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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6화 (6/61)

〈 6화 〉 5. 최종 관문

* * *

틈 사이로 육중한 팔이 튀어나와 바닥을 짚었다. 손에 달려있는 날카로운 손톱이 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시발...”

꼭 불안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니까.

나는 모든 공격수단을 대기 시키고 틈을 빠져나오는 의문의 거체를 주시했다. 팔 하나 밖에 안 보이지만 심상치 않은 놈이 틀림 없다.

이내 놈의 팔 한 짝이 더 나오더니 틈을 양손으로 붙잡는다. 그리고는 찢어내듯이 벌린다.

치지지지지직.. 치지지직!!

노이즈 낀 듯한 소음이 다시 들리며 틈이 더 찢어진다. 아까의 두 배 이상 커진 틈으로 놈이 얼굴을 들이민다. 얼굴이 통과하자 이어서 상체가 나왔다. 이어서 놈은 팔로 바닥을 짚고 다리와 하체를 마저 빼내었다.

드디어 완전히 틈 바깥으로 빠져나온 놈의 모습은 전형적인 ‘악마’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머리에는 산양과도 같은 한 쌍의 뿔이 돋아있고, 등에는 박쥐 날개와 같은 커다란 날개가 달려있었다. 입은 크고 쭉 찢어졌으며 그 사이로 무수한 이빨이 보였다. 몸은 전체적으로 허리가 굽은 사람과도 같이 생겼는데, 상체가 비정상적으로 크고 무엇보다 사람의 두 배 이상의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녀석은 느릿하게 몸을 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녀석의 눈에 생존자 무리 셋과 내가 비쳤다.

"크르으..."

놈이 낮고 짧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다 갑자기 놈이 네 발로 뛰기 시작했다. 생존자 무리 중 가장 많은 무리(그래봤자 4명이지만) 쪽 방향이었다.

갑작스런 돌발상황에 놈이 향하는 무리의 사람들은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이 네 발로 달리는 속도는 초대자도 아닌 사람들이 뿌리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놈은 먼저 도망치지 못하고 얼어있는 남자 한 명을 짖밟았다.

콰드득 ­ !

끔찍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납작해졌다. 남자의 주변으로 터지듯이 피가 뿜어진다.

"꺄아아아악!!"

도망치던 여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로 나를 포함한 멍 때리던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미 도망치는 사람들을 구하기는 늦은 상황이었다.

어느새 나머지 세 명의 바로 뒤까지 따라잡은 놈은, 그대로 팔을 휘둘러 방금 비명을 지른 여자를 후려쳤다. 여자는 그대로 피를 토하며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온 몸이 으스러진 여자는 곧바로 절명해버렸다.

“크르르륵!”

놈이 즐거운 듯이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나머지 두 명의 남자는 놈의 양 손에 잡혀서 그대로 벽에 내동댕이 쳐졌다. 두 명 다 마찬가지로 피를 뿜으며 무참히 죽어버렸다.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놈에게 달려들기로 했다. 사람 목숨을 파리 취급하며 학살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열이 받기도 했고, 어쨌든 저 놈을 잡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검을 쥐고 돌진하려던 순간이었다.

“저 개새끼가!”

옆에서 찰진 욕이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보자 한 여자가 단검을 쥐고 내가 있는 곳까지 뛰쳐나와 있었다. 여자는 옅은 갈색의 긴머리를 휘날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뜸 소리지르듯 말을 걸었다.

“거기, 당신도 초대자 맞죠?”

나는 얼떨결에 대답하였다.

“어, 네.”

“그럼 멍청하게 서있지만 말고 가서 싸우자고요! 저 망할 악마가 사람들을 벌레 밟듯이 죽이고 있잖아요!”

나는 잠시 동안 멈칫 한 이후 말했다.

“어, 음, 좋아요. 근데 같이 싸우자고요?”

“네, 저도 초대자니까요. 당신, 여기에 초대자가 당신 밖에 없는 줄 알았죠? 아까는 아주 혼자서 신나게 임프들 잡아대시던데?”

“어.. 다른 초대자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해서..”

“쳇, 누구는 사람들 지키고 서있느라 몇 마리 잡지도 못했구만. 아무튼, 빨리 가요. 저 놈이 사람들을 더 죽여대기 전에.”

“좋죠.”

그 말을 끝으로 나와 갈색머리 여자는 악마를 향해 질주했다. 갑자기 다른 초대자랑 마주하게 되서 상당히 당황스럽지만 일단 협력해보기로 한다. 문득 나도 그녀도 서로의 기술이나 특성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도 아마 서로를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함께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저 괴물을 잡는데 혼자보단 둘이 나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크륵?”

놈이 자신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는 두 명을 보고 잠시 달리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두 명을 마주 보며 자세를 잡더니 땅을 내려치려는 듯 팔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나는 그럴 틈을 줄 생각이 없었다.

‘열폭발.’

나는 어느새 내 범위 안에 들어온 악마에게 열폭발을 사용하였다. 부릅 뜬 놈의 눈을 중심으로 한 얼굴에다 말이다. 마력은 10/100 정도였다.

콰앙 ­ !

“크르아아아악!!”

악마가 비명을 지르며 제 얼굴을 감싸쥐었다. 동시에 놈은 하려던 공격도 못하고 몸을 무방비하게 노출하였다.

“나이스!”

갈색머리 여자가 기분 좋게 외치며 먼저 공격하였다. 거기서 나는 상당히 신기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여자가 손을 활짝 펼치자, 여자의 다섯 손가락 끝에서 실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그 실은 상당히 투명하여 잘 안 보일 법도 했으나 강화된 시력으로 겨우 볼 수 있었다. 이어서 뿜어진 실들이 한 줄기로 엮이더니 뾰족한 꼬챙이처럼 변했다. 마치 짧은 작살처럼 생겼다. 그녀가 손을 힘껏 휘두르자 실로 이루어진 꼬챙이가 악마의 눈에 거세게 틀어박힌다.

“크르으아아!”

안그래도 눈이 익어버린 것 같은 통증에 고통스러운데, 무언가 뾰족한 것이 찌르고 들어오자 악마는 추가로 비명을 내질렀다. 어쨌든 놈이 정신을 못차리는 순간이 나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작열.’

검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맑은 불꽃을 뿜어낸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질주한 나는 불타는 검으로 악마의 무릎을 베어버렸다.

콰지직 ­ !

무릎뼈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며 놈의 무릎에서 피가 뿜어졌다. 그러자 다리에 힘이 빠진 건지 놈이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갈라진 무릎에선 불꽃이 남아서 끊임없이 살을 갉아먹었다. 상태이상 ‘소각’의 효과였다.

[하급 악마의 피가 무기에 묻었다.]

[무기 특성 하나가 해금된다.]

무기 특성이 해금되었다는 메세지가 보였지만 볼 시간이 없었다. 일단 지금은 주저앉은 저 악마부터 처리해야 했다.

나와 갈색머리 여자는 놈이 일종의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고 판단하고 저마다 더 강력한 한 방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렇게 공격을 날리려는데, 갑자기 악마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아작난 무릎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

나와 그녀는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악마가 싸우다 말고 대뜸 도망을 치다니? 물론 도망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반격을 할거라 예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놈이 달아나는 방향이 생존자들이 있는 방향이었다.

“하!”

“저 새끼가 진짜!”

나와 갈색머리 여자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악마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놈이 뛰는 속도는 우리와 대등한 수준이었다. 나와 그녀의 레벨이 아직 낮은 건지 아니면 놈이 빠른 건지 모르겠지만 따라잡기 어려웠다.

그렇게 어느새 생존자 무리에 도달한 악마는 날카로운 손톱을 세워 휘둘러댔다. 멍하니 우리가 싸우는 것을 지켜보던 생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난도질 당했다.

그렇게 단숨에 3명을 찢어죽인 악마는, 쫓아오는 나와 그녀를 흘긋 보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최대한 놈에게 가깝게 열폭발을 터뜨리고, 그녀도 실로 만든 꼬챙이를 연달아 던져보았지만 전부 놈의 등판에 상처만 좀 낼 뿐이었다. 악마는 자신이 입는 상처를 무시하고 달리기만 했다.

놈은 결국 마지막 2명에게 도착하였다. 악마는 부들거리며 떨고 있는 둘을 보더니, 입을 쩍 벌려 그대로 삼켜버렸다.

으드득, 으득 ­

그 뒤로는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찢어죽일 놈이...”

우리를 제외한 마지막 생존자를 처리한 악마는 그제야 다시 우리를 마주 보았다. 놈의 표정은 마치 우리를 엿 먹인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는 듯이 활짝 웃고 있었다. 영악하게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우리를 제치고 다른 생존자부터 공격한 놈의 몸은, 생존자들의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

모두가 죽고 나와 갈색머리 여자, 그리고 악마만이 남은 공동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와 그녀는 잠시동안 악마와 서로 노려보았다.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짧은 정적 속에서 수많은 의문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너무 처참하지 않은가?

너무 무자비하지 않은가?

너무 불합리하지 않은가?

왜 결국 이런 상황까지 된걸까?

무엇때문에?

시험이 시작되기 전, 분명 시스템은 이것이 입문자의 시험이라고 했다. 대체 입문자의 시험이라는 게 뭐길래 이렇게까지 혹독한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당시에 보았던 또 다른 메세지가 떠올랐다.

[방문자들의 평균 잠재력 수준을 바탕으로 난이도 설정 중...]

[난이도 ‘상’으로 설정 완료]

난이도 ‘상’이라는 문구. ‘상’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는 몰라도 일단 중과 하보다는 높은 난이도일 것이다.

그냥 그런 것일까? 여기 있던 사람들은 역량이 좀 높아서 난이도가 높은 시험에 배치됬을 뿐인가? 그럼 각성조차 못하고 저 악마에게 죽어간 사람들은 운이 없었을 뿐인 건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그러니 일단은 저 악마의 심장에 칼부터 꽂아넣고 더 생각해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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