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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17화 (17/61)
  • 〈 17화 〉 16. 깜짝 이벤트

    * * *

    ‘대련 시작.’

    두 사람의 생각이 교차했다. 반투명한 반구형태의 영역이 주변으로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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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

    [대련 시작.]

    두 사람의 마력이 대련 영역 안에서 크게 맥동했다.

    ***

    나는 이번에도 시작하자마자 움직이지 않았다. 방패를 앞세운 채로 조용히 알리시아 교관의 행동을 살폈다.

    알리시아 교관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대련 중에 교관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나는 조금 안도하며 계속 동태를 살폈다.

    그때 내 눈에 상당히 신기한 마력의 흐름이 보였다.

    알리시아 교관의 몸에 퍼져있던 마력이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온전히 다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양의 마력을 전신에 남겨두고 나머지만 이동한다. 그 이동한 마력이 팔 쪽으로 집중된다.

    아니, 팔이 아니었다. 마력이 집중되는 곳은 검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마력 운용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검에 집중된다고? 마력은 신체 안에서만 운용할 수 있는 거 아니었나?

    내가 혼란스러워 하든말든, 마력은 계속해서 이동했다. 이내 검에 상당량의 마력이 모였고, 얇은 레이피어를 따라 푸르스름한 막 같은 것이 생겨났다. 일렁이는 것 같으면서도 형태가 잡혀있는, 실체화된 마력이었다.

    “와우.”

    저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검기를 보는 것 같다. 마력을 실체화 시켜서 무기에 두르다니, 저렇게 하면 저 무기는 대체 어떻게 변할까? 일단 데미지나 절삭력이 올라가는 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정도가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바위를 가르는 수준의 위력을 가질 수도 있다. 내가 경험한 마력이라는 힘은 충분히 그런 것이 가능한 위력적인 힘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더 엿된 것 같다.

    검을 맞대보고 싶기는 개뿔이. 한 방에 나가 떨어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일단 부딪혀보긴 해야 한다. 아마 한 번 부딪힐 때마다 내 전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일단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사용했다.

    ‘작열.’

    ‘단계별 가속 ­ 2단계.’

    작열은 시험해본 결과 그 부러진 검이 아닌 다른 무기에도 적용이 되었다. 그리고 단계별 가속은 3단계부터는 나도 내 몸을 제어하기가 힘들어서 일단 2단계까지만 실전에서 쓰고 있다.

    기슬을 사용하자 내 검이 빨갛게 달구어지며 불꽃을 뿜었다. 또한 가속의 힘을 받은 다리근육이 앞으로 튀어나가기 위해 잔뜩 수축했다.

    내 검이 약간의 불꽃을 두르는 것을 본 알리시아 교관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직후 나는 포탄처럼 알리시아 교관을 향해 쇄도했다. 방패로 전면을 보호하고 작열을 두른 검으로 횡베기를 하며 지나치려 했다.

    내 검이 알리시아 교관에게 닿으려는 찰나, 사선으로 놓여있던 레이피어가 부드럽게 올라와 내 검면을 올려쳤다. 딱히 힘을 담은 것 같지도 않은, 말 그대로 부드러운 휘두름이었다.

    티잉 ­

    하지만 그 한 수에 내 검은 하염없이 위로 치솟았다. 검이 튕겨나갈 듯한 반발력이 느껴졌다. 손아귀가 얼얼하고 손목도 시큰거렸다.

    결국 내 검은 알리시아 교관을 스치지도 못했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그 가벼운 건드림으로 이정도의 위력을 낸다고? 마력을 무기에 둘렀기 때문인가? 아니면 순수 근력이 말도 안되게 높은건가?

    역시 검으로 정면승부는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허를 찌르는 일격이 필요하다.

    나는 알리시아 교관을 지나쳐 달리다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땅을 박찰 준비를 하며 기술 하나를 시전했다.

    ‘열폭발.’

    위치는 알리시아 교관의 머리 옆. 마력은 15/100 정도로 했다. 레벨이 오르면서 내 마력 총량도 상당히 늘었다. 아마 이 정도만으로도 시험장에서 임프 4마리를 날려버렸던 수준의 위력의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폭발이 일어나면 바로 기습할 생각으로 달릴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알리시아 교관이 살짝 자기 옆쪽을 흘겨보았다. 내가 열폭발을 일으킬 위치였다. 설마 터지기 전 열폭발을 본 건가? 열폭발은 터지기 전엔 인식할 수 없을텐데?

    그렇게 잠시 그 지점을 바라보던 알리시아 교관이 레이피어를 들어 그곳을 쿡 찔렀다.

    그리고 난 그 짧은 순간에 볼 수 있었다. 레이피어에 둘러져 있던 마력이 살짝 움직였다. 그 마력에서 가느다란 마력 가닥들이 뻗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가 열폭발을 터뜨리려 곳에 다다르자, 마치 식물의 뿌리같은 것이 그 부분을 뒤덮은 듯 한 모양이 되었다. 그 직후 열폭발은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깔끔히 말이다.

    그 모든 과정은 찰나에 불과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허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저건 무슨 신들린 수준의 마력 컨트롤일까? 그 얇은 마력 가닥들로 열폭발을 파훼해 버리다니? 기술인가? 저게 기술이라면 아주 사기적인 기술인 것이고, 순수 마력 제어 실력이라면 더 할 말이 없다.

    “정말 다채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검에다 불을 두르고, 몸을 가속하고, 이제는 불시에 터지는 폭발이라니. 벌써 기술을 3개나 가지고 있는 건가요? 이정도면 독보적인 수준입니다.”

    얼이 빠진 나에게 알리시아 교관이 말했다. 상당히 흐뭇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걸 보니 이미 그녀가 요구하는 선은 통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다행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었다. 내가 준비한 수가 번번히 가로막히기만 하니 뭔가 분했다. 한 번만이라도 좀 타격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래. 딱 한 방만 먹여보자.

    나는 작열에 더 많은 마력을 쏟았다. 그러자 검이 더욱 빨갛게 달궈지며 맑은 불꽃을 뿜어내었다. 검에서 뿜어지는 열기가 피부를 파고들었지만 화염내성 덕에 편안하기만 했다.

    그리고 다시 기술을 사용했다.

    ‘열폭발.’

    이번엔 다른 방식의 열폭발이었다. 5/100 정도의 마력을 담은 열폭발이 여러개가 발동되었다. 위치는 알리시아 교관 주변 총 5군데이다. 열폭발을 파훼할 수 있다면 파훼하기 힘들정도로 여러개를 터뜨리면 된다. 한마디로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 역시도 작열을 두른 검을 들고 알리시아 교관을 향해 질주했다. 열폭발이 나한테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내가 들어갈 곳은 미리 열폭발을 배치하지 않았다.

    알리시아 교관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세를 읽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주변을 슥 둘러보더니 레이피어를 들어 부드럽게, 하지만 빠르게 이리저리 휘둘렀다.

    레이피어가 그리는 궤적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도 같았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하나의 곡선이 내가 미리 깔아놓은 열폭발을 모두 지나쳤다. 그리고 검에 닿은 모든 폭발 지점이 사라져버렸다.

    “미친.”

    방금 물 흐르듯 휘두른 그 검이 폭발 지점에 닿을 때마다, 아까 전에 일어났던 파훼작용이 빠르게 일어났다. 이제는 정말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가히 괴물같은 수준의 마력 제어 능력이다.

    열폭발 기습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내 몸은 이미 알리시아 교관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결국 검으로 부딪혀야 한다. 그래서 이번엔 좀 다른 방식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횡베기를 하면서 지나치는 게 아니라 방패를 앞세워 돌진하면서 측면으로 검을 찔러넣는 것이었다.

    나는 단숨에 방패로 밀어 붙이겠다는 듯이 알리시아 교관에게 달려들었다. 이게 실전이었다면 아마 그녀는 간단히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 자리에서 고정된 상태이다. 결국 나의 돌진을 그대로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이것은 어떻게든 유효타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알리시아 교관에게 접근하자, 그녀는 레이피어 끝으로 내 방패 모서리를 건드렸다. 그리고 마치 장애물을 치우듯 옆으로 휙 밀어버렸다.

    방패가 옆으로 휙 돌아가자 내 진행 경로도 함께 크게 틀어졌다. 하지만 이미 달리던 속도가 있어서 멈추지도, 바로잡지도 못한 채 앞으로 넘어지듯 내달렸다.

    그리고 알리시아 교관은 자연스럽게 내 발에 테클을 걸어올렸다.

    철푸덕!

    나는 달리던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방패와 검은 손에서 놓지 않은 상태였다.

    바닥에 일자로 엎어진 쪽팔림도 잠시, 나는 내 목에 무언가 서늘한 감촉이 느껴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알리시아 교관의 레이피어가 내 목을 겨누고 있었다. 마력을 두른 채로 일렁거리는 것이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훌륭합니다, 초행자 김진운.”

    알리시아 교관이 대뜸 칭찬을 했다.

    “방금 시험을 통과한 초행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이었습니다. 정말 앞날이 기대되는군요.”

    나는 힘없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비록 절 이기지는 못 했지만, 6명 중에서 교관을 상대로 가장 오래 버티셨습니다. 이번 입학테스트 1등은 초대자 김진운입니다.”

    여전히 엎어진 채로 주변을 살짝 둘러보니 이미 다들 나가 떨어진 상태였다.

    내가 볼 때 이 사람들 처음부터 이기게 해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미 목에 칼이 겨누어진 내가 패배를 인정하자 대련은 알리시아 교관의 승리로 끝이 났다. 대련을 마친 알리시아 교관은 다시 공터 한 가운데에 서서 공지를 할 준비를 했다.

    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공터 한가운데 섰다. 그러자 나를 이어서 다른 5명도 흐물거리며 일어났다.

    이내 대련이 전부 끝나고 초행자 6명과 교관 6명이 전부 자리로 복귀하였다. 모두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한 알리시아 교관이 알렸다.

    “이상으로 입학 테스트를 마치겠습니다! 오늘 초대 받자마자 상황 설명 듣고, 입학 테스트까지 치르시느라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별도의 일정 없이 휴식 시간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그럼 전부 교관에게 배정된 숙소를 안내받으시길 바랍니다.”

    상당히 파란만장한 하루를 보낸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은, 흡사 좀비와도 같이 흐느적 거리며 숙소로 이동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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