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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2화 (2/61)
  • 〈 2화 〉 1. 입문자의 시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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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아..."

    몽롱한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머리가 깨질듯이 지끈거리다가 점차 통증이 가라앉는다. 흐릿한 초점이 점점 똑바로 잡힌다. 줄곧 들려오던 굉음같은 이명도 이내 사라진다.

    곧이어 오감이 완전히 회복되고 정신도 또렷하게 살아난다. 내가 지금 어딘가의 바닥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러자 주변의 환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변은 전체적으로 어둑어둑했다. 사물을 구분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자세히는 보이지 않는 수준이다. 적어도 조명이나 햇빛이 드는 창문 따위는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점차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확실히 보인다.

    일단 이곳은 커다란 공동 형태의 장소였다. 둥그런 천장이 위를 덮고 있는 밀폐된 장소. 장소 자체가 워낙 넓어서 딱히 밀폐됬다는 느낌이 들진 않지만 밖으로 통하는 길이나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여긴... 어디야..?"

    문제는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새카맣게 어두운 공동이라니. 납치라도 당한걸까? 하지만 납치한 사람을 이렇게 큰 공간에 아무렇게나 버려두나? 묶어두거나 하지도 않고?

    머리속이 너무 혼란스럽다. 일단 진정하고 기억나는 것부터 떠올리기로 한다.

    ".....어?"

    기억나는 것이 없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내가 어디에서 뭘하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뭐지?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건가?

    나는 조금이라도 뭔가 기억해내려고 머리를 부여잡는다. 정말 사소한 것 하나라도, 하다못해 내 이름이 뭐고 가족은 누가 있는지라도 생각하려 노력한다.

    "....."

    기억나지 않는다.

    내 이름도, 가족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야.. 아니야....."

    이럴리가 없다. 이렇게 아무것도 기억이 안날리가 없다. 아무리 기억상실증이라도 이렇게 뇌에 있는 정보가 통째로 지워진듯이 사라질 순 없다.

    내 이름은 뭐지? 내 나이는 몇이지? 나는 어디에서 태어났지? 나는 어디에 살지? 내 직업은 무엇이지? 내가 아는 사람은 누가 있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지? 나는.....

    "나는.. 나는 누구지...?"

    이렇게 철저히 아무것도 생각이 안난다니.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겠다니. 내가 미친걸까? 아니면 뇌에 정말 심각한 문제라도 생긴걸까?

    그렇게 내가 한참을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도중, 갑자기 옆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끄으.. 으으아..."

    황급히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누군가가 누워서 신음을 뱉으며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사람..?"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었나?

    그리고 그 직후, 공동의 여기저기에서 앓는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넓은 공동에는 나만 있던게 아닌 모양이다.

    잘 보니 공동 바닥에 이리저리 널부러진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는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격한 혼란에 휩싸는 듯 했다.

    "뭐, 뭐야? 여기 어디야?"

    "어, 엄마.. 엄마?"

    "이게 무슨..."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혼란스러운 머리를 진정시키거나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게 쉬울리가 없다.

    "여, 여기 어디야! 내보내줘!"

    "너냐? 너가 날 여기 납치했어?"

    "오지마, 오지말라고!"

    공동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비교적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는 이들도 보이지만, 대부분은 혼란을 이기지 못하고 날뛰거나 패닉에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조금 전 적막이 거짓말인듯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 찬 공동.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 나만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일까? 아까보다 훨씬 마음이 진정되고 머리 속이 차분해진다.

    그렇게 다시금 상황 판단을 해보려는 찰나, 누군가 새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으, 으아아아!!"

    "뼈... 뼈, 뼈가 있어!"

    뼈?

    뼈가 있다니?

    그 말을 시작으로 이리저리 비명이 번져가기 시작한다.

    "뼈가 어디 있다는 거..."

    반사적으로 주변의 바닥을 훑어보자 바닥에 흩어진 무언가 희끄무레한 것들이 보인다.

    저게 뼈라는 건가?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것에 다가가서 집어올려 확인해본다.

    길쭉하고 단단한 막대기와도 같은 모양. 양쪽 끝이 부풀어있는 듯한 모양인 것이 특징적이다.

    뼈다. 확실히 뼈다.

    크기와 모양으로 미루어보건대 사람의 넓적다리 뼈인 것 같다.

    별로 삭지 않은 것을 보니 아마 이 뼈의 주인이 죽은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뼛조각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이 있었다.

    "흐으, 흐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악!!"

    안 그래도 혼돈의 도가니였던 공동은 이젠 공포로 물들기 시작한다.

    "살려줘, 살려줘!!"

    "여기서 다 죽을거야! 죽을거라고!!"

    이제 사람들은 일제히 패닉에 빠지는 듯 했다. 갑자기 어두운 공동에서 눈을 떴는데, 기억은 죄다 지워져있고, 주변의 뼛조각들이 널려있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근데 난 왜 이렇게 침착한거지?

    불현듯 나는 상당히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은 죄다 미치기 일보직전의 정신상태를 보이는 상황이다. 이미 기절한 사람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도 냉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걸까?

    마치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을 관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기억이 지워지기 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던 도중, 온갖 비명소리가 난무하던 공동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도 일순간 모든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눈 앞에 메세지같은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인간 48명의 입장을 확인.]

    마치 허공에 스크린이라도 있는 것처럼 글자들이 나열된다.

    [방문자들의 평균 잠재력 수준을 바탕으로 난이도 설정 중...]

    [난이도 ‘상’으로 설정 완료]

    [입문자의 시험을 시작한다.]

    공동에 있는 모두에게 지옥이 열렸음을 알리는 메세지였다.

    ***

    메세지가 나타난 뒤 공동에는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이 불가사의한 현상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동안의 '방문자'들에겐 더이상 느긋하게 생각이나 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시험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시험은 방문자들이 상황파악을 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았다.

    변화는 공동의 한 가운데에서 시작되었다.

    치직.. 치지지지지직..

    마치 노이즈가 낀 듯한 불쾌한 소리가 들리며 허공이 갈라진다.

    갈라진 허공 사이로 난쟁이 같은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틈이 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바깥으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끼륵, 끼르르륵!"

    "끼르르르륵!"

    짐승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등장한 그것들은 잠시 멈추어 공동 안의 사람들을 둘러본다.

    나는 그 때 그것들의 생김새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꽤나 키가 작은 편이었으며 팔과 다리는 앙상하게 말라있었다. 피부는 온통 붉은 색을 띄고 있고 털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것들의 눈은 상당히 크고 기괴했다. 노란색 눈동자가 눈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며 흰자위는 보이지 않았다. 또한 입이 굉장히 크고 길쭉했고 그 사이로 보이는 이빨은 매우 날카로워 보였다.

    그 커다란 입은 우리를 보고는 입꼬리가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손에 작달막한 날붙이를 들고 있었다.

    그것들 중 제일 몸집이 큰 놈이 손에 든 단도를 들어 사람들을 가리켰다.

    "끼르르르르르륵!!"

    그 기괴한 외침이 신호탄이 되어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악!!"

    "끼르르륵!"

    첫 희생자들은 공동의 가운데 쪽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것들은 점프로 단번에 사람의 어깨 위로 오르더니 가차 없이 날붙이로 목을 그어버렸다.

    잘린 동맥에서 뿜어지는 피분수가 이리저리 뿌려진다. 죽어가는 사람들 뒤에 있는 사람들은 피를 맞으면서도 몸이 굳어서 움직이질 못한다.

    그것들은 지체 없이 다음 사람을 향해 날붙이를 들이밀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몇몇 사람들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

    "꺄아아아아악!!"

    "저, 저게 뭐야 시발!!"

    "튀어, 튀라고!"

    나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손에 들고 있던 넓적다리 뼈를 강하게 쥐었다.

    앞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참극과는 대조적으로 머리속이 얼음처럼 차갑게 내려앉는다.

    어차피 도망가는 것은 소용이 없다.

    이 공동에서 도망을 가봤자 어디로 가겠는가. 기껏해야 다른 사람 뒤일텐데 그건 죽을 시간을 조금 미루는 것 밖에 못 된다.

    결국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다.

    저 작은 괴물들과 싸워서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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