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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15화 (15/61)

〈 15화 〉 14. 입학 테스트

* * *

“그럼 이제 2조 여러분이 나와서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정된 위치로 가서 마지막 점검을 해주십시오.”

드디어 내가 대련을 할 차례가 와버렸다. 나는 흑색의 검과 방패를 챙겨서 내 위치를 향해 이동하였다.

자리에 서니 내 상대도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해나라는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잘 정돈된 검은색 단발이 돋보이는 여자다. 그런데 유난히 표정이 차갑다. 보고있던 내가 살짝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서늘하게 내려앉은 얼굴이다. 단순히 기분이 안 좋다기 보다는 아마 입문자의 시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단순히 비탄에 빠진 것이 아니라 칼을 숨긴 듯이 날카로워진 모습. 대체 시험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날을 세우는 것일까? 난 궁금증이 일었지만 분위기상 물어볼 수는 없었다. 바로 뒤에 대련할 상대이기도 하고.

그렇게 나도 내 장비를 점검하며 준비를 하는 동안 저쪽에서 유지윤이 다가왔다. 나는 유지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아, 지윤 씨. 대련 이기신 거 축하드려요. 생각보다 훨씬 잘 싸우시던데요?”

“후후, 고마워요. 그래도 사실 제가 잘 싸웠다기 보다는 레벨 차이가 컸던 것 같아요.”

물론 레벨 차이가 꽤 많이 났음은 사실이다. 유지윤이 상대했던 남자는 속도와 같은 신체능력도 그닥이었고, 아직 안 쓴 것인지 없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기술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유지윤의 전투센스는 상당히 괜찮았다.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며 원거리 공격을 한다던가, 몰래 와이어 함정을 깐다던가, 날아가던 꼬챙이를 산탄으로 바꾸는 등 변칙적인 패턴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상당히 센스가 있으시던데요. 그 와이어 함정은 언제 까신 거에요?”

“아, 그건 그 남자거 어깨에 꼬챙이가 꽂혀서 잠깐 주춤할 때 던지듯이 깔아놓은 거였어요. 사실 쓸모가 있을지는 잘 몰랐는데 운이 좋았죠, 뭐.”

유지윤은 그 말을 하면서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

“한 잔 마시세요. 이거 대련 끝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식수 조금 가져온 거에요.”

“오, 고마워요. 마침 긴장해서 입이 좀 마른 참이었는데.”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 별로 긴장하신 것 같진 않은데요?”

“내색은 안하지만 이게 직접 나와보니 다르네요.”

“그럼요. 생각보다 진짜 싸운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있긴 해요. 그래도 가차 없이 가고일 얼굴에다 폭발을 터뜨리던 진운 씨라면 별 문제 없을 거에요.”

유지윤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나자 잠시 후 대련이 시작된다는 교관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럼 전 저기서 맘 편히 구경하고 있을게요. 어떻게든 진운 씨가 이길 것 같으니까요.”

“하하,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유지윤이 돌아가자 나는 다시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래도 막 대련하러 나올 때보단 훨씬 덜하다. 딱 적당한 수준의 긴장감이다.

상대, 이해나는 여전히 서늘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손에는 약간 짧은 길이의 숏소드가 들려있다. 품질이 꽤 괜찮은 것으로 보아 아마 보상으로 얻은 무기인 모양이다.

그렇게 숏소드를 들고 가만히 있는 이해나를 바라보다가 교관의 알림에 정신을 차렸다.

“모두 자리를 잡으신 것 같으니 이제부터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준비가 끝나신 분들은 대련을 시작해 주십시오! 마찬가지로 카운트다운 이후 시작하시면 됩니다! 초행자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이해나를 바라보았다. 이해나도 예의 그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련 시작.’

내가 마음 속으로 떠올리자 이해나도 똑같았는지 거의 바로 대련 영역이 깔렸다. 이윽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

[4]

[3]

[2]

[1]

[대련 시작.]

나는 대련이 시작하자 마자 움직이지 않았다. 일단 방패를 앞세우고 상대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자 이상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이해나의 몸 안쪽과 그 주위로 일렁거리는 무언가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마력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얻은 확장된 체내 마력 순환로의 기능 중 상대의 마력 성질이 일부분 감지된다는 게 이런 것일까? 그보다 저것은 무언가 기술을 사용하려는 전조인건가?

그러다 이해나 주변에서 일렁거리던 마력이 빠르게 이해나의 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력이 몸에 모이자 이해나의 기세가 달라졌다. 이 모든 과정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이해나가 앞으로 쏘아지듯 이동했다. 들고 있는 숏소드가 매섭게 방패 위로 드러난 내 머리를 향해 쇄도해왔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여유롭게 몸을 살짝 돌리고 고개를 비트는 것으로 피해냈다. 스쳐지나가는 이해나의 얼굴에 당황이 엿보인다. 나름 빠르게 기습을 날렸는데 이렇게 쉽게 피해버릴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24레벨에 달한 내 동체시력은 나조차 적응이 안 될만큼 발달해있었다. 검격을 피해낸 나는 견제를 목적으로 검을 뒤로 휘둘렀다. 그러자 이해나는 숏소드로 내 검을 받아쳤다.

채앵 ­ !

생각보다 손에 실리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이해나도 딱히 나보다 더 물러나거나 하지 않은 걸로 보아 근력이 동등한 상태인 듯하다. 레벨로 먹고 들어가는 나와 근력이 동등하다? 아마 아까 그 마력의 유동은 마력을 이용한 신체를 강화하는 능력임에 틀림이 없다. 아니라면 이 속도, 근력이 설명이 안된다.

내 검을 쳐낸 이해나는 다시 숏소드를 내게 찔러왔다. 나는 이번엔 방패로 힘있게 검을 받아쳤다.

투웅!

“흐윽!”

이번엔 좀 충격이 전해졌는지 이해나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그 틈에 나는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찔러넣었다.

하지만 이해나는 흐트러진 자세에서도 겨우 숏소드로 내 검을 빗겨냈다. 날에 한 손을 받쳐서 검격을 흘리고 나서 빠르게 백스텝을 밟아 뒤로 물러났다. 나도 일단 쫒아 들어가지 않고 잠시 방패를 들어올리고 이해나를 바라보았다.

짧은 공방 이후에 잠시동안 전투가 소강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나와 이해나의 눈은 언제든 달려들 것처럼

상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 나는 이해나를 상당히 봐주고 있는 것이 맞다. 일단 기술을 하나도 안 쓰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마력을 어느 정도 쏟은 열폭발 한 방으로도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다. 작열도 사용하지 않고 있고 가속 역시 1단계도 발동하지 않았다.

이렇게 봐주는 이유는, 일단 나는 내 신체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10레벨이 오르는 바람에 신체에 조금 적응이 안되는 게 사실이다. 또 내 기본적인 전투 감각의 수준 역시 알고 싶었다. 레벨과 기술로 떡칠한다 한들 전투 감각이 딸리면 힘든 상대를 만날 때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이 대련은 고작 첫 대련이다. 토너먼트 방식이라 했으니 분명 올라갈수록 실력자가 나올 터. 그 때를 위해서 마력은 일단 아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서로 간을 보던 도중, 이번엔 내가 먼저 몸을 날렸다. 방패를 앞세운 돌진이었다. 기본적인 신체능력이 사기라서 그냥 방패 들고 달리기만 해도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예상대로 이해나는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려 내 돌진을 회피했다. 그리고 땅에 착지하자 마자 숏소드로 내 옆구리 쪽을 찔러왔다. 나는 빠르게 옆으로 돌면서 숏소드는 방패로 막고 회전력을 이용해 검을 휘둘렀다. 이해나는 동체시력도 상승한 건지 진즉에 검을 보고 몸을 낮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해나는 잠시 물러났다. 하지만 이번엔 그 틈을 놔줄 생각이 없었다. 바로 다시 방패를 앞세워 살짝 아래쪽을 향하여 돌진했다. 이번엔 좀 전력을 낸 속도였다.

이해나는 이번엔 피할 수 없다 판단했는지 양팔로 앞쪽을 막았다. 그리고 내 돌진을 정면으로 받아내었다.

퍼억 ­ !

“흐악!”

이해나의 몸이 공중에 살짝 떠올랐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찔러넣었다. 이해나는 그와중에도 몸을 비틀어 가슴을 관통할 상처를 어깨를 베이는 것으로 끝냈다. 이 정도면 단순히 기술 덕분이 아니라 본래의 재능이 상당한 것 같다. 이 여자는 대체 지구에서 뭘 하다 왔길래 이리도 전투에 능숙할까?

하지만 나는 이제 슬슬 대련을 끝낼 생각이었다. 짧긴 했지만 지금까지 싸워보니 대충 바뀐 신체능력에도 적응되고 전투 감각도 나쁘지 않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땅에 발을 딛자마자 내 목을 향해 숏소드를 휘두르는 이해나. 나는 그런 숏소드를 방패를 이용해 쳐내었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려는데,

갑자기 앞쪽에서 마력이 폭사되듯 흘러나왔다.

놀라서 보니 이해나의 몸에 머물던 마력들이 두 배는 늘어나보였다. 아마 마력을 쏟아부어 기술의 능력을 끌어올린 모양이다. 늘어난 마력량처럼 두 배는 빨라진 검격이 방패를 제치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나도 기술을 사용하였다.

‘단계별 가속 ­ 2단계.’

내 몸이 일시적인 잔영을 남길 만큼 빨라졌다. 이해나의 검격을 몸을 돌려 피해내고 그 회전력으로 이해나의 정강이에 로우킥을 날렸다.

“큭!”

가속된 속력에 힘입어 꽤 세게 찼더니 이해나가 바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그 즉시 물 흐르듯 몸을 더 돌려서 이해나의 어깨를 짚고 강하게 눌렀다. 이어서 검을 이해나의 목에 갖다대었다.

이해나는 몇 번 움직이려 멈을 비틀었지만 작정하고 누르는 나를 뿌리칠 수는 없었다. 아까 전 마력을 쏟아부은 것도 무리였는지 점점 마력도 빠져나가고 있었다.

“패배 인정하시죠.”

내 말을 들은 이해나의 몸이 우뚝 정지했다.

그러다 이윽고 전신에 힘을 빼버렸다.

“후우... 알았어. 그러니까 비켜.”

[초대자의 패배 인정을 확인.]

[대련 종료.]

[승자, 초대자 김진운.]

“초대자 김진운, 승리!”

이해나는 그렇게 대뜸 반말을 하며 패배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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