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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해도 괜찮아-49화 (49/54)
  • 〈 49화 〉 초라해도 괜찮아

    * * *

    화창한 날씨였다. 마치 지금의 서율을 조롱하는 듯이 좋은 날씨. 유나와 태수는 조금 거리를 두고 멍한 상태로 벤치에 앉아있는 서율을 바라보았다. 초점이 없어 빛을 잃은 눈은 더 이상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애초에 타인에게 관심이 없던 아이였는데 이젠 자신도 주변 사람에게도 그 예쁜 눈을 향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유나는 그런 서율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태수에게 말해보아도 그도 유나에게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저 작은 몸에 무슨 일들이 지금까지 벌어졌는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율이와 가까이 있던 유나 역시 모른다면 그도 알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았다.

    유나가 암담한 현실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오래 곁에 있었는데......... 난 율이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 언젠가 말해주겠지 다음엔 말해주겠지.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율이가 내 쪽으로 오기를 바라기만 했어. 어쩌면 율이를 그냥 방치한 걸까. 조금 더 캐물을 걸, 더 열심히 다가갈 걸. 이제 와서 후회해. 태수 오빠가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

    유나는 길거리에 아무렇 게나 있는 돌을 걷어찼다. 그 돌의 행적을 태수가 눈으로 쫓으며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네. 하지만 율이가 말하지 못한 이유라면 조금 알 것도 같고. 법정에서 자초지종을 다 들었잖아...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 어려웠겠다고 쉽게 생각이 가능해. 소중하면 소중할수록 말하기 힘든 게 있으니까. 믿지 않을까봐 이상하다고 생각할까봐...”

    “소중하다면 그런 건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조금씩 나아지는 게 보여서 안심했던 것 같아.”

    유나의 성격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율이를 저렇게 만들만큼 심각한 일이라는 것쯤은 그녀라도 알 수 있었다.

    어릴 적의 착했던 진태 오빠이기에 그 충격은 컸다. 군재판에서 술에 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며 발뺌하는 추악한 행위마저도 보였다. 그렇게 망가진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일로 인해 더욱 남성에 대해 벽을 두게 될까봐... 유나는 너무나 걱정이었다. 만약 율이가 그런다 해도 유나가 이젠 강압적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 확신 할 수가 없었기에.

    “사실을 말하고 부정당했을 때를 한번 상상하면 입이 좀처럼 열리지 않아. 율이도 너한테 말하려고 여러 번 고민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결국 서율은 유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유나는 그 결과가 싫은 거였다. 율이의 아픔을 품어줄 만큼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말이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글쎄.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유나의 물음에 태수가 되물었다.

    “율이가 훌쩍 떠날 것 같아서 두려워. 우선은 어디 못 가게 꽉 붙잡고 있어야겠지?”

    유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그리 말했다. 커져가는 불안감을 물리는 것처럼 과장된 몸짓이었다. 태수는 그런 유나의 모습에 미소 지었다. 그도 그녀와 같았다. 지금처럼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숨만 쉬고 있는 인형처럼 변한 율이를... 말하는 인형 정도로는 만들어야 했다.

    “그래, 일단 제정신으로 만들어 놓자고.”

    “율이 기다리겠다.”

    유나는 총총걸음으로 서율이 있는 벤치로 다가갔다. 고개를 푹 숙인 서율에게 웃으며 말을 거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다정해보였다. 머리를 매만져주고 볼을 쓰다듬는 등... 옅은 반응이라도 보일 수 있게 유나는 스킨십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은 무의미 했으나... 유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서율은 가족이라는 틀에서 나오게 되었다. 트라우마 측면에서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가정법원에서의 판결로 인해 서율의 파양이 결정되었다.

    이번 결과에 유나나 태수는 다행이라 생각했으나. 율이는 어떨지 몰랐다. 그녀는 가족을 갖는 게 평생의 꿈이었으니까. 자신을 깎아가며 그 가족의 일행을 되려고 했는데 또 실패했다. 그녀가 제정신이었다면 그 노력의 상실감이 무척이나 컸겠지. 그러나... 울거나 화내지 않는 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파양이라고 해서 길거리로 나앉은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양부모님은 서율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문제 있던 건 진태뿐이라 양부모님에게는 큰 죄가 있진 않았다. 따지자면 자신의 아들을 잘 관리하지 못한 부모로써의 책임이 문제였다.

    그래서 서율이 원한다면 다시 가족 관계를 유지해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서율 본인에 관한 일들을 정하는 데 자신의 의견이 들어간 것이 없었다. 마치 의지가 없는 것처럼 아무래도 좋은 일인 것처럼. 세상 모든 일이 귀찮다는 듯 서율은 삶의 의미를 잃어 있었다.

    진태의 폭력이 기폭제의 역할을 했다. 수 십 년의 세월동안 묻어둬서 없었던 일처럼 여겼던 그 사건들이 한 번의 손지검으로 인해 한순간에 다시 터져 나왔다. 그럼에 서율은 살아있음에도 아무런 의지를 지니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생명력을 잃은 눈초리는 무기질 적이었다.

    태수는 그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점점 그 나이대의 소녀가 되어가는 듯 했는데 다시 이렇게 됐다니. 마치 자신의 잘못처럼 여겨졌다. 이미 늦었다. 과거로 돌아가 그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반성을 계속 했다.

    율이가 싫다고 해도 계속 곁에 붙어 그녀를 지켰어야 했다.

    “율아?”

    유나가 다정히 불렀다. 그에도 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눈동자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 생각이라는 걸 하고는 있는 걸까...

    유나는 서율이 이렇게 있으니 마치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인형 같다고 놀리곤 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웃으며 이야기도 했었는데...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몇 년이 지난 거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율이를 보고 함께 집에 갈걸. 그냥... 잠깐의 번덕으로 율이네 집에서 외박을 할 걸 그랬다. 가정의 일이 후회로 인해 샘솟았다. 많은 후회를 했다. 그랬다면 결과가 바뀌었겠지? 유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율이가 다시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의 밝았던 그때처럼 하고 간절히 바라는 유나였다.

    지금 서율이 살고 있는 곳은 학교 근처에 자리한 원룸이었다. 혼자 살기에 적당한 정도의 크기의 집이었는데 이곳에 자리한 이후로 서율은 한 번도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씻지도 밥을 먹지도 않았고 심지어 잠을 자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시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시야에 들어오지 않으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유나야, 이만 돌아가. 오늘은 내가 옆에 있을게.”

    태수가 유나에게 그리 말했다.

    유나는 며칠 동안 서율이의 수발을 들었던 터라 꽤나 지친 상태였다. 유나는 서율이 홀로 어딘가로 떠날 것 같이 느껴져서 혼자 둘 수가 없었다. 쉬고 오라는 태수의 말에 율이가 이렇게 된 게 자신의 잘못 같아서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 유나였다.

    “좀 쉬다가 돌아와. 율이도 그 정도는 봐줄 거야.”

    유나가 피곤한 눈으로 태수를 바라봤다. 조금은 장난기가 있는 게 뭔가 쓸데없는 말을 할 것만 같았다.

    “단 둘이 뭔 짓을 하려고? 아무리 오빠라도 그건 좀...”

    아니나 다를까. 이런 와중에도 장난을 치는 유나 덕분에 태수도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미쳤구나... 내가 그렇게 쓰레기로 보이니?”

    “아니... 그냥 이 답답한 분위기가 싫어서 장난 쳐 본거야. 태수 오빠... 잠깐 동안 부탁해도 될까?”

    “걱정 마. 조금은 쉬어. 너네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그건 아닐걸? 우리 엄마 아빠, 율이 엄청 좋아하셔. 당장 율이 돌봐주라고 얼마나 혼내시는데. 내가 공부 안할 때보다 더 화를 내셔서 당황스럽다고.”

    “고생이 많네.”

    “흥... 고생은 무슨. 율이가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데... 오면서 먹을거랑 좀 사올게. 우리 율이 피부 관리도 해줘야 하니까 화장품도 좀 사와야지!”

    다시금 힘이 가득한 눈초리로 변한 유나는 따뜻한 눈길로 율이를 한번 바라본 뒤 윗옷을 챙기곤 원룸을 나갔다. 유나가 나간 방에는 서율이와 태수만이 남았다.

    태수는 율이와 단 둘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사라질 것 같은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그녀가 없어지면 자신도 유나처럼... 모든 걸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껏 숨겨뒀다가 이제는 꺼내야 했다.

    “율아 자살하려고? 아무것도 안 먹고... 아무것도 안하고... 정말 미련이 없어 보인다.”

    태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서율이 그 직설적인 말에 살짝 움찔했다. 그녀가 작은 반응이라도 보였다는 것에 태수는 감격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가 그저 혼잣말이 아닌 그녀에게 들리는 것일 테니까.

    “위로가 가능한 일이면 좋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이해 따위는 할 수도 없지. 그건 너무 오만한 짓이니까.”

    서율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태수였다. 그의 말투에서 슬픔이 묻어나왔다. 물론 서율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눈으로는 태수를 바라봤다.

    “그래서... 난 그냥 너가 삶에 미련을 가질 만한 일을 이야기 해볼까 해.”

    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게 더 애처롭게 들려왔다.

    “우선 유나. 유나는 첫 친구라고 알고 있어. 세상에는 자신을 위해주는 친구 단 하나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 하더라. 그게 사실인지는 인생이 끝날 때 알 수 있겠지만... 너랑 유나의 관계를 보고 있으면 적어도 헛소리는 아닌 거 같다고 생각해.”

    서율의 앞에 서있던 그는 바닥에 앉으며 그렇게 운을 땠다. 아주 긴 이야기가 시작 될 것처럼 목을 가다듬기도 했다. 태수는 서율을 다정히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맞아. 유나가 말해줬는데... 원래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고 하더라. 그 장난치기 좋아하고 활발한 성격이 다 율이 덕분이라고. 모난 곳 없이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게 만들어 준건 다 천사 같은 너가 있어서 가능했데. 믿겨져? 한 사람을 변화 시키고... 거기다 항상 자신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을 가지기란 참 힘든 일인데. 율이는 그런 사람을 이미 가지고 있어.”

    태수는 유나에 대해 생각하듯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잔잔하게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어쩐지 슬픔이 묻어있었다. 그에 율이도 유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첫 친구... 유나는 인생을 포기하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나 마찬가지니까. 벽을 쳐볼까 했으나... 그 벽을 다 부수고 들어오는 말괄량이 덕분에 자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태수의 말대로 유나가 처음부터 이 성격이었던 건 아니었다.

    처음 유나는 소심하고 항상 아이들에게 이끌려 다니는 아이였다. 그때부터 성격이 좋아서 거절을 못하고 아이들이 하자는 데로 하는... 율이도 그런 유나를 처음에는 관찰만 하고 있었으나. 아이들이 하는 일 어른의 입장에서 굳이 왈가왈부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싫어하는 일임에도 떠밀려서 하게 되는 유나의 모습에 그만 참견을 하고 말았었다. 하기 싫은 표정을 하고 있음에도 결국 나쁜 일을 하는... 향후에도 이런 애들이 나중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나쁜 길로 빠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 흔한 어른의 오지랖이었다.

    그 결과 유나는 율이를 따라다니게 되고 지금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참 질긴 인연이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너가 유나한테 한 말이지?”

    그랬다. 자신이 한 말이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고... 근데 자신은 어땠지? 하기 싫어도 굳이 끝까지 해버렸고 그 끝에 있는 길이... 지금의 자신이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아니지... 혼자는 아니었다. 유나가 있으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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