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10. 제 1 계층
* * *
“시험을 통과하신 초행자분들!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을 예정입니다! 혼란스러우시더라도 교관들에 통제에 따라 배정된 곳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설명을 들을 때가 온 모양이다.
“다시 한 번 안내드립니다! 시험에 통과하신 초행자 분들은 모두 담당 교관의 통제에 따라 배정된 장소로 이동해 주십시오! 현 상황에 대한 설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똑같이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말을 전한다. 나와 유지윤처럼 게이트 앞에 떨어진 사람들은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들 앞에 다가온 담당 교관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대부분의 게이트는 그냥 평범해 보이는 교관들이 접근하였지만 몇몇 게이트는 달랐다. 색도 다르고 좀 더 특별해 보이는 제복을 입고 있다. 게다가 딱 봐도 더 노련미가 풍기는 것이 상급자인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담당 교관을 따라가려는데 어디선가 소동이 벌어졌다.
“당, 당신들은 뭐야?! 여기는 어디고?”
“안내를 따라 이동해주시면 충분히 설명해드릴 예정입니다. 일단 지금은 제 통제를 따라 주십시오.”
“뭐? 너는 또 뭐하는 년이야!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 우리는 방금까지 이상한 괴물 놈들이랑 드잡이질을 하고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설명을 들으신다면 전부 이해가 가실...”
“당장 여기 책임자 불러와! 나를 그 이상한 괴물 우리에 가두었다가 이제야 꺼내줘? 사람이 몇 명이나 죽었는지 알아?! 당장 불러와! 아주 죽여버릴테니까!”
한 남자가 피묻은 단검을 꺼내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담단 교관이 아무리 진정을 시키려 해도 통 들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젊은 여자로 보이는 담당 교관은 한숨을 쉬며 미간을 주물렀다.
“후... 이런 새끼들이 하나씩은 나오긴 하는데.. 짜증나네, 진짜.”
“뭐, 뭐? 너 지금 뭐라고 했... 커헉!!”
남자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이미 공중을 날고 있었다. 교관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이동해서 복부를 가격한 것이었다. 24 레벨이 된 내 시력으로도 흐릿한 잔상 정도만 보일 수준이었다. 공중에 떠오른 남자는 땅에 떨어진 뒤 배를 부여잡았다.
“끄아아아아... 아아..”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계속 앓는 소리만 냈다. 입에서는 거품이 쏟아지다가 이내 눈을 까뒤집고 정신을 잃었다.
“와우..”
“허어.”
나와 유지윤을 포함한 사람들은 전부 감탄사를 뱉었다. 그저 가볍게 날린 주먹 한 방이지만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교관에게 절대로 개기지 말아야갰다는 다짐을 하였다.
작은 소동 이후에 분위기는 순조로웠다. 교관의 무위를 잠깐 확인한 사람들은 군말 없이 통제를 따랐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정된 장소로 사라질 때였다.
“음... 왜 우리한테는 교관이 안 오죠?”
“그러게요..”
우리는 우리 쪽으로만 아무도 오고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지? 우리를 까먹은 것일까? 그럴 것 같진 않은데.
그렇게 어쩔 줄 몰라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한 명을 중심으로 마치 호위하듯 둘러싼 형태였다.
“안녕하십니까.”
“아, 안녕하세요.”
나와 유지윤은 얼떨결에 인사를 받았다.
“여러분을 담당한 사람은 저입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 사람은 잘 정리된 백발이 돋보이는 남자였다. 분명 백발인 것으로 보아 나이는 많아 보이는데 몸은 아주 탄탄했다. 얼굴에는 자잘한 흉터가 많았고 눈빛은 우묵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정장을 입었지만 마치 백전노장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는 남자가 이끄는대로 길을 걸었다. 그렇게 우리는 수천명이 지켜보던 장소를 벗어나 넓은 길가로 들어섰다. 남자를 따라가며 주위를 둘러보던 우리는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우와...”
“이건..”
대로를 따라서 보이는 풍경을 설명하자면 딱 도시 한복판이었다. 물론 지구에서의 발전된 도시들보단 한참 못하지만 나름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건물들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팔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한 건물에 도착해있었다. 남자를 따라 건물에 들어가니 잘 준비된 훈련소 같은 느낌을 풍기는 장소였다. 우리는 남자를 따라 한 방에 들어갔다. 접견실처럼 꾸며진 방이었다.
“편히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남자가 한 쪽 의자에 앉고 우리는 그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 남자와 우리를 둘러싸며 호위하듯 따라오던 사람들은 벽을 따라 정렬하여 섰다.
이내 깔끔하게 차려입은 한 여자가 차 세 잔을 테이블에 놓고 사라졌다. 남자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꺼냈다.
“음... 먼저 혼란스러워 하지 않도록 진정시켜드리는 게 먼저지만, 두 분은 충분히 침착해 보이시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남자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누더기가 된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옷을 드릴 필요도 없을 것 같구요. 시험에서 이미 훌륭한 장비를 얻으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어.. 네, 감사합니다.”
내가 아무 말도 안하고 있자 유지윤이 대답했다. 남자가 다시 한 번 차를 마시며 말을 계속했다.
“먼저 제 소개부터 하자면, 저는 이곳 제 1 계층에 인류가 세운 최초의 거점, 거점 사르비나의 총책임자인 오웬스 루이스라고 합니다.”
거점 사르비나의 총책임자?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상당히 높은 직급이라는 것은 알 것 같다. 그런데 왜 우리만 일반적인 교관이 아니라 총책임자 씩이나 되는 사람과 마주하는 걸까?
“보통 준비된 교관들이 초행자들을 안내하고 중 난이도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은 특수 교관들이 맡습니다. 그런데 저희도 상 난이도 시험 통과자는 처음이라 일단 제가 안내하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가 봐도 우리에게 양해를 구할 게 아니라 우리가 감사해야 할 상황이다. 딱 봐도 이 거점이라는 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 같은데 우리같은 초행자들을 안내한다는 게 잘 이해가 안 갔다. 상 난이도를 통과 했다는 것이 그리 큰 일일까?
“일단 현재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가실 겁니다. 갑자기 낯선 곳에서 깨어났더니 기억은 없고, 대뜸 이상한 괴물 같은 것들이 공격해 오더니 이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어딘가로 끌려왔지요.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계시지만 머릿속이 많이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남자가 여유롭게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지금 여러분은 궁금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겠지요. 그 모든 질문에 당장 답해드리기는 어려우니 일단 여러분의 지금 상황과, 앞으로 여러분이 하게 될 일들을 먼저 요약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다음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다른 궁금한 점을 물어보시면 됩니다.”
나와 유지윤은 일단 침묵을 지키며 남자의 다음 말들을 기다렸다.
“먼저 이곳이 대체 어디인지부터 말씀드리죠. 일단 이곳은 여러분이 살던 지구가 아닙니다. 아마 시험을 치르시면서 이미 짐작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여러분이 죽인 그 악마들과 여러분을 각성시킨 마력, 여러분의 눈앞에 보였을 정체불명의 메세지창은 지구에는 있을 수 없는 것들이죠. 저 바깥에 보이는 붉은색 하늘 또한 그러하구요.”
남자가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하늘을 가리켰다.
“그럼 이곳은 어디일까요? 한가지 묻고 싶습니다만,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일들을 겪으시면서 이곳을 어디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남자의 질문에 나와 유지윤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이곳을 어디라고 생각하냐니..
질문에 먼저 대답한 것은 유지윤이었다.
“음, 저는 처음에 메세지창 같은 것이 보일 때 무슨 가상현실게임인 줄 알았어요. 물론 아직까지 이렇게 생생하고 발전된 가상현실이 나왔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으니 곧 그 생각은 접을 수 밖에 없었지요. 오감을 전부 재현한 것도 모자라 통각같은 감각도 너무 잘 느껴지니까요. 그 다음부터는 계속 여기가 어딜까 고민했는데 아직 전혀 모르겠네요...”
남자가 다음으로 나를 바라보자 나도 입을 열었다.
“저도 메세지 창이나 초대자 정보, 악마들을 보고 게임이나 소설 속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악마들의 피가 피부에 닿을 때, 또 마력이 제 몸에 자리를 잡고 움직일 때 그 생각을 버렸죠. 이곳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기가 어디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마냥 친절한 곳은 절대 아니라는 것만 알 것 같습니다.”
남자는 무에 그리 흡족한지 나와 유지윤의 대답을 듣고 계속 미소를 머금었다.
“좋습니다. 역시 상 난이도 시험 통과자 분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덕분에 훨씬 이야기가 빨라지겠습니다.”
남자는 잠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추측하신 부분들은 어느 정도 맞습니다. 이곳은 가상현실도 아니고 게임도 아니죠. 엄연한 하나의 현실입니다. 이곳의 이름은,”
남자는 잠시 뜸을 들였다.
“‘지옥’입니다.”
‘지옥’. 뭔가 심상치 않은 이름이 나올거라 생각은 했지만 상당히 임팩트 있는 이름이 나와버렸다.
“이곳에 사는 인간들이 멋대로 지은 이름은 아닙니다. 시스템을 통해서 얻어낸 정보죠. 저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적절한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이곳은 지옥이라 불러 손색이 없는 곳이니까요.”
남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이 지옥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 빌어먹을 장소를 견디고 극복할 동료가 늘어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지옥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라, 이미 여긴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와있는 모양이다.
“새삼스럽지만, 두 분 모두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