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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7화 (7/61)
  • 〈 7화 〉 6. 그대의 능력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 * *

    일단은 저 악마의 심장에 칼부터 꽂아넣고 더 생각해야겠다.

    일단 남은 마력은 65/100 정도.

    작열의 발동과 여러번의 열폭발로 마력을 꽤 사용한 상태다. 계속 회복되고는 있지만 사용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아마 장기전으로 간다면 내 마력이 먼저 바닥날 것이다. 갈색머리 여자는 나보다 임프를 더 적게 잡아서 레벨이 모자를테니 나보다 심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단기전으로 한 방에 승부를 보기로 했다.

    먼저 이 잠깐의 정적을 기습의 순간으로 이용해야 한다. 아무런 낌새도 느낄 수 없는, 그래서 피할 수 없는 기술로 말이다.

    ‘열폭발.’

    마력은 50/100으로. 남은 마력의 태반을 쏟아붇는다. 위치는 놈의 바로 앞이다. 악마를 불태우는 무지막지한 폭발이 이 정적을 깰 신호탄이 되어줄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 !!

    "크르으아아아아아악!!"

    임프 4마리를 날려버린 폭발과는 비교도 안되는 폭발이 악마를 덮쳤다. 공동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이 들렸다. 박살이 난 바닥 파편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폭발로 인한 바람이 나와 그녀에게 불어닥치며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나는 애써 바람을 무시하며 악마를 향해 뛰었다. 갑작스런 열폭발에 놈이 정신을 못 차릴 때 확실히 데미지를 주어야 한다.

    바람을 뚫고 달리자 악마의 모습이 보인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대처하지 못해 상반신 전체가 피해를 입은 것 같다. 놈의 앞쪽 상체는 온통 변색되고 뭉개져서 누더기 같은 상태다. 이미 내 열폭발에 당한 적이 있는 얼굴은 완전히 형체를 잃어버렸다. 놈은 얼마 서있지도 못하고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쿠웅 ­

    악마의 몸이 쓰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재빠르게 놈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내 뒤를 갈색머리 여자가 말없이 따르는 게 느껴졌다.

    ‘작열.’

    다시금 검이 달궈지며 불꽃이 검신에 둘러진다. 남은 마력이 얼마 없기 때문에 작열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말 그대로 단기간에 승부를 내야 한다.

    내 검이 붉은색 잔영을 남기며 이미 상처난 악마의 무릎을 그어버렸다. 이번에는 무릎이 완전히 잘렸다. 놈의 종아리가 피를 뿌리며 날아간다. 이것으로 놈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

    푸욱 ­

    “크르윽!?”

    내개 무릎을 잘라버리자 쓰러진 놈의 위로 장대 같은 것이 꽂혔다. 갈색머리 여자의 작품이었다. 잠깐의 정적동안 무언가 준비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기다란 장대를 꽂아버린 그녀는 상당히 지쳐보였다.

    “저 마력을 거의 다 썼어요! 일단 물러나서 회복할 겸 후방지원 할게요!”

    “알았어요!”

    하긴 그 장대를 실로 만들어내려면 마력이 상당히 소모되었을 것이다. 애초에 남은 마력도 얼마 없었을 것이고. 그런데 마력이 바닥나도 당황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 지원으로 전환하는 건 조금 의외다. 아마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 협동형 온라인 게임같은 걸 즐기지 않았을까? 상황에 따른 판단력과 역할 변경이 심상치 않다.

    어쨌든 악마는 이제 폭발에 상체가 아작나고, 무릎은 잘리고, 몸이 장대에 꿰뚫린 채로 바닥에 박혀있는 꼴이 되었다. 치명타를 박아넣기 최적의 상황이다. 나는 검을 꼬나 쥐고 악마의 옆을 달리며 최대한 난도질을 했다.

    “크르르륵!”

    악마는 옆에서 계속 상처를 내며 올라오는 나를 저지하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폭발의 후유증인지 위력이 전에 한참 못 미쳤다. 나는 가뿐하게 팔을 피하며 놈의 얼굴로 다가갔다. 손톱이 옷을 스치며 찢는 것이 느껴지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얼굴 쪽에 다다른 나는 이대로 목을 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검을 세워서 돌진하려는 찰나였다.

    “위험해요!”

    후우우우웅 ­ !

    무언가가 나를 당기는 힘을 느끼며 내 몸이 뒤로 젖혀졌다. 이어서 젖혀진 내 몸이 방금 있던 자리를 불기둥이 세차게 꿰뚫고 지나갔다. 작열하는 열기가 나를 덮쳤다.

    불기둥이 지나가고 보인 것은, 크게 벌려진 악마의 입이었다. 놈이 입에서 방금 전의 불기둥을 쏘아낸 모양이다. 나는 목 뒤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죽을 뻔했다.

    갈색머리 여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저 불기둥을 정통으로 맞았을 것이다. 아마 미리 내게 실을 연결시켜 두었다가 위험해지자 당긴 모양인데, 그것이 내 목숨줄이 되어주었다.

    “고마워요!”

    “조심해요! 놈이 또 무슨 공격을 할지 몰라요!”

    나는 놈을 경계하며 다시 감각을 곤두세웠다. 놈의 표정은 일그러져있었다. 안그래도 폭발로 엉망진창인 얼굴이지만, 회심의 일격이 실패하자 더 심통이 난 것 같다.

    불에는 똑같이 불로 갚아줘야 제 맛이다. 그래서 나는 불타는 검을 놈의 목에 꽂는 것으로 갚아주기로 했다.

    그러다 잠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스치고 지나갔다. 방금 내 바로 앞을 불기둥이 뚫고 지나갈 때, 상당한 열기가 나를 덮쳤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고통이나 공포보단, 무언가 편안함과 익숙함을 느꼈다. 불타는 열기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다니? 내가 무언가 달라진 것인가?

    혹시 이 악마를 처음 벨 때 보았던 무기 특성 개방이 원인일까?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확인하지 못했는데, 아마 불이나 열기에 대한 내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생각을 멈춘 나는 검을 앞세워 악마의 목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자 놈이 나를 물어뜯으려고 입을 벌렸다. 검을 휘둘러 저지하려는데 갑자기 단검 하나가 날아와 놈의 턱에 박혔다. 끝에 실이 매달린 것으로 보아 그녀가 실을 조종하여 던진 것 같았다. 얼마 남지 않은 마력으로도 후방 지원 역할을 착실히 하고 있었다.

    “좋아요!”

    덕분에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되었고, 그대로 돌진하여 악마의 목에 검을 쑤셔넣었다. 쑤셔넣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최대한 휘저어버렸다. 놈의 뚫린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나는 살짝 움직여 피를 피하며 검을 계속 움직였다.

    “끄르으으윽!”

    피가 역류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섞여 들린다.

    “피해요!”

    그녀의 말을 신호로 나는 바로 검을 빼어 뒤로 물러났다. 내가 피한 직후 놈의 손이 내가 있던 자리를 내리쳤다. 부서진 바닥 파편이 비산하는 걸 보니 상당한 위력으로 내려친 모양이다. 하지만 모처럼 치명타를 먹였으니 이 타이밍에 끝장을 내야 한다.

    ‘열폭발.’

    남은 마력을 전부 쥐어짜내어 기술을 사용하였다. 위치는 당연히 내가 헤집어 놓은 악마의 목 주변이었다.

    콰아앙 ­ !

    열기를 머금은 폭발이 놈의 목 근처에서 터졌다. 너덜너덜해진 목은 폭발의 힘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악마의 목은 뜯어져버렸고, 떨어진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머리가 사라진 몸에서는 세차게 피가 뿜어져 나왔다.

    푸하아악 ­ !

    악마의 몸에서 나온 검붉은 피가 차가운 공동의 바닥을 적셨다. 피가 둘러진 잘린 머리가 바닥을 굴러갔다. 몸의 곳곳이 경련을 일으키다가 점차 줄어들었다.

    마침내 악마의 몸이 모든 움직임을 정지하였다.

    나와 갈색머리 여자 사이에 잠시 정적이 내리깔렸다. 잠시동안 서로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죽은건가?

    저 끔찍한 악마가 드디어 죽은건가?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정적에 잠기든, 잘려진 악마의 머리와 피를 쏟아내는 악마의 몸은 그대로였다.

    “어... 저거, 죽은거죠? 죽은 거 맞죠?”

    “음.. 네, 그런 것 같네요..”

    그 때였다. 갑작스레 눈 앞에 메세지가 출력되며 소리가 들려왔다.

    [하급악마 가고일의 죽음을 확인.]

    [인간 2명 생존 확인.]

    [초대자 2명 생존 확인.]

    [가고일을 죽이는데 기여한 초대자 2명의 최종관문 통과 확인.]

    [시험의 모든 과정이 끝났다.]

    [살아남은 초대자들이여, 그대들의 능력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이상으로 입문자의 시험을 종료한다.]

    ***

    나와 갈색머리 여자는 한동안 눈 앞의 메세지를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시험 종료.

    비록 시험을 치룬 시간은 얼마되지 않지만 그 말이 실감되지 않았다.

    드디어 끝났다.

    드디어 이 끔찍한 아수라장이 끝났다.

    드디어 이 악마들과의 살육전이 끝이났다.

    처음 공동에 있던 48명 중 46명이 죽고 2명만 남은, 참혹한 시험이 끝났다.

    “흑.. 흐윽... 흑....”

    갈색머리 여자는 억눌러놨던 감정이 북받치는지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잠시 바닥에 드러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 원인불명의 참극은 끝이 났다. 더 이상 나를 죽이려고 달라드는 악마는 이제 없다. 앞으로도 계속 없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당장은 전부 사라졌다.

    위기가 물러갔다는 안도감과 함께 심한 탈력감과 무력감이 느껴졌다. 한껏 긴장 되어 있던 몸에 힘이 쭉 빠지며 군데군데 난 상처들이 아파온다.

    그때 다시 메세지가 출력되었다.

    [시험장 이탈까지 남은 시간 19:58]

    [시험을 통과한 초대자들에게 보상을 부여한다.]

    [초대자의 행적을 토대로 업적을 확인하는중...]

    [확인 완료.]

    [믿을 수 없는 업적! 난이도 ‘상’의 시험을 최초로 클리어하였다!]

    [칭호, ‘최악의 시험을 통과한 자’를 획득한다.]

    [믿을 수 없는 업적! 15Lv 이하의 레벨로 하급 악마를 사냥하였다!]

    [칭호, ‘악마 사냥꾼(하급)’을 획득한다.]

    [업적 달성 확인, 초대자끼리 협동하여 시험을 통과하였다.]

    [칭호, ‘최고의 파트너’를 획득하고 칭호의 효과에 동료 초대자를 자동 등록한다.]

    [난이도 ‘상’ 시험의 보상을 정산 및 부여한다.]

    [초대자에게 기술과 능력 하나가 부여된다.]

    [초대자 전원의 레벨이 10 오른다.]

    [초대자들에게 ‘우수한 초행자의 장비 세트’를 지급된다.]

    한없이 잔혹했던 시험의 보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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