 그 직후 스톡에서 시작된 어떠한 변화가 전신으로 뻗어나갔다. 그 변화는 마력이 마치 농도 짙은 액체처럼 농밀해지고 짙어지는 듯한 변화였다. 난 말 그대로 내 마력의 성질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신체였다. 온 몸의 근육과 뼈들, 장기들이 미약하게 들썩였다. 근육이 멋대로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 곳곳에 있는 관절이 비틀리거나 뽑혔다 다시 꽂혔다. 각종 장기들도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거나 형태의 변환이 일어났다. 이런 격렬한 변화를 맞이하면서도 이상하게 통증은 없었다. 고통 없이 그저 전신이 새로 재구성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얼마 후에 모든 변환 작업이 끝이 났다.

    [1단계 완료 확인.]

    [전수 2단계]

    [마력의 속성 변화]

    [초대자 김진운의 마력이 무속성 > 성화(?火)로 전환된다.]

    [성화(?火): 마(?) 속성이나 악(?) 속성에 절대적인 우위를 갖는 속성. 모든 부정한 것을 멸하려 드는 성스러운 불이다. 하얗게 타오르며 악을 불태우는 모습은 거룩하고도 경건하다.]

    마력이 조용히 회전하던 스톡에 이변이 생겼다. 마치 작은 불씨와도 같은 것이 스톡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웅덩이에 떨어진 물방울이 파문을 일으키듯, 그것은 점점 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스톡에 쌓인 마력 전체가 그 불씨와 같이 타오르는 불처럼 변했다. 그러더니 전신에 뻗어진 마력 회로를 타고 불길이 점점 뻗어져 나갔다. 이내 온 몸의 마력이 전부 타오르는 불처럼 변했다.

    비록 내 안에 있는 불꽃이지만, 무언가 지극히 깨끗하고 신성한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내 몸 안의 더러운 것들이 불태워져 사라지는 것 같았다.

    [2단계 완료 확인.]

    [전수 3단계]

    [계승자의 시연과 그를 통한 열두 가지 식의 습득]

    [습득을 위해 임시 아공간으로 이동한다.]

    한참 변화한 마력을 느껴보던 도중, 내 몸이 어디론가 빠르게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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