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12화 (12/61)

〈 12화 〉 11. 훈련캠프

* * *

“우리는, 이 지옥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 빌어먹을 장소를 견디고 극복할 동료가 늘어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지옥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라, 이미 여긴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와있는 모양이다.

“새삼스럽지만, 두 분 모두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남자는 잠시 차를 마시며 말을 멈추었다. 나와 유지윤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지옥이라. 여기가 지옥이라니. 어릴적 교회에 다닐 때 나쁜 일을 하면 가는 곳이라고 수도 없이 들었던 그곳이라니. 물론 그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옥이랑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현재 밟고 있는 이 땅이 지옥의 일부라는 것이 조금 실감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 유지윤이 말을 꺼냈다.

“그..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지옥이랑은 다른거죠?”

“네. 여기는 죄를 지어서 오는 곳도, 신을 믿지 않아서 오는 곳도 아닙니다. 물론 그럴지도 모르긴 하죠.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 기억을 전부 잃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왜, 어쩌다가 여기에 온건지는 그동안 이곳에 온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여기에 왔기 때문에 싸우고, 살아남는 거지요.”

남자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죠. 이 지옥의 구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곳은 1에서 10까지 총 10개의 계층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계층은 말 그대로 층을 의미하며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제 1 계층입니다. 아래 계층으로 내려갈수록 우리가 상대해야 할 악마는 강력해집니다. 이곳은 가장 안전하며 악마도 대부분 최하급 악마이지요. 그리고 8계층부터는 군주급 악마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규격 외의 존재이므로 인류가 현재 범접하지 못하는 대상입니다.”

“최하급 악마는...임프같은 것들 말씀이신가요?”

내가 임프를 베고 부러진 검의 능력을 해금했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남자는 잠시 놀라는 듯하다가 다시 말했다.

“맞습니다. 그런데 임프를 아십니까? 임프는 최하급 중에서도 까다로운 편인데... 혹시 시험에서 임프가 나왔나요?”

“네. 임프가 20마리 좀 넘게 나왔고 가고일도 하나 나왔죠.”

남자는 내 말을 듣자마자 잠시 모든 행동을 정지했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임프가 20마리... 거기다가 가고일이요? 그, 그 하급 악마인 가고일 말씀이십니까?”

잘 정돈되고 노련한 모습만 보여주던 남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깨졌다.

“네, 저희가 그 악마를 죽였을 때 가고일을 죽였다는 메세지가 나왔어요.”

“허, 허어... 가고일이라니. 정말 시험에서 하급 악마가 나왔다는 말입니까? 이게 도대체가..”

남자는 잠시 혼란스러운 머리를 진정시켰다. 우리의 말을 들은 벽에 정렬한 사람들도 작은 소리로 쑥덕이고 있었다.

“...입문자의 시험에 임프 20마리에 가고일이 나왔고, 여러분은 그 모든 악마를 처치하신 거군요. 혹시 레벨이 얼마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저는 24레벨입니다.”

“저는 딱 20레벨이에요.”

남자는 이차적으로 충격을 한 번 더 받은 표정을 짓더니 잠시후 다시 진중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허어.. 그랬던거군요. 그래서 지금까지 상 난이도 시험의 통과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이군요. 임프가 20마리에 가고일이라면 그러고도 남겠습니다. 웬만큼 뛰어난 초행자들도 전부 당해버리고 말겠죠.”

“정말 지금까지 상 난이도 통과자가 한 명도 없었나요?”

“네. 그래서 저희는 왜 상 난이도의 시험이 열릴 때마다 초행자들이 전멸을 하는지, 대체 상 난이도 시험에는 무엇이 등장하는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저 너무 어려워서 아무도 통과를 못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앞으로도 통과자가 있을 거란 기대를 안하고 있었습니다. 상 난이도 시험이 열리면 일단 그 안의 초행자들에게 명복부터 빌어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시스템 메세지로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긴 하지만, 진짜로 우리가 최초 통과자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가 치른 시험이 그리도 극악의 난이도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여러분이 버젓이 통과해버리신 겁니다. 상 난이도 시험의 최초 통과자에, 레벨도 전부 20 이상이고, 좋은 품질의 장비세트까지 가지고 있다니. 이거 클랜들마다 여러분을 영입하려고 전쟁이라도 벌이는 거 아닌가 싶군요. 정말 여러분의 앞날이 기대됩니다.”

남자는 아까 전 떨어뜨릴 뻔한 찻잔을 다시 들었다.

“여러분이 상 난이도 시험을 통과하신 것과 달리 대부분의, 아니 여러분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중 혹은 하 난이도 시험 통과자입니다. 보통 하 난이도에서는 고블린 15마리 정도가 나오죠. 각성만 한다면 처리하기 어렵지 않은 수준입니다. 중 난이도에서는 고블린들 10마리와 홉고블린 둘이 나옵니다. 각성한 초대자 3명 이상이 힘을 합치면 클리어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여러분이 말씀하신대로 임프 20마리와 가고일 한 마리가 나오는 상 난이도 시험은... 음, 여러분처럼 정말 특출난 초대자가 아닌 이상 그냥 죽는다고 봐야합니다.”

음, 확실히 저렇게 비교해서 말해주니 우리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시험을 치른건지 알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칭호도 많이 주고 보상도 퍼준걸까?

“여러분은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훗날 이 지옥에서 꽤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원칙상 여러분도 모든 초행자들이 참가하는 훈련캠프에는 참가해주셔야 합니다.”

“훈련캠프요?”

“네. 모든 인간 초행자는 시험을 마친 뒤 이 사르비나 거점으로 오게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초행자들이 지옥에서 자리를 잘 잡을 수 있도록, 또 생존 확률을 더 높일 수 있도록 훈련캠프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초행자들이 지옥에서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치고 기초적인 훈련도 해주죠. 그리고 졸업을 하면 졸업생에게만 주어지는 장비를 수여해줍니다. 거기다 각 클랜들도 인재를 선점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다 오퍼를 넣기도 합니다.”

“클랜은 뭔가요?”

“클랜이란 초대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지옥에는 인류가 발을 디딘 역사가 긴 만큼 많은 클랜이 존재하죠. 각 클랜들은 자신들의 거점을 담당하며 거점을 수호하고, 발전시킵니다. 또 악마들을 토벌하고 다른 종족들을 견제하는 등 다른 여러가지 역할도 맡습니다. 자세한 건 마음에 드시는 클랜에 들어가시면 잘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클랜은 초대자들이 만든 이익집단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나나 유지윤도 아마 클랜에 들어가게 될 것 같은데 고를 때는 신중히 잘 골라야겠다.

“그럼 이 사르비나 거점도 담당하는 클랜이 있나요?”

유지윤이 추가로 질문을 했다.

“아뇨, 이곳은 공적인 느낌이 강한 곳이라 따로 담당하는 클랜은 없습니다. 각 클랜들이 모여 만든 클랜연합 측에서 관리를 하죠.”

남자는 어느새 다 비워진 찻잔을 보며 말했다.

“음, 이정도면 기본적으로 안내해드릴 사항은 다 말씀드린 것 같군요. 더 자세하고 추가적인 내용들은 훈련캠프에서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제 설명은 여기서 마치고, 혹시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시간이 조금 남긴 했습니다만.”

일단 나는 딱히 더 궁금한 점은 없었다. 질문하자면 더 할 수 있지만 어차피 훈련캠프에서 다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으음, 저 하나만 질문할게요.”

유지윤이 뭔가 고민하더니 질문을 했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쭉 들으면서 생각한 건데요, 전 제일 궁극적인 것 하나를 모르겠어요.”

“궁극적인 거라 하심은?”

남자가 조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우리 인류는 이곳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요? 그냥 생존하는 건가요? 아니면 나름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모든 악마의 토벌인가요?”

꽤나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유지윤은 그래서 이 악마가 들끓는 세상에서 인류는 무엇을 추구하냐고 물었다. 질문을 듣고보니 나도 궁금해졌다. 이 10계층짜리 지옥에서 인류는 결국 무엇을 이루고자 여기 있는 걸까? 이 대답에 따라서 지옥에서의 행동방침이나 목표의식이 달라질 것이다.

남자는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했다.

“상당히 본질적인 질문이군요. 어쩌면 지윤 양이 하신 그 질문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답을 드리자면, 단체마다, 클랜마다, 종족마다, 사람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겠군요. 모두가 똑같이 이 지옥에 오게되지만 전부 자신만의 목표와 신념에 맞게 살아갑니다. 그들 모두가 똑같은 목적지를 추구할 수는 없지요. 아마 여러분도 머지않아 이곳에서 무엇을 할지, 또 무엇을 이룰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으실 겁니다. 다른 사람의 답을 굳이 따라갈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이 찾은 그 답을 믿고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요컨대 모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무언가를 따르기보단, 자신의 목표는 무엇인지부터 정하고 그것을 따르라는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지구에서 살 때도 딱히 사람들은 통일된 목표의식 같은 건 가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아갈 뿐이었다. 이것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남자는 말을 마치고 잠시 시계를 확인했다.

“이거 나이가 들어가니 잡설이 느는군요.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으니 이제 일어납시다.”

“아니에요.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말씀이었어요. 다음에도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하하, 저도 여러분 같은 전도유망한 사람들과 다시 이야기하고 싶군요. 이번 대화는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여러분이 앞으로 한 달간 지내게 될 훈련캠프로 가볼까요?”

나와 유지윤은 남자를 따라서 접견실을 벗어나 훈련캠프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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