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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14화 (14/61)
  • 〈 14화 〉 13. 입학 테스트

    * * *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다들 정해진 위치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슬슬 움직여야겠다.

    이제부터 정말로 초대자들 끼리의 대련을 통한 입학 테스트가 시작될 모양이다.

    ***

    공터 넓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두 동시에 대련하지는 못한다. 그걸 다 감독할 교관이 없기도 하고. 그래서 총 150명 중 30명씩 나와서 대련을 펼치기로 했다. 대련 영역의 넓이가 반경 15m이니 사실 30명이 대련할 장소도 결코 좁은 장소는 아니긴 하다.

    그리고 모든 대련은 교관이 한 명씩 붙어서 감독 겸 평가를 한다. 모든 사람이 전부 초면이고 일절 어떠한 관계도 없으니 공정성은 의심할 필요 없을 것이다. 지구에서처럼 학연, 지연 같은 거 따지지 않는 것은 확실히 좋은 것 같다.

    내 대련 순서는 2조였다. 먼저 30명으로 구성된 1조가 대련한 다음 대련하는 30명에 속했다.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먼저 대련을 펼치는 1조를 구경하기로 했다.

    굥교롭게도 1조에는 유지윤이 속해있었다. 유지윤의 상대는 단검을 들고 있는 한 서양인 남자였다. 나는 상당히 재미있는 구경을 할 수 있겠다 싶어 바로 유지윤 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니 참 각양각색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보였다. 아마 이 지옥에는 국적과 출신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떨어지는 모양이다. 신기한 것은 그들이 하는 말들이 전부 내 귀에 우리말로 들린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우리말이라기보단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들린다. 마치 모든 언어를 마스터한 외국어 능력자가 된 기분이다. 이것도 시스템의 영향인 걸까? 일단 확실히 편리하긴 하다.

    그러다 어느새 대련을 준비하고 있는 유지윤에게 도착했다. 유지윤은 입고 있는 장비를 점검하다가 내가 다가오자 반가운 듯 나를 불렀다.

    “어, 진운 씨! 진운 씨도 1조인가요?”

    “아뇨, 저는 2조에요. 1조 나오는데 지윤 씨가 보이길래 구경도 할 겸 응원하러 왔어요.”

    “그런가요? 후후, 그래도 응원해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니 좋네요.”

    유지윤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표정은 펴질 못했다. 꽤나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많이 긴장 되나요?”

    “음, 네. 사실 저는 이렇게 누군가랑 싸워보는 게 처음이거든요. 저는 정말 살면서 해본 싸움이라곤 말싸움 밖에 없는데 갑자기 대련을 하라니...”

    하긴 유지윤이 뭔가 싸움 좀 해봤을 것 같은 인상과는 거리가 멀긴 하다. 마냥 순수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험하게 살아오진 않은, 평범한 대한민국의 20대 여성인 느낌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마요. 어차피 서로 진짜 상처가 나는 대련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긴장되면 우리가 상대했던 가고일을 떠올려 보세요. 적어도 그 덩치랑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잖아요?”

    대련 상대로 아무리 대단한 인물이 나온다 한들, 가고일과 목숨을 걸고 싸울 때보단 훨씬 덜 긴장될 것이다. 너무 스펙타클한 경험을 미리 해서 그런지 그때와 비교하면 왠만한 상황에서는 평정을 유지하기 쉬울 것 같다. 어차피 나는 절대이성 특성이 있어서 평정을 잃을 걱정은 없지만.

    “하긴, 그건 그렇네요. 그 괴물이랑 공동에서 뛰어다니는 것이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하죠.”

    “오히려 귀여운 상대라고 할 수 있죠. 그 놈처럼 입에서 불기둥을 뿜거나 하진 않을테니까요.”

    “후후후, 그렇죠. 그 놈이 불기둥 쐈을 때는 진짜 아찔했는데.”

    그 말을 한 유지윤은 아까보다 꽤 풀어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후우, 고마워요. 진운 씨랑 조금 대화했더니 그래도 긴장이 풀린 것 같아요.”

    “도움이 됬다면 다행이네요. 이제 슬슬 시작할 것 같으니 뒤에서 구경할게요. 기왕 하는 거 멋지게 이겨버려요.”

    “후후, 기대해요. 보여줄테니까.”

    아까와 달리 자신 있는 웃음을 지은 유지윤은 대련을 위해 정해진 위치로 향했다. 나도 조금 물러나 다른 사람들이 대련을 지켜보는 위치에서 유지윤의 대련을 주시하였다.

    이내 교관들이 자리마다 이름과 상대를 체크하고 감독을 하기위해 자리를 잡았다. 아까 전 안내를 했던 알리시아 교관이 큰 소리로 모두에게 알렸다.

    “그럼 이제부터 준비된 분들은 대련을 시작해주십시오! 두 분이 동시에 대련 시작을 희망하면 카운트다운 이후에 대련이 시작될 것입니다! 초행자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그 말 이후, 공터 곳곳에서 반투명한 반구 형태의 영역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영역이 생성된 곳 마다 허공에 메세지 창이 떠오르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유지윤이 있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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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련 시작.]

    대련이 시작되자마자 유지윤은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동시에 단검을 든 남자는 앞으로 치고나왔다. 하지만 이동속도 자체가 유지윤이 훨씬 빨랐다. 아마 레벨 차이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뒤로 이동한 유지윤은 빠르게 마력 강사 생성으로 꼬챙이를 만들어 남자에게 날렸다. 남자는 갑자기 허공에서 만들어진 꼬챙이가 날아오자 식겁하며 몸을 비틀었다. 덕분에 간신히 꼬챙이를 피하긴 했지만 앞으로 넘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넘어져 있다간 그 꼬챙이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빨리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꼬챙이가 남자의 옆구리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남자가 피하려고 몸짓을 취하기도 전에 꼬챙이가 남자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푸욱!

    “크으윽!”

    남자는 다시 넘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넘어지자 마자 굴러서 추가로 날아오는 꼬챙이를 피했다. 꼬챙이 두 개가 땅에 박히자 빠르게 일어섰다.

    분명 옆구리를 꼬챙이가 관통했으나 생각보다 잘 움직인다. 아마 대련 중에 입는 상처로 인한 통각은 훨씬 약화되거나 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신체 일부분이 관통 당하고도 저렇게 잘 움직이는 게 설명이 안된다.

    남자는 일어선 자세 그대로 땅을 박차며 유지윤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유지윤은 다시 빠른 속도로 대련 영역을 따라 원을 그리며 이동했다. 물론 계속해서 꼬챙이를 날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남자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꼬챙이를 피하다가 어깨에 하나가 더 꽂혔다. 그래도 남자는 끈질기게 유지윤을 추격했다.

    분명 속도는 유지윤이 더 빠르지만 점점 남자는 유지윤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원 형태의 영역에서 도망을 가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단검을 꼬나쥐었다.

    그러다 유지윤이 이번엔 조금 큰 사이즈의 꼬챙이를 만들어 날렸다. 하지만 크기가 큰 만큼 속도가 조금 느려서 피하기는 더 쉬워 보였다. 남자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몸을 살짝 비틀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남자가 어렵지 않게 피하는 것 같았다.

    “어?”

    철푸덕!

    그러다 갑자기 남자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반사적으로 아래를 보니 굵은 실같은 것이 남자의 발목을 반쯤 파고든 상태였다. 마치 와이어 함정을 떠올리게 만드는 실이었다. 대체 언제 깔아둔 것일까? 나는 관전하는 입장이었지만 꼬챙이를 날리는 것에만 집중해서 그런지 도대체 언제 저 함정을 깔아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발목이 반쯤 잘리며 넘어진 남자는 그래도 바로 몸을 구르며 커다란 꼬챙이를 피하려고 했다. 와이어 함정은 기발했지만 저렇게 하면 그래도 꼬챙이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흐읏!”

    그때 유지윤이 기합성을 내지르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날아가던 커다란 꼬챙이를 이루던 실들이 스르르 풀리는가 싶더니, 저들끼리 다시 뭉치고 꼬이면서 여러개의 작은 꼬챙이들을 형성했다. 날아가는 속도는 그대로 유지한 채 말이다.

    “허...”

    마치 산탄총과도 같은 그 모습에 남자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망연자실한 얼굴이 되었다. 그대로 꼬챙이들이 남자의 전신을 뒤덮으려는 찰나, 갑자기 꼬챙이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다.

    [죽음에 이르는 치명타 확인.]

    [치명타를 자동으로 방어하며 치명상을 입은 사람은 패배로 처리된다.]

    꼬챙이들을 전부 없앤 것은 대련 시스템 규칙으로 인한 자동 방어였다.

    [대련 종료.]

    [승자, 초대자 유지윤.]

    “초대자 유지윤, 승리!”

    대련의 종료를 알리는 메세지 창과 함께 감독하던 교관이 외쳤다.

    “와아!”

    유지윤은 자신이 대련에서 승리했다는 알림을 듣고선 폴짝 뛰어오르며 좋아했다. 아직까지 망연자실한 표정의 남자는 그대로 잠시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러자 남자의 몸 곳곳에서 지직거리는 노이즈 같은 게 나타나더니 남자의 상처가 모조리 사라졌다. 대련이 끝난 이후 상처가 원상복구된다는 것은 저런 식인 모양이다.

    유지윤과 서양인 남자의 대련 종료와 함께 대부분의 대련이 종료되고 있었다. 조금 더 오래 걸린다 싶은 대련도 있었지만 얼마 안 가 결판이 났다.

    그렇게 1조의 모든 대련이 끝나자 알리시아 교관이 모두에게 말했다.

    “대련을 마친 1조 여러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대련에서 승리하신 분은 오른쪽으로, 패배하신 분은 왼쪽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희비가 교차되는 가운데 승리한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패배를 겪은 사람들은 왼쪽으로 이동하여 교관에게 결과를 보고하였다. 아마 승리한 사람들과 패배한 사람들을 추려서 다음 배치표를 짜려는 모양이다.

    “그럼 이제 2조 여러분이 나와서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정된 위치로 가서 마지막 점검을 해주십시오.”

    드디어 내가 대련을 할 차례가 와버렸다. 나는 흑색의 검과 방패를 챙겨서 내 위치를 향해 이동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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