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4. 입문자의 시험
* * *
‘작열.’
부러진 검날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맑은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더러운 것들을 전부 태워 정화할 것만 같은 맑은 불꽃이었다.
"끼르륵?"
내게로 접근하던 임프는 갑작스레 내 검에서 불꽃이 피어오르자 눈이 동그래졌다. 거침없이 내 쪽으로 밟던 발걸음이 순간 멈춘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임프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이 붉은색 궤적을 그리며 임프를 향해 쇄도한다. 순간 당황했던 임프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피하려고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일반인에서 초대자로 각성하고, 레벨도 조금 올린 내 신체능력은 나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며 동시에 주변 환경과 상황을 면밀히 포착해낸다. 마치 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허둥대는 임프의 상체를 내 검이 거침없이 베고 지나간다. 좀 전에 임프를 단검으로 찔렀을 때처럼 불쾌한 감각이 느껴질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무기 자체도 뛰어나고 기술 ‘작열’의 효과로 절삭력도 올라간 덕분인 듯 하다.
“끼르르르륵!!”
상체가 깊게 베인 임프는 단말마를 내뱉으며 곧장 숨이 끊어졌다. 얼마 후 가루로 변해 사라지는 놈의 시체에서 바로 마석을 챙겼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입에 넣었다.
[임프의 마석을 흡수.]
[Lv 3 > Lv 4]
레벨은 임프 한 마리당 하나 꼴로 오르는 것 같다. 나중에 레벨을 올리기 더 힘들어질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생각보다 쑥쑥 오른다. 내 몸을 순환하는 마력의 양이 날로 늘어가는 것이 체감될 정도다. 특성인 마력 흡수형 소화기관 덕분에 더 잘 오르는 것도 있을 것이다.
기술은 써보니 체감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기술이란 것이 지속시간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기술이라기보단 특성에 가까울 것이다. 이 기술이란 것을 쓸 때마다 내 몸 안의 마력이 조금씩 소모되는 것이 느껴진다. 마력의 소모량, 혹은 잔여량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미 내 안에서는 마력이 신체의 일부처럼 기능하고 있었다. 마력이 소모되거나 다시 차오르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내 스스로 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마력을 수치화 하기로 했다. 마력의 총량을 100으로 잡는 것이다. 이러면 총량이 얼마인지에 상관없이 내 마력이 어느 정도 소모되고 남았는지, 또 얼마나 다시 차오르는지 빠르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검을 고쳐쥐고 가까운 임프를 탐색하였다. 멀찍이서 임프들이 남은 생존자를 유린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빠르게 그 쪽으로 달려갔다.
“으아, 으아아아!!”
“끼르르륵!”
막 한 명의 목숨이 사라지려는 찰나, 날붙이를 겨누던 임프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잘린 목의 단면에는 불꽃이 남아 탐욕스럽게 살점을 태우고 있었다. 나는 바로 이어서 다음 목표를 향했다. 검이 붉은 잔영을 남기며 이리저리 횡행하자 빠른 시간 안에 임프들이 정리되었다.
“괜찮으세요?”
생존자들은 공포에 질려서 자신들을 구해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마저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다른 임프들은 없는지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생존자 무리 둘 정도가 나름대로 뭉쳐서 저항하고 있었다. 바닥이 떨어진 뼈와 임프들이 들고있던 무기로 어떻게든 임프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나는 조금 마음을 놓으며 일단 처리한 임프들의 마석을 빠르게 회수하였다. 그리고 바로 입에 넣고 씹었다.
[임프의 마석을 흡수.]
[임프의 마석을 흡수.]...
[Lv 4 > Lv 8]
실시간으로 마력의 총량이 늘어나며 작열을 사용하느라 소모되는 양은 없다시피 했다. 나는 여전히 불꽃을 뿜어내는 부러진 검을 들고 나머지 임프들을 향해 쇄도했다.
거침없이 임프들을 휘젓고 다니자 어느새 임프들의 수는 꽤 줄어있었다. 놈들은 내가 자신들을 학살하고 다니자 나를 주시하며 자기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최하급 악마인 임프이고, 이제는 놈들을 처치하는 데 익숙해진 상태라지만 놈들이 뭉치면 상대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포위라도 당하면 꽤나 위험해질 것이다.
그렇게 놈들이 무리를 이루기 전에 습격하려던 찰나, 잠깐 무시하고 있었던 메세지 창이 눈에 들어왔다.
[임프의 마석을 흡수.]
[임프의 마석을 흡수.]...
[Lv 8 > Lv 10]
[Lv 10의 달성을 확인.]
[초대자에게 적합한 기술 하나를 부여한다.]
[초대자의 전투 성향과 방식 분석중...]
[분석 완료.]
[기술 ‘열폭발’을 부여한다.]
“음?”
기술을 부여한다고? 갑자기? Lv 10이 되는 것이 뭔가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나는 생각을 잠시 멈추고 일단 받은 기술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초대자 정보
이름: (없음)
Lv 10
자격: 초대자
직업: (없음)
칭호: (없음)
고유특성
절대이성(??): 언제나 본능과 감정보단 이성이 우선권을 가진다.
정신계열 상태이상 면역, 모든 상태이상을 받을 확률 50% 감소, 상태이상으로 인한 피해 30% 감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
마력 흡수형 소화기관: 마석을 먹는 괴상한 식성을 가진 이에게 딱 맞는 소화기관.
마석을 먹어서 흡수할 경우 체내 마나 증가효율 15% 증가, 마석을 먹을 경우 해당 악마의 특성이나 기술 중 하나를 10% 확률로 획득(같은 종류의 악마끼리 중복 불가), 일반적인 음식을 소화할 때 소량의 마나를 흡수한다.
기술
열폭발: 사용자를 중심으로 5m 반경의 반구에 해당하는 범위 안에서, 원하는 장소에 열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사용시 투입하는 마력의 양에 비례하여 위력이 증가한다.
상대에게 상태이상 ‘화상’ 부여, 상대가 낮은 확률로 행동 불능에 빠짐.
*화상: 넓은 범위에 걸친 화상을 부여하며 극심한 통증, 해당 부위의 신체 기능 저하를 일으킨다.
“호오.”
꽤나 유용한 기술이다. 사용 가능 범위가 살짝 아쉽지만 이것만 해도 충분히 괜찮은 성능이다. 상황에 따라서 상대의 허를 찌르거나 예상치 못한 치명타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침 길이가 짧은 부러진 검에만 의존하자니 불안한 참이었다.
나는 새로 기술을 얻은 참에 바로 시험해 보기로 했다.
저 멀리 어느새 무리를 이루어 내게 다가오는 임프들을 향해서 말이다.
나는 마치 공격을 포기한 듯 검을 내리며 무방비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놈들은 잠시 의아해 하더니 바로 속력을 높여 내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틈이 보였을 때 바로 끝장낼 생각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로부터 5m 안 쪽, 즉 놈들이 죽을 땅에 더 일찍 들어오는 것 밖에 안 되었다.
범위 안에 놈들이 들어오자 나는 바로 놈들을 향해 기술을 사용하였다.
‘열폭발.’
마력의 소모량은 25/100 정도. 시범삼아 넉넉하게 넣어본다.
콰아앙 !!
“으읏!”
커다란 폭발이 전방에서 터진다. 생각보다 상당히 큰 굉음이 들린다. 갑작스레 부딧혀오는 열풍에 나는 팔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열풍이 지나가고 팔을 내려 앞을 보았다. 결과는 상당히 좋긴하다. 하지만 좋아도 너무 좋았다.
폭발에 휩쓸린 임프들은 시체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다. 신체의 절반 정도가 폭발과 함께 사라진 듯 보였다. 심한 놈은 다리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바닥의 일부까지 폭발에 의해 깨져나간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마력 총량의 4분의 1은 너무 큰 양이었던 모양이다. 더 크게 했다가는 나도 휩쓸릴지도 모르겠다. 기술 설명에는 딱히 사용자가 영향을 안 받는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 뒤 열폭발로 처리한 임프들의 마석을 입에 넣었다.
[임프의 마석을 흡수.]
[임프의 마석을 흡수.]...
[Lv 10 > Lv 14]
남은 임프는 몇 마리인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더이상 임프가 보이지 않았다. 방금 열폭발로 죽인 4마리가 마지막이었던 모양이다. 얼마 되지 않는 생존자들만 방금 폭발이 일어났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임프의 전멸을 확인.]
[인간 11명 생존 확인.]
[초대자 자격을 획득한 2명 확인.]
[시험의 최종 관문을 시작한다.]
[현재까지 생존한 모든 방문자, 초대자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담담한 목소리가 최종 관문의 시작을 알렸다.
***
최종 관문이라고?
잠시 벙 쪄 있던 나는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왠지 상당히 불안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검을 틀어쥐고 작열을 발동시켰다. 언제든 범위 안에서 열폭발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몸 안의 마력이 빠르게 순환하며 신체 능력의 일시적 향상을 가져왔다.
치지지직.. 치지지지지지지직 !
임프들이 나왔을 때와 같이 노이즈 같은 소음이 들려왔다. 다시 공동의 한 가운데에서 틈 같은 것이 열렸다.
그리고 틈 사이로 육중한 팔이 튀어나와 바닥을 짚었다. 손에 달려있는 날카로운 손톱이 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시발...”
꼭 불안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