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20. 이게 왜 여기서 나올까
* * *
“그래도 검기 배우고 나면 기술세트도 본격적으로 배우겠네.”
내가 덧붙였다.
“어, 그렇네. 생각보다 얼마 안 남았구나?”
“벌써부터 이 클랜 저 클랜이 들어와서 시끄러워지는 게 보인다, 아주.”
“난 기대된다. 과연 어느 클랜이 나에게 기술세트를 주려 할지 말이다.”
“그렇네. 나는 어디에서 주려고 할려나.”
기술세트에 대한 이야기는 첫날부터 계속 들어왔다. 그만큼 모두들 그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세트, 우리도 그것을 배우는 날이 머지 않았다.
***
기술세트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자면 단어 자체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로 이루어진 세트’이다. 즉, 여러가지 기술을 담은 묶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이 기술 저 기술을 모아놓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검술이면 검술, 창술이면 창술과 같이 한 무기와 관련된 한 가지 계통의 기술이 모여있거나, 특수한 공격 방법과 관련한 한 가지 맥락의 기술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해서, 판타지나 무협지에 나오는 무공이나 무기술 같은 거다.
기술세트는 특이하게도 시스템이 직접 부여하는 게 아니라 초대자가 직접 만들어내어 전수한다. 그리고 한 명당 하나의 기술세트만 익힐 수 있다. 다른 기술세트도 익히려 하면 시스템에 의해 제지를 받는다고 한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력한 설은 존재한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기술세트 하나를 배우면 그에 맞추어 마력과 스톡의 성질이 변화하는데, 여기서 다른 기술세트도 배우면 마력의 부조화가 일어나서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아무튼 이러한 기술세트를 전승받으면 생존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대부분의 기술세트는 일반적인 기술보다 훨씬 강력하고 유기적으로 연계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인 기술도 케바케로 강한 것도 많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훈련캠프에서는 초행자들이 검기를 익히자 마자 기술세트를 전수하려고 한다. 아직 초행자인데 이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지옥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따라서 훈련캠프에서는 그 시즌에만 일시적으로 클랜들과 초대자들의 출입을 허용한다. 그들이 초행자들에게 기술세트를 전수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때 클랜들과 초대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유망한 초행자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기술세트는 하나만 익힐 수 있다보니, 일단 전수해두면 미리 침 발라 놓는 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수 시즌은 거의 대학교 동아리 홍보나 정치인들의 선거 시즌을 방불케 한다. 그만큼 강한 초대자는 언제나 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즌에 아무런 제안도 받지 못하고, 신청도 죄다 거부당한 사람들도 나온다. 이 사람들에게는 훈련캠프에서 기초적인 기술세트를 지급한다. ‘기초 검술’, ‘기초 궁술’, ‘기초 창술’... 이름부터 전혀 성의가 안 느껴지는 허접스런 것들이다. 하지만 안 익히는 것보단 훨씬 낫다.
그런 기술세트 전수 시즌이 우리의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 전부 기술세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유지윤에게 물었다.
“아, 그러고보니 지윤아.”
“어.”
“너는 실을 쓰잖아. 그럼 공격방식이 좀 특이한 편인데 어떤 기술세트 배울 생각이야?”
“음...”
유지운의 주요 공격방식은 마력강사를 이용한 함정과 원거리 공격이다. 애써 떠올려봐도 무슨 기술세트가 어울릴지 예상이 잘 안 갔다.
“나도 그것 때문에 교관님이랑 상담 좀 했었는데, 그냥 투척술 쪽을 배우거나 아예 마력의 성질이나 운용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래. 어느 쪽으로 가도 나한테 도움이 될거라면서.”
“오.. 그런 방법이 있었네.”
생각보다 간단한 해결 방법이다. 원거리 공격을 쓰니 투척술을 배우던가, 마력이 공격의 핵심이니 마력 관련 쪽으로 가면 되는 것이었다.
“만약 투척술을 배운다면 나와 비슷한 포지션이 되겠군?”
“그렇긴 한데, 왠만해선 마력 쪽으로 갈 생각인데?”
“그것도 좋지만 투척술도 아주 유용하다. 적극 추천하고 싶군.”
이야기를 듣던 린펠이 기쁜 듯이 말을 했다. 자신과 비슷한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야, 이제 슬슬 숙소인데 바로 쉬러 가는 사람 없지?”
벨이 다들 모였으니 뭐라도 하자는 식으로 말했다.
“...나 피곤한데.”
“에이, 해나씨. 그렇게 숙소에만 박혀 살면 안 돼요. 이렇게 여유 있는 날에 좀 모이기도 하고 그래야지. 팀원끼리의 친목도 엄청 중요한 거라니까?”
“...”
“자, 그럼 다들 외출증 끊고 주점이나 가는걸로~!”
벨이 신나서 분위기를 주도하며 나가자고 재촉했다. 실재로 오늘같이 여유로운 날에는 외출증을 끊고 바깥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오히려 숙소에 남아서 쉬는 쪽이 드물 정도다.
다들 적극적으로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하진 않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해나는 아무리 봐도 마지못해 가는 것 같지만...
그렇게 밖으로 나가 술을 진탕 마신 우리는, 다음날 지독한 숙취 속에서 훈련을 해야했다.
***
예고된 바와 같이, 스톡을 만든 이후로는 검기와 관련된 수련이 주를 이루었다. 검기를 생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강행군 훈련이 계속되었다.
검기는 사실 검에만 두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무기에 두르는 마력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냥 편의상 다 합쳐서 검기라고 부르는 느낌이다. 어쨌든 이 검기를 만들려면 체내의 마력을 외부로 발출해서 무기에 맺히게 해야 하는데, 이게 말이 쉽지 직접 해보면 아주 뭣같이 어렵다.
일단 체내를 순환하는 마력을 밖으로 꺼내는 데만 해도 한세월이 걸린다. 스톡을 만들 때와는 또 다른 깊이의 마력 컨트롤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교관의 말로는 보통 1클래스 기준으로 4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어찌어찌 3일 막바지에 성공해냈다.
그 다음은 마력을 무기에 맺히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기가 막히게 어렵다. 일단 마력의 체외 발출을 할 수 있으면 어디에든 마력을 깃들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유지하고 안정시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온갖 고생을 하였다. 하다가 힘이 빠져 그냥 하염없이 무기만 바라보는 일도 빈번했다. 참고로 여기서 벨은 자기가 아끼던 창을 부수려 들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마력 고갈을 겪던 어느 날, 마력의 체외발출을 성공한지 5일째 되는 날에 나는 간신히 성공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만들어낸 검기를 전투에 쓸 수 있을 만큼 숙달하는 것이었다.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었다. 뭘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단단한 허수아비를 하루 종일 패야 했다. 그 와중에 단 한 번도 검기가 사라지거나 불안정해져서는 안되었다. 우리가 죽는 소리를 낼 때마다 교관은 실제 악마는 허수아비처럼 맞기만 해주지 않는다며, 여기서 안되면 실전에서도 무조건 안된다고 했다. 듣고보면 맞는 말이라 또 조용히 허수아비를 패야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허수아비를 때려대는 것을 멈추고 지금까지 일군 검기를 테스트 받는 때가 왔다.
“여러분, 지금까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을텐데, 여러분은 꿋꿋이 해내셨습니다. 이로써 여러분은 어엿한 한 명의 초대자에 더욱 가까워지신 겁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마지막 테스트가 남아있습니다.”
한민아 교관이 어느새 전체의 4분의 1에 달하는 인원이 바뀐 우리를 돌아보았다. 1클래스가 인원이 자주 바뀐다더니 그동안 정말로 빈번하게 바뀌었다. 낙오자도 많았고, 치고 올라오는 사람도 많았다.
“이제부터 지난 15일간 훈련한 검기를 테스트할 것입니다. 테스트 방식은 여러분이 그토록 두들기던 허수아비의 목을 부러뜨리거나 가슴을 관통하는 것입니다. 몇 번 만에 성공하는지가 중요한 채점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5명씩 나와서 위치에 서주십시오.”
나는 순서상 세 번째로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앞 조 중에서 아는 사람을 찾아 주시했다.
첫 번째 5명 중에는 린펠이 있었다. 린펠은 비장한 표정으로 단검 몇 개를 꺼내어 손에 쥐었다.
“모두 준비.. 시작!”
시작이라는 외침과 함께 린펠의 단검이 매섭게 던져졌다. 마력을 두른 단검이 허수아비의 가슴에 적중할 때마다 폭음을 내었다.
펑 펑
콰직 !
이윽고 7번째 단검에 허수아비의 가슴이 뚫려 버렸다.
“린펠 하이드리드, 통과!”
린펠은 기분좋은 미소를 띄우며 단검을 회수했다.
다음 5명 중에는 이해나가 있었다.
“모두 준비.. 시작!”
시작과 동시에 이해나의 몸에서 저번에 보았던 특이한 마력 움직임이 나타났다. 아마 신체 강화를 통해 검기를 보조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팡 팡
파각 !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연달아 나다가 허수아비의 목이 부러졌다. 6번 만의 성공이었다.
“이해나, 통과!”
이해나는 역시 변함없는 무표정으로 퇴장했다.
이제 나의 차례였다.
위치에 선 다음 검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위장에 위치한 스톡이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며 몸에 마력을 제공했다. 검에 맺힌 검기가 더욱 선명히 빛나며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모두 준비.. 시작!”
파앙 !
첫 번째 검격. 검격 한 번에 실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검에 맺힌 검기가 사납게 일렁거렸다.
파앙 !
두 번째 검격을 날리자 나는 지금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 층으로 이루어진 스톡이 부서져라 회전하며 뭔가 다른 마력이 검에 실렸다.
파앙 !
뚜둑
뭔가가 맥없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앞을 보니 허수아비의 머리 부분이 사라져 있었다. 목이 부러지다 못해 날아가버린 것이다. 시험을 치르던 이들조차 망연자실하게 내 허수아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검에는 뭔가 검기보다 훨씬 선명하고 강력한 마력이 맺혀 있었다.
“검강..? 어떻게 벌써...”
지켜보던 한민아 교관이 얼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슬쩍 그 말을 들은 나는 더 얼이 빠져야 했다.
검강? 이게 검강이라고? 알리시아 교관이 쓰던 그거?
이게 왜 여기서 나올까?
내가 아직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번엔 시스템 메세지가 내 앞에 도배되기 시작했다.
[무기의 숨겨진 해금 조건 달성.]
[해금 조건 검에 정순한 마력을 담아 검강을 만들기.]
[무기에 잠들어있던 기술 세트가 해금된다.]
[기술 세트가 초대자 김진운에게 귀속됨을 확인.]
[기술 세트, ‘케루빔(Cherubim)의 수호 검술’이 해금된다.]
“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