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10화 (10/61)

〈 10화 〉 9. 제 1 계층

* * *

[시험장 이탈까지 00:00]

[제 1 계층으로 전송을 시작한다.]

“어?”

갑자기 나와 유지윤의 발밑에서 공간의 틈 같은 것이 열리더니, 순식간에 우리를 빨아들였다. 나는 온 세상이 일렁이는 기분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었다.

***

의식이 천천히 돌아온다. 일렁이던 시야가 조금씩 분명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은 알 수 없는 탁한 물결로 가득하다. 계속 살펴보니 끊임없이 고동치는 물결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는 틈이 보인다.

나는 그곳을 향해서 손을 뻗는다. 그곳을 향해 나아가려고 어떻게든 발버둥 친다. 그러자 점점 몸이 그쪽으로 움직인다. 나는 조금 안도하며 더 격렬하게 틈을 향해 헤엄치듯 나아간다.

나아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가 어느 순간 내 통제를 듣지 않을 정도로 빨라진다. 빛이 새어나오는 틈에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틈이 나를 빨아들이듯이 당긴다. 내 몸이 저항이 무력하게 틈으로 빨려들어간다.

틈을 통과하니 아딘가로 쑥 나오는 느낌이 들면서 바닥에 팽개쳐졌다.

철푸덕 ­

“허억, 허억, 허억...”

“흐악, 학, 하악...”

머리가 띵한 것이 상당한 두통이 느껴졌다. 거기다 시야는 빙글빙글 돌았다. 자꾸만 멍해지려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구토감이 몰려왔으나 입을 다물고 참아냈다. 어떻게든 스스로의 상태를 진정시키는 와중에 청각은 온전하여 여러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진짜 저기서 살아나오는 사람이 있네?”

“상 난이도 시험 생존자라... 이번이 최초 아닌가?”

“이번 초대에는 온 거점이 다 뒤집어지겠구먼.”

“대체 보상을 뭘 받았을까? 칭호도 여러개 받았겠지?”

“저 장비들 좀 봐. 저런 것들이 입문자의 시험에서 나온다고? 허 참.”

“많아봐야 한 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명이었군.”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말소리였다. 사람의 말소리? 여기에 지금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건가? 게다가 내용을 얼핏 들어보니 마치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저들은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지?

나는 요동치는 시야가 점점 진정됨을 느끼며 상황을 파악하고자 최대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초점이 이리저리 뒤엉키기는 하지만 얼추 형태는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일단 바닥에 쓰러져 진정을 하고 있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거의 바로 옆에서 유지윤이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어떻게든 진정하려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마치 임프들이나 가고일이 나왔던 그 공간의 틈 같은 것이 열려있다. 아마 내가 보았던 빛이 나오던 틈이 저것이었던 모양이다. 유지윤도 나와 비슷하게 저곳으로 빠져나왔을 것이다.

앞 쪽을 둘러보니 역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충 보아도 한 1000명은 넘어보이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저들 뒤에 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구잡이로 둘러싸고 있다기보다는 구분선을 따라 그 밖에서만 서있었다. 구분선 안쪽에는 제복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뒷짐을 지고 우리 혹은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 나는 양옆을 돌아보며 우리 말고도 누군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놀랍게도 공간의 틈 같은 것이 열린 곳은 우리 뒤쪽만이 아니었다. 양옆으로 대여섯개 정도의 다른 공간의 틈들이 열려있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그 앞엔 사람들이 쓰러져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아마 저들도 각각 자기 쪽의 틈에서 빠져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저들도 나와 유지윤처럼 입문자의 시험을 치르고 오는 길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순간에 같은 장소에서, 게다가 쭉 일렬로 늘어선 틈에서 빠져나온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와 그들이 조금 다른 점이 있긴 했다. 먼저 그들은 모두 적어도 우리보단 많았다. 가장 적은 곳의 인원이 3명이었으며 많은 곳은 6명 정도 되어보였다. 전부 우리보단 많이 생존한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옷은 다 찢어진데다 곳곳에 핏자국이 붙어 있었으며, 무기가 없거나 있는 사람도 망가져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우수한 초행자의 장비 세트'를 받아 탈의까지 전부 마친 우리와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아마 저들의 보상과 우리의 보상은 다른 모양이다.

문득 나는 위를 올려다 보았다. 하늘이 붉은 색이었다. 핏물이 눈에 스며들거나 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붉었다. 선명한 빨간색은 아니지만 좀 흐릿한 붉은색이다. 일단 여기가 지구는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물론 악마들이 공간의 틈에서 빠져나와 사람들 모가지를 딸 때부터 짐작하긴 했다. 하지만 붉은색의 하늘을 보니 좀 더 확실하게 와닿는다.

그나저나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태연하게 주변 분석이나 하고 있다니, 나 스스로도 놀랄 침착함이다. 고유특성 절대이성의 효과인지 내 특유의 성격인지 몰라도 확실히 도움이 되긴 한다. 열심히 둘러보는 것 정도로 많은 정보를 얻어냈으니까.

난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을 잠시 멈추었다. 일단 머리를 괴롭히던 두통과 어지러운 시야, 구토감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나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일어났다. 일어나자 마자 무릎을 짚긴 했으나, 겨우 서 있을 수는 있었다. 생각보다 저 틈으로 이동하는 후유증이 강렬하다.

내가 어기적 거리며 일어서자 나를 지켜보던 제복 입은 남자가 다가온다. 그리고는 인상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간 전송 후유증으로 한동안 몸이 정상이 아니실테니까요.”

바로 대답하려 했으나 말을 하는 것도 힘들어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죠? 그쪽은 누구신가요? 저기 있는 사람들은요?”

“음, 궁금한 게 많으신 건 이해합니다. 다들 그러니까요. 근데 설명은 다른 분들이 진정하신 이후에 충분히 들으실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아, 예.”

“역시 상 난이도 시험 통과자라 그런지 진정도 빠르시군요. 앞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다들 그런다고? 일단 입문자의 시험을 치르고 여기로 넘어오는 게 최소한 처음은 아닌가 보다. 그리고 기대가 된다니? 무엇에 대해 기대가 된다는 걸까?

나는 쉴 새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들을 일단 치워두었다. 저 제복입은 남자의 말처럼 조금 있다가 설명을 해준다고 하니, 그때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면 될 것이다.

나는 무리해서 서있지 않고 그냥 털써 앉아버렸다. 이왕 기다리는 거 아직 힘든 몸을 더 쉬게 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고 있자니 옆에서 엎드려 있던 유지윤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마치 내가 했던 것처럼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아직 두통이 진정이 가라앉지 않는 건지 아니면 혼란스러워서인지 고운 미간이 끊임 없이 찌푸려졌다.

“힘들면 무리하지 마세요. 여기는 적어도 위험한 곳은 아니니까.”

보다못한 내가 조금 안심시킬 의도로 말했다.

“어... 끄응... 그.. 여기는, 어디죠?”

“저도 모르겠어요.”

“..네?”

“일단 저 제복 입은 사람이 다 설명해줄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기다리는 중이에요. 저렇게 사람들이 많으니 위험할 일은 없어 보이구요.”

“음, 그렇군요...”

유지윤은 그래 대답하면서 일어나 앉으려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몸에 힘이 없어 뜻대로 되지 않는지 자꾸만 실패하며 일어나지 못했다.

“앉으실건가요? 손 잡아보세요. 잡아드릴게요.”

“아, 고마워요.”

내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선뜻 손을 잡았다. 그렇게 내가 조금 당겨주니 유지윤은 그제야 후들거리는 몸을 가누어 앉을 수 있었다.

“후우, 힘드네요. 그런데 몸이 왜 이렇게 힘든 거죠? 저만 그런건가요?”

“아니요, 저도 처음에 엄청 힘들어서 잘못하면 구토까지 할 뻔했어요. 아마 저 뒤에 틈을 통과하면서 생기는 후유증인가봐요. 저 제복 입은 사람 말로는 공간 전송 후유증인가 그렇대요.”

“그렇군요. 공간 전송이라니.. 말도 안되는 일만 계속 일어나네요.”

“그러게요. 일단 여기가 지구가 아닌 건 맞을 거에요. 하늘을 한 번 볼래요? 색깔이 어떤지.”

내 말에 유지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게 입을 벌리더니 한동안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내린다.

“하... 악마들이나 시스템 메세지부터 이미 그럴거라 생각은 했는데.. 진짜 다른 세계인가...”

“그러게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유지윤도 막상 지금 있는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것이 실감되는 모양이다. 하긴 저 기분 나쁘게 붉은색을 띄는 하늘을 보면 다들 체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기려는데 그녀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 말투가 조금 편해지셨네요?”

“음, 그런가요?”

갑자기 말투가 편해졌다니? 딱히 달라진 거 없지 않나?

“네. 아까 전 시험장에서는 계속 합니다 체로 말하시면서 조금 격식 차리시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안 그러셔서요. 물론 지금이 더 편하고 좋아요.”

“어.. 그렇긴 하네요.”

“후후, 아마 앞으로 계속 동고동락 하면서 지내야 할 것 같은데 좀 더 친해지는 게 좋겠어요.”

“하하, 저도 좋아요.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요. 조금 냉정하고 차가울 때가 있을 수 있는데 그건 조금 이해해주셨음 하네요.”

“괜찮아요. 전 차갑고 무뚝뚝한 남자도 잘 품을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여자니까요. 저야말로 잘 부탁해요. 둘이서 이 살벌한 세상에서 잘 살아남아 보자구요.”

“좋아요. 꼭 살아남죠.”

그렇게 둘이서 다짐을 하고 있자니 누군가 크게 소리치는 내용이 들렸다.

“시험을 통과하신 초행자분들!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을 예정입니다! 혼란스러우시더라도 교관들에 통제에 따라 배정된 곳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설명을 들을 때가 온 모양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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